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2:24-31)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겨보았는가?

야곱 바로 알기 (18)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창32:24-31)

 

하나님의 계시와 야곱의 반응

 

얍복 강가에서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와 밤새 끈질기게 씨름하여 이김으로써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된 본문의 이야기를 모르는 신자는 없을 것입니다. 본문은 그래서 끈질기게 끝까지 기도하여 응답받는 믿음의 대표적인 사례로 가르쳐져 왔습니다. 그 가르침 자체는 틀리지 않으며 신자는 당연히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끈질기게 해야 한다는 것은 구태여 성경을 읽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초보적인 진리입니다.

 

성경을 그 내용만 대충 파악하는 식으로 평면적으로 읽어선 안 됩니다. 전후 문맥은 물론 본문 뒤에 숨겨진 내용까지 입체적으로 읽어서 본문이 정말로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찾아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므로 그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계시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들을 줄 알아야 하고 또 그 들은 것을 삶에 실제로 적용 실현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분이 직접 하신 말씀이나 그분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을 잘 따져보면 됩니다. 본문에선 하나님은 야곱에게 당신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으로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28절) 그에 대해 야곱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30절)는 뜻으로 그곳을 브니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새 이름을 주신 것은 그에게 당신의 뜻을 계시한 것입니다. 야곱이 그곳을 브니엘이라고 칭한 것은 그 계시를 듣고 자기 삶에 적용한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과 야곱이 각기 무슨 뜻으로 그런 이름을 지었는지 정확히 살펴서 우리의 삶에 그대로 적용해야 합니다.

 

야곱은 가축 떼를 둘로 나누고 한 떼는 에서에게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틀림없이 사자들에게 그런 의향을 전하라고 했을 텐데도 에서가 군대를 몰고 온다고 하니까 두렵고 갑갑해져 여호와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베델에서 주신 약속을 갖고 기도를 시작했고 또 그 약속으로 기도를 마쳤지만 하나님의 구체적인 대답이나 지시를 듣지 못했습니다.(12절)

 

에서로선 조용하게 장막에 거하길 좋아하던 야곱이 거부가 되었다는 말부터 믿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축의 반 떼를 준다는 말을 사자를 통해 들었지만 아예 실감나지 않았고 설령 사실이라 해도 틀림없이 야곱이 또 어떤 술수를 부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을 것입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긴 뼈아픈 실수를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반 떼가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14,15절) 자기 소유로 완전히 넘겨받지 않고는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으려고 단단히 결심했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기만하는 조짐이 보이면 바로 처단할 작정으로 군대를 끌고 온 것입니다.

 

신중하고 생각이 깊으며 형의 성격을 잘 아는 야곱입니다. 이제 자기 재산 전부를 여러 떼로 나눠서 간격을 두고 출발시켰습니다.(22,23절) 에서가 계속해서 가축 떼가 나타나면 아무래도 굉장히 많다고 여길 것이며 또 자기에게 주는 예물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야곱에 대한 분노도 누그러질 것입니다. 이런 치밀함은 야곱의 기질이긴 하지만 지난 이십여 년 간 노회한 라반을 상대하다보니 터득한 현실적 지혜였습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들

 

가족까지 먼저 다 떠나보낸 후에(23절) 야곱은 홀로 남았습니다. 혼자만 살겠다는 뜻이 아니라 이 계획이 잘 먹히기를 바라며 따로 기도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야곱이 기도했다는 구체적인 진술은 전혀 없고 어떤 사람과 씨름했다고만 합니다.

 

