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관심으로 소액이지만 기부를 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 래디컬이라는 책을 읽다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웃에 나누어주는 삶을 실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 변화에 대한 동기를 살펴보니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기부를 하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내가 그들을 도와주었다는 뿌듯함이 생깁니다. 둘째, 이웃에게 나누면 복을 더해주신다는 말씀이 많은데요. 물론 기복신앙적으로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도 모르게 기부를 더 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가족에 더 긍휼히 여겨주시고 복을 베풀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욕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이웃을 돕는 자는 나중에 병에 걸렸을 때, 병상에서 일으켜주신다는 구절도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기부를 하는 건 옳지 못한 것일까요? 대가를 바라고 하는 기부는 하나님도 기쁘게 받지 않으시겠죠? 자기만족으로 하는 기부는 안하니만 못한 걸까요? 기부를 늘렸는데도 일상의 변화가 크게 없거나 오히려 제 생각과 반대로 일이 진행되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구제일까요?
구제나 기부등 솔직히 처음에 뭔가 뿌듯함에 젖게 되는 것은 자기를 높이려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교만 때문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보잘 것 없는 나를 통해 작지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복의 통로로 사용해 주심에 분명 주님께 기뻐 감사드리게 될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요. 내게 허락하신 나에게 속한 재물뿐 아니라 이 생명까지 모든 것들 역시 주님의 것이니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전혀 아깝지 않으며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나중엔 오히려 더 많이 돕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게 될 것이라 감히 예상해 봅니다^-^
피스님과 날마다순종님이 이미 은혜로운 의견을 달아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신자의 구제에 대해 다 다루자면 글이 길어질 테니 질문하신 두 가지 의문에 대해서만 간단히 제 의견을 첨가하자면;
첫째 선행을 하고나면 괜히 뿌듯해지는 것을 두고 굳이 인간적 교만이라고 여길 것까지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악에는 자기 파괴적인 성향을, 선행에는 자기 충족적인 성향을 심어 놓았습니다. 죄를 지으면 부끄럽고 두려워지고 선을 행하면 기쁘고 뿌듯해지게 해서 인간의 죄는 줄이고 선을 늘리려는 섭리입니다. 그래서 피스님 말씀대로 미리부터 이런저런 생각하느니 의지적으로 일단 작은 일에서부터 구제를 실천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그리고 자꾸 예수님의 심정으로 다른 이를 보려고 노력하면 왼손이 행한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되며 나아가 그 구제가 몸에 완전히 붙어버리는 단계에 까지 성숙해질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부어주실 복을 바라는 그릇된 마음이 아닌지라는 염려도 사실상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간단히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마음을 갖고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추가로 복을 부어주실 리도 없지 않습니까? 사람들의 (아부성) 칭찬과 스스로 의롭다는 착각으로 자꾸 더 교만해지고 하나님과도 점점 멀어질 뿐입니다. 신자가 그랬다면 오히려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그전에 하나님은 신자가 (어쨌든 순수한 마음으로) 선행을 해도 일일이 그에 맞춤 형의 복을 주지 않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십일조 축복도 자세히 읽어보면 재산을 갑자기 늘려주는 것이 아니라 손해 없도록 정상적으로 지켜주는 모습입니다.(저의 이전 십일조에 관한 글도 참조하십시오.) 하나님이 더 부어주시는 은혜는 참으로 오묘한 방식이 될 것이며 자신의 특정한 선에 대한 하나님의 특정한 보상이라고 당장에는 모를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예외는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긍휼의 마음을 더 많이 가졌거나 신자가 된 후에 구제의 은사를 받은 신자가 있습니다. 제 주변에 어려운 사람만 보면 자기 입고 있는 옷도 벗어주는 여자 전도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럼 꼭 그만큼 혹은 약간만 더 많게 같은 것으로 하나님이 매번 채워주시고 그럼 또 그것을 또 다른 어려운 이에게 곧바로 나눠주십니다. 그분은 정말로 누가 봐도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일일이 무엇이 필요한지 기억해두었다가 주로 물건으로, 가뜩이나 검소하게 사시는 분이라 돈이 아니라, 도와주십니다. 물론 어떤 분이 돈이 긴급하게 궁할 때에 이상하게 그분에게 같은 액수의 헌금이 들어오게 하고 이미 그 어려운 분을 알고 있으므로 바로 찾아가 전해주시는 식입니다.
"기부를 늘렸는데도 일상의 변화가 크게 없거나 오히려 제 생각과 반대로 일이 진행되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라고 하셨습니다. 이 또한 아무 필요 없는 걱정입니다. 죄송하지만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부터 조금 잘못 아닙니까? 일상의 변화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듯 하니까 말입니다.
기부를 했다고 해서 위에서 설명드린 대로 일상의 변화는 당연히 크게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축복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때로는 상대가 오히려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음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자가 겪는 고난이자 핍박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신자는 더욱 겸손해지고 오직 하나님 앞에 일대일로 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순전하게 서시면 됩니다. 물론 상대에 대해선 일절 맞대응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때야말로 신자에겐 하나님만의 방식으로 복을 주시고 상대에겐 마찬가지로 하나님만의 방식으로 신원해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신자가 보상적인 복을 추가로 많이 받아내야겠다는 완악한 마음이 아닌 이상 잘못된 방향으로 절대 인도하지 않습니다.
요컨대 이런 질문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순수한 마음이므로 아무 생각 마시고 일단 구제를 실천부터 하십시오. 그럼 제가 드린 말씀을 체험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왼손이 한것을 오른손이 모르도록, 자기 자신마저도 그 선행을 의식적으로 잊어버리면서,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그저 해야할일을 했을뿐입니다'라고 스스로를 부인하는게 주님이 바라시는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매우 어렵습니다. 의식적으로 겸손해지려 노력해도 깊은 속에서는 자기의가 자꾸 은근슬쩍 솟구치니까요. 예수님께서 주신 희생에 비하면 내 작은 구제는 한없이 하찮고 왜소한 것이라는 의식이 느껴지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게도 매우 어렵고 잘 안되는 일중 하나입니다.
(그래도 구제하지 않는것보단 구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산상수훈의 가르침에서처럼 상을 이미 받아 깎어먹어버린다면 안타까운 일일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