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5:1-14 신자가 누리는 가장 큰 권능 11/22/2017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5:3)
동족의 구원을 위해 삼일 간의 금식 기도를 마친 에스더가 자기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을 시작한다. 한 달 동안이나 왕의 부름을 받지 못했던 에스더였다. 평소에 귀가 얇고 자기 기분대로만 행하는 변덕이 심한 왕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에스더는 왕과 하만을 위한 잔치를 베풀기 전에 왕궁 뜰을 거닐었다. 마침 보좌에 앉아있던 왕이 멀리 떨어진 뜰에 선 에스더를 보고선 “매우 사랑스럽게” 여겼다. 거기다 에스더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나라의 절반을 달라는 요구라도 들어줄 테니 소원을 말해보라고 한다. 물론 에스더가 왕의 홀을 잡을 때에 이미 뭔가 긴히 할 말이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지만 왕은 나라의 절반까지 주겠다고 먼저 제안한 것을 비롯해 그 전에 에스더가 너무 사랑스럽게 보인 것은 분명 금식기도의 응답이다.
에스더는 그 자리에서 자기 소원을 당장 피력하지 않았다. 하만의 음모를 대놓고 이야기 해봐야 그를 신임하는 왕의 마음을 쉽게 돌릴 수 없다. 왕과 충신(?) 사이를 이간질 하려는 왕비의 시기로 오해될 수 있다. 심지어 하만과 개인적 애증관계가 있는지 오히려 의심만 받게 된다. 자기 소원을 말하기 전에 하만에 대한 신임을 먼저 떨어트릴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리 나라 절반을 주겠다고 큰소리치는 왕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말하자면 삼일 간 금식기도한 후에 얻은 응답은 하만을 왕의 마음에서 제거할 수 있는 지혜였다.
죄로 영혼이 타락함으로써 인간의 이성도 불완전하게 왜곡되었다. 자기 스스로는 온전한 지혜를 갖지 못한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전후 사정을 다 아시고 관련 당사자들의 마음속까지 꿰뚫는 하나님만이 온전한 지혜를 가진다. 아니 그분의 온전한 지혜 안에서 모든 일이 시작 진행 결말 맺는다. 신자는 자신의 일을 계획 시행할 때에 오직 그분의 지혜와 명철에 의존해야 한다. 기도란 그래서 하나님이 지혜에 의존해서 자신의 상대적이고도 왜곡된 이성을 바로 잡는 일이다. 기도 응답은 본문의 에스더처럼 문제 자체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보다는 문제의 해결 방안을 깨닫는 즉, 주님의 지혜를 얻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하만과 그 아내는 나름의 최선을 택해도 어리석기 짝이 없다.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다. 자기가 달릴 줄도 모르고 모르드개를 달 장대를 준비하고 있다. 또 왕비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처럼 자신을 신임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와스디가 신하들 앞에 왕의 체면을 떨어트려 신하들의 요구로 폐위 된 것을 잘 알고 있으니 신하 중에 최고인 자기에게 잘 보이려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인간적 관점에선 타당하고 영특한 지혜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일의 배경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손길을 전혀 보지 못하는 그로선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다. 하나님은 간절히 기도하는 신자들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완전하게 밝은 자신의 길로 가게 만드신다. 반면에 불신자는 자기 능력 지성 판단이 최고라고 착각하게 함으로써 대명천지를 걷는 것 같아도 실은 멸망으로 가는 어둠의 길을 가게 한다. 정확히 말해 하나님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불신자 스스로의 완악한 고집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신자가 된 축복이자 권능이다. 어둠에 있던 우리를 그분이 빛 가운데로 옮기셨기에 그분의 지혜를 얼마든지 차용해서 내 삶에 적용 실현할 수 있는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