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처럼 살거나 성경대로 살거나 둘 중 하나다.
지금껏 62회에 걸쳐서 창조주 하나님과 연결해서 기독교 신앙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다각도로 변증해봤습니다. 이제부턴 성경본문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하므로 마지막으로 간단히 리뷰 해보려 합니다. 기독교에 대해 반감이 많은 불신자나 이런저런 의심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신자들로선 지금 갖고 계신 모든 선입관과 선지식을 온전히 내려놓고 백지상태의 중립적 입장에서 한 번 진지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시라는 뜻입니다.
흔히들 하나님이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사실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도 안 믿어지는데 무에서 유로 창조했다는 사실은 더더욱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은 네 가지 가능성밖에 없습니다. 창조, 진화, 유신론적 진화, 외계인 도래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창조와 진화 빼고는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선 유신론적 진화는 인간이 이 땅에 출현한 방식은 어쨌든 진화인데 신학적 의미를 덧입혀 타협한 것일 뿐입니다. 외계인도래설도 그들이 출발한 행성으로 돌아가면 그 기원은 창조와 진화 둘로만 나눠집니다. 설령 외계인이 인간 조상이라고 해도 결국 따져야 할 것은 창조와 진화입니다.
따라서 거꾸로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창조가 확실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실존하고 진화가 확실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안 계시는 것입니다. 유신론적 진화는 이 둘을 합쳐서 하나님이 생물체 안에 인간으로 진화될 유전자를 이미 심어 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물체가 스스로 발전하게 만들어 놓고서 하나님은 손을 놓고 있었기에 사실상 그분이 실존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도 인간 출현 후에 다스리고 사후에 구원과 심판으로 나눌 수 있다고 강변하겠지만 스스로 진화되고 있는 존재에게 새삼 통치하거나 또 그런 존재에게 생전이나 사후나 도덕적 판단을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누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항은 창조와 진화 둘 중에 분명 하나는 절대적 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가 맞으면 다른 하나는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진화의 결정적 하자는 종과 종 사이의 진화에 대한 확실한 증명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증거는 사실상 종 안에서 환경에 적응한 흔적들뿐입니다. 또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에 대한 명료한 해명도 전혀 하지 못합니다. 여러 과학적 취약점들이 있지만 어쨌든 장구한 세월 동안에는 진화될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믿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진화를 믿으면 이 땅이 전부이므로 필연적으로 자신의 안일과 형통을 최우선 목표로 살아가게 됩니다. 자기 판단과 책임 하에 결정 시행하면 그만이고 아무도 시비 걸 수 없습니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최대한의 풍요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의 방안이 됩니다. 이 변증시리즈에 더 이상 관심을 안 가져도 됩니다.
나아가 무슨 일에든 최선을 다한 후에 하늘의 도움을 바란다든지, 힘든 일이 있을 때 자기도 모르게 기도한다든지, 무엇보다 죽음에 임박해서 내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싶다는 생각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 장례식에 문상을 가서 먼저 좋은 곳에 가셨고 우리도 곧 따라 가야지요라는 식의 위로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큰소리쳐놓고 사실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지 않습니까?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고 탓하려는 뜻은 없습니다. 그럼 정말로 하나님이 계시면 살아있을 때는 계속 당신을 대적하고 살다가 죽기 직전에 뻔뻔하게 그러면 그분이 얼마나 괘씸하게 여기겠습니까?
그래도 유신론적 진화처럼 혹시라도 절대자가 손을 놓고 있다가 죽은 후에는 심판을 할 것이라고 믿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평생토록 구원에 누락되지 않기 위해서 모든 수고와 노력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선하게 살 수만 있다면 바람직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 아침 묵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인간 마음이 만물 중에 가장 부패하다는 간단한 증거가 있다. 먼 곳의 일면식 없는 죄인은 쉽게 사랑해도 바로 곁의 자식과 배우자는 쉽게 사랑하지 못한다. 선인 줄 알고도 실행하지 않고 악인 줄 알고도 즐기므로 예수 십자가 긍휼만이 소망일 수밖에 없다.” 그 동안 아무리 선행을 쌓으려 해도 제대로 성공할 수 없었다고 실감하는 사람은 저의 글에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지점이 기독교 신앙이 출발하는 곳입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계속 따라올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한마디로 인간 스스로는 도무지 의로워질 수 없으니까 하나님이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당신께서 심히 기뻐할 만큼 인간을 아름답게 창조했는데 왜 지금 같이 부패한 상태로 바뀌었는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 창조 당시의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이 가능할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이야기를 진행해 나갈 것입니다.
그 전에 정말 마지막으로 성경을 부인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을 배제하면 결국 또 당연히 모든 인생사를 인간이 주도합니다. 아니 실제로 인류역사는 그렇게 진행되어져 왔고 특별히 진화론이 우세한 이후로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런 과정과 결과가 과연 어떠한지 한 번 진지하게 되돌아보시라는 것입니다.
굳이 세계사를 다시 공부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만 보시면 됩니다.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억울하게 죽고 힘써 이룩해 놓은 삶의 기반들이 무참히 파괴되었습니다. 종전되어도 이전처럼 회복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일방적으로 먼저 침공한 러시아에 전적인 책임과 잘못이 귀속되지만 러시아의 젊은 병사들도 억울한 죽음을 당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인간들이 저질러선 안 되는 엄청난 악행입니다. 인간 죄악들의 집합체를 전 세계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러시아가 이 땅에서의 안락과 풍요를 더 많이 추구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겉으로는 신나치주의를 제거한다는 식으로 정치적 명분을 내세우지만 진짜 속내는 그것입니다. 만약 러시아가 다른 나라에 그런 침략을 당했다면 그들더러 사악한 세력이라고 크게 비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에서 우연히 진화되어 이 땅이 전부인 인간들인데 가치 판단에 입각한 상호 비방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거기다 러시아가 풍요를 목적으로 전쟁을 시작했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도덕적 평가를 하기 이전에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이런 인류역사상 일어난 모든 모순 파괴 죽음은 인간이 악인 줄 알고도 즐겼기에 생긴 결과로 절대적 선이신 하나님을 멀리한 까닭이라는 것 외에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인간더러 서로 사랑하면서 당신 대신에 이 땅을 아름답게 다스리라고 만드셨는데 그 목적을 완전히 등지고 살아온 탓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 안에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실존과 인생의 의미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창조기사에서부터 계시해줍니다.
기독교와 성경을 반대하는 분들에게 제가 내내 강조해온 한 가지 진리만 결론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거룩하게 인류와 개인을 다스릴 확률은 100%가 아니면 제로% 둘 중 하나입니다. 이 땅에 살게 된 인간이라면 가장 먼저 그 둘 중 하나를 자신의 인생관으로 결정하고 그에 따라 인생을 꾸려가야 합니다. 쉽게 말해 제로 %라고 즉 진화론을 믿는다면 푸틴 대통령처럼 자기가 해보고 싶은 것 맘껏 다 해보고 사는 것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싫거나 틀렸다고 여겨지면 정말로 진지하게 성경을 한 번 공부해보시라는 것입니다.
(5/13/2022)
마침 현재 창세기 서론을 본문으로 구원시리즈(왜 오직 예수인가)를 설교하다보니 그 내용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 변증 시리즈는 주제 하나로 간단히 설명하므로 더 깊이 자세하게 다루는 주일 설교를 함께 참조하시면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