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이 침묵하고 있는 몇 가지

조회 수 1692 추천 수 171 2009.07.14 17:45:56
진화론이 침묵하고 있는 몇 가지


진화론이나 창조론이나 인간 기원에 대한 확증된 공리(axiom)가 아니라 여전히 학술적 가설(theory)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인간이 그렇게나 자랑하는 과학으로도 둘 다 입증하지 못한다. 틀림없이 영원토록 미정된 가설 상태로 남을 것이다. 양 진영에서 내세우는 이론과 증거는 기껏해야 개연성을 자기 쪽은 늘리고 상대 쪽은 줄이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주제만큼은 다른 모든 과학적 가설과는 아주 다른 특성이 있다. 일단 제기된 학술적 가설은 모두가 인정하기 전에는 절대 공리가 될 수 없다. 반면에 창조와 진화는 아무리 영원토록 확증할 수 없어도 둘 다 틀린 것은 절대 아니다. 둘 중 하나가 절대적 진리임은 어느 누구도 부인 못한다. 과학 이전의 문제이자 과학이 다룰 수 없는 주제임도 불구하고 인간 기원의 가능성은 시쳇말로 때려 죽여도 이 둘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개연성이 높은 쪽이 진리라고 간주하는 수밖에 없다. 아니 당연히 진리다.

따라서 흔히 이해하고 주장되어 왔듯이 학술적으로는 선택이, 종교적으로는 믿음이 단순히 확증할 수 없는 그 미진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만 요구되어선 안 된다.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선택한 쪽은 그 쪽이 진리라고 당연히 믿어야 한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진화론과 무신론도 각각이 하나의 절대적인 믿음 체계다. 이런 관점에서 창조와 진화 중에 어느 쪽에 믿음을 더 보탤 수 있는지, 아니 마땅히 보태어야만 할지를 몇 가지 예를 들어 개연성에 관한 논의를 해보자.      

양말이 필요 없는 오리

오리들이 거의 얼음이 얼 정도의 차가운 물에서 하루 종일 지내지만 이것이 왜 오리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을까 의아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실제로 새들은 결코 발이 시려하지 않는 것 같다. 만약 우리가 맨발로 얼음이나 눈 위를 종일 뛰어다니면 얼마 안가 동상에 걸리고 만다. 그에 비해 새들은 왜 양말이 필요 없을까?

새들의 발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들은 발로부터 혈액을 되돌려 받는 정맥들과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데 이를 경이그물(wonder net)이라고 부른다. 발의 동맥으로 내려가는 혈액은 화씨 106도 정도로 뜨겁다. 반면에 혈액이 발에서 떠나 정맥으로 되돌아오는 온도는 약 화씨 37도 정도다. 그런데 이 차가운 혈액이 몸통으로 들어가기 전에 함께 얽혀져 있는 동맥의 더운 온도에 의해 다시 덥혀진다. 그 결과 새는 차가워진 정맥으로도 적은 양의 체온만 잃게 되고 동시에 다리로 들어가는 뜨거운 혈액으로 인해 추운 겨울에도 결코 다리가 동상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경이그물의 배경에 있는 지혜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특별한 구조로 진화되기 전이라면 이미 그 발이 얼어붙어 버리지 않겠는가? 제대로 온전한 발로 변하기도 전에 모두 죽어버리지 않겠는가? 만약 장구한 세월 동안에 이런 진화가 진행된다면 오리 발의 동맥 온도 또한 아주 서서히 올라간다는 뜻이다. 겨울의 기후가 진화의 그런 장구한 템포에 맞추어 거의 인식 못할 정도로 아주 천천히 추워지지 않는 이상 아예 불가능한 일이지 않는가? 아니면 발의 진화가 완전히 진행될 때까지 지구의 모든 곳이 항상 한 여름 날씨여야 하든지 말이다.  

인구 폭발의 지구  

인간이 과연 얼마동안 이 지구상에 살아 왔을까? 진화론자들은 이백만 년이라고 하고 창조를 믿는 크리스천들은 성경의 기록대로 약 육천년쯤으로, 아니면 흔히 생각하는 기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주 짧을 것이라고 본다. 과연 누가 옳은가?

통계적으로 인구수가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되려면 한 쌍의 부부가 2.1명의 자녀를 가져야 한다. 영아 사망과 질병과 전쟁 등으로 인해 사망하는 확률까지 다 감안하면 최소한 2.1은 되어야 인구가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그러나 인간을 0.1로 셀 수는 없으니까 사실은 3명은 낳아야 한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최초 인간을 2명으로 잡고 창조론과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인간의 연대에 현재의 인구 숫자를 역으로 대입하여 계산 해보면 아주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성경의 인구 연대는 약 6천년인데 노아의 홍수부터 다시 시작하면 약 5천년이다. 그리고 5천년 동안에 최초 부부 한 쌍이 현재의 인구에 도달하려면 산술적으로는 부부마다 2.4명만 낳아도 된다.  

