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은 언제 떠나가나요? (신자와 안락사)

조회 수 744 추천 수 16 2011.04.04 20: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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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언제 떠나가나요? (신자와 안락사)


[질문]


요즈음 사순절을 보내면서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 하시고 그 영혼이 떠나니라."(요 19:30) 문득 20여 년 전 아버님이 61세의 나이로 일찍 돌아 가셨는데... 병원에서 뇌사 판정을 받으시고도 며칠을 호흡하시며 사시다(?) 돌아가셨는데 아버님을 위하여 매일 예배드리고 찬송을 드리면서 궁금한 적이 있었습니다. 영혼은 언제 떠나가는지, 뇌사일 때 아니면 호흡이 끊어질 때인지 말입니다.

[답변]

나사로의 소생


특이한 질문을 주셨지만 틀림없이 질문자님도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이미 아실 것입니다. 한마디로 “완전히 죽으면 그 즉시 영혼은 떠난다.”가 정답입니다. 인용하신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성경구절이 간단명료하게 입증하지 않습니까? 또 십자가상의 회개한 강도에게 주님이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고 말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영혼이 떠나갔으므로 십자가상에서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은 지 나흘 되는 나사로를 무덤에서부터 수의를 입은 채로 살려내셨기에 조금 혼란스럽긴 합니다. 이 사건의 뜻이 무엇입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어도 그 영혼은 사흘간 몸의 주위에 머물다 나흘째에 완전히 떠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아마 당시에도 생물학적으로 심장이나 호흡이 멎어서 죽었다고 믿었던 자 중에서 하루 이틀 만에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는, 예컨대 인체 내부에 순간적으로 막혔던 부분이 어떤 이유가 되었던 갑자기 뚫려서, 경우가 가끔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흘까지 기다려 죽음을 완전히 확인하려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마저 그렇게 믿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당시 사람들의 사고 수준에 맞추어 이적을 지연시킨 것은 사실입니다. 만약 그 전에 나사로를 살려내면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라 시체 주위에 떠돌던 영혼이 다시 자기 몸을 찾아 들어간 것으로만 간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주님은 나흘째에 즉, 영육 간에 완전히 죽어서 도무지 되살아날 수 없는 자라고 모든 이가 인정했던 자를 살리신 것입니다. 또 되살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스스로 걸어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당신께서 생명을 주시는, 특별히 영혼을 심어주는 하나님 본체이심을 확실하게 입증시키려는 뜻이었습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엄숙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죽자마자 하나님의 자녀는 천국의 그분 품 안으로 돌아가고, 사단에 미혹된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말하자면 사랑하는 가족이나 살던 곳에 정을 떼지 못해 사흘씩이나 지상에서 배회하지 않습니다. 일부 이단이나 동양종교에서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지상에 남아 귀신이 되어서 신자들을 괴롭힌다는 가르침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솔직히 그렇다면 구태여 예수 믿을 절실한 이유가 없습니다. 불신에 대한 영원한 형벌치고는 그리 나쁘지 않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질문의 내용은 언제 영혼이 떠나는지가 아니라 성경적으로 죽음이 언제인지를 묻는 것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언제를 죽음으로 치느냐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언제를 인간이 탄생으로 보느냐의 질문에도 성경적 답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수정란이 되면 바로 한 인간이 태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기간의 어떤 형태의 낙태라도, 그냥 두면 산모의 목숨이 위중해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경적으로는 자기 자녀를 살인한 죄입니다.)

뇌사와 식물인간

흔히 뇌사와 식물인간을 혼동하는데 엄격히 말해 다릅니다. 위키 백과가 규정하는 뇌사와 식물인간의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뇌사(腦死, Brain Death)는 외상과 같은 심각한 사고를 당해 뇌간을 포함한 전반적인 뇌 기능이 완전히 정지된 상태를 말한다. 회복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흡을 유지시켜 주기만 한다면 완전히 사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무런 인지도 할 수 없어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뇌간을 포함한 뇌 기능이 완전히 정지했다는 점에서 식물인간과는 다르다.

