고전9:27 내몸을 쳐 복종케 한다는 것은?

조회 수 809 추천 수 18 2010.11.12 01: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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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쳐 복종케 한다는 것은?


[질문]


정말 초신자입니다.  예수님을 더 알고자 나름대로 열심히 씨름하고 있습니다. 워낙 성경을 몰라 궁금증 투성이지만 홈피를 통해 하나하나 배울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내 몸을 쳐 복종케 한다는 것”(고전9:27)과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함”(고후10:5)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다”(갈2:20)는 뜻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언뜻 셋 다 비슷한 말씀인 것 같은데다 정확한 의미를 알기 힘듭니다.

[답변]

우선 세 구절의 표현이 거의 비슷해 보이기에 그 정확한 의미를 따져보겠다는 것만도 결코 초신자의 믿음 수준이 아닙니다. 흔히 지나치기 쉬운 부분이지 않습니까? 말씀하신대로 성경과 열심히 씨름한 증거로 보입니다. 각 구절별로 간단히 답변 드리기 전에 한 가지만 강조하고자 합니다.

성경은 원래 장절이 붙어 있지 않았습니다. 근자에 와서 내용을 분해, 검색하는데 편리하도록 붙인 것뿐입니다. 다른 말로 성경은 원래 죽 이어진 책이기에 읽을 때도 반드시 그렇게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책 한권 전체를 수학 인수분해 하듯이 소주제 별로 묶어서 분석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앞뒤 문맥과 연결해 뜻을 찾지 않으면 자칫 저자가 정작 의미하고자 하는 바와 다른 뜻이 되어버립니다.    

가뜩이나 감성적인 한국 신자들은 인용된 구절만 성급하게 해석하고 맙니다. 특별히 신약 서신서들은 주로 교리적 사상을 다루고 있기에 찬찬히 따져봐야 하는데도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니까 더욱 그러지 않습니다. 대충 문자적으로 해석하고선 하나님 잘 믿어 죄 안 짓고 착하게 살라는 두루 뭉실한 권면으로 결론 내려 버립니다.

물론 그런 결론이 꼭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자가 잘 믿고 선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닙니까?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며 선한 일에 불신자들보다 더 큰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문제는 선하게 살되 그 목적, 의미, 결과 등에 대해 확실하게 정리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질문하신 세 구절을 앞뒤 문맥과 연결해서 그 이상의 뜻을 발견해보도록 합시다.  
        
(1)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하는 것은?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傳播)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9:26-27)

먼저 몸을 친다는 것은 바로 앞에서 비유로 든 권투선수의 모습에 비유한 수사법의 연장입니다. 바울은 스스로 절제하는 모습을, 절제하는 내용과 목적은 나중에 설명할 것임, 달리기와 권투선수에 비유했습니다. 향방 없이 달리지 않고 허공을 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향방 없는 것이 아니라면 분명한 골인 지점이 있고, 또 허공을 치지 않으니까 가격할 정확한 목표가 있다는 뜻입니다. 비유의 강조점이 절제하여서 얻을 ‘목표’에 있습니다. ‘몸’ 혹은 ‘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내용이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또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바울은 지금 9장, 멀리는 8장 내용과 죽 이어서 논술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나아가 고린도서신 전체 주제와도 연결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7장까지 고린도 교회에 발생했던 분쟁, 성적타락, 성도 간 송사, 혼인 등 신자가 현실에서 봉착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다 8장에서 우상에 바쳤던 제물에 관해 성경적 원리를 설명한 후에 10장에서 다시 우상숭배 문제를 다룹니다.