그래서 진화론이 주장하는 대로 수백만 년 동안에 한 쌍의 부부들이 2.4명을 출산했다고 가정하면 현재 이 지구상에 사람만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부부가 2.4명보다 훨씬 많이 낳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예 지구에 사람들이 이층 삼층으로 쌓여져 있어야 한다.

멜데스의 인구론에 나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원리마저 적용되었다면, 인류는 식량 부족 때문에라도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통해 전 지구적인 멸망을 이미 수차례 겪었어야만 했다. 현재의 생물학이나 인류학 교과서들은 이런 어마어마한 인류 폭발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하면서도 진화가 옳다고, 나아가 인간의 진화 년대가 장구하다고 자가당착식의 궤변을 되풀이 하고 있다.

(상기 둘의 예는 미국 Creation Moment 사의 자료를 번역 전재한 이 홈페이지의 “신비한 창조의 세계” 사이트 # 231과 # 156 번 글을 인용 보완한 것임. 이와 유사한 예는 이 사이트에서 계속해서 소개하고 있음.)

다윈 자신의 예측

진화는 두 가지 필수 요인을 전제로 한다. 첫째는 다윈이 소위 “변이(Variation)”라고 부른 “돌연변이(Mutation)”로 무작위로 일어나는 유전적 변화다. 또 그런 변이가 종에서 종으로의 진화를 가능케 하려면 장구(長久)한 세월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충분한 시간과 적절한 변이만 발생한다면 결국은 매우 복잡한 조직과 고급한 행동양식이 어떤 지적 존재의 도움 없이도 자연선택에 의해 축적되는 미세한 단계들을 통해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기 두 예에서 보듯이 장구한 세월은 오히려 진화가 진행되는 과정 중에 있는 생물체의 생존마저 위협하여 오히려 진화를 거부하는 경향을 생성해낼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진화론을 창시한 다윈 자신이 이런 가능성을 미리 예측한 언급을 남겼다. 그는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에게 이런 편지를 남겼던 것이다.

“내가 자연선택 이론에 그러한 추가 이론들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면, 나는 내 이론을 휴지처럼 버릴 것이다.... 만약 자연선택 이론이 그 계통의 어느 한 단계에서라도 신비스러운 추가 이론을 필요로 한다면 나는 내 이론을 완전히 무시할 것이다.”(“심판대의 다윈”, 필립 존슨 저작, 까치글방 2007, 54 p)

신체의 모든 장기는 너무나 신비하고 고차원적 구조와 기능을 지녔다. 예컨대 눈만 해도 아주 미세한 신경세포가 엄청나게 많이 엉킨 장기로 그 중 하나라도 결함이 생기면 눈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눈의 조직이 100% 완비되어야만 비로소 사물을 볼 수 있다. 진화 과정 중의 눈은 정상시력에 못 미치는 시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결국 진화론은 눈 하나가 완성되는 데도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는지, 또 그 동안에는 봉사로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도무지 설명할 재간이 없다.

흥미롭게도 다윈은 처음부터 자기 이론에 그런 결정적 하자가 있었음을 눈치를 챈 것 같다.  그러나 창조를 이룬 어떤 지적존재라도 배제하는 데에 모든 신경을 쏟다보니 자연선택에 의한 점진적이고도 사소한 변화들의 축적이라는 원리를 결코 포기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T. H. 헉슬리는 이 독단적인 점진론(gradualism)에 불만을 품고 다윈에게 “당신은 비약하지 않는다는 원리를 채택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어려움을 지게 되었다”고 경고했다.(“심판대의 다윈”, 55p)

진화론의 후발 과학자가 창시자인 다윈더러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되는 불합리한 이론을 주장했다고 나무란 셈이다. 말하자면 진화론은 출발부터 도무지 과학적이기는커녕 논리적이지도 못했으며 또 그런 사항을 진화론자들 사이에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진화는 증거나 데이터는커녕 사변(思辨)으로도 제대로 뒷받침 하지 못한다.  

