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 전도사 도킨스의 결정적 하자 셋

조회 수 3405 추천 수 173 2009.07.15 20:12:58

무신론 전도사 도킨스의 결정적 하자 셋


현대의 무신론의 전도사로 자처하는 리처드 도킨스라는 유명한 과학자가 있다. 이 분은 실제로 동물행동학, 분자생물학, 집단유전학, 발생학 등을 전공한 진화과학자이며 한 영국신문에서 세계 최고의 지성인으로 뽑힐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 그의 “이기적 유전자”, “눈 먼 시계공”, 또 최근에 나온 “만들어진 신” 같은 저작들은 현재 세계적으로 스테디한 베스트셀러다. 가히 비기독교계의 과학철학을 대표하는 현대의 고전으로 꼽힐 만하다.

그의 책은 해당 분야에 대한 어느 정도 정통한 과학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학술적이다. 나름대로 논리적, 사변적, 철학적 논술이 되려는 노력도 많이 경주했기에 언뜻 보면 아주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 보면 이론 자체의 모순을 숨긴 채 현란한 수사만 동원했기에 일반인이 그의 논리대로 따라가다 보면 끝에 가서는 오히려 무엇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혼란만 생긴다. 진리는 일반인도 간단한 설명으로 알아먹을 수 있을 만큼 명쾌하고 단순한 법이다.

아래 셋은 필자가 그에게서 발견한 대표적인, 다른 모순도 아주 많다는 뜻임, 하자다. 참고로 이미 기독교계 지성들이 그의 논리에 대한 반박서를 많이 저술했다. 그 중에 수작은 종교철학적으로는 데이비드 로버트슨의 “스스로 있는 신”(사랑플러스사 2008 번역출간)과 과학 이론적으로는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도킨스의 신”(SFC사 2007 번역출간)을 들 수 있다.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의 오류

눈(眼)처럼 완전한 체계를 갖추기 전에는 정상기능을 나타낼 수 없는 경우를 학술적 용어로 “환원불가능한 복잡성”(IC, irreducible complexity)이라고 한다. 눈의 부분을 이루는 각 소단위들도 아주 정교한 체제를 갖추어야 할 뿐 아니라 일시에 그 모든 단위가 다 마련되고 또 일시에 완전하게 하나로 결합되어야만 비로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인간 신체의 바로 이 복잡성 때문에 진화보다 창조의 개연성이 월등 높다.  

그런데 도킨스는 창조론자들의 이런 주장을 “대박 아니면 깡통” 식의 즉, 눈이라면 보든지 못 보든지 날개도 날든지 못 날든지 둘 중 하나 밖에 모르는, 오류라고 반발했다. 현실에서 그 중간단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만들어진 신, 2007, 김영사 번역본, 190 p) 그러나 그의 주장은 구체적 증거를 배제한 이론적 사변에 불과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나는 그것(IC)이 기발한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분의 눈이나 내 눈의 5퍼센트의 시력도 전혀 볼 수 없는 것에 비하면 매우 가치 있는 것이다. 완전히 볼 수 없는 것보다는 1퍼센트의 시력도 그러하다.” 우선 그는 지금 “5%의 눈”(눈으로 되어져 가는 과정 중에 5%만 이루어진 상태)을 “5%의 시력”으로 둔갑시켰다. 진화과정의 5%는 아직 눈이 되지 않은 것이다. 어느 누구도 5%의 진화가 5%의 시력마저 가질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한다.(심판대의 다윈, 찰스 콜슨, 까치글방, 2007, 56p)  

설령 그의 말대로 진화과정 중에도 약한 시력을 가질 수 있다고 인정해준다 쳐도 더 결정적인 하자가 나타난다. 진화 과정 중에 계속 생존할 가능성이 없거나 현격히 줄어든다는 점이다. 생존경쟁이 격심한 약육강식의 자연계에선 시력이 아주 약한 동물들은 시력이 발달한 동물들의 손쉬운 먹이 감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영리한(?) 도킨스인지라 이런 반발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변론을 준비해 놓았다. “반쪽(50%)짜리 날개는 높은 나무에서 떨어질 때 속도를 낮춤으로써 당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51% 짜리 날개는 그보다 약간 더 높은 나무에서 떨어질 때 당신의 목숨을 구해줄 것이다. 당신이 몇%의 날개를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당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추락높이가 달라질 것이다. 높이가 서로 다른 나무에서 떨어지는 상황을 설정한 이 사고 실험은 1% 짜리 날개에서 100% 짜리 날개로 갈수록 점점 더 유리해지는 매끄러운 비탈이 분명히 있음을 이론상 보여주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실제로 숲에는 이 ‘산비탈’을 올라가는 걸음걸이를 보여주는 동물들이 가득하다.”

