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눅13:24 - 본문은 선행과 공적을 통한 행위 구원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났기에 이미 다 구원받았다고 여겼으나 예수님은 오직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구원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요8:31-47) 그래서 주님의 그 가르침에 의문을 품은 유대인이 구원 얻는 자가 왜 적느냐고 질문했는데(눅13:23) 그에 대답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28절에 유대인 중에 선지자들만 구원 받고 오히려 나머지 모두는 심판 받는 반면에 29,30절에서 나중에 유대인보다 동서남북에서 이방인들이 먼저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유대인이니까 무조건 다 구원 받았다고 여기지 말고 진정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악행을 멈추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참된 신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2. 마11:12는 제 설교(10/24 룻기 강해 #10) 중에 설명한 적이 있는데 아래에 인용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고 선포했습니다. 요한이 헤롯의 음행을 정죄하여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려 했을 때에 주신 대답이었습니다. 옥중에 있으면서 들리는 소문에는 예수님이 로마나 유대당국과 맞서서 이스라엘에 공의를 회복할 시도는 전혀 하지 않고 주로 과부, 창녀, 세리, 죄인, 귀신들린 자, 가난한 자들을 만나서 가르치고 치료해준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가장 먼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그렇게 선포하면서 세례까지 주었음에도 주님의 하시는 일을 보면 자기가 바라고 기도했던 것과는 크게 다르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에게 주님은 그들의 스승 요한의 때부터 천국이 침노를 당한다고 말했습니다. 침노라는 단어는 강력하게 적극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을 뜻합니다. 천국이 침략과 약탈의 대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적극적 능동적으로 뜨겁게 기도 찬양하며 믿으면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누가는 같은 말씀을 조금 더 쉽게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16:16)고 설명합니다. 요한은 메시아인 예수님이 오셨다고 선포함으로써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역할을 마쳤는데 그와 함께 율법에 따라서 도덕적 종교적 의로 사람을 구별하던 시대도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이제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온전히 알게 해주고 모든 죄인에게 차별 없는 사랑을 부어주시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자꾸만 이스라엘의 소외되고 비천한 자들을 주로 만났었기에 메시아의 정체성을 의심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오히려 그런 자들을 사랑으로 치유하고 차별하지 않고 구원해주는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이 메시아가 분명하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애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순전히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를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로 삼아서 더 이상 정죄를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랑 가운데서 신자를 끊어낼 것은 세상에 단 하나도 없으며 그런 사랑으로 세상 끝 날까지 세상 땅 끝까지 함께 해주십니다. 그 사랑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신자는 어떤 환난이 닥쳐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며 결국에는 그분께서 보여줄 그분만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눅13:24 - 본문은 선행과 공적을 통한 행위 구원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났기에 이미 다 구원받았다고 여겼으나 예수님은 오직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구원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요8:31-47) 그래서 주님의 그 가르침에 의문을 품은 유대인이 구원 얻는 자가 왜 적느냐고 질문했는데(눅13:23) 그에 대답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28절에 유대인 중에 선지자들만 구원 받고 오히려 나머지 모두는 심판 받는 반면에 29,30절에서 나중에 유대인보다 동서남북에서 이방인들이 먼저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유대인이니까 무조건 다 구원 받았다고 여기지 말고 진정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악행을 멈추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참된 신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2. 마11:12는 제 설교(10/24 룻기 강해 #10) 중에 설명한 적이 있는데 아래에 인용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고 선포했습니다. 요한이 헤롯의 음행을 정죄하여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려 했을 때에 주신 대답이었습니다. 옥중에 있으면서 들리는 소문에는 예수님이 로마나 유대당국과 맞서서 이스라엘에 공의를 회복할 시도는 전혀 하지 않고 주로 과부, 창녀, 세리, 죄인, 귀신들린 자, 가난한 자들을 만나서 가르치고 치료해준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가장 먼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그렇게 선포하면서 세례까지 주었음에도 주님의 하시는 일을 보면 자기가 바라고 기도했던 것과는 크게 다르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에게 주님은 그들의 스승 요한의 때부터 천국이 침노를 당한다고 말했습니다. 침노라는 단어는 강력하게 적극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을 뜻합니다. 천국이 침략과 약탈의 대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적극적 능동적으로 뜨겁게 기도 찬양하며 믿으면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누가는 같은 말씀을 조금 더 쉽게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16:16)고 설명합니다. 요한은 메시아인 예수님이 오셨다고 선포함으로써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역할을 마쳤는데 그와 함께 율법에 따라서 도덕적 종교적 의로 사람을 구별하던 시대도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이제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온전히 알게 해주고 모든 죄인에게 차별 없는 사랑을 부어주시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자꾸만 이스라엘의 소외되고 비천한 자들을 주로 만났었기에 메시아의 정체성을 의심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오히려 그런 자들을 사랑으로 치유하고 차별하지 않고 구원해주는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이 메시아가 분명하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애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순전히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를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로 삼아서 더 이상 정죄를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랑 가운데서 신자를 끊어낼 것은 세상에 단 하나도 없으며 그런 사랑으로 세상 끝 날까지 세상 땅 끝까지 함께 해주십니다. 그 사랑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신자는 어떤 환난이 닥쳐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며 결국에는 그분께서 보여줄 그분만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