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20:10,11 모세가 범한 진짜 잘못은?

조회 수 3999 추천 수 34 2010.01.10 15: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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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범한 진짜 잘못은?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민20:10,11)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했고 하나님과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던 선지자였습니다.(민12:3,8) 그만큼 하나님이 맡긴 소명을 충실히 감당한 자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형상과 영광을 직접 본 자였습니다. 그러나 단지 한 번의 실수로 인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먼발치서 바라보기만 하며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 실수는 므리바에서 하나님이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했는데도 자기 분에 못 이겨 “지팡이로 바위를 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모세 개인으로선 조금 억울한 면이 없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방법은 물론 과격했지만 어쨌든 백성들에게 하나님 능력에 의지하여 물을 주었지 않습니까?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전혀 화도 내면 안 된다는 뜻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조차 시편에서 하나님께 불평과 원망을 얼마나 많이 쏟아내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일을 함에 그 방식도 반드시 하나님의 것으로 따라야만 한다는 뜻입니까? 물론 당연히 그러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먼저 모세의 심기를 심하게 흔들었지 않습니까? 또 모세로선 이 일을 제외하곤 평생을 순전하게 충성했지 않습니까? 그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으로선 한 번 정도는 눈감고 넘어가 줄 수도 있는 문제 아닙니까?

“그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잇는데 이름은 오뎃이라 저가 사마리아로 돌아오는 군대를 영접하고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를 진노하신고로 너희 손에 붙이셨거늘 너희 노기가 충천하여 살육하고 이제 너희가 또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압제하여 노예를 삼고자 생각하는도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대하28:9,10)

