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6:4,5 이민 자녀의 참 비전

조회 수 290 추천 수 17 2011.10.28 20: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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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자녀의 참 비전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國事)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忠誠)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단6:4,5)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적국에서 국무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른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애굽에서 총리가 된 요셉의 경우와 함께 특별히 이민 자녀들에게는 큰 소망을 품게 합니다. 이국에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품고 키워서 주류사회에 큰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도전 격려 권면합니다. 나아가 애굽이나 바벨론이나 우상을 섬기는 이방 족속이기에 신자가 불신 세상이나 이교도들과 협력하더라도 믿음만 올바르게 지키면 된다고 주장하는 근거로도 자주 제시됩니다.  

둘 다 틀린 해석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결과적 모습만으로 가지고 피상적으로 이해한 것에 그쳤습니다. 다니엘이 믿음을 지켜나간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일부러 깊이 따져 보려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에서 형통하고 출세하여 자기 이름을 높이려는 뿌리 깊은 인간적 본성이 신자에게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드시 주지해야 할 사항은 메대의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전혀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현실적 정치에서도 부정부패를 일절 저지르지 않고 곧고 현명하게 처신했으므로 단 한 치의 허점, 실수, 오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믿음으로, 은혜로,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고 어영부영(?) 국사를 처리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지식과 지혜에서도 이방인들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신자는 세상에 속한 자는 아니지만 세상 안에서 불신자들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자마자 천국으로 바로 입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만이 살아 있을 때에 구원의 확신을 주시는 이유는 세상 속에서 열심히 아름답게 특별히 거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신자들로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를 보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또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세상 사람의 일차적 관심이 집중되는 현실적 가시적 사안에서도 반드시 올바르고도 아름답게 행동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대적들이 정치적 사안에서 어떤 하자도 발견하지 못하자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으려 했습니다. 거룩한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정반대로 너무나 완벽하게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들과 전혀 다른 신앙을 가졌기에 그런 틈새에서 뭔가 모함에 빠트릴 묘수를 모색하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다리오 왕 대신에 여호와께 우선적으로 순종하니까 그것으로 꼬투리 잡아보자는 의도입니다. 왕 대신 다른 이에게 절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는 조서를 꾸며  어인(御印)까지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그들로선 이 조서가 내려도 틀림없이 다니엘이 여호와께 절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리라 쉽게 짐작했었고 사태는 예상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자의 아가리를 활짝 벌려 놓은 음모에 다니엘은 어떤 주저도 없이 머리를 집어넣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10절)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즉, 그것을 어기면 그대로 사형이 될 것을 빤히 알고도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평소 하던 대로 몸에 익은 종교적 습관이었습니까?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벌 받을 것이 두려워서였습니까? 다른 말로 왕께 벌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벌을 더 두려워한 것입니까? 혹시라도 기도하면 신령한 영적 절정감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일까요?  

해석의 초점은 다니엘이 기도할 당시에는 여호와가 며칠이나 굶주렸던 사자의 입마저 봉하는 기적으로 자신을 구해주리라 알았거나 믿었기에 안심하고 이전처럼 행했던 것은 아니라는데 두어야 합니다. 만약에 그가 미리부터 그런 이적이 일어나리라 확신했다면 성경은 자칫 하나님의 원맨쑈를 기록한 책으로 전락됩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이 그를 로봇처럼 조종했고 그의 믿음은 아무 필요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보다 그는 마땅히 죽을 것을 알고도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럼 그럴 수 있었던 믿음의 내용은 과연 무엇입니까? 우선 그의 기도가 종교적 습관, 의무감, 영적 절정감 등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는 또 총리 직분에 전혀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명이 날아감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자기 생명과 기꺼이 맞바꿀 수 있는 절대적인 동기가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어 놓았던 까닭입니다. 그는 죽으나 사나, 아니 자기는 죽더라도 조국에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회복되는 일을 열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게 되기를 죽기보다 더 소원했던 것입니다.  자기 생명보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아가 여호와 그분을 더 소중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의 모든 행동과 말과 생각의 첫째가는 동인(動因)은 오직 여호와 그분이었습니다.

이민 자녀가 주류사회에서 큰 역할을 맡으려는 비전을 키우고 최선을 다해 실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불신자나 타종교인과 민감한 사회적 종교적 문제에 대해 서로 간에 이해의 폭을 넓히며 섬기는 일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비쳐지는 것이 첫째 목적이어야만 합니다. 만약 그 일이 왜곡, 훼손, 부인되는 경우가 생기면 다니엘처럼 총리직은 물론 생명마저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이민 자녀가 정작 품고 키워야 할 비전은 자신의 삶과 인생을 통해 그리스도 그분만을 순전하게 증거하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나머지 모든 일은 그 소명을 실현하는 통로이자 수단일 뿐입니다. 주류사회에서 큰 몫을 하는 것 자체가, 이교도들과 관용으로 섬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어선 안 됩니다.

정작 성경의 이런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불신자들에게 비취지는 우리의 모습도 “저 사람은 예수 믿는 믿음이 열심인 것 빼고는 정말 꼬투리 잡을 것이라고는 없어!”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 학교, 직장, 어떤 모임과 만남에서나 현실적으로도 고소할 틈이 없어야 합니다.

또 그렇게 살아가는 근본 이유가 똑똑하고 올곧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고 싶은 것보다는  죽는 날까지 오직 예수님만을 온전히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어야만 합니다. 아무리 위급한 경우에 처해져도 진정으로 충만한 기쁨과 자발적인 열정과 함께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다니엘처럼 완벽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내 인생이 걸어가는 근본 방향만은 그런 기쁨과 열정 위에 세워져 있어야만 합니다.

10/9/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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