아직 뇌사 상태에서 깨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깨어난 보고도 있다. 만에 하나 깨어난다 해도 기억이나 언어 기능, 사고 기능 등이 뇌사 이전 상태로 온전히 돌아올 수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1968년에 하버드 대학 의대에서 비가역적 혼수에 대한 책을 펴내고 뇌의 기능이 완전히 손실된 상태라고 정의하였으며, 같은 해에 제22회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세계의사회가 열려 뇌사설 지지 선언을 채택함으로서 뇌사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뇌사를 의학적 죽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2000년부터 뇌사를 법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식물인간 (植物人間, Persistent Vegetative State)는 사고나 질병에 의해 대뇌피질에 손상을 입어 마치 식물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할 수 없고 의식도 없는 상태로 뇌간에 의해 호흡이나 소화 기능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기능만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지속적인 도움과 간병이 없으면 보통 며칠 안에 사망한다. 증상이 심하지 않은 경우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일이 종종 있으며 많지는 않으나 심각한 손상을 입은 식물인간이 기적적으로 완전히 또는 일시적으로 일부 기능이 회복되는 일도 가끔 일어난다. 식물인간의 재활을 위해 여러 방법이 시도되고 있으며 효과가 보이는 방법도 있으나 근본적인 치료법은 현재까지는 개발된 것이 없다. 사람들은 흔히 식물인간과 뇌사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뇌의 일부분은 살아있다는 점에서 뇌사와는 구별된다.]

뇌사는 뇌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어서 소생이 불가능하지만 호흡을 유지시켜 주면 생명 유지가 가능한 상태입니다. 반면에 식물인간은 움직임과 의식은 없지만 스스로 호흡이나 소화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기능을 하는 경우입니다. 후자는 분명히 스스로 살아 있는 상태입니다. 문제는 뇌사가 죽음이냐는 것입니다. 또 인공호흡기를 계속 붙여 놓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성

성경은 인간을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결합된 하나의 전체로만 봅니다. 인간의 특성을 알기 위해 각기 분리해 고찰할 수는 있으나, 분리된 각각이 결코 인간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단 죽어서 천국 갈 때만 빼고 말입니다.

그리고 죽어서 천국 갈 때는 이 땅의 인연이 다 끊어진 상태에서 영혼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썩어질 육체만 이 땅에 남겨두고 정신과 영혼이 함께 갑니다. (성경문답 사이트 #229 "천국에선 생판 남이 되는가요?"의 글을 참조 바랍니다.)  

이런 측면에서 용어와 그 개념의 정리가 필요합니다. 정신이라고 표현한 것은 지정의로 지각, 인식할 수 있는 인간내면입니다. 영혼은 지정의적인 사고활동을 가능케 하는 근본 마음이자 당신과 교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부어주신 또 다른 내면입니다. 영어로는 이를 비교적 정확히 spirit, soul, body 셋으로 구분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영, 혼, 육이 되는데 이런 외자로 잘 표현하지 않고 육체, 정신, 영혼 등으로 표현하다 보니 혼동이 생깁니다.  

거기다 우리말 ‘영혼’은 지정의가 제외된, 혹은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적 측면으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영혼이 언제 떠나가느냐는 본 질문에서의 의미도 아마 그것일 것입니다. 어쨌든 통상적으로는 이런 정확한 구분을 하지 않은 채 그냥 죽을 때에 “영혼(혼과 영이 함께)”이 떠나간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삼분법은 틀렸고 이분법(Body +Inner self)이 옳다는 주장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분법이든 삼분법이든 인간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한 방편이지 인간 자체를 이분, 삼분할 수는 없습니다. 이 땅에선 영혼육 전체가 생존해 있는 것이며, 죽은 후는 영과 혼 즉, 영혼이 낙원으로 가서 마지막 날 몸의 부활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 뇌사와 식물인간으로 구분해서 따져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식물인간의 경우는 정신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영혼육이 분명히 잔존해 있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뇌사의 경우는 의학적으로 뇌가 완전히 중지되었다면 논리적으로는 혼의 활동도 없이(당연히 영도 떠나고) 육체 즉, 빈껍데기만 남아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뇌의 모든 활동은 중지되고 호흡기로서 생존만 지속된다면, 비유컨대 인간육체가 아니라 기계 로봇에 전기만 충전해 주고는 프로그램은 작동시키지 않는 꼴입니다. 과연 인간에게도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어디까지나 현재 의학이 현재까지 살펴본 결과로 도출한 하나의 가설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언젠가는 증명이 되어서 공리로 바뀔 가능성이 있는 가설도 아닙니다. 영혼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는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뇌사에서도 간혹 다시 살아나니까 오히려 영혼이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 더 타당한 생각 아닙니까? 현재로선 뇌사자를 소생시킬 의학기술이 안 되므로 소생한 자는 그야말로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준 것입니다. 그럼 뇌사에서 소생해도 사고활동이 이전같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도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성령이 임하시어 초자연적 치유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따지면 어떤 결론에 이릅니까? 인간의 의미 내지 가치를 자동차나 로봇처럼 의학적, 사실상은 기계적으로 나눠서 분석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너무나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라는 기독교적 이해가 발붙일 곳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죽음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지라.”(창2:7)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이 진흙으로 조각품을 만들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 육체도 이 땅의 먼지 즉, 이미 창조된 기존의 물질 분자로 구성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생기는 히브리어 ‘네솨마’(영어 breath)로 호흡, 생기, 숨, 영의 뜻입니다. 생령은 살아있다는 형용사 ‘하이’와 호흡하는 생물, 즉 동물이라는 명사 ‘네페쉬’ 두 단어로 된 말로 우리말로 생령, 영어로는 living soul로 번역되었습니다.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것은 혼과 영이 함께 들어가 육체 안에 인간 내면이 형성됨으로써 완전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육체와 내면을 일시에 함께 만드신 것입니다. 같은 비유로 하자면 기계를 조립한 후에 전기 배터리를 따로 만들어서 사후에 부착시키는 그런 순차적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인간은 호흡(육체적 생존)과 사고활동(내면의 영과 혼의 활동)이 순간적으로 동시에 시작한 것입니다.