유다의 아하스 왕이 바알과 산당에 제사를 지내고 심지어 자기 아들을 불에 태워 죽이는 가증한 일까지 행하자 북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 북 이스라엘의 우상을 섬겼지만 그들의 도움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서 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은 것에 불과한데도 “노기가 충천하여” 살육하는 바람에 오뎃 선지자에게서 큰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자 형제인 유다를 지나치게 살육한 것은 당연히 큰 잘못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람들을 향해 노기를 내었음에도 하나님의 견책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모세는 사실상 하나님께 분노한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아무리 평생에 한 번 실수라도 징계를 받아 마땅합니다. 그가 두 번이나 반석을 친 것은 자기 분노를 주체 못하고 터뜨렸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과 그 백성들의 면전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기록을 앞뒤로 자세히 살펴보면 명령을 있는 그대로 순종하지 않았다거나, 하나님 앞에서 분노를 터뜨렸다는 차원을 넘어서 벌 받은 더 중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어 죽게 되었다고 자꾸 불평하면서 아론과 모세 때문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4,5절) 광야로 이끌고 나와 우리더러 이 생고생을 시키느냐고 두 번씩이나 따졌습니다. 백성들의 속내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었지만 차마 입술로 그분께 범죄할 수 없어서 그 대리인 격인 모세와 아론에게 그 책임을 몽땅 덮어 씌웠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반석을 치며 외친 소리가 바로 이랬던 것입니다.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쉽게 풀이하면 “우리가 이 반석에서 물을 내면 너희는 더 이상 아무 불평 없이 순종하겠느냐 이 패역한 자들아!”라는 뜻입니다. 별반 이상한 점이 없어 보입니까? 아니면 잘못된 발언으로 보입니까? 혹시 그렇다면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그 답은 물론 아주 큰 잘못이었습니다. “이제 너희는 여호와가 행하는 큰일을 보게 되리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석에 명하지 않고 지팡이로 두 번씩이나 친 것도 큰 잘못이지만 그보다 더 큰 잘못은 마치 자기 능력으로 반석에서 물을 내는 것 같은 투의 말을 내뱉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을 향한 불같은 분노가 자기도 모르게 표출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모세에겐 오래 전 같은 상황의 르비딤에서 반석을 쳐서 물을 낸 경험이 이미 있었습니다.(출17:6) 물론 그 때는 하나님이 분명히 “너는 반석을 치라”고 명했고 그도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目前)에서 그대로 행하니라”고 성경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유추가 가능합니까? 어쩌면 그는 이번에도 바위를 쳐도 될 것이라고 예사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하나님께 기도하여서 응답 받은 말씀을 건성으로 들었던 것입니다. 어느 경우가 되었든 그는 자신을 향한 백성들의 끊임없는 불평에 대해 극도로 예민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결국 모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여기까진 하나님다우신 아주 정상적인 응답입니다.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찌니라.”(7,8절) 하나님도 모세에게 “네가” 물을 내어서 (네가) 회중과 짐승에게 물을 마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럼 모세는 하나님의 응답대로 말한 셈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명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고 또 단지 말로만 해야 할 것을 지팡이로 친 것은 분명 잘못이지만 말입니다. 말하자면 지금껏 알고 있듯이 그에게 단순히 명령대로 하지 않았다는 잘못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응답 중에 앞부분은 전번 경험에 비추어 당연히 지팡이로 치라는 말씀인줄 건성으로 알아듣고선 후반부에만 신경을 쓴 것입니다. 기도 중에도 여전히 그는 흥분 내지 분노 상태를 유지했던 것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기도를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최소한 “지금 물어 백성이 죽게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내어주시옵소서”라고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대신에 “저 백성들이 나를 저렇게까지 믿지 못하고 불평만 하고 있으니, 대체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만 계속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그에 맞추어 응답해주셨거나 모세에게 그렇게 들렸던 것입니다. 이 미세한 차이를 구별 내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 단계에 이르러 모세가 저지른 잘못은 마치 자기가 백성들을 이끌고 있다는 교만에 빠진 것입니다. 그들을 자기가 먹이고 마시우고 입혀야 한다는 책임감 내지는 의분에 휩싸인 것입니다. 비록 의롭고 선한 것이긴 하지만 하나님보다 더 앞서간 것입니다. 아무리 선해도 하나님보다 앞서가거나, 그분을 잠시 잊고 있거나, 그분의 일을 자신이 해드림으로써 그분을 편하게(?) 모시겠다는 것 등은 여전히 인간적 욕심일 뿐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 군대가 유다왕 아하스를 징벌할 때에 노기가 충천한 것이나. 지금 모세가 바위를 두 번이나 친 것은 욕심이 앞서갔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과 능력으로 하나님 일을 더 크고도 근사하게 잘할 수 있다는 교만입니다. 신자가, 특별히 영적 지도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이 가려지고 자기가 전면에 나서는 순간 바로 사단에게 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경건하고 거룩한 모습을 띄며 심지어 하나님의 일에 열매가 더 빨리 풍성하게 맺히는 결과가 바로 눈앞에 있어 보여도 그러합니다. 북 이스라엘이 유다를 심판하는 김에 이참에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자는 욕심이 분기가 충천한 모습으로, 모세도 물을 화끈하고도 신속하게 자기가 주고 말겠다는 의욕이 두 번이나 지팡이로 치는 모습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 특별히 지도자를 향한 사단의 가장 큰 계교 또한 무엇이 됩니까? 자꾸만 하나님 대신 자기를 앞세우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일에 열심히 쓰임 받고 있을 때 말입니다. 자기 의욕과 능력과 열성으로 그분보다 앞서가게끔 혹은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이 너무나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위대한 고백을 마친 직후에 베드로가 어떻게 했습니까? 십자가 대속 죽음으로 당신의 사역을 완성시키려는 주님더러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너무나 의롭고 선한 만류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야단을 바로 맞았지 않습니까? 사단에 넘어간 인간 베드로가 하나님이신 예수님보다 앞서 갔기에 “내 뒤로 물러가라”는 야단을 맞은 것입니다.  
  
사단은 심지어 예수님마저 광야에서 성부 하나님보다 앞서가게끔 유혹했지 않습니까?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로 자꾸만 “모세를 향해” 불평하게 했습니다. 네가 우리 지도자라면 죽을 지경에 계속 놔둘 것이냐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들로선 지극히 자연스런 불평이며 또 하나님께는 차마 불평을 터뜨릴 수 없다는 선한(?) 마음도 조금은 작용한 것 아닙니까? 나아가 모세가 품고 있는 지도자로서의 성실한 의무감마저 자극시킨 것입니다.

