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9:54)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멸하는 권세란? 

 

[질문]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9:51-54) 야고보와 요한이 정말로 불을 명할만한 그런 믿음이나 권능을 가지고 있었단 말인지요? 무슨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성경을 대할 때에 신자들이 가장 크게 오해하는 두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이 구두로 불러주시고 인간저자는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이 내포하는 문자적 의미가 바로 하나님이 계시하려는 바이므로 그대로만 받아들여한다는 것입니다. 성경해석법이 발전되기 전의 주장으로 근본주의라고 칭합니다.

 

하나님은 인간 저자가 성경을 저작할 때에 자신의 경험, 지성, 생각, 믿음 등 모든 것을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놓아두셨습니다. 그래서 예컨대 저자가 강조하려는 주제에 따라서 사건의 전후 순서가 다르거나 때로 생략되기도 했으며 복음서들끼리 간혹 일치하지 않는 기록이 나오는 것입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각 저자에게 성령으로 영감을 불어 넣어주셔서 당신께서 계시하고자 하는 진리가 아무 차질 없이 다 드러나도록 하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접할 때는 반드시 인간 저자의 저작 동기를 살피고 문학적 기법도 분석하며 무엇보다 당시상황 등도 감안하여서 해석 적용해야 합니다.

 

둘째는 같은 맥락으로 받아쓰기 한 것이라 한절 한절마다 하나님의 영적 진리가 내포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도덕적 종교적 영적 계명들의 모음집이라고 여기고 한 절씩 떼어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런 책은 잠언 정도뿐이며 모든 책들은 특정 주제와 스토리를 갖고서 죽 이어서 저작된 것입니다. 반드시 앞뒤 문맥을 감안하여서 해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본문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합시다.

 

우선 결론적으로 말해 야고보와 요한이 불을 명해서 내릴만한 그런 믿음이나 권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단순히 착각 내지 오해한 것입니다. 그럴만한 몇 가지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로 선교훈련 여행을 내보내면서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었습니다.(눅9:2, 마10;1)) 실제로 제자들은 전도하면서 불치병을 고쳤고(눅9:6) 귀신이 물러가는 것도 체험했습니다.(눅10:17)

 

이어지는 10장에도 다시 제자 70명을 세워서 전도하러 내보냈습니다. 시간적으로 10:1이 “이후에”라고 시작했고 여행에 나간 제자 숫자가 다르므로 당연히 본문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처럼 누가가 두 번이나 기록하고 있으며 또 마태는 비교적 주님의 사역초기의 일로 누가복음 10장과 동일한 가르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제자들의 전도 훈련이 여러 번 있었으며 매번 동일한 가르침과 당부를 하셨다는 뜻입니다.

 

누가복음10장 기록에 따르면 전도에서 돌아온 제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했다고 기쁘게 보고하자 주님이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제자들은 앞선 전도에서도(눅9장, 마10장) 귀신을 물리친 후에 주님의 동일한 칭찬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로선 귀신을 쫓아내면서 자기들이 하늘로부터 불을 명하여 불러 내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본문 사건이 있기 전에 세 제자들을 변화산에 데리고 올라가 엄청난 영적 체험을 하게 했습니다. 주님은 하늘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불러 내려오게 해서 당신의 영광 가운데서 교제를 나누었고 그 모습을 바로 요한과 야고보가 보았습니다.(눅9:28) 그래서 자기들도 주님과 방불한 권세를 행사할 수 있으리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그런 교만을 주님께서 깨우쳐 주시는 사건을 본문 바로 앞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를 주님 가까이 오려는 것을 금하려 드는 제자들에게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눅9:50)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의 한 촌이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말씀을 반대로 적용하여서 자기들을 반대하는 자는 금해도 된다고 단순하고도 어리석게 판단한 것입니다. 특별히 변화산에 함께 올라갔던 요한과 야고보가 나서서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곧바로 그들을 꾸짖었습니다.(55절) 사마리아가 주님을 반대했음에도 금해선 안 된다는 뜻을 제자들에게 명확히 드러낸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님 스스로 당신이 하신 말씀을 부인 내지 번복한 것은 아닙니다.