그럼 9장은 8장과 10장과 동일한 혹은 파생된 주제를 다루거나, 두 장을 이어주는 맥락에서 부연 설명한다는 뜻입니다. 8장에서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신자가 먹어도 되느냐 여부를 신자의 자유와 절제라는 관점에서 풀었습니다. 9장에선 우상 제물에 직접 관련된 문제는 다루지 않는 대신에 그와 비슷한 과제들과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8장에서 우상은 없기에 그에 바쳐진 고기를 신자가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진리를 아직 모르는 믿음이 연약한 신자가 함께 있다면 오해하고 시험에 들 여지가 있기에, 자기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로 실족치 않게 하리라”(13절)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래서 9장은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라고 시작합니다. 자신의 신분을 먼저 밝힌 후에 그와 비슷한 문제들이 또 있다면서 말을 이어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허용된 자유와 사도에게 맡겨진 권리는 얼마든지 누려도 된다는 뜻입니다. 그 대표적 예로 먹고 마시는 권(4절), 선교 여행에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5절), 일하지 아니하고 헌금으로 생활할 권(6-14절)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도 고기 먹는 문제와 같은 원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데도 전혀 그러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오직 복음 전파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15-19절) 대신에 유대인을 전도할 때는 유대 관습을 따르고, 이방인에게 전파할 때는 이방 관습을 따랐다고 합니다.(20-22절) 예컨대 유대인과 교제할 때는 고기에 일절 손도 대지 않았지만, 이방인과 만날 때는 그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고기를 안 먹음으로써 도리어 부담 주는 일을 피했을 것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예로 든 일들은 윤리적인 선악 문제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가치중립적이거나 선한 일들이었는데 그런 일들 사이에 하나를 택해야 할 때에 어떻게 할 것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겐 이같이 애매하거나 미묘한 현실적 문제에 부닥칠 때의 판단 기준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바로 “아무쪼록 몇몇 사람을 구원코자 함”(22절)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판단한 궁극적 이유도 복음에 참예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천국에서 주님과 얼굴을 맞대며 함께 누릴 영원한 영광만이 자기 인생의 진정한 소망이자 최종 목표였던 것입니다.

이제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한다는 말의 뜻이 분명해졌습니다. 우선 “몸”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죄의 본성이나, 육신적 정욕과 현실적 물욕 등을 일차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런 차원을 훨씬 넘어선 것입니다. 바울도 때로는 고기 먹고 싶고, 사례비 받으며 편하게 선교하고 싶고, 아내를 여행에 함께 동반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몸을 쳐서 즉, 그런 생각들을 다 물리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라도 자기가 전파한 복음에 장애가 될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사례비 받는 것은 성경에서도 장려하는 일이며, 장기 여행에 아내를 동반하는 것도 선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오직 하늘을 바라보며 어떤 고초가 닥쳐도 예수님만 따라가야 한다고 복음을 전한 자가 사례비 받고 아내와 동행한다면 혹시라도 믿음이 연약한 자에게 일신상 안일을 추구하는 거짓 사도로 오해될까봐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신자라면 양심과 상식으로 판단해서 악한 일은 아예 그 모양도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불신자보다 더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너무나 당연합니다. 신자가 정작 모든 관심을 쏟아 노력할 일은 바울처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되는 쪽으로만 행하는 것입니다. 만약 후퇴 정체되는 쪽의 일이라면 절제하여서 결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말로 크리스천 윤리는 얼마든지 행해도 되는 선한 일까지 복음에 조금이라도 방해된다면 결코 하지 않는 데까지 확장된 것입니다. 불신자들 사이에선 자기 소견과 기분에 좋은 대로 하면서 남에게 해만 끼치지 않으면 선하다고 인정되는데 반해서 말입니다. 불신자의 선과 비교해 얼마나 차원이 다릅니까? 주님을 위해 정당한 자유까지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신자의 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작금 세상에선 신자더러 위선자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이 또한 얼마나 형편없이 차원 낮은 일입니까? 재차 강조하지만 그는 언제 어디서나 복음의 확장만 최우선 목표로 삼아 선한 일까지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의 확장을 염려하기는커녕 세상 사람과 똑 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입으로 스스로 전하는 것도 행하지 못하거나 아예 그 반대로 행하니까 복음에 장애만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좋지만 예수쟁이들 꼴 보기 싫어서 예수 안 믿겠다는 비아냥거림을 너무나 자주 듣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형편을 바울의 표현으로 바꾸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내 몸을 복종케 하지 않음으로써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되는 것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음이라.”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셈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도 세상 사람과 같이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향방 없는 달음질을 하고 허공을 치는 싸움만” 하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주님이 우리를 전혀 알지 못하는 꼴이지 않습니까?

구태여 바울처럼 선한 자유마저 포기하는 수준까진 안 되어도 됩니다. 최소한 말로 전한 복음에 위반되지는 않는 즉, 세상 사람과 동일한 방식으로는 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늘의 상급을 바란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넓게 보아 신자가 극기하고 절제하지 못해 죄에 지는 모습을 세상 앞에 드러내선 안 된다는 보편적 권면으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복음 전파에 방해되는 언행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11/7/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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