“마찬가지로 50% 짜리 눈이 49% 짜리 눈으로는 구하지 못할 목숨을 구해줄 상황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때 매끄러운 비탈은 명암의 차이, 먹이나 포식자를 포착하는 거리의 차이 등에 비유할 수 있다.  ...  많은 동물들의 눈이 없는 것보다 나으며 그 눈들이 모두 앞서 언급한 완만한 산비탈에 죽 놓여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눈은 정상 가까이에 놓여 있다. 즉, 가장 높은 봉우리가 아니라 높은 봉우리 중의 하나일 뿐이다.”(만들어진 신, 192/3 p)

언뜻 들으면 아주 타당한 것 같이 여겨진다. 즉 제한된 기능을 가진 진화 과정 중의 눈이라도 나름대로 쓸 만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눈도 정상 가까이 놓여 있을 뿐 완성된 눈이 아니라고 또 다른 변명의 여지도 남겨 놓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50%의 시력에 관해서 논하고 있지 50%의 눈에 대해선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 스스로의 순환논법 체계에 묶여 있다.

조개, 오징어 같은 무척추동물이나 곤충의 눈은, 인간의 눈도 당연히 포함하여, 산비탈 중간에 놓인 눈이 아니라 정상에 이미 오른 눈이다. 모든 동물의 감각기관은 각기 활동하고 있는 환경과 활동 양태에 가장 적합하게 작동되도록, 그것도 학살자의 위험을 피해서 충분히 생존할 수 있는 특수한 고유 장치가 내장된 채로, 이미 예비 되어진 것이다.

예컨대 거미의 눈은 거미에겐 완벽한 눈이다. 도킨스가 정상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 보는 사람 눈을 거미에게 붙여 봐야 형편이 더 나아질 것도 없고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거미의 눈은 현재 진화 중이므로 50%의 눈이나 50%의 시력을 갖춘 것이 결코 아니다. 이미 완전한 눈에 완전한 시력을 갖춘 것이되 인간을 비롯한 다른 동물의 눈이나 시력과는 그 종류와 특성이 다를 뿐이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눈이 도킨스의 주장대로 정상에 완전히 도달해 프리즘처럼 분광도 할 수 있고, 적외선과 자외선도 감지한다고 가정해 보라. 매일 눈 뜨고 보이는 장면마다 헷갈려서 잘 걷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아예 곧 바로 실명(失明)되고 말 것이다. 선그라스나 특수 보안경을 만들기도 전에 봉사가 된 인간은 사자의 먹이가 될 뿐이다. 그것도 아직도 진화의 정상에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사자의 눈에 발견되어서 말이다.

사람 귀가 동물처럼 예민해도 밤에 잠을 이룰 수조차 없다. 방안에 개미나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소리가 다 들릴 테니까 말이다. 또 젯트기가 음속 몇 배로 나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면 고막이 터지든지 도무지 시끄러워서 아예 생활 자체를 못할 것이다. 지구가 자전 공전하는 속도는 음속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기에 비행기 엔진 소리보다 엄청나게 큰 소음이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들릴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간이 듣고, 보고, 맡을 수 있는 기능에는 상한과 하한이 있다. 또 그 한계는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다. 지구라는 생존 환경에 온전히 적합하게끔 인간은 미리 조절 되어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의 감각기관, 아니 신체 모두가 지금 그 상태대로의 모습과 기능을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껏 생존자체가 불가능했다. 또 앞으로 더 오를 정상이 남아 있어서 그곳에 오른다 해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현재 상태로 일시에 완성 된 존재였고 그 완성 이전 상태로는 절대로 환원불가능하다.    

작금의 할리우드 영화들을 보라. 보름달만 뜨면 인간이 늑대가 되거나 또 인간이 벼락을 맞았더니 개의 코나 귀를 갖게 되었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자유와 인권을 신장하는 진보세력을 대변한다는 구실을 앞세우곤 사실은 무신론과 진화론을 퍼트리는 전도 사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 주장대로 인간의 외면적 자유는 분명 올라가겠지만 내면적으로는 인간은 사실상 동물과 같은 수준일 뿐이라고 자인하는 것이다. 가장 인간답다고 자부하는 지성인 문화인들이 말이다.  