 

분문이 포함된 문단은 51-56절인데 무슨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승천할 기약이 다가오자 십자가 구원을 완성하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중이었습니다.(눅9:51) 사마리아인들도 예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이라는 선발대 제자들의 통보를 들었고 그러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눅9:53) 그들도 유대 당국이 예수님과 그 일행들을 이단으로 몰아서 위해를 가하려는 움직임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예수 일행과는 가능한 엮이지 않으려는 뜻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어리석은 믿음은 사마리아인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이루실 십자가 대속의 구원사역에 대해서 주님이 아무리 가르쳐줘도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회복시키는 메시아가 아니라 각 사람을 죄에서 구원해주는 수난의 종으로 오셨다는 사실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십자가 죽음을 눈앞에 둔 최후의 만찬 장소에서조차 새로 회복될 이스라엘 왕국에서 누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느냐로 다툴 정도였습니다.(눅22:24)

 

그러니까 자기들을 거역하는 사마리아인들을 우습게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승이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서 불쌍한 여인을 구원해주는 사건을 보고도 자기를 편을 들지 않으니까 원수 취급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까지도 같은 조상과 믿음의 뿌리를 지녔음에도 유대인들에게 정죄 저주 받고 있는 사마리아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으로 품어주려 하는데도 말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꾸중을 들어 마땅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야단맞은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이 귀신을 쫓고 질병을 고치는 권세는 분명히 주님께 받았습니다. 당신께서 메시아 되심을 가시적으로 증명할 필요가 있어서 주님이 승천한 후로도 한동안 초대교회에 성령은 강력하게 역사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요한과 야고보는 감히 자기들이 불을 명하여 불러 내릴 수 있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스승이 허락만 해주시면 하늘에 대고 명령을 할 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변화산 사건과 아이를 금하지 말라는 사건 중간(9:37-45)에 어떤 기사가 나옵니까? 어떤 사람이 귀신 들린 아들을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기에 주님께 간구하여 치료 받았습니다. 그 때에 주님은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고쳐주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복음9:14-29에 흥미로운 내용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왜 자기들은 귀신을 쫒아내지 못했는지 물어보았고 주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다고 답해주었습니다.(29절) 그렇다면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고 주님처럼 귀신에게 꾸짖으며 나가라고 명령했기에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귀신은 인간보다 능력 면에서 월등한 영적 존재입니다. 귀신들을 말씀 한마디로 명령하여서 쫓아낼 수 있는 분은 삼위 하나님뿐입니다. 그래서 귀신들린 아이를 주님이 고쳐주자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다고 말한 것입니다.(눅9:43) 반면에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함부로 명령하여 쫓을 수 없습니다. 단순히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고 외치는 것은 자칫 주문이 되어서 오히려 귀신에게 크게 당할 수 있습니다.(행19:13-16)

 

기도 외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은 예수님께 순전한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되 귀신들린 자를 주님과 같은 심령으로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그런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했을 때는 귀신이 물러갔으나 단순히 주님처럼 명령만 해선 쫓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가와 달리 누가는 제자들이 주님이 아이에게서 귀신을 꾸짖어 쫓아낸 모든 일을 기이하게 여기자 어떻게 가르쳤습니까?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눅9:44)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단순히 귀신을 쫓는 것 즉, 이스라엘을 현실적으로 로마에서 독립시켜 부강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때에도 주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에 죽으신 당신의 보혈의 공로로 인종과 종교의 구분 없이 죄에서 구원해주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자들 중에 아무도 깨닫지 못해 더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자기들 편에 서지 않자 오직 불로서 심판할 것만 생각했고, 그것도 주님께 상의하거나 기도하지 않고 스스로 명령만 하면 가능하리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변화산 사건의 의미가 장차 십자가 구속이 완성되면 모든 신자들이 설령 핍박을 받아 순교해도 모세나 엘리야처럼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인 줄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제자들 중에 자기들만 그 현장에 참여했기에 더 큰 권능을 따로 받게 된 양 착각했던 것입니다.

 

비교적 간단하게 설명 드렸지만 성경을 전후 순서에 따라 살펴보았더니 본문 한 구절에만도 너무나 풍부한 의미가 있습니다. 참으로 세밀하고도 권세 있는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는 말씀인 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꾸준히 통독하시고 앞뒤로 살펴가며, 특별히 복음서끼리는 서로 비교 대조해 가면서 읽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12/1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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