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종교를 만들었는가?

조회 수 863 추천 수 16 2011.10.28 19:51:33
인간은 왜 종교를 만들었는가?


[질문]


첫째, 인간은 왜 종교를 만들었을까요? 언뜻 생각해보면 종교라는 의식행위는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기 위한 매개체로 생각됩니다. 그럼 굳이 종교라는 매개체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인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하는데 꼭 믿음이 종교를 통해서 생기는 것인지 온전히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답변]

절대적 진리는 일절 부인하며 각 개인의 관점에 따라 진리가 칠면조처럼 변하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젊은이로선 쉽게 하기 힘든 질문을 넷이나 주셨습니다. 이 첫째 질문은 언뜻 보면 철학적 혹은 비교종교학적 질문으로 기독교와 무관한 것 같지만 실은 성경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함의된 것입니다. 평소에 진리와 믿음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신 흔적이 엿보입니다.  

가장 먼저 종교에 대한 정의(定意)부터 내려야만 정확한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종교가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기 위한 매개체의 역할이 가능한지 여부를 따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종류의 종교
  
국어사전에는 종교를 “신이나 절대자를 인정하여 일정한 양식 아래 그것을 믿고, 숭배하고, 받듦으로써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자 하는 정신문화의 한 체계"(동아새국어사전,1990)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정의는 세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1) 일정한 양식을 통해 - 믿음의 표현 내지 형식, 2) 신을 믿어서 - 믿음의 대상, 3) 마음의 평안을 얻는 정신문화체계가 - 믿음의 목적, 그것입니다.  

간단히 정의만 살펴보았는데 질문자께서 갖는 종교에 관한 인식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첫 1)과 2)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인 믿음의 목적에선 국어사전 즉, 일반적인 정의는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질문자께선 "구원을 얻는다", 또 "하나님과 가깝게 지낸다"고 표현했습니다. 질문자께서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바로 이 부분에서 기독교와 여타 종교와 결정적 차이가 있으며, 또 이 질문의 해답도 숨어 있습니다.      

다른 말로 종교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선각자가 창안한 종교와 신(절대자)이 계시한 종교, 둘입니다. 비교종교학적으로는 종교의 발생을 원시종교의 모습과, 인간이 종교심을 갖게 되는 심리적 기원과, 종교를 형성하게 되는 동기 등의 범주로 나눈 후에 각 범주에 따라 학술적으로 세분하여 따집니다. 그러나 이 질문의 답을 얻는 데는 구태여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확신하는 신자로선 기독교가 나머지 종교와 확실하게 다른 점만 정확히 이해하면 됩니다.  

먼저 기독교 외의 모든 종교들 예컨대 유교, 불교, 회교, 몰몬교, 천교도 등은 한 결 같이 한 사람의 인간에 의해 창시된 종교입니다. 각기 공자, 석가모니, 마호멧, 죠셉 스미스, 최재우의 가르침을 당대의 제자들이 경전으로 기록한 후에 그 경전을 배우고 깨우쳐서 그대로 따르는 체계입니다.

사전의 정의대로 하자면 생로병사(生老病死) 같이 인생의 피할 수 없는 고난 내지 난제에 대한 해결책을 얻어서 이 땅에서 마음의 평안을 가지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 수단의 궁극적 진리성, 타당성, 유효성과는 별개로 한 위인의 깨우침을 추종자들이 따를 뿐입니다. 결국 인간 쪽에서의 필요와 동기에 의해서 창안되었고 또 인간적 방안에 따라서 스스로의 구원을 얻으려는 종교입니다. 인간 선각자들이 제시했기에 평안으로 가는 길은 각양각색입니다. 절대적 유일한 진리는 없고 모든 종교에 다 구원의 길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기독교는 유일한 절대자 하나님이 세상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당신께서 만드신 세계와 인간 역사에 당신만의 계획을 갖고서 실제로 또 지금은 물론 영원히 개입, 주관, 통치하신다는 것이 기본전제입니다. 유의할 것은 만물을 만든 후에 일정한 운영법칙을 제정, 적용시킨 후에 멀리 초월한 채 방관하는 분이 아닙니다. 단순히 조물주(造物主)로서 인생과 역사에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는다면 인간을 구원할 수 없고 믿음의 대상도 안 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구원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분이 주관하십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창조주로서 만사를 주관하며 구원을 주는 분이어야 합니다.  

지금도 살아서 만사를 주관하시는 절대적 존재라면 당연히 세상을 향한 당신의 통치와 구원 계획을 당신께서 인생들에게 드러낼 수 있고 또 드러내어야만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만들고 그것들과 초월하여 피안에 계시는 영원한 절대자를 인간은 볼 수도 온전히 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반드시 그분 스스로 자신을 보여주셔야만 그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시8:4-6)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을 대신하여 이 땅을 다스릴 존재로 세우기 위해 당신의 형상을 닮게 창조하셨습니다. 당신과 교통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든 것입니다.(창1:28)