바보 도킨스? 영악한 도킨스?

생물학을 전공한 도킨스가 곤충의 눈이 그 생존환경과 기존의 수명대로 살아가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는 점을 몰랐을 리가 없다. 말하자면  잠자리의 눈은 잠자리에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지, 산비탈을 올라가 정상 가까이 다다른다고 해서 독수리의 눈으로 바뀌지 않으며, 실제로 산비탈을 오르는 일도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만큼 잘 아는 자도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상식적으로도 수긍이 안 되는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정말 몰랐다면 그의 생물학에 관련한 모든 학위를 회수해야할 것이다. 만약에 알고 그랬다면 너무나 비겁하고 영악한 처사다. 과학만 앞세우는 세계적인 과학자가 가장 비과학적이라고 실토한 셈이다. 그런데 그는 실제로 모든 사정을 잘 알고도 그렇게 말했다.

“아마 자연에는 진정으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지니고 있어서 ‘매끄러운 산비탈’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면 다윈의 이론이 파탄날 것이라는 창조론자들의 생각은 그런 의미에서 옳다. 다윈 자신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만들어진 신 194p)

이론적으로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곧 이어서 그에 대한 실제 사례가 없다고 강변한다. 잠자리의 눈을 잠자리에게 완벽하다는 사실을 짐짓 외면 거부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실제로 그런 사례가 발견되어도 진화론뿐 아니라 지적설계론마저 붕괴시킨다는 해괴한 논리마저 내세운다. 그 이유로는 창조주 자체가 바로 환원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환원불가능이 옳다면 신도 그렇기에 지적설계론은 붕괴된다는 그의 진의가 확실치는 않다. 아마도 인간은 신에 대한 증명이나 분석을 도저히 못하기 때문에 신이 설계했다는 지적설계론의 증명 또한 불가능하다는 뜻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그는 누가 뭐래도 창조 자체는 과학적 증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다른 말로 스스로 익히 알고 있으면서, 자기 논리를 전개한 셈이다. 한 마디로 과학적 논리 전개는 뒷전인 채 창조는 무조건 부인되어야 하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숨겨진 그런 의도가 같은 책의 다음 장에서 바로 드러난다. “창조론자들은 현재의 지식이나 이해에 나 있는 틈새를 열심히 찾아다닌다. 틈새가 발견되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신이 채워야 하는 것이라고 가정된다. ... 그러나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다르다. 무지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 무지를 앞으로 정복할 과제로 보고 기뻐하는 것은 과학 탐구의 본질적인 한 부분이다.”(만들어진 신, 195p)  

언뜻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 것 같은 진술이다. 그러나 그는 창조론자들을 진화론의 이론적 모순을 찾아내서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믿음이 필요하다고 강변하는 궤변론자로 몰아세운다. 반면에 진화 과학자는 무지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계속 탐구하려는 합리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지적대로 믿음 일변도로 몰아가는 몰지각한 창조론자들이 일부 있긴 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창조론자가 취하는 기본 입장은 진화론의 이론적 모순은 그 주장의 개연성을 떨어트린다는 것이다. 진화나 창조나 완전한 증거를 제시하기 전에는 진리로 확증될 수 없으며 그 둘 다 실험, 자료, 증거 등으로 완전히 입증될 성질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개연성이 더 많은 둘 중 하나가 필연적으로 진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진화론자들은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단순히 실험하고 자료와 화석을 수집하며 생물학적 가설을 계속해서 고안 발표한다는 이유만으로 진화론 자체가 더 과학적이라고 우기고 있다. 자기들이 과학적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말은 옳다. 그리고 진화는 원칙적으로 물질이 만들어진 다음에 이뤄진 것이니까 그것을 입증하는 방식도 어차피 과학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학적 방식으로 연구한다고 해서 그 이론마저 과학적이라는 보증은 하지 못한다.

지금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바를 비유하면 이렇다. 유치원생들이 인간의 기원을 연구하면서 흙으로 사람을 만들려는 시도를 단지 실험실에서 과학 기자재를 사용해서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주 과학적이라고 말하며 또 그런 과학적 방법을 동원했기에 분명히 성공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과 같다.

