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복음에서 출발한 신자들

조회 수 496 추천 수 38 2009.11.08 02: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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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복음에서 출발한 신자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가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게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시19:12,13)


기독교 이단 중에는 신구약 성경중 하나만 인정하겠다는 것도 있습니다. 구약의 여호와만 유일한 하나님이고 예수는 단지 한 사람의 랍비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구약은 단지 이스라엘 역사에 불과해 신약의 예수님의 가르침만 믿고 따르겠다고도 합니다. 심지어 신자들 중에도 이런 주장에 심정적으로 동의하는 자들이 간혹 있습니다.

이는 성경을 해석하는 절대적 기준이자 신구약 성경을 통합시키는 유일한 고리인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도외시했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죄의 본질이 무엇이며 또 인간이 죄에서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것입니다.  신약에 드러난 복음을 구약에 제대로 적용하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구약에서도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지은 이 시편에도 놀랄만한 예수님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 나시기 천년도 넘는 이전 사람이라 십자가 복음은 아예 알지 못했던 자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본문에서 그 당시는 물론 오늘 날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 죄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숨은 허물이 많아 자기 허물을 깨달을 자가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죄를 짓는다는 뜻입니다. 즉 죄인 줄 모르고 짓거나 죄인 줄 알아도 일종의 마취현상이 생겨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죄인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죄인 줄 알아 남이 모르도록 살짝 지어야지 하다가 그런 생각이 자기마저 속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일부러 부인하거나 망각해 버리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또 의도적으로 알고 지은 죄가 자기를 주장치 못하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죄인 줄 알고 지었다면 누구라도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죄책감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신이 불리해지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핑계 내지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예컨대 남이 하면 간음이지만 자기는 로맨스라는 것입니다.

자기 핑계를 댄다는 것은 자기를 치장하거나 과대 포장하고자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하게도 자기만 옳다고 고개를 쳐드는 것입니다. 죄를 범한 행위와 그 결과보다 자기에게 불리한 것을 부인, 망각, 변명하면서까지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인간 심령의 뿌리 깊은 그 추악함이 바로 죄가 가진 교묘한 힘이자 죄의 본질입니다.

또 인간이 자신을 거짓으로 포장하려는 습성 때문에 작은 죄가 큰 죄를 부릅니다. 대표적으로 거짓말한 것을 무마하려다 보면 자꾸 거짓말이 눈송이처럼 커집니다. 죄의 궁극적 근원이 바로 거짓의 아비 사단에게 이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했어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회개했더라면 인류 역사는 완전히 바뀌었을 것입니다.

나아가 죄의 속성 자체가 인간으로 죄를 즐기게까지 만듭니다. 한 번 죄를 지었어도 특별한 나쁜 결과가 생기지 않고 오히려 자기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일이 많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부정하게 돈을 벌었어도 쥐꼬리 같은 죄책감에 눈을 찔끔 감으면 돈이 안겨다 준 안락과 풍요함이 너무 좋아지는 것입니다. 또 비록 죄에는 그런 현실적 유익이 없어도 육신적 쾌감, 일시적인 스트레스 해소, 심지어 짜릿한 스릴이라도 동반합니다. 그래서 자꾸 그 죄를 반복해 짓고 싶고 나중에는 아예 죄책감은커녕 죄라고 느끼지도 못합니다. 심지어 그 죄가 가져다주는 장점 혹은 유익으로 정당화시켜서 죄를 오히려 선인 양 둔갑시켜 자랑합니다.

간단한 예로 술, 담배의 경우 마음 놓고 하는 것(free smoking)이 그것을 절제하는 것(smoking free)보다 인간을 더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자유란 인간이 그것에 묶이지 않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만 하는데도 술 담배 마음 놓고 하라는 것은 바로 그것에 묶이라고 권면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스스로 술 담배의 노예가 되려는 오직 하나의 자유만은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백가지 자유 중에 한 가지 자유를 위해 나머지 99개의 자유는 묶여도 된다는 주의입니다. 죄가 사람을 묶는 것도 동일한 원리입니다. 죄로 인한 한 가지 쾌락 때문에 죄를 짓지 않았을 때 생기는 나머지 선하고 의로운 것은 몽땅 땅에 묻어버려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다윗의 죄에 대한 생각은 한 마디로 인간은 절대 죄를 스스로 절제할 수 없고 그 죄과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범죄(crime)는 원초적인 죄(sin)가 겉으로 드러난 결과(罪果)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죄를 짓지 말도록”이 아니라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바울이 십자가 복음을 설명한 내용과 정확하게 같습니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롬6:17,19)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자기에게 전혀 가망이 없다고 실토한 것입니다. 이처럼 신구약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라야만 완벽하게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 출발은 오직 복음에서 출발합니다. 세상의 어떤 방도로도 내가 절대로 의로워질 수 없으니 이제는 오직 주님의 긍휼에만 의지합니다라고 완전히 항복하는 것입니다. 만약 신앙이 이것과 다른 곳에서 출발했다면 아무리 예수를 열심히 믿어도 헛수고입니다. 단지 여러 종교 중에 기독교를 택해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결단하고 헌신하는 것은 기독교인이라는 종교인이 된 것에 불과하지 아직 예수님의 은혜 안에 들어온 신자가 아닙니다.  

내가 믿기로 선택했고 또 현재 잘 믿고 있다는 바탕 위에 믿음이 서있다면 필연적으로 하나님도 나에게 그에 비례해서 당신이 해야 할 바를 해주어야 된다는 기대가 생깁니다. 어려운 일에서 건져주고 좋은 일만 생기게 해주거나 최소한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게 해 주어야 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어려운 일이 남아 있는 한에는 예수님은 둘째 치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진정한 경배가 우러나오지 않습니다.

인간이 죄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죄의 문제로 하나님께 간구할 필요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내가 죄를 줄일 테니 하나님은 그에 비례해 복을 늘려달라는 간구 빼고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나는 착하게 살고 하나님은 복만 주는 계약을 맺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며 또 기도도 하나님이 그 계약 준수를 잘하는지 독촉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수많은 종교인들이 자기들 신에게 자기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빕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오직 두 가지 뿐입니다. 자기가 자기 죄를 도저히 깨끗케 할 수 없으니 신의 자비만 바라는 것과, 죄를 회개했으니 반대급부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급부에 현실적 축복만이 아니라 천국 가는 티켓을 포함시키는 종교도 많습니다. 다른 말로 인간 스스로 하는 회개도 죄를 씻는 공로로 인정해 주겠다는 뜻입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이 스스로 자기 죄를 깨끗케 한 셈입니다.

다윗의 고백과는 정반대의 생각입니다. “내 허물을 능히 깨달을 수 있으니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도록 회개하겠습니다. 고범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하겠으니 죄가 나를 주장할 수 없으리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정직해지면 하나님은 나로 그에 대응하는 큰 축복, 천국 가는 복까지 주시옵소서.” 십자가 복음과 멀어도 한참 먼 생각입니다.  

혹시 성경을 이런 생각을 갖고 읽지는 않는지요? 그래서 구약에서 예수를 발견할 수 없다는 불만이 생기지는 않는지요? 단순히 성경해석상의 오류로 그치지 않습니다. 성경 아니 예수님과 전혀 관계가 없으니 기독교를 믿어서 받을 진정한 축복과 은혜와도 하등 상관이 없어집니다. 다윗이 본문에 이어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14절) 그 반대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전혀 열납되지 않는다는 것 아닙니까?

12/7/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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