실제로 아담에서 시작해 노아, 에녹, 아브라함, 야곱, 모세, 다윗 같은 믿음의 선진은 물론 사무엘,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같은 선지자들과 그분은 인간이 이해할 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로 소통하셨습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타락하자 “네가 어디 있느냐?”고 찾으신 후에 범죄한 사실에 대해 직접 따졌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명했습니다. 모세에게는 직접 율법을 수여했고 이사야에게는 백성에게 메시지를 전할 자를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향한 당신의 뜻을 더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택했습니다. 모든 인간과 종족이 창조주 참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만 숭배하고 있을 때에(롬1,2장 내용 참조), 아브라함에게 참 믿음을 심어주시고 그 후손의 역사에 실제로 개입하셨습니다. 당신의 은혜를 입은 언약 백성을 통해 인간을 어떻게 대우하시는지, 또 그 백성은 세상 앞에 어떤 존재로 서고 행해야 하는지를 직접적 인도를 통해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다 드디어 때가 차매 당신의 독생자를 동정녀에게 태어나게 하여서 죄와 사단과 사망의 권세 아래 신음하는 죄인을 구원케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5)

하나님이 인류역사에 개입하시어 당신의 뜻을 여러 방도로 드러내셨던 모든 전말(顚末)이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종교적 사상과 계명을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직접 기록한 책입니다. 바꿔 말해 기독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만든 종교입니다.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사전적 정의의 종교와는 그 차원은 물론 범주가 전혀 다릅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믿음이 생기는 매개체

여기서 한두 가지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먼저 몰몬교나 이슬람 같은 일부 종교에서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배경을 살피면 그렇게 인정해줄 수 있는 근거가 너무나 빈약하거나 심지어 허구입니다. 몰몬경이나 코란이나 한 개인의 창작입니다. 그 가르치는 내용에도 영원히 변치 않는 절대적 진리가 없으며 심지어 상호 모순, 충돌하는 부분이 많아 일관성과 통일성조차 나타내지 못합니다.

또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치 않는 세상으로부터 기독교도 결국 한 위대한 선각자가  창시한 것 아니냐는 반발을 살 수 있습니다. 그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만들려고 이 땅에 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러 오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령을 보내시어 하나님의 긍휼만 바라는 가난한 심령에 새로운 생명을 부어주러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자 하나님입니다.

기독교와 성경의 출현에는 다른 종교의 생성과정과 전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모든 종교의 경전은 창시자 자신이 기록하거나, 그 제자들이 스승이 살아 있을 때에 대필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조직적 체계를 갖춘 한 종파를 스승이 살아 있는 동안에 제자들과 함께 형성한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 계시 받은 유일한 예외로는 유대교를 들 수 있지만, 예수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기에 완전한 계시 종교라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도덕적, 종교적 계명과 인간의 궁극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되는 가르침을 주시긴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생전에 종파를 형성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잡히시는 날에 제자들은 전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또 신약성경 27권 중에 가장 일찍 기록된 데살로니가전서도 그분의 사후 최소 20여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 때까지는 사도들이 그냥 그분이 구약성경에 계시, 예언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였다는 사실만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증거에 힘입어 선포하고 다닌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경전이 오래 동안 없었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서 훈련 정진하여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 차원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분 당신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아 그분을 경배했다는 뜻입니다. 또 그러면 성령의 초자연적 간섭으로 죄 사함과 심령의 깨끗케 함이 일어나고 그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는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성경도 분명 인간 저자가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나 신구약 66권은 1500 여년에 걸쳐서 40 여명이나 되는 저자들이 성령의 영감을 통해 오직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기록한 책입니다. 책의 저작 배경이 되는 시대, 장소, 문화, 관습 등이 다 달랐고 또 저자들도 신분, 직업, 학력, 경험 등이 다 달랐습니다. 어떤 위대한 선각자나, 최소한 그 제자들이 현실적으로 조직체계를 갖춘 한 종교를 형성하려 시도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그들이 함께 모여서 성경을 어떻게 저작하겠다는 회의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성경 66권은 오직 예수님과 그분의 구원 사역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서 한 치의 모순, 상충, 오류가 없이 통일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를 이끌어가고 죄에 빠진 인간들을 대하는 하나님의 뜻에서 변개, 수정, 가장, 가감이 없이 일관되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해 불변하는 영원한 진리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성경은 다른 종교와는 전혀 다른 경전입니다. 비록 도덕적 종교적 계명이 포함되어 있어도 그 계명대로 따르라는 것은 이미 믿음을 가진 자에게 이차적으로 요구될 뿐입니다. 말하자면 그 가르침대로 따라야만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에겐 완전히 닫힌 책입니다.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구세주로 영접한 자라야 비로소 그 진리가 열립니다. 또 그 진리를 알게 되면 완전히 인생이 뒤집어지고 일신의 평안보다는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자로 바뀝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예수님도 기독교라는 종교를 창시하여 자신이 저작한 가르침대로 훈련하라고 요구, 권면, 조종,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메시아라고 당당히 밝히면서 오직 당신을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선포했습니다. 당신과 개인적 관계없으면 하나님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도 성령의 간섭이 있어야만 생긴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기독교 신자는 실제로 살아계신 예수님을 개인적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자입니다.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의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하늘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 하나님의 자녀가 이미 되었고 그분의 품 안에 안김으로써 세상이 줄 수 없는 안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매일의 삶을 충만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육신이 죽더라도 천국에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구원이 완성될 것을 보장 받았고 또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주신 질문에 비추어 표현하자면 "종교라는 의식행위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또 (기독교라는) 종교를 통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초자연적 간섭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야만 믿음이 생깁니다. 자신의 썩어질 옛 사람이 완전히 깨어져 부서지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예수를 통해서 그분의 십자가 은혜와 권능을 온전히 깨달아 아는 것이 믿음의 출발입니다. 그래서 매일 자신을 부인하며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 진정으로 낮아져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겸손히 구할 때에만 하나님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10/25/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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