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의 의미 (공유)

조회 수 260 추천 수 0 2021.05.14 18:07:29

 내일은 승천주일입니다. 이맘때면 떠오르는 의문이 있습니다. 왜 교회는 승천은 딱히 강조하지 않을까? 그리고 기독교 변증가들은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그리고 '기독교가 진리임'을 변증하는 데 매우 강력한 증거로 쓰면서, 승천은 별달리 언급하지 않을까? 아울러 승천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라는 질문들입니다.

 언제 한 번 여기 자유게시판에다가 질문해야지 생각만 하고 실천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런 의문을 해결해주는 좋은 글을 보게 되서 공유합니다.

 

 

https://www.tgckorea.org/bbs/board.php?bo_table=articles&wr_id=996&wr_1=%EC%8B%A0%ED%95%99&wr_2=%EA%B5%90%EB%A6%AC+%28Doctrines%29

잊혀진 그리스도의 승천 교리 회복하기

by Patrick Schreiner  /  작성일 2021-05-13

 

메시아의 승천을 통해서, 육체가 하나님이 계신 영적 영역으로 올라가 인류와 함께 영원히 살 것임을 보여준다. 육신을 입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를 유지함으로써 예수님은 인간의 본질을 더 높은 차원으로 높였다

 

승천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종종 잊혀지는 사건이다. 교회가 워낙 십자가와 부활에 강조점을 두기 때문이다. 주로 논쟁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무엇을 이루었고 또 부활이 역사적으로 증명 가능한지 등에 대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승천 문제는 항상 뒷전에 밀리기 마련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완전히 잊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성육신, 십자가, 부활 그리고 재림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더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승천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다른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승천에 대한 건강한 강조는 다른 교리를 더 강화시킨다. 

 

예수님과 관련한 사건들이 구분될 수는 있지만 결코 분리될 수는 없으며, 그 모든 사건들을 하나로 통합해서 바라볼 때 우리는 좀 더 명확하고 정확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이제 그리스도의 승천을 다른 교리들과 연관시킴으로, 다른 교리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한 교리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출 때 발생할 수 있는 과도한 강조가 파괴하는 균형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승천과 성육신

 

승천은 그리스도 사역에 있어서 클라이맥스다. 그러면, 이런 승천을 어떻게 성육신과 연결할 수 있을까? 몸을 입은 그리스도로부터 눈을 떼는 대신, 승천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이룬 사역을 다시 돌아보도록 한다. 성육신은 어쩔 수 없이 잠시 거쳐야만 하는 덜 중요한 단계가 아니다. 승천을 통해 성육신의 목적은 충족되었고 또한 지속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고 육신을 구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승천하셨다. 그렇기에 일시적, 물질적, 그리고 물리적 차원은 승천에서 거부되지 않고 오히려 확증된다. 메시아의 승천을 통해서, 육체가 하나님이 계신 영적 영역으로 올라가 인류와 함께 영원히 살 것임을 보여준다. 육신을 입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를 유지함으로써 예수님은 인간의 본질을 더 높은 차원으로 높였다. 

 

그렇기에 승천은 성육신을 보증한다. 그러면, 이 둘이 어떻게 서로 연결된다는 것일까? 처음에는 내려왔고, 다음에는 올라갔다. 그러면, 승천은 성육신을 뒤집는 것일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 땅에 내려오심과 하늘로 올라가심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심지어 이 둘은 하나의 움직임으로까지 간주된다(참조, 예 4:9-10; 빌 2:5-11).  

 

예수님은 승천하기 위해서 이 땅으로 내려왔다. 이 두 가지 행동은 서로를 상쇄하지 않는다. 대신 타락으로 인해 부서진 것을 회복시킨다. 내려오심과 올라가심은 두 가지 움직임이다. 예수님은 처음에 육신을 입고 우리에게 오셨고, 그 다음으로 그는 육신을 입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인류 속으로 모셔 오기 위해 내려오셨다. 그리고 그는 인류를 하나님께로 데려가기 위해 올라가셨다. 

 

승천과 십자가

 

혹자는 예수님의 왕권과 승천에 집중하게 되면 십자가를 경시하게 되는 올무에 걸릴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승천이 그리스도의 높임과 관련이 깊다면, 당연히 그리스도가 겪은 수모를 소홀히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굴욕과 높임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압도함으로 결코 두 갈래로 나눠질 수 없는 문제다. 

 

성경에 따르면 굴욕과 높임은 같이 온다. 승천과 십자가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둘을 분리하는 것은 그 둘 모두를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둘 사이의 관계성이 적지 않지만, 나는 딱 한 가지만 얘기하려고 한다. 

 

승천(그리고 부활)은 십자가의 진리를 드러낸다. 승천 전까지 십자가의 실체는 사실상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승천으로 인해 그 실체가 드러났다. 예수님 시대 사람들처럼 현대 기독교인도 십자가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십자가에 대한 모든 기록은 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쓰였다. 그렇기에 성경 저자들은 처음으로 십자가를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느꼈는지와 다르게 십자가에 대해서 서술한다. 두려움, 애통, 혼란의 감정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박혔을 때 당시 사람들이 느낀 감정이다. 예수님이 범죄자가 되어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어둠은 단지 하늘만 덮은 게 아니라 그들의 존재 자체도 덮었다. 십자가는 실로 그들이 만난 최악의 비극이었다. 

