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하며 참 어려웠던 부분이 기도의 내용과 기도하는 태도였던 것 같다.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기도를 해야함을 배웠지만 사실 그 나라와 의가 무엇인지 몰라 더 혼란스럽기만 했었다. 오래전 어떤 이웃은 그 나라와 의라함은 바로 자신의 조국이라 해석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면 된다라 가르쳐 주시던 권사님이 생각난다.
조금 신앙이 자라가며 그 나라와 의라함은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심임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라 함은 내가 섬기는 교회이외에는 생각해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속한 공동체, 눈에 보이는 그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겠거니 하고 우리 교회만을 위해 줄곧 또 기도했었다.
또 조금 자란 신앙은 내 기도 제목과 교회와 조국을 위해 기도함의 비율을 한번 따져 보게 되었다. 역시 나의 기도가 굉장한 비율로 드러나게 되었고 그게 또 그렇게 죄송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죄송스럼을 느끼면서부터 오히려 기도시간은 더더욱 경직 되어갔다. 나라와 민족을 제일 먼저 기도해야지.. 그리고 우리 교회.. 그리고 이웃들... 내기도는 맨 나중에 그것도 아주 조금만... 어떤 틀에 낑겨서 마치 주문외우 듯, 앵무새 지저귐처럼 종알 종알, 그것도 분, 초까지 헤아리며 비율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기도가 나의 기도방법이였다.
얼마전 가까운 이웃이 내게 질문을 했다. 자신의 문제기도에 파묻혀서 살아온 세월이 수십년이라고 한다. 그렇게나 오랜 세월 기도해 온 대부분이 도무지 응답은 커녕 삶은 점점 더 꼬여만 가고 환난과 고통의 정도는 더욱 심해지기만 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기도의 방법이 잘못된 것 같다고 한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부터는 그 어떤 것도 기도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자신이 너무 자기만을 위한 기도를 해왔기에 이런 어려움도 닥친 것 같고 하나님은 개인의 어려운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는 분이신가 보다라고 생각되어지니 도무지 기도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실은 너무도 고통스러운데도 맘만 타고 기도는 할 수가 없어서 어찌해야할지를 모르겠다며 울상을 지었다.
마침 홈피교회에서 읽은 글이 떠올라서 설명을 해 줄수가 있었다. 어떠한 기도든 무조건 하나님께 아뢰라고,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는 그 순간 우리 앞에 무릎을 맞대시곤 어서 이야기해 보라시며 흐믓하게 들으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셔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듯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은 것 다 아뢰고 부탁드리고 싶은 것 다 부탁드려도 우리의 그 모습을 너무도 좋아하시는 분이시라고, 그리고 또 조곤 조곤 우리에게 그 기도는 왜 응답이 더디냐면... 그 문제는 무엇이 더 문제이냐면... 하시며 너무도 다정스레 다 말씀해 주시는 분이시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오해하여서 생긴 문제인 것 같다고, 하나님 그 분을 바로 앎이 제일 중요한 일인 것 같다고, 그러기 위해서 더더욱 미주알 고주알 말씀드리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도 기도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던 아주 오랜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하나님께 기도응답 받는 방법을 추구하였던 잘못에서 비롯된 일임을 알 것 같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어떠하신 분이신지를 가르주는 교회, 얼마나 크시고 광대하시며 또 얼마나 섬세하시고 부드러우시며 다정다감 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너무도 사랑해 주시는 아버지이심을 바로 알려 주는 그 교회가 너무도 그리운 현실이 아닌가 싶다. 다시 한번 우리 홈피교회로 인도하시어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배려해 주신 아버지께 감사를 드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