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1:6-8 너무나 갑갑하신 하나님

조회 수 745 추천 수 58 2009.09.17 02: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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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갑갑하신 하나님


그들 중에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단1:6-8)


남왕국 유다를 정복한 바벨론은 많은 유력자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바벨론 환관장 아스부나스는 유대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없애고자 했습니다. 그 전략의 일환으로 젊은 지도자들의 이름을 바벨론 식으로 개명시켰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의 이름에는 거의 대부분이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는 내용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들의 경우만 아니라 고대인들 모두가 자기들 신을 어떤 형태로든 경외하는 내용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따라서 바벨론식 개명은 단순히 여호와 신앙을 포기케 하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 신을 믿도록 개종시키려는 의도도 포함된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 한국인들로 우리말 대신 일본말만 쓰게 하여 문화적으로 동질화 시키려는 창시 개명보다 더 지독한 조처였습니다. 고대 사회에선 신앙이 인간의 본질과 삶의 전부를 주관하다시피 했으므로 아예 그 영혼마저 바벨론 식으로 바꾸려 한 것입니다.  

바뀌기 전과 후의 이름의 뜻을 비교해 보면 그 조치가 의미하는 바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인데 벨드사살은 “벨이여 그 생명을 보존하소서”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는 하냐냐는 “태양의 영감”이라는 사드락으로, “하나님과 같으신 분이 누구인가?”라는 미사엘이 “아쿠 신 같은 분이 어디 있으랴?”는 메삭으로,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하사랴가 “느고의 종”인 아벳느고로 바뀌없습니다. 벨, 태양, 아쿠 신, 느고 모두 바벨론의 우상들의 이름으로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를 대신하도록 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름은 사람의 삶, 경력, 일생을 표현합니다. 전인격를 대변하므로 이름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 사이에 특정한 의미를 지닌 이름으로 평생 동안 불리면 이름과 본인을 동격화 시키는 효과를 낳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자”가 어느 날 갑자기 “벨 신이 살려준다”라고 불리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포로로 잡혀와 있는 것만도 가뜩이나 죄책감이 드는데 이름까지 바뀌었으니 그 수치와 두려움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꾸 “벨 신이 살려준다”고 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세뇌되어 나중에는 벨 신에게 은연중에 고마움마저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사단의 너무나 교묘한 작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자가 일본 강점기 때에 창씨개명 한 것으로도 큰 죄를 지은 양 비난 받았습니다. 다니엘의 경우는 더 나아가 바벨론의 신을 높이는 이름으로 바꾸었으니 본래 다니엘 이름의 뜻 그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것 아닙니까? 그러나 오히려 성경에 그만큼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자도 드물 정도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신자가 개종을 해도 용서하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까? 그럴 리는 절대 없습니다. 개종을 했다는 것 자체가 다른 신을 찾았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하나님 외에는 참 신이 없기에 하나님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뜻입니다. 개종이 용서받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스스로 멸망을 향해 달려간 것입니다.

다니엘의 경우는 다릅니다. 자기 생명이 아까워 개명에 저항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섣불리 추측해선 안 됩니다. 바벨론 왕의 입장에서 매일 “여호와는 심판한다.”는 이름으로 그를 부를 수는 결코 없었습니다. 다니엘로선 바벨론 사람끼리 자기들 편의대로 이름을 어떻게 부르든 상관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자기의 이름을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의 신앙과 존재 자체는 결코 바꾸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수학 천재를 일부러 바보라고 부른다고 해서 바보가 되거나 천재성이 주는 것은 결코 아니지 않습니까?

본인의 신앙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으며 오히려 더 성숙하고 견고해졌습니다. 그는 이름 대신에 행동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바벨론 앞에 드러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바벨론 사람들이 “벨이여 생명을 보존하소서”라고 불러도 그를 실제로 붙들고 있는 신은 여호와 하나님임을 눈으로 확인하게 될 때의 그들이 받을 충격과 반응이 어떠했겠습니까?

말하자면 항상 바보라고 부르다 보니 천재가 진짜 바보처럼 여겨졌지만 그 나라에선 아무도 풀지 못하는 난제를 그 천재가 단번에 풀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누구라도 입을 열고 다물지 못할 것 아닙니까? 천재를 천재로 대우해주지 않고 바보라고 놀린 자기들이야말로 진짜 바보인 것을 증명하는 셈이지 않습니까? 또 실제로 그런 일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과 벨사살 왕 때에 벽에 나타난 글씨를 해석할 때에 일어났지 않습니까?

다니엘은 생명을 유지하려고 바벨론의 눈치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바벨론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힐 수 없다고 오히려 채식을 고집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자기 신앙만 겉으로, 즉 명분만 내세우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시험을 해보고 누가 얼굴에 더 빛이 나는지 비교해보라고 했습니다. 참 하나님의 권능을 자신의 삶을 통해 증험해 보이고자 한 것입니다.

바벨론 왕 외에 어느 신에게도 절하면 사자 굴에 넣는다는 조서가 내렸음을 알고도 평소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해 창을 열어둔 채 누가 보든 말든 여호와께 경배하며 기도드렸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도 금신 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 불에 던진다는 명령이 내려졌음에도 목숨에 연연하지 않고 단호히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바벨론 궁중에서 이들 젊은 유대인들을 개종시키거나 그렇지 못하면 죽이려했던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름을 바꾼 것은 단지 자기들 편의대로 부른 별명에 불과했지 그들의 본명은 여호와 앞에서 여전히 하나님을 높이는 뜻 그대로였습니다. 온 바벨론 땅에 높이 올리워진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뿐이었습니다.  

신자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세상이 신자를 어떻게 부르든 아무리 능멸하고 핍박해도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참 하나님만을 순수하고도 온전하게 따르는 모습이 아니고는 세상을 결코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름이나 명분이 어떤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힘은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고는 그 어떤 것으로도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런 권능을 확신하여 생명마저 그 일에 던지는 신자를 통해서만 세상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작금 세상이 오히려 신자나 교회를 변화시키는 반면에 신자나 교회가 단순히 자기들 명분만 지키기에 급급함을 많이 봅니다. 실제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증험하고 있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갑갑해 하시겠습니까?

7/17/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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