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담임목사님과 예전에 대화했을때도
요가의 경우 원래 어디서 근원했는지 말씀하시면서 그렇기 때문에
아예 다른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여기에 아직 개인적으로 동의가 되지 않았던 것이....
요가가 어디서 근원했듯이 상관없이 지금 그 의미가 아니게 운동으로만 하는 것이고 제 마음의 중심이
예수님께 있다면 그게 문제가 되나 싶어서요.
요가 라는 스포츠 자체를 무종교인이 한다고 해서 그것을
고대 인도의 종교에 심취해서 한다고는 아무도 생각 안하잖아요.
본래 a라는 것에서 출발했다고 하지만 시간이 흘러 더 이상 a라는 시초가 의미 자체가 사라진 상태라면 그것은
무관하지 않을까요?
마치 현재 '국민'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을 군국주의 아래
'황국신민' 이라는 것에서 국가에 복속시키고 일본 천황의 신민이라는 것을 강조한데서 어원이 나왔다지만
우리는 더 이상 '국민'이라는 표현을 그런 의미로 쓰지 않고 있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국가의 시민
으로 받아들이고 있잖아요?
이와 같이 어원과 무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신자 본인에게도 거리낌이 없다면
요가를 해도 상관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시에서 사도바울이 '고기를 먹어도 우상숭배가 아니지만 지체가 넘어질까봐 먹지않는다' 라는 의미를 생각해도,
크리스찬이 요가를 한다고 해서
'아니 저 사람은 크리스찬인데 고대 인도의 정신적 호흡을 시도하다니!!
저건 고대 인도 종교를 믿겠다는 의지이자 기독교에 대한 심대한 배교행위야!'
라는 생각을 현대인은 아무도 하지 않을테니까요.
'아 그냥 크로스핏이나 헬스장 다니는 거 처럼 요가 운동을 하네' 라고 생각하니까요..
적어주신 부분을 모두 고려해봐도 개인적으로 거리낌이 없다면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저도 현대 문명에서 지나치게 섹스어필을 하는 부분이나, 소확행 같은 부분, 한탕주의, 비트코인 광풍으로 보여지는 일확천금주의 같은 문명이 만연한 것은 분명 사단이 문명을 통해 선하게 지어진 세상에 악을 끼치는 행위라고는 봅니다만
스타워즈의 포스나 요가 같은 부분은 뭔가 결이 달라서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가령 저는 세계의 고고학과 고대사,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데
고대사를 이야기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수메르 신화라던가 길가메쉬 서사시, 혹은 각기 세계의 다양한 신화들을 흥미롭게 알게 되는데요. 그렇다면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나온 우르크(지금의 이라크,)부근의 대홍수도 성경에 적힌 홍수보다 점토판에 기록된 시기가 이르기 때문에
'신화는 신화를 모방한다' 는 것에 따라 성경이 바벨로니아 신화를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
라는 것에서 신자의 신앙생활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고대 수메르 역사를 자녀에게 가르치지 말자!
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그 정도의 분별력은 지식을 습득하면서도 개인적으로 해야하는거 아닌가 싶어요.
저부터가 고등학교 까지는 철저한 반 기독교인 이었고, 성경이 길가메시 서사시를 비롯한 수메르 신화와
근동 이란 부근의 설화를 모방한 것이라 여겼지만,
대학교에 입학한 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곧, 그런 어떤 세계사적인 지식(길가메시 서사시) 혹은 문화적인 유흥(스타워즈 포스) 같은 부분으로 흔들릴 신앙이었으면 애초에 그 사람은 뭐를 해도 흔들릴 신앙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치면 수도원에 들어가서 성경을 제외하고는 다른 교양이나 지식을 주입시켜서는 안되겠지요.
이는 신자 각자의 개인적인 믿음과 지식에 관계된 문제입니다. 나아가 현대교회가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입니다. 이전처럼 성경과 기독교교리에 대해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무조건 믿으라든지, 현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일일이 개별적으로 성과 속으로 나눠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지금 청년들에게 그렇게 접근해선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반감만 늘어나고 심지어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가 미신적인 내용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에선 성경에 의심나는 점들에 대해선 충분히 합리적으로 변증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고, 일반성도들에게도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숙지시켜야 합니다. 신자 스스로도 성경이나 교리에서 의심나거나 납득이 가지 않는 것들을 깊이 파고들어서 그 진리됨에 더욱 확신을 갖고서 다른 이에게 변증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야 합니다.