아담은 만들어지자마자 하나님과 교통하며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며(知), 그분과 함께 기뻐하고(情), 그분을 따를 수(意) 있었습니다. 생령의 영어 번역 living soul의 soul도 우리말처럼 spirit이 포함된 내면전체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처럼 생기 안에 혼과 육이 함께 포함되므로 인간이분법의 근거로 제시됩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인간 육체의 호흡과, 내면의 사고활동과,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동시에 복합적 행위로 일어나기에 인간은 어디까지나 하나로서 인간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목적으로 인간을 창조했습니까? 당신을 대신하여 이 땅을 거룩하게 다스리라는 것입니다.(창1:28) 그런데 그보다 더 근본적인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당신을 찬양케 하려고 지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보좌에 가만히 앉아있으면서 오로지 인간의 절대적 복종만 기다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신의 완전한 사랑을 부어주실 대상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그분은 세상을 짓지 않아도 되지만 인간과 교제하고 싶어서 만드신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그분과 함께 울고 웃으며 교제한 기록이 바로 시편입니다. 그 시작은 여호와 율법을 묵상하며 그대로 따르는 자가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마칩니까?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시150:6) 모든 자는 생기를 불어 넣어주어 생령이 되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모든 인간의 존재할 목적이자 의미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는 다 찬양하라고 했으니, 호흡이 있는 동안에는 그래야 합니다. 죽기까지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감사와 경배와 영광과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호흡이 있는 동안이란 살아 있는 것이며, 또 살아 있는 동안에는 생령입니다. 뇌사는 의학적 소견일 뿐입니다. 성경은 호흡하고 있다면 살아 있는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물론 호흡기를 붙이지 않으면 뇌사 후에 곧장 육체의 죽음이 따를 것입니다. 반면에 호흡하는 동안에는 인간은 살아 있으며, 또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본인이 의식적으로 하나님과 교체 찬양할 수는 없지만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사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피조물로서의 일차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책임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혹 뇌사 자체가 죽음이자 하나님이 정하신 수명이 다한 것인데 호흡기를 붙여서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엄격히 말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는 언뜻 합리적인 것 같지만 잘못된 생각입니다.

뇌사는 단지 뇌가 활동하고 있는 증거인 파동이 기계적으로 감지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인간 내면의 보이지 않는 영혼의 활동을 어떻게 전자기기가 온전히 읽을 수 있겠습니까? 흔히 하는 말로 인간의 영혼을 카메라로 찍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생물학적 죽음으로 곧바로 이어진다고 해서 뇌사로 영혼(혼+영)마저 곧바로 떠난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지만 말입니다. 신자로선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만 믿고 그 이상 더 나가거나 덜 나갈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아픈 자는 물론 현대첨단의학으로도 치료 불가능한 구조적인 장애도 고치셨습니다. 당신께 육체적 치료를 요청하러 온 자는, 정신적 영적 치료의 경우는 다르지만, 한 번도 물리친 적이 없습니다. 아니 환자는 가만히 있는 데도 먼저 알아보시고 고쳐준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의사는 있었고, 당신이 바로 영혼육의 완벽한 치료자로, 창조주 본인이시기에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오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인간더러 이 땅에서 건강하고 활기차며 즐거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또 그러기 위해 육신의 치료를 위한 모든 방안을 강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불치병,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셨는데 아무리 뇌사 판정을 받아도 호흡을 연명할 수 있다면 계속 호흡기를 달고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정하신 수명을 인간이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거룩하게 다스리며 당신을 찬양하라는 명령을 경건하게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질병과 은혜