바꿔 말해 사단은 신자의 선한 마음과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더 자주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뜻입니다. 신자 쪽에서 보면 오히려 그런 것들 때문에 더 자주 시험에 넘어갈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미 신자나 지도자가 되면 악한 것들과는 사실상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집니다.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겠다는 마음도 자연히 생깁니다.  바로 그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아니 사단이 신자의 선한 마음과 의로운 열정을 가장 자주 악용한다면 신자로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무엇보다 바로 이 영적 원리를 절대 잊지 않으면 됩니다. 사실은 그 일이 가장 힘들긴 하지만 말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신자가, 특별히 지도자가 하나님 은혜와 능력을 계속 체험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마치 자기가 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생깁니다. 아니면 하나님은 자기가 어떻게 하든 자기 요구대로 다 들어주실 것이며 또 조금 실수를 해도 다 용납해 주실 것이라고 아예 무심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가장 큰 잘못 아닙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열성과 실천에 크게 변함없었지만 택함 받은 백성이라는 과도한 안심 때문에 영적으로 나태해진 것 아닙니까?

궁핍하거나 힘들면 자연히 하나님께만 매달립니다. 힘들어서 빨리 구원 받고 싶은 마음도 앞서지만, 힘들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아직은 실감하고 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무 문제없이 형통하거나 자신의 지도력에 자신감이 생길 때는 매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마음은 서서히 줄거나 없어지는 법입니다.

모세는 지금껏 너희들이 내 지도를 따라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 주리고 갈한 적이 없었고 신발과 의복이 헤어지지도 않았는데도 왜 자꾸 나에게 불평하느냐는 마음이 앞섰던 것입니다. 그로선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충분히 가질만한 즉, 그리 잘못이라 볼 수 없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마음이 가장 큰 잘못이자 죄였던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선 안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만은 그렇다는 뜻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특별히 지도자이니까 말입니다.

거창한 비전을 품고서 유별난 열정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뤄내는 것이 영적 지도자의 급선무가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에나 하나님을 철두철미 앞서 가게 만든 후에 자신은 뒤따르는 모습을 모든 이에게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따르는 자도 똑 같은 모습으로 신앙생활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도 앞에서 겸손 또 겸손해야 합니다.

요컨대 모세가 기도할 때부터 “내가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지 말고 단순히 “주님 이 백성들을 긍휼이 여기시어 물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어야 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반석을 바위로 두 번이나 치는 큰 죄를 범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제대로 분별하여서 “이제 너희가 하나님이 행하시는 큰일을 보게 되리라. 반석아 여호와가 명하셨다. 물을 내어라.”고 선포했을 것입니다. 또 그러면 하나님을 바로 앞에 모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가장 먼저 밟는 주인공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지도자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이 아무리 불평을 해도, 그것도 하나님 대신에 자기에게, 끝까지 참고서 오히려 그들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성들로선 하나님, 동료 신자, 불신 세상에 대한 불평을 지도자에게 퍼부을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현상입니다. 지도자가 된다는 것도 바로 그런 일을 각오하고 또 다 받아주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불평 또한 하나님보다 자기들이 앞서가려 하기 때문에 생긴 것들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지도자는 하나님께만 엎드려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지도자마저 자기가 앞서려면 스스로 자기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이나 치는 잘못을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자기를 부인하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길 말고는 신자나 지도자나 세상과 죄악과 사단을 이길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라고 해서 단순히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록 그런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하나님보다 절대 앞서가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끝까지 외면하지 않은 자들은 오히려 하나님과 세상에 대해 불평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고래로 사회 주류에서 소외된 빈자나 약자가 가질 것이라고는 불평 밖에 더 있습니까? 그분은 의인 대신에 죄인을 구하러 오셨기에 그들의 불평을 다 들어주셨습니다. 반면에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잘 낫다고 하는 자들은 “화 있을찐저!”라고 지옥형벌의 저주를 퍼붓기를 결코 마다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지금 혹시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낸다는 의로운 명분하에 스스로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씩이나 치는 잘못을 범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올해야말로 큰 비전과 계획을 세워서 정말 하나님 일에 열심을 내어야하지 결심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혹시라도 그분보다 앞서가지는 않는지요?

그 모든 선한 결심과 실천들이 다 좋지만 올해는 오직 하나만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새삼 결단하는 것은 어떨런지요? 그분보다 절대로 나를 앞세우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쉬지 말고 기도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분 앞에 완전히 항복하여 엎드리고 또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먼저 가셔서 우리로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할 수 있게 해주지 않겠습니까?

1/1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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