만병통치약인 장구한 세월

진화론은 절대로 종(種)에서 종으로 변환된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지금껏 제시하는 증거라고는, 최근의 연구 결과로 그 모든 증거가 오히려 진화를 더 부인하는 쪽으로 판명 났지만, 새로운 종의 생성에 관한 것은 전혀 없다. 기껏해야 종 안에서의 환경에 적응한 것뿐이다. 적응(adaptation)과 진화(evolution)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적응은 지금도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한 때 인간의 몸에 맹장과 편도선은 전혀 필요 없는데 부작용만 일으킨다고 믿은 적이 있다가 지금은 달라졌다. 당시는 퇴화된 기관이라 여겼던 것이다. 반면에 사랑니는 분명 적응의 대표적 예다. 자연 그대로 음식을 먹다가 조리기술이 발달하여 음식이 부드러워지자 마지막 어금니는 필요 없어지고 크게 각진 턱 모양도 둥그렇게 바뀌었다. 그러나 어금니 하나 없어진 것만으로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진화라기보다 오히려 퇴화다.  

원숭이가 인간과 가장 닮았고 DNA에서도 공통점이 많다고 인간의 선조라는 증거 또한 되지 못한다. 증거란 현장에서 범인의 지문이 묻은 총이 발견되는 것처럼 어떤 사실을 객관타당하게 입증해야만 한다. 진화의 증거는 전부 개연성만 말하는, 그것도 억지스런 추측에만 의존한, 것에 불과하다. 마치 구름의 주성분이 물이고 인간 몸의 70% 이상이 물이기에 구름이 인간으로 진화 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증거일 뿐이다.  

종과 종 사이의 전환을 도무지 설명하지 못하니까 끝까지 돌연변이와 장구(長久)한 세월 두 가지 궤변으로만 버틴다. 이 둘 또한 증거가 없기는, 아니 있을 수가 없음, 마찬가지다. 장구한 세월이란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수십, 수천 억, 아니 영겁의 세월 동안에 바늘이 소가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감히 누가 반론을 제기하며 또 반론을 제기한들 그것이 옳다고 또 누가 어떻게 입증할 수 있겠는가? 제시 된 증거는 반드시 실험을 하여 다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장구한 세월의 증거를 테스트 하려면 또 다른 장구한 세월이 필요하지 않는가 말이다.

장구한 세월이라고만 말하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라곤 단 하나도 없다. “유명한 과학철학자 카를 포퍼는, 자연선택이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는 다목적(all-purpose) 설명방식이어서 결국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하며, 이 때문에 다윈주의는 사실상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심판대의 다윈” 37p) 장구한 세월이라고 직접 언급은 안했지만 자연선택 자체가 장구한 세월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결국은 같은 뜻이다.

만약 진화론자들이 정말 과학적인 태도를 견지하려면, 최소한 논리적 합리성이라도 보여주려면 장구한 세월 동안에 아무 것도 안 일어날 수 있다고도 인정해야 한다. 무엇이든 일어나는 일 안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 것과 창조도 포함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 그랜드캐년의 바위들은 장구한 세월 동안에 여전히 바위로 남아 있지 않는가 말이다.
      
누차 강조하지만 진화나 창조나 확실한 증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엄밀히 따지면 창조는 증거가 필요 없는 반면에 진화는 반드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물질적 가시적 증거는 반드시 창조된 이후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초 인간 아담에게 네가 창조되었다는 증거를 들라고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지 않는가?

반면에 진화는 일단 물질이 생성된 후에 일어난 일로서 지금도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이므로 물질적 증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종 안에서 환경에 적응한 것 외에는 진짜로 진화한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최초의 생명의 형성에 관해선 납득할 만한 아무런 설명도 못한다는 것이다. 최초 생명체가 있어야 어떤 단계로든 진화할 것 아닌가? 그런데 바로 최초 단계의 생명이 무조건 있었다고 가정한 채로 진화 이론이 전개되므로 사실은 최초 생명에 대한 창조론은 인정한 셈이다. (이런 부분은 다윈도 솔직히 인정했다.)

최근에는 이런 진화론에 대한 자체적인 맹점을 알고 학술적으로 보완하려고 온갖 시도를 다 하지만 진화론자들 안에서도 수많은 갈래로 의견이 나눠지고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폐기되는 이전의 학설도 많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진리란 이론 자체에는 절대 변함이 없어야 한다. 그 진리를 실제 삶에서의 적용하는 측면에서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이런 면만 봐도 진화든 창조든 학술적으로는 가설이므로 학교에서 둘 다 가르쳐야 한다는 창조론자들의 주장이, 어느 쪽이 옳고 그른 것은 제쳐두고, 더 과학적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현재 환경에 적응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진화의 징조를 보이고 있지 않는데 진화론 자체가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이, 그것도 인간의 생각이 조변석개하고 있는 것이지 자연이 진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랜드케년의 바위는 여전히 바위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인간인 바늘도둑은 하루아침에도 소도둑이 될 수 있을지언정 아무리 영겁의 세월이 흘러도 바늘이 소는 되지 못한다.

7/1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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