육신의 질병은 인간의 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지금도 계속 짓고 있는 죄 때문에 더 많은 질병들이 생깁니다. 모든 인간은 그 종류와 정도는 달라도 결코 육신적 질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죽을 때는 그 질병이 더 많이 생기고 증상도 더 심해집니다. 죄로 왜곡된 피조세계와 지속적인 죄로 더 부패되어가고 있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그 모든 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신자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신자와 불신자가 유일하게 다른 것은 마지막 천국에서의 완성을 소망하느냐 하지 않느냐 뿐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18-25)

예수를 믿어 영생을 이미 얻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도 엄청난 은혜입니까? 비록 이 몸은 이 땅에서 질병과 상처와 환난을 겪고 있지만 그 모든 영혼육이 아름답고도 완벽하게 완성될 것이 이미 확고하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 땅은 단지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기간일 뿐입니다. 비록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빠져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 구속의 은혜 가운데 있는 신자는 정말 매 순간순간이, 다른 말로 호흡하고 있는 동안에는 영원하고도 거룩한 소망의 바다 안에 푹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환난 중에도 기뻐하며 죽는 순간까지 주님을 찬양해야할 근거일 뿐 아니라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았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다 천국 가면 감사와 찬양과 경배만 가득 찰 것입니다. 장애자도, 불치병 환자도, 건강하게 장수 하다 죽은 자도, 나자마자 원인 모르게 죽은 영아도, 하나님의 구속 안에 든 자는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또 때가 되면 완전한 몸의 구속도 이뤄질 것입니다.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3,4)  

하나님이 아직 이 땅에 살고 있는, 그래서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인간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죄의 삯으로 고통과 사망의 벌을 내렸지만 주님의 십자가 안에 든 자는  당신께서 반드시 그 몸을 구속해 주실 것입니다. 다른 말로 인간의 심령과 그 중심을 보시지 육신의 건강상태는 따지지 않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연약한 자를 더 불쌍히 여기십니다.

마땅히 신자가 해야 할 바는 정말 호흡이 있는 동안에 그분을 찬양하는 것뿐입니다. 그 중에서도 큰 환난 중에 기뻐하고, 질병의 엄청난 고통가운데도 중심을 온전히 바쳐서 드리는 찬양을 가장 기뻐할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죽기 직전에 아무런 행동은 물론 의사표시도 전혀 못하고 아예 의식조차 없어 보여도, 즉 의학적으로는 뇌사 일보 직전 혹은 직후에라도 귀에 대고 복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인간의 오감 중에 가장 마지막으로 기능을 중지하는 것이 청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정말 때를 얻든 못 얻든 죽는 마지막까지 모든 심령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고, 이왕이면 가능한 빨리 구원의 은혜 가운데 들어와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소망하며 살도록 초대해야 합니다.  

안락사와 신자

인간의 자유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보다 더 중시하는 소위 선진국에선 차츰 안락사를 허용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는 살펴본 대로 식물인간이든, 뇌사든 혹은 다른 질병이나 마음의 상처로 고통이 너무 극심해서든, 어떤 경우든 틀린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을 수는 결코 없습니다. (성경문답 사이트 # 121 “신자가 자살하면 구원이 취소되는지요?”와 # 122 “신자가 자살하면 구원이 취소되는지요?에 대한 보완”의 글을 참조 바람)

