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세일즈맨들의 실패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로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흔히 물건을 살 때, 특별히 두고두고 오래 쓸 물건은 반드시 성능을 테스트 해보고 삽니다. 텔레비전 냉장고 같은 내구성 가전제품을 스위치를 켜서 작동해 보지 않거나 자동차를 직접 시운전을 해서 성능을 확인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물건들을 팔아야 하는 입장에선 아무리 제품설명서가 정밀하고 산뜻하게 잘 만들어져 있고 또 세일즈맨이 청산유수처럼 달변이라도 일단은 그 제품의 성능을 소비자가 믿음이 갈 때까지 시연(試演-presentation)을 해보여야 합니다.
신자는 다른 말로 하면 기독교의 세일즈맨입니다. 종교는 단순히 오래 쓸 물건과는 다릅니다. 어떤 사람이 일단 믿음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하면 거의 대부분 한번 정한 종교에 평생을 의존합니다. 나아가 자식들뿐 아니라 그 후손의 후손까지 같은 종교로 대물림을 시킵니다. 성능과 내구성이 여간 좋지 않고선 함부로 선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종교를 세일즈하는 입장에선 한 두 번의 성능 테스트나 시연으로는 부족합니다. 다른 종교보다 확실히 달라야 하고 몇 번 그 성능에 이상이 나타나면 어지간해선 신뢰를 회복하기 힘듭니다. 말하자면 주위의 불신자들은 일단 우리가 기독교 신자인 것을 알면 겉으로 말은 안하지만 사실은 아주 세심하게 성능과 내구성을 견주어 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시장에서 형성된 기독교에 대한 소비자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과연 소비자 만족도에서 어느 정도의 순서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최근 한국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개신교는 지난 10년간 14만 4천명이 줄었지만 불교는 40만 5천명이, 천주교는 무려 219만 5천명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소비자만족도 1위는 천주교 다음이 불교지만 개신교는 거꾸로 불만족도를 나타내었습니다.
신자들이 세일즈를 잘못 했습니까 제품이 나쁩니까? 당연히 전자가 맞습니다. 개신교는 분명히 전도지 같은 카타로그도 잘 마련되어 있고 세일즈맨들은 최고 달변으로 소문났고 판촉 행사도 가장 화려하고 거창하게 하고 있는데도 손님들이 외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오직 하나 그 제품을 제대로 시연을 못해주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동안에는 판촉 활동에 현혹되어 넘어갔지만 이제 한 10년 직접 눈으로 확인했더니 시연과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는 “Christian in Marketplace"라는 책에서 ”불신자는 복음을 들어 보기 전에 먼저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열린 예배를 선도하여 불신자들에게 교회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시킨 일종의 최고베테랑 세일즈맨의 체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불신자들은 신자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서야 종교를 택한다고 이미 말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10-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개신교가 종교 간에 성장률 1위를 점했습니다. 소비자 만족도 1위였습니다. 그럼 그 때는 신자들이 착했고 지금은 그때보다 악해졌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신자들의 도덕적 영적 수준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 때는 신자들의 착한 행실은 전혀 보지 않고 카타로그나 세일즈맨의 말만 듣고서 기독교를 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소비자들이 어수룩했다가 이제는 영악해졌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 때는 소비자들이 종교를 선택하는 기준이 달랐습니다. 살기가 어려울 때라 “회사가 부도났습니까? 자녀가 대학 입시에 실패했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예수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모든 고통과 문제를 주님께 해결 받고 승리하여 행복을 누리십시오!”라고 하는 말에 솔깃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일 이십년을 지나고 보니 그대로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예수님의 기독교 선전 문구를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서 전하고 있으니 그 세일즈가 제대로 될 리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착한 행실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말로서가 아니라 세상의 빛으로 직접 삶에서 보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가리려 해도 가려지지 않는 그런 빛으로 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착한 행실과는 전혀 얼토당토않게 말로만 사업 성공과 자녀 대학 입학을 세일즈 문구로 내걸었습니다. 개신교인들 스스로 교회를 처세술 학원, 입시 학원이라고 선전한 셈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을 때(행11:26)의 ‘그리스도인’의 의미는 ‘예수를 닮은 자’, ‘작은 예수’(Little Christ)라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소비자들을 향해 말로서 내건 선전 문구가 있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리고 산상수훈이 그 제품의 설명서였습니다. 신자는 예수님이 판 제품을 예수님이 팔았던 방식대로 팔아야 합니다. 천국의 진리를 직접 시연해 보이고 또 그 세일즈맨들더러 그대로 따라 하라고 가르치기 위해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셨지 않습니까?
독일의 한 크리스찬 건축인부가 동료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점심시간마다 성경을 읽었습니다. 비웃는 동료들에게 오히려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줄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인부들이 진흙투성이의 작업화를 그냥 벗어둔 채 퇴근하는 것을 알고는 항상 마지막까지 남아 깨끗이 씻어 놓았습니다. 동료들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여겼지만 마지막에 퇴근한 사람이 그 뿐임을 알고 난 후부터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일찍 마치고 그의 주위에 모여서 성경을 읽어달라고 먼저 요구해 왔습니다. 말 한 마디 안 하고도 예수 세일즈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개신교인들끼리 솔직히 자문해 보십시다. 지금껏 전도나 선교를 등한히 해서 개신교가 점차 힘을 잃고 신자들의 숫자가 줄었겠습니까? 예수 세일즈맨인 신자들이 시연을 잘못 해보여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어느 쪽 원인이 더 크겠습니까? 전도나 선교는 지금도 모든 종교 중에 개신교가 으뜸입니다. 한마디로 불교나 천주교 신자들이 더 착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사업 성공과 자녀 대학 입시가 더 이상 종교 선택의 기준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소비자의 기호는 바뀌었는데도 세일즈는 구태의연하게 하고 있으니 판매가 신장될 리가 없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시키지도 않는 세일즈를 언제까지 계속하려는지 참으로 답답할 따름입니다. 최고의 제품을 최고 엉망으로 팔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수없이 전도 훈련을 받고도 말입니다. 아무래도 전도 훈련이 잘못 된 것 아닙니까?
5/26/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