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하나님보다 더 높은 분에게 절대로 복을 빌 수는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 보다 더 높은 존재 자체가 없습니다. 그 말은 비록 우리가 축복이라는 한자어의 원래 뜻과는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해도 사실은 아예 성립이 안 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신자더러 우상숭배하지 말라고 하는 말도 원칙적으로 따지면 틀린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구약시대 이방인들이 섬겼던 우상이나 신약시대 바울이 우상 제물로 바친 고기를 먹느냐 마느냐 따질 때의 그 우상은 사실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 뜻은 십계명의 제 2계명대로 인간이 스스로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 즉 하나님을 대체하는 능력이나 존재로 어떤 것도 예컨대 탐욕도, 마음 속에 두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섬길 우상이 없는데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은 일단은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축복해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말은 일차적으로는 분명 틀린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는 신자라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더러 더 높은 존재에게 복을 빌어달라는 인식을 갖고서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그 자체로 이미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의 그 박사 목사도 기도할 때에 그런 마음으로는 절대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신에 그분은 하나님이 신자들 향해 복을 내려 달라, 베풀어 달라는 의미로만 사용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 모든 사람이 그런 뜻으로만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 과연 이 오용된 말을 다시 바로 잡아야 하느냐 그대로 두느냐는 범기독교적인 차원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마치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을 현대에서 통용되는 말과 원어의 의미가 최대한 드러나도록 수정하는 작업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와 같은 맥락입니다. 이는 저를 비롯한 성도 개인이 다룰 차원을 이미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나아가 언어란 시대에 따라 용도나 의미가 바뀔 수 있습니다. 또 현재 한자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는, 이미 50대 미만까지 그러함, 기도할 때에 항상 사용하고 있는 축복이란 단어에 그런 모순이 있다는 사실조차 거의 모두가 모릅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을 베풀어달라는 간구로만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연 꼭 고쳐야 할지 여부는 실용적 차원에서의 검토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상 제물의 문제를 우상은 아예 존재하지 않기에 얼마든지 먹을 자유가 있지만 연약한 성도가 있을 때는, 즉 우상이 있다고 보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원칙을 이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축복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단어의 의미상 분명 틀렸지만, 하나님께 복을 빈다는 의미로만 알고 기도하는 자더러 잘못이라고 매도할 수만은 없다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기독교 신앙에선 하나님이 더 높은 존재에게 복을 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는 일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에 그런 생각으로 기도하는 자도 없습니다. 그럼 축복의 의미를 현재 통용되는 뜻으로 국어사전을 바꾸는 것이 더 손쉬운 일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어쨌든 이 문제는 범기독교적 차원에서 교계 지도자들이 결정하든지, 아니면 축복의 한자적 의미를 아는 세대가 다 사라지고 아예 하나님께 복을 빈다는 뜻으로 정착되든지 둘 중 하나라야 해결될 문제인데 아무래도 대세는 후자인 것 같습니다.
제가 질문자님의 의도나 올바른 신앙을 위한 순수한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며 단지 현재 이뤄지고 있는 실제 상황을 감한한 차원에서만 답변드렸음울 양해 바랍니다. 샬롬!
이 주제는 이미 성경문답 #73 목사만 축도할 수 있는가에서 한번 가볍게 다뤘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비교해서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첨언 2:
간혹 우리 말 축복(祝福)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한 경우가 있습니다. 복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므로 아무리 목사라도 “축복 합니다”라고 말하면 자칫 목사 자신이 복을 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대신에 “하나님이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해야 한다고 합니다.
또 성도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 축복해 주시옵소서” 대신에 반드시 “복 주시기를 빕니다”라고 해야 옳다고 합니다. 한자로 ‘축’은 ‘빌다’는 의미인데 하나님이 또 다시 누구에게 복을 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정확한 지적입니다. 그러나 ‘축’이라는 말 자체에 절대자에게 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준다는 뜻이 아니므로 일반적인 경사에 목사나 성도들이 다른 이에게 “축복합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 삼을 것은 없습니다. 그 말은 같은 성도된 입장에서 축하합니다와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일이 있어난 것을 감사하고 하나님이 복을 더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두 의미가 함께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일반적으로 신자들이 축복해달라고 기도하는 의미는 당연히 하나님께 복을 빌어 그분이 복을 베풀어 달라는 것이지, 하나님더러 또 다른 어떤 존재에게 복을 빌어라는 의미라고는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축복해주시옵소서”가 입에 굳었는데 구태여 구분하려다 오히려 기도가 막히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가능한 그 의미를 정확하게 구분해서 사용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말하자면 ‘축복’이라는 단어 자체가 “축하받을만한 좋은 복”이라는 의미로 현재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기에 구태여 구분하여 역으로 혼동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