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설교시간의 말씀이 생각이 난다.  정치를 종교적으로 할 때 문제가 생기고 반면에 종교를 정치화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치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각기 다른 생각들로 행하여지는 것이건만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갖는 자를 적으로 간주하고 오직 같은 생각으로만 뜻을 모으려고 하기에 문제라는 것이다.  정치는 서로 다름을 인정해 주고 그 다름안에서 융화하고 인정해 주며 함께 보듬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를 그렇게 정치화한다면 진리가 상실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 줄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진리이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하나가 되어지려면 여러 갈등도 있고 아픔도 있지만 그래도 결국 다다러야할 그 곳은 골고다 십자가 아래이다.  교회는 그 곳까지 함께 걸아가며 아픔도, 괴로움, 갈등도 감수하며 걷는 길인 것을 또 배울 수 있었다.

나의 교만보다 더 싫은 것이 참 여럿 있다.  그것은 여러가지 허물과약점들이다.  그 허물 중 자주 기우뚱 거리고 자주 넘어짐을 고백하지만 그 고백이 있을 때 마다 이러다가 버릇이 되지 않으려나,  나중엔 이 넘어짐 조차도 부끄럽지 않으면 어쩌나,  아예 나는 그런 사람으로 스스로 간주하고 또 당연시리 넘어지겠거니 미리 생각해 버리면 어쩌나 싶다.  그런데 오늘 말씀 속에서 그런 약점이 어느결에 교만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배운다.  나는 잘 넘어지지만 또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그런 희한한 교만으로 발전하다면  그건, 너무도 무서운 일인 것 같다.

그런 허물 중에 또 하나는 우리의 친절이 교만으로 발전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짐짓 진리를 외면한 채로 상냥함과 친절함이 우선되어야한다는 아주 오래된 고정관념들이 그러하다.   사실 그렇게 배워왔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려면 자아는 죽어져야하는데 우리의 배움은 친절과 상냥함 그리고 사람들의 여러가지 의견을 인정해 주어야한다는 가르침을 받아며 오히려 자아를 더 키워나감을 배워왔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 주어야하는 긴급한 일엔 뒷걸을질 치면서 이웃의 장점을 칭찬하며 이웃의 환심만 사려 노력하며 그런 방법을 동원하여 교회라는 곳에 데려다 놓으려 서두르며 일을 한다.  자칫 교회라는 곳을 의자에 사람 앉혀놓아 그득하니 채워지면 된다라 여기고 만다. 모든 인간적인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사도바울의 모습에서 너무도 훌륭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의 허물과 약점이 무엇인지 우리로선 잘 모르지만 그는 그 허물과 약점으로 자신의 자존심과 체면에 손상이 갈까 보아 괴로와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될까보아 염려를 하였다.  그리고 그 허물과 약점 때문에 결코 교만해질 수가 없는 자신임을 철두철미 깨닫고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이 하심을 고백하는 모습이 너무도 부럽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리는 바울의 모습이 정말 부럽다.  비교해 난 허물과 약점들을 끌어안고 고민하고 있는 이유가 오로지 나의 자존심 지킴이며 체면지킴에 급급한 모습이기에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정치적인 교회가 되지 않으려면,  정말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머리가 되신 그런 교회가 되려면 모든 생각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진리로만 하나 되어야함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러려면 교만보다 더 싫은 허물과 약점들을 하나 하나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가는 통로가 되어가도록 사도바울처럼 고백하며 내어드리야함을 배운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추악하디 추악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려 이 지구라는 오물같은 곳에 오시어 인간들의 사악한 손에 돌아가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깊은 뜻을 바로 알아가고 바로 깨달아가도록 지속 말씀이 선포되어야하는 곳,  하나님은 이처럼 사악한 인간들의 손에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갖은 수치와 모욕을 당하며 죽도록 허락하신 그 아버지의 맘을 지속 배워가야하는 곳이 교회이기에  교만보다 싫은 그런 허물과 약점들이  너무도 많지만 그 중 어떠한 것이 또 교만스러이 머물며 진리이신 예수님을 짐짓 외면하고  십자가의 휠터를 통과치 않은 나의 뜻과 나의 의견이 숨겨져 있진 않은지 세심히 살펴야함을 배운다.  그리고 이젠 보혈의 잣대로 잘 헤아릴 줄 아는 자가 되어가길 맘의 옷매무새를 다시 매만지며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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