바꿔 말해 도킨스만큼 과학적 방식으로는 창조를 도저히 입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자기 논리가 궁해질 때마다 창조론자들더러 과학적 증거를 대지 못하는 종교적 광신자라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것이다. 그의 이런 뻔뻔한(?) 비과학적 양심은 결정적으로 아래 논술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생명이 한 행성에서 자연적으로 출현할 확률이 10억분의 1이라고 해도, 그렇게 경이로울 정도로 있을 법 하지 않은 사건은 10억 개의 행성에서 일어날 것이다.”(만들어진 신, 215p) 이는 마치 유치원생들을 모아 놓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말이다. 바보 열 명이 모였다고 전체 지능이 열을 합한 지혜로 나타나는 법은 절대 없다. 바보 10억 명을 모아 놓아도 이차 방정식 하나를 풀지 못한다. 확률 10억분의 1인 행성을 10억 개를 모아놓아도 여전히 그 확률은 10억 분의 1일 뿐이다.  

즉, 모든 10억 개의 행성 각각에서 생명이 태어날 확률이 99%라 해도 여전히 생명은 태어나지 않는다. 그 모자라는 1% 바람에 어느 별에도 생명은 태어날 수 없다. 반면에 10억 개 중에 하나만 그 확률이 100%이고 나머지 모든 별이 0.01%라 해도 생명은 그 하나의 별에서 태어난다. 지금 우리가 속한 태양계, 어쩌면 이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의, 모습이다. 진화와 창조를 떠나 순전히 확률적으로만 따지면 우리 지구는 100% 이고 나머지 모든 별들은 0% 내지, 인간으로선 도무지 알 수조차 없지만, 100% 미만인 것만은 분명하다.  

천하의 과학자 도킨스가 이런 간단한 수학 상식조차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당당하게 이런 논술을 진행하고 있다. 독자를 아주 우습게 봤거나 스스로 무식했거나 처음부터 진리가 아닌 것을 변증하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자꾸 궤변으로 흘렀든지 셋 중에 하나다. 그런데 그는 이 부분에서도 항상 그러하듯이 자기가 빠져나갈 구멍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마련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따져 봐도 그는 아주 영악한 천재임이 틀림없다.

“한 행성이 암석의 원소성분비가 특정한 양상을 띤다든지 해서 생명이 출현할 확률을 높이는 어떤 독특한 특성들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일부 행성들은 다른 행성들보다 더 ‘지구형’이다. 물론 지구 자체는 특히 지구형이다.!”(만들어진 신, 216p) 지구형에 가깝다고 생명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명료하게 말하지 않은 허점은 여전히 있다. 그럼에도 지구만 생명이 태어날 확률이 100%였다는 뜻을 은연중에 비취기는 했다.

그러나 정말 그가 그렇게 믿었다면, 또 과학자적 양심이 있었다면 각 별에서 생명이 탄생할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숫자만 많이 모이면 태어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비과학적 진술은 아예 하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그는 “장구한 세월과 셀 수조차 없는 많은 별(여건)에선 어떤 일도 가능하다”는 진화론을 지탱하는 유일한 지팡이를 또 다시 힘껏 휘두른 것이다.  

도킨스도 지적설계론을 인정했다.

그런데 정작 그가 보인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그도 사실은 지적설계론을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자기 입으로 스스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2008년에 제작된 독립다큐멘타리 영화 “Expelled, No Intelligence Allowed”에서다. 게임쇼 호스트, 변호사, 작가 등의 다양한 경력을 가진 배우 Ben Stein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을 만나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들을 모은 영화다.

영화의 주제는 현재 창조론이 종교적 광신자들만이 수용하는 비지성적인 이론으로 취급당하고 있으며 과학계 특별히 교육계가 창조론을 교실에서 추방하고 있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밝히는 데에 있다. 제목이 뜻하는 그대로 진화만 절대적 진리인 양 주장하고 심지어 강요하는 오늘날의 추세가 오히려 전혀 지성적 처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의 말미에 무신론의 전도사로 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와의 인터뷰가 나온다. 아마도 의도적으로 이 영화의 백미로 맨 뒤에 나오도록 편집한 것 같다.