또 예수님이 본을 보였듯이 호흡이나 심장박동을 의술의 도움을 받더라도 끝까지 유지시켜야 합니다. 이 땅에서 가능한 오래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선 아무리 뛰어난 의사와 병원이라 해도 인간의 진단에는 오류가 생길 수 있습니다. 호흡기를 달고 있는 동안에 새로운 의료기술이 개발되어 소생시킬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나아가 심장과 호흡이 완전히 멎더라도 여타 장기는 얼마간 살아 있기에 남아 있는 환자를 위해 기증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뇌사든 식물인간이든 호흡기를 달고 있으면 생명을 연장하는 의술 연구에 보탬이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호흡기 성능을 높이거나, 대뇌피질 손상을 회복하는 신약이 개발되면 시용(試用)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특별히 신자에게 중요한 사항은 뇌사든 식물인간이든 현대의술로는 포기했어도 오로지 가족들의 기도만으로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소생시키는 기적을, 물론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렸지만, 세상 앞에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자 가족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끝까지 가족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단계에서 마지막으로 풀기 어려운 난제가 하나 생깁니다. 첨단기기일수록 하염없이(?) 오래 사용하면 그 비용은 엄청납니다. 남아 있는 가족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안락사를 허용하는 일부 국가에선 이미 그런 상태에 도달하면 스스로 의사표시가 불가능하기에 의식이 있을 때에 미리 본인이 안락사 신청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과연 이것을 자살로 보아야 하느냐는 문제입니다.  

물론 아무리 신자라도 순전히 자신의 고통을 경감하려는 뜻이거나, 골치 아픈 이 세상을 빨리 하직하고픈 마음으로 그런 신청을 했다면 자살입니다. 반면에 오직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진정한 마음으로만, 단 모든 의료 기술을 다 동원해도 소생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실히 입증되는 것을 전제로 신청했다면 조금 경우가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100 % 순수하게 된다는 것도, 또 의료기술로 100% 정확하게 진단 내린다는 것 둘 다 불가능할 것입니다. 불신세상이 그런 제도를 시행한다 해도 신자로선 미리 신청하지 않는 것이 원칙적으로 옳은 것이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합니다.

그렇다고 본인이 판단할 문제를 후손이나 병원 측에 무책임하게 떠넘긴다는 의미로 오해해선 안 됩니다. 그보다 범사를 오직 하나님께 의존하여 그분의 인도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병원에선 완전히 가망이 없다고 했고 가족마저 동의하여 호흡기를 제거했지만 몇 달을 더 살았지 않습니까?

신자로선 안락사로 인해 하나님의 계명을 위반하느냐보다 더 관심을 쏟아야 할 부분이 따로 있습니다. 앞으로 불신 세상이 어떻게 변화될지 모릅니다. 가족의 동의를 얻게 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의사의 판단으로만 안락사가 가능해질지 모릅니다. 그럼 아무리 신자가 그 제도를 반대한다 해도, 종교적 이유에 따른 예외 규정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합니다.  

가이사의 법과 제도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모든 피조세계가 회복을 바라는 탄식이 점차 더 커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신자들이 더더욱 의술을 발달시켜야 하고 법과 제도도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도록 고치는데 힘을 모아야 합니다. 윌리엄 윌버포스가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데에 평생을 바쳤듯이 말입니다.

물론 그러기엔 세상에 힘을 너무 많이 내어주어서 시기가 이미 상당히 늦어지긴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처해 있는 여건과 하는 일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충성하며 선한 영향력을 주위에 끼쳐야 합니다. 기독교적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뛰어남을, 아니 인간의 모든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임을 자신의 인생을 통해 분명하게 내어보여야 합니다. 동시에 십자가 복음의 은혜를, 성경이 말하는 생명의 진리를 더 확실하게 전파해야 합니다.

모든 질병과 상처와 환난은, 식물인간과 뇌사로 인한 인공호흡기나 안락사 논란도 포함해서, 천국 가기 전에 이 땅에서 모든 이가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 과정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천국은 이 땅에 이미(already) 도래했지만 아직은(yet)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 십자가 복음에 무릎 꿇고 성경 진리에 순종하는 자는 이 땅에서부터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믿음의 순종과 주님이 허락하는 만큼 영혼육의 회복이 가능해지며 천국에서 아름답게 완성될 소망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세상 사람들은 오직 이 땅에서 고통을 없애는 문제에만 몰두해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그럴수록 지금보다 더 심한 질병이 늘어나고 고통도 더 심해진다는 사실을 사단에 미혹된 저들인지라 전혀 모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해야만 이 땅의 모든 모순과 왜곡이 완전히 제거되며, 그 전에 제거 아니 조금이라도 경감시키려면 하나님께 순종하며 성경대로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끝까지 완악하게 거부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지성적, 도덕적으로 신자보다 뛰어날 수 있어도 거짓의 아비이자 살인하는 자인 사단에게 계속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우리는 예수 은혜 안에 들어와 천국을 이미 차지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러니까 더더욱 신자는 오직 예수 안에서만 살아야 하며, 끝까지 저들에게 십자가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4/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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