말하자면 자녀들에게도 얼마든지 일반 역사 신화 종교 등을 기독교와 비교해서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성경을 깊이 알면 알수록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진리임을 확신할 수 있고 얼마든지 모든 의심에 대해 변증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녀나 주변 성도들의 지성적 영적인 분별력이 아직 미성숙해서 부정적 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판단되면 성경과 상충되는 내용을 무분별 무차별적으로 접하게 하지 않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항상 함께 하여서 일일이 간섭 제한할 수 없습니다. 본인부터 성경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서 삶에서 실천해 보임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행동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작금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많은 교회들이 구태의연하게 성경을 해석 설교 강의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의 진리가 아닌 세상 이야기 도덕적 훈화만 늘어나고 있어서 세상은 기독교(개신교)에 대해서 외면 멸시하는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젊은 청년들에게 제대로 변증하여서 성경의 절대적 진리 됨을 믿게 하지 못하면 기독교의 미래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 밑에 글 답글도 부탁드립니다 ㅠㅠ
요가의 기원과 영적 측면에 대해서는 이미 담임목사님분께 들으셔서 잘 아시겠지만, 요가는 단순한 운동으로서 고안된것이 아닙니다. 만물속에 곧 우주 자체에 편재된 어떤 범신론적 비인격적 신적 존재인 브라만(스타워즈로 비유하면 포스가 되겠네요.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스타워즈 시리즈도 경계하고 분별해야 합니다)과 하나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고안된 프로세스이고 이는 오늘날의 힌두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크리스쳔들이 이 요가에서 온전히 영적 측면은 배제한채 물리적인 유익만 얻을수 있느냐는 질문인데... 솔직히 딱 떨어지게 교리화시키기 어려운 문제이니 원론적인 차원의 조언만 드리고자 합니다.
1. 과거에 요가에 심취했다가 신앙 양심 때문에 끊고 나오신 여러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요가의 영적 측면과 물리적 측면을 칼로 자르듯 딱 분리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고 합니다. 마치 물감이 경계선에서 섞인듯 혼잡하게 뒤얽혀 있기 때문에 물리적 측면 자체에 영적 측면이 미묘하게 오염되어 있어 순수하게 분리해내기 어려울 수 있다고 합니다. 자칫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적인 영적 영향력에 틈을 내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이는 할리우드의 여러 영화나 다른 미디어 매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할줄 안다고 믿으며 그러한 매체들 속 깊숙이 숨어있는 이데올로기와 영적 영향력으로부터 안전할것이라고 믿기 쉽습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분별력과 의지는 연약하기에 악한 기원이나 요소가 은밀히 녹아있는 무언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보면 분별해내기보다는 영향을 받고 휘둘릴 위험이 큽니다.
2. 말씀하셨듯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형제에게 걸림이 되지 않을까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의 영적 자유가 다른 연약한 성도에게 심각한 걸림돌이 된다면, 예컨대 요가의 힌두교적, 뉴에이지적 측면을 적대시하는 성도가 다른 신자가 요가를 하는 것을 보고 근심하거나 정죄에 빠지거나 넘어지게 된다면... 차라리 그럴 여지를 멀리하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3. 모든일을 주의 영광을 위해 하라는 원칙을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신앙 양심에 비쳐 행해야 합니다. 저 역시도 수없이 걸려넘어지는 부분입니다만, 원칙적으로 신자는 먹는 것, 일하는 것,레져, 취미 등 삶의 전 영역에서 주님의 영광을 추구해야 합니다. 요가의 기원에 대해 전혀 몰랐을 때는 상관없겠지만, 알아버린 이상 그것을 행할때마다 왠지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알게 모르게 꺼림칙한 기분이 들지 않겠습니까? 절대화시켜 말할수는 없겠지만, 저 같으면 '이런 힌두적 가치가 은연중 반영되어 있는 운동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는 않을것 같아' 라는 찔림이 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