이는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백세 가량 된 노인 야곱이 밤중에 지나가는 나그네 아무나 붙들고 혹은 그 반대로 지나가던 나그네가 야곱에게 우리 씨름이나 한 판 하자고 청할 리는 없습니다. 당장 내일 본인과 가족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할 판국에 한가하게 씨름할 여유는커녕 그런 생각도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꿈이나 기도하는 중에 환상으로 씨름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환도 뼈가 위골되었고(25절) 씨름이 끝난 후에도 그 바람에 다리를 절었습니다.(31절) 어쨌든 야곱이 신령한 존재와 초자연적인 대면을 하는 체험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럼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천사가 먼저 나타나서 야곱에게 씨름하자고 도전한 것입니다. 또 씨름이 천사 때문에 시작되었다면 본문이 가르치려는 첫째 내용이 야곱의 집념어린 기도가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본문 해석에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되는 이 기초적인 사실조차 놓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진짜 말이 안 되는 것은 따로 있는데 아무리 믿음과 담력이 강한 인간이라도 하나님의 천사와 싸워선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천사가 마음만 먹으면 끈질긴 야곱도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순식간에 이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천사가 야곱의 환도 뼈를 쳤으니 야곱이 씨름에 이긴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과 씨름을 하면 아들은 아무리 해도 아빠를 이기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순식간에 이겨서 자기 힘자랑만 하는 어리석은 아빠는 없습니다. 힘에 버거운 척하면서 열심히 맞장구를 쳐줍니다. 아들에게 용기와 담력을 심어주면서 자연스레 씨름에 관한 여러 기술을 터득시키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천사는 씨름을 통해 야곱의 믿음을 시험 연단 각성 시키려고 곧바로 이기지 않고 밤새 씨름에 응해준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자기를 축복해주지 않으면 끝까지 놓아주지 않겠다고 덤비니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야곱을 축복해준 후에 떠나갔습니다. 다시 비유하자면 아들과 씨름하던 아버지가 결국에는 승부를 떠나서 아들의 결정적인 약점이 무엇인지 또는 반드시 배워야만 할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과 같습니다.

 

야곱보다 하나님의 집념

 

인간이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다는 사실은 신자에겐 아주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그분의 엄청난 권능을 신자가 언제든 사용 내지 의지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그런 섣부른 기대에 묶여서 인간이 하나님은 물론 그분의 천사와 겨뤄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진리를 외면해버렸습니다. 성경 자체가 말하는 바에는 귀를 막고 처음부터 자기가 보고 싶고 알고 싶은 관점으로만 읽은 탓입니다.

 

두 사람의 씨름의 승패를 다시 잘 따져보십시오. 천사가 일부러 져 준것도 아니며 단순히 졌다고 말만 한 것입니다. 아무 승패 없이 해가 뜨자 서로 헤어졌기에 무승부로 끝난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천사가 야곱을 위골시켰고 무엇보다 먼저 찾아와서 자기 뜻대로 이루고 돌아갔으니 당연히 야곱이 진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씨름에서 승패는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자식을 성장시키고 서로 간에 사랑이 더 깊어진다면 아버지로선 지든 이기든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정작 주목해야 할 사항은 천사가 이날 밤에 처음으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와 재상봉을 준비하기 전에도 여호와의 군대를 만났습니다.(창32:1,2) 이때는 야곱 혼자만 기도나 묵상하는 중에 환상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야곱이 그곳 이름을 마나하임 두 진영 혹은 두 떼(two armies)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여호와의 군대가 자기 일행을 앞에서 인도하고 뒤에서 보호하고 있는 모습을 본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에서와 만날 때 어떻게 할지 궁리하고 있던 차에 가축 떼를 둘로 나누려는 지혜를 얻었을 것입니다. 거기다 성경은 야곱이 군대를 보았거나 만났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났다고 말합니다.(2절) 이 만남의 주체도 선도적 주도적 능동적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와 단 일 밀리미터의 간격도 떨어지지 않고 항상 바로 곁에 계셨던 것입니다. 베델에서 고향으로 반드시 돌아오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잊지 않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보호해주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종이 당신과 맺은 언약을 지키려 순종하고 있으면 더더욱 큰 능력으로 함께 해주십니다. 신자가 땅 끝까지 끝 날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으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함께 동행해주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이 이미 이천여 년 전에 야곱에게 실현된 것입니다.

 