그는 성경의 하나님을 무자비하게 인간을 학대 심판하며 심지어 인종청소까지 하는 신으로 묘사했다. 그럼 성경을 통해 사랑이 풍성한 하나님으로 믿고 위로를 받고 있는 수많은 기독교 신자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반문을 받았다. 그러자 자신은 신이 존재하지 않을 확률을 99%라고 확신하기에 원시적인 미신을 믿는 자들을 신에게서 해방시켜줄 필요가 있으며 그런 목적으로 책을 저술했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영국의 유명한 이층버스에 신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라는 포스터를 붙이는 등 일련의 인간해방 켐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생명은 스스로 증식하는 최초의 분자에서 그 기원(the origin of the first self replicating molecule)을 찾을 수 있으며 진화는 아주 느리게 진행(by a very slow process) 되었다고 했다. 물론 생명이 최초로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구체적인 상황은 아무도 모른다고 전제는 했다. 그런데 지적 설계가 혹시 유전자나 진화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고대의 어떤 시점에 우주의 어떤 곳에서 아마도 다윈주의 같은 방식에 의해 아주 높은 기술 단계까지 진화된 한 문명이 생명의 한 형체를 설계하여 이 행성에 심었을 것이다. 이는 흥미롭고도 가능한 일이다. 나는 생화학과 분자생물학을 세밀히 연구하면 그에 대한 증거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종류가 되었든 설계자의 흔적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설계자는 우주의 다른 곳에 있는 고차원의 지성임에 거의 틀림없다. 그 고차원 지성은 어떤 설명 가능한, 혹은 절대적으로 그러한 과정에 의해 스스로 형성되었을 것이다. 단순히 자연발생적으로 그냥 존재케 되었을 수는 없다. 그것이 문제의 초점이다.” (필자의 번역임, 원문은 아래에 첨부해 놓았음)

질문을 던진 Ben Stein 스스로 깜짝 놀랄만한 답변이다. 세계 최고의 무신론자가 비록 외계의 어느 곳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지적설계의 가능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자는 도킨스가 지적설계론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 타이프의 설계자 즉, 기독교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것 같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쉽게 말해 신은 인정하되 성경의 하나님은 싫다고 말한 셈이라는 뜻이다. 영화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서 도킨스의 구체적인 진의와 상관없이 그의 진술만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내린 결론일 수 있다. 그럼에도 어쨌든 그가 지적설계를 인정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가능성, 아마도, 등의 단어와 문법적으로도 주로 가정법을 사용해서 말을 하긴 했다.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지적 설계를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인정했을 뿐 자기의 확정적인 의견은 아니라는 변명의 여지를 남긴 것이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과학자적인 양심에서 아직은 온전히 확증되지 않았고 개연성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으로 말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히 그는 생화학과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다면 보면 그 증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화든 창조든 개연성이 높은 쪽 이론이 진리일 수밖에 없으므로 그가 증거까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면 이미 진화를 진리로 믿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진화는 외계의 고등 문명 혹은 지성이 이 지구에 심어준 최초 분자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전 세계 과학계가 경천동지할만한 발언을 한 것이다.    

그런데 다시 한 번 그가 말한 내용을 곰곰이 살펴보라. 사실은 그가 확정적인 진리로 내세운 것은 하나도 없다. 전체적으로는 다윈주의 진화론적 논조를 취하기는 했지만 인간 기원으로 지적설계론(창조)과 최초 분자의 자연 선택적 진화와 외계인도래설을 하나로 섞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짬뽕으로 만들어 놓았다.

결국 그는 모든 과학계가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최소한으로 동의하는 두 가지 진리를 말한 것 외에는 없다. 첫째, 인간의 기원은 창조, 진화, 외계인 셋이며 둘째, 그 중에 어느 것이 맞고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게 그의 진짜 속내임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발설한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합리적인 과학자라면 그 진심대로 솔직히 모르는 것은 그냥 모른다고 하거나, 최소한 확정 된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온갖 어려운 과학적 술어나 이론으로 화려하게 포장해서 진화만 절대적 진리인 양 주장해선 안 된다. 거기다 확정도 안 된 주장을 갖고 종교인, 그중에서도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잔인한 하나님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겠다고 설치는 것은 그 자신이 이미 또 다른 종교를 창시하여 교주 행세를 하는 꼴 밖에 안 된다. 그것도 자신이 나중에 빠져 나갈 구멍을 그 좋은 머리로 곳곳에 숨겨 놓고서 말이다.    

7/15/2009


도킨스의 인터뷰 원문  

"It could be that at some earlier time, somewhere in universe, a civilization evolved by probably some kind of Darwinian means to a very, very high level of technology and designed a form of life that they seeded onto perhaps this planet. That is a possibility, under an intriguing possibility. And I suppose it is possible that you might find evidence for that, if you look at the detail of biochemistry, molecular biology. You might find a signature of some sort of designer. And that designer could well be a higher intelligence from elsewhere in the universe. That higher intelligence would itself have had to have come about by some explicable or ultimately explicable process. It couldn't have just jumped into existence spontaneously. That's the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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