 

성경 저자들이 나중에 십자가를 복음으로 소개할 수 있게 된 데는 하나님 아버지가 십자가에 박힌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역할이 분명해진 후에 비로소 그리스도의 굴욕은 영광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었다. 굴욕과 높이심은 함께 오지만 그 높이심은 별도로 수여되어야만 한다. 승천은 결코 십자가와 예수님의 높이심 사이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승천을 통해서 예수님은 영원히 굴욕당한 존재에서 높임을 받은 존재가 된다. 하나가 다른 하나로 이끈다. 

 

따라서 메시아의 높이심은 십자가의 본질을 드러내고 확증한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눈에는 굴욕으로,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음으로 보이는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셨다.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굴욕을 승리로 만든 것이고, 신약성경의 대부분 내용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주제다. 승천은 그리스도가 달린 영광스런 십자가 위를 덮고 있던 천을 벗겨버렸다. 승천은 바로 스스로를 선언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승천과 부활

 

승천과 가장 구분하기 어려운 교리가 부활이다. 성경 저자 중에는 예수님의 죽음에서 바로 높이심으로 넘어간 사람도 있고, 그렇기에 부활과 승천을 높이심이라는 주제 아래 그냥 하나로 묶기도 한다(행 5:31-31 참조). 부활과 승천은 서로 속해있는데, 승천은 단지 부활의 자연스런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두 개는 구분되어야 한다. 마리아가 부활한 에수님에게 매달렸을 때, 예수님은 자신이 아직 아버지에게 가지 못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요 20:17). 승천은 단지 그리스도가 부활한 삶의 자동 연장이 아니다. 그의 삶은 이제 새로운 장소에서 이뤄지는데, 다름 아닌 그가 거하는 장소가 높임을 받은 그의 삶을 확인한다.

 

부활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육신을 입고 다시 살아났음을 의미하는 반면, 승천은 높이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육신이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움직임을 의미한다.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은 죽음을 정복했고, 승천을 통해서 아버지의 오른편으로 높이심을 받았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단지 살아만 있는 게 아니라 다스리고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재림할 것을 믿는다. 승천을 통해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부활과 승천 사이에 없었던 탁월한 영예를 얻었다. 부활이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과 아들 되심을 보장한다면, 승천은 그가 주님 되심을 드러낸다.

 

비록 부활과 승천이 같은 맥락 속에 있지만, 이 둘은 분리되어야 한다. 부활이 그리스도임을 입증하였다면, 승천은 그 입증을 확증해준다. 승천은 단지 부활 이후에 따라오는 부록 같은 것이 아니다. 승천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진다. 

 

승천과 종말론

 

마지막으로 승천은 성육신, 십자가 그리고 부활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고 그 가치를 더 드높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도록 만든다. 승천은 클라이맥스도 이야기의 끝도 아니다. 승천은 다가오는 마지막의 시작이다. 

 

지금 이 시대는 끝에 다다르고 있다. 메시아의 승천이 꼭 필요하지만, 그 승천 또한 임시적이다. 예수님은 이 모든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 재림할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을 단지 다가오는 것으로만 보는 대신에 이미 시작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주권은 현재로는 하늘에 숨겨져 있다. 그러나 그가 재림하면, 그는 그 주권을 온 세상 모두가 온전히 볼 수 있도록 드러낼 것이다. 

 

교회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계 22:20)라고 외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또한 예수님의 높으심에 대한 믿음도 고백한다. 예수님께 빨리 오시라고 간청한다는 것은 아직도 이 세상에 모든 이가 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또한 그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이 이미 이 세상을 통치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 사이의 시간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가 일을 끝내기를 기다린다. 

 

예수님의 재림은 교회가 계속 미래를 바라보며 준비하도록 만든다. 재림은 우리가 현재 성령님의 사역에 대해 감사하고 또한 지금도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해 감사하게 만든다. 그의 재림을 갈망한다. 

 

원제: Recovering the Forgotten Doctrine of Christ’s Ascension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 덧붙여서, 기독교 변증가들이 부활과 다르게 승천에는 주목하지 않는 것이, 1) 부할만으로 '예수님이 하나님(그리고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고 '기독교가 진리임'을 변증하는데 충분한데다, 승천은 이와 겹치기 때문이고, 2) 부활에는 여러 정황 증거(십자가 사망, 빈무덤, 여자들의 증언, 수 많은 목격자들, 제자들의 변화 등)들이 있는 반면, 승천은 목격자들 빼고는 설득할 정도의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master

2021.05.15 06:11:35
*.16.128.27

낭여님 승천에 대해 귀한  글 함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승천에 대한 변증이 약한 이유도 아주 정확하게 분석해주셨네요. 

 

신학자 마이클 호튼도 "승천은 단지 부활에 대한 감탄 부호가 아니라 구속 역사 안에서의 구별된 사건이다"라고 했습니다. 승천이 있어야만 예수님의 재림에 의한 구원과 심판의 완성이 성립되고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승전으로 인해 현재 죄와 사망에 종속된 이 지나가는 악한시대의 역사와, 의와 생명에 종속된 다가울 시대의 역사라는 두 개의 역사가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교회의 소명도 그래서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불확실한 긴장 속에서 성령의 인도에 따라 모든 이로 종말에 완성될 구원을 소망하게 만드는 것이어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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