큰 상심 중에 가나안 땅을 떠날 때부터 베델에서 하나님이 꿈에 야곱에게 먼저 나타나서 귀향을 보증해주었습니다. 라반과 이별하고 가나안으로 출발하자 앞뒤로 호위하는 여호와의 군대 환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야곱은 에서가 사백 명의 군대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자 두려워서 기도했습니다. 나름 최선의 계획대로 실행했지만 과연 형이 수많은 예물에 마음을 돌이킬지 또 자기 가족들을 큰 아버지의 입장에서 사랑으로 품어줄지 도무지 자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시 천사가 나타나 씨름을 하게 되었고 축복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가만히 따져 보십시오. 야곱과 하나님 중에 누가 더 끈질깁니까? 오히려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야곱은 감정의 기복은 물론이고 믿음의 부침도 있었습니다. 라헬과 관련해선 영적 분별력도 떨어졌고 여러 처를 둔 것도 당시의 악한 관습을 쉽게 수용하는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믿음은 연약하고 어리석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뀝니다. 어지간한 노력 없이는 집념과 끈기를 실행할 수 없기에 지금 야곱은 여호와를 믿으면서도 심히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야곱에 비해 하나님의 집념이 더 끈질기다고 했지만 엄밀히 따져 틀린 말입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의 뜻과 계획을 어떤 수정 가감 왜곡 포기 없이 일관되게 똑같이 행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으로서 단순히 당신의 약속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분으로선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그대로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따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당신의 종에게 당연히 행해야 할 바를 그냥 묵묵히 행한 것입니다. 야곱의 집념이 하나님을 이긴 것이 아니라 당신의 변함없는 뜻과 계획대로 하나님이 야곱을 밤새 씨름해서 이긴 것입니다.

 

야곱이 깨달은 진리

 

야곱의 끈기는 우리가 본받아야만 할 만큼 특출했던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막상 이날 밤 동일한 처지가 되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당장 내일 목숨이 오고갈 판인데 끈질기게 여호와의 천사에게 내일 아무 일 없이 지켜주고 형과 진심으로 화해하게 해달라고 물고 늘어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야곱 같이 끈질기게 기도했을 것이라는 진술은 사실은 99%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야곱 같이 거부가 되면 우리 중에 99%는 구태여 가나안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주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로토에 당첨된 사람들의 그 후의 삶을 조사했더니 거의 다 세속 재미에 빠져서 비참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 중에 신자들도 당연히 포함되었을 텐데 그들 또한 믿음을 저버렸다는 뜻입니다.

 

야곱도 자신과 자식들의 생명만 걱정되었다면 구태여 가나안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부모 이삭과 리브가를 부양해야겠지만 자기 사는 곳으로 그들을 데려오면 됩니다. 그가 얍복 강을 건너가기 전날 밤에 이런 씨름을 벌린 것은 자신과 가족의 생명 보존이 목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가나안으로 돌아가야만 자기는 여호와 언약의 장자권을 실현할 수 있고 자식들도 반드시 여호와 언약을 계승하도록 양육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는 종교적 의무감 때문에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을까 두려웠던 것이 아닙니다. 지팡이 하나 들고 하란으로 왔는데 자기에게 자격과 조건이 하나도 없음에도 여호와가 너무나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반면에 여호와 언약 밖에 있는 라반과 그곳 사람들의 우상을 따르는 삶이 현실적 상황이 아무리 더 좋아도 전혀 부럽지 않고 오히려 너무나 불쌍하고 비참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야곱은 지난 20여 년 간 여호와를 떠나면 어디에 있어도 죽음이요 그분과 함께라면 어디에 있어도 생명임을 철저하게 체험했습니다. 그분이 자기에게 명하시고 보증하신 가나안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자기 앞에 기다리는 것은 처참한 실패뿐임을 잘 압니다. 지금 야곱은 자기 혼자 남았습니다. 두 떼 중에 반 떼를 자기가 지키고 피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록 에서에게 줄 예물을 고르기는 했지만(13절) 자기 가축과 가족들 전부 얍복강을 앞서 건너게 했습니다.(22,23절) 소유 전부는 물론 최악의 경우 가족이 해를 입는 것도 각오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자기 전부를 걸고 반드시 끝까지 지키겠다는 결단과 헌신이 먼저 있었기에 이런 끈질긴 씨름 즉, 기도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처럼 믿음이 끈질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천일 제단을 쌓는 교인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주로 두 가지 기도 제목을 갖고 나옵니다. 첫째는 자기가 소원하는 장래 계획을 기도하여 이루려는 것입니다. 둘째는 현재의 고난만 해결해달라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 첫째는 자기 소유를 늘리려는 것이고 둘째는 현재 소유를 잃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이는 야곱이 자기 재산과 생명이 날아가도 하나님의 언약을 끈질기게 지키려 했다는 본문이 가르치고 있는 내용과 완전히 상충됩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지금껏 본문을 두고 끈질기게 끝까지 기도하여서 응답받아내라고 가르쳐 왔고 그것이 틀렸다고는 아니 본문과 다르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영원토록 변함없는 거룩한 경륜을 신자가 이 땅에 그대로 끈질기게 실현시키는 실력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의 구약시대의 믿음의 선진들과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교회의 사도 집사 신자들의 일생을 보십시오. 자기 형통과 안일에 끈질긴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더 나은 본향이 있는 하늘을 소망하며 그 하늘의 뜻을 땅에 실현하는 데에 목숨까지 걸만큼 끈질긴 자들이었습니다. 당신의 언약을 평생을 걸고 이루려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권능과 은총을 넘치도록 부어주지 않을 리 없습니다.

