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4:12 자꾸 혈서를 쓰고 싶은 신앙

조회 수 462 추천 수 24 2009.09.09 00: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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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혈서를 쓰고 싶은 신앙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順適)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창24:12)


아브라함의 노종이 이삭의 신부 감을 고르기 위해 기도했더니 즉시 응답되었습니다. 그가  겸손하고도 순수하게 기도했을 뿐 아니라 종을 보낸 후 아브라함이, 이삭도 그랬을 것이지만, 함께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이삭의 아비인지라 더 간절히 그리고 당연히 더 확신에 차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또 출발하기 전에도 종더러 먼저 믿음에 찬 맹세를 하게, 즉 자신의 확신을 전해 받도록 했습니다. 말하자면 그 자신이 하나님께 한 맹세나 다름없었습니다.  

그와 종이 한 맹세의 내용인즉 이삭이 결혼 못해도 좋으니 가나안 여인을 고르거나 고향 땅으로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절대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 맹세를 기쁘게 보시고 믿음이 좋고 착한 여인을 보내 주리라 기대한 것은, 쉽게 말해 좋은 며느리를 얻기 위해 맹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찌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찌니라.”(7절) 하나님이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고 먼저 맹세했다고 합니다. 이 땅을 자기 씨에게 주신다면 당연히 그 씨는 이 땅을 벗어나지 않으며 신부도 이 땅으로 올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이 먼저였고 맹세는 그 확신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신앙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맹세해주었다면 누구에게나 그 정도 믿음은 자연히 생길 것이라고 단정 지어선 안 됩니다. 후손이 이 땅을 차지하기만 하면 되니까 가나안 여인과 결혼해서 이 땅에 살아도  상관없다고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이 이전에 하나님이 후손을, 그것도 네 몸에서 날 자로 주겠다고 약속했더니 선뜻 몸종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태여 맹세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약속만 하십니다. 그분의 약속 자체가 사실상 모두 맹세이기 때문입니다. 맹세란 더 확실히 지키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분에게 그런 다짐은 아무 효용이 없습니다. 약속만 하면 100% 성취는 이미 완전히 보장됩니다. 성취 안 될 가능성은 완전 제로입니다. 따로 맹세를 더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이 맹세하시는 이유는 그만큼 인간이 그분을 믿지 못한다는 반증입니다.  당신의 어떤 약속이라도 맹세로 여겨 제발 온전한 믿음으로 인내하고 소망을 키우라는 안타까운 당부입니다. 실제로 여러 번 약속을 믿지 못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계속 다짐, 즉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드린 후 이 시점에 와서야 아브라함에게는 그분의 모든 약속을 맹세로 불러도 좋을 만큼 철저하게 이행되더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맹세를, 아니 약속을 받았다면 이미 따 놓은 당상 아닙니까? 바른 믿음이란 지금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응당 맹세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나아가 완벽하게 실현될 것에 전혀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남은 문제라고는 때와 방법뿐이어야 합니다. 그럼 신자가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도 때는 소망 가운데 기다리기만, 방법은 어떤 모습의 응답이든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자신의 때와 방법을 버리면 됩니다. 역으로 말해 바로 그것이 신자가 하나님에게 드릴 헌신이자 맹세입니다. 헌신과 맹세를 너무 비장하고 거창한 의미로 몰고 갈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럴 수 있을 정도로 믿음이나 인격의 그릇이 절대 크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고집과 욕심만 버려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완전한 헌신이자 맹세입니다.

다른 말로 머리에 띠 두르고 손가락 잘라 혈서 쓰듯 하는 맹세나 헌신은 신앙에 아무 필요 없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은 정말 우리의 하나님이고 우리는 정말 그분의 자녀이기만 하면 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이라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니라.” 하나님이 옳다고 하면 옳은 것입니다. 그분이 머리카락을 희게 혹은 검게 해주겠다고 했으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솔직히 우리는 맹세와 헌신을 너무 남발하고 또 자꾸 그러고 싶은 경향이 있습니다. 조금만 좋은 일이 생기면 믿음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아져 더 이상 죄와 불신앙과는 아예 담을 쌓은 양 착각합니다. 또 더 큰 은혜를 받으면 스스로 이 세상을 복음으로 뒤덮겠다고 맹세한 후에 설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아주 작은 정말 겨자씨만한 장애만 나타나도, 아니 실제 나타나지는 않고 언뜻 그런 징조만 보여도 금방 절망으로 치닫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만 요구한 까닭입니다.  

또 맹세와 믿음과 헌신의 순서를 뒤죽박죽 섞어 버리는 경향도 있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입니다. 은혜를 그것도 빨리 많이 받기 위해 맹세, 헌신, 믿음을 한껏 부풀립니다. 또 은혜 받으면 반드시 응분의 헌신을 해야 한다고 믿는 것도 꼭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깊은 진짜 내면에 혹시 후유증이 생기거나 다음에 잘 봐주시지 않을까 염려한다면 말입니다. 정말로 그분에 대한 온전한 확신이 있다면 구태여 혈서 쓸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머리카락을 희게도 검게도 하시는 그분께 단순히 ‘예’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모든 대안을 먼저 제거하여 하나님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몰아붙이기 위해서, 즉 자기가 원하는 것을 꼭 이루기 위해, 맹세를 동원하기도 합니다. 쉬운 예로  “하나님 내가 십일조 다 내었고 교회 행사 하나 빠진 것 없습니다. 또 교회에서 일주일 내내 보내다 보니 일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러니 다음 달 생활비는 무조건 하나님이 책임져 주셔야 합니다.”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일용할 양식을 책임져 준다는 약속을 온전히 믿기에 받은 은혜를 이제 십일조로 돌려드립니다. 또 제 주위에 붙여 주는 영혼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섬기고 사랑하겠습니다.”는 전혀 다른 신앙이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하나님이 약속, 아니 맹세까지 했다면 당연히 이뤄질 것인데 구태여 기도할, 그것도 합심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로선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했지만 혹시라도 노종이 힘들고 귀찮아서 믿음이 떨어져 신부를 잘못 혹은 안 찾을까 걱정했던 것입니다. 합심 기도가 숫자가 많다고 권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합심(合心), 사실은 일심(一心) 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노종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맹세로 동참했고, 아브라함 자신도 하나님 앞에 다시 겸손하게 헌신했기 때문에 응답된 것입니다.

그럼 결국 어떤 뜻이 됩니까? 하나님의 맹세는 당연히 이뤄질 것이며 아브라함의 믿음도 완전한 성숙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브라함과 노종이 함께 기도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종의 믿음도 자라게 만드는 것입니다. 믿음이 성숙한 자를 통해 믿음이 연약한 자가 은혜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복이 흘러들어가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대로 그는 정말로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합심으로 기도한 신자들 모두에게 당신의 나라가 어떻게 세워지는지 그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자녀들로 온전한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를 세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삭과 그 신부 리브가에게도 아브라함의 믿음이 전해지고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의 사람 한 명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누룩처럼 번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사람은 결국에 가선 하나님을 아주 단순히 믿고 “예”만 한 사람입니다. 혈서 쓰고 머리 띠 두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요컨대 맹세나 헌신을 먼저 바치면 기도 응답도 잘 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예수님 말씀대로 악으로 좇아 악에게 지는 것입니다.          

3/2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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