 

야곱은 예수님을 만났다.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보면 야곱이 처음에는 천사인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씨름을 할수록 숨이 가빠지는 것은 분명히 자기였고 천사에겐 힘든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야곱이 포기하지 않고 덤비니까 천사가 환도 뼈를 탈골시켰습니다.

 

환도 뼈는 남자의 생식기를 감싸는 골반으로 생명의 근원을 상징합니다. 말하자면 야곱의 생명을 죽여 버린 셈입니다. 생명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고 앗아가는 이도 하나님입니다. 신자는 그분이 자기를 언제 어디서 죽이든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야곱더러 밤새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반드시 하나님 앞에 자기를 완전히 죽이고 나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위골이 되고 씨름이 끝나도 절룩거렸기에 사실상 씨름의 승패는 그 때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야곱은 비로소 천사인 줄 깨달았고 그래서 날이 새가는 데도 놓아주지 않고 축복의 말을 듣기 원했습니다. 그로선 네가 내일 가나안으로 들어가더라도 에서가 너를 해치지 않고 네 계획대로 재물에 감동받아 너를 용서하고 화해한 후에 자기 갈 길을 갈 것이라고 말해주길 기대했을 것입니다. 최소한 베델의 약속을 재확인해주길 바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엉뚱하게도 야곱의 이름만 새로 바꿔주었습니다. 사기꾼 거짓말쟁이라는 뜻의 야곱이라는 이름 대신에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로 부르라고 합니다. 그런데 “네가 사람으로써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했으니 밤새 야곱이 씨름한 상대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나 천사가 함부로 입에 담을 없는 말입니다. 야곱은 비로소 자기 앞에 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30절)는 뜻으로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칭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체를 보면 아무도 그 자리에 단 일초도 생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더럽고 추한 것과는 단 일초도 공존하지 못하시기에 죄에 찌든 인간은 순간적으로 소멸해서 죽습니다. 야곱은 분명히 하나님과 씨름했는데도 죽지 않았고 축복의 말씀까지 받았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더럽고 추한 이 땅에 오셔서 야곱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준 것입니다. 바로 마리아에게 동정녀 탄생으로 성육신하기 전의 예수님이 마찬가지 모습으로 야곱을 만나 준 것입니다.

 

야곱을 죽이지도 않고 한 손가락으로도 이길 수 있음에도 환도 뼈만 위골 시키고는 하나님이 스스로 물러가준 이유가 이제 명확해졌습니다. 예수님이 한 죄인을 인격적으로 맞대면하여 모든 죄를 용서하고 구원해주신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야곱의 생명을 상징하는 환도 뼈를 탈골시킴으로써 그의 옛 사람을 죽였습니다.

 

야곱이 거부가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감사는 했지만 절대로 자신의 지혜 인내 노력 믿음이 기여했다고 스스로에게 단 한 치의 공로도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라반의 거짓과 흉계가 드러나고 자신의 무죄함이 증명되어서 정직과 성실을 인정받았더라도 혹시라도 스스로 의롭다는 착각도 절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룬 의와 공로와 선행이 인간 사회에서 아무리 칭송을 받았어도 그 모든 것은 주님 앞에 나오는데 당장 태워 없애야 할 역겨운 냄새나는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지금 하나님이 일부러 졌다고 선언해주는 은혜가 없다면 야곱도 라반과 똑같이 당신 앞에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윤리적으로 따져도 장인과 사위 둘 다 천하의 거짓말쟁이였지 않습니까? 우리라고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정상인도 하루에 이백 번 가량 거짓말한다고 합니다.

 

씨름이 끝나도 야곱은 그로 인해 다리를 절었다고 말하는데(31절) 원어로 계속해서 절룩거렸다는 뜻입니다. 평생을 그런 불구가 된 것입니다. 그는 그날 낮에 여호와의 은혜를 받을 자격과 조건이 하나도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기도를 통해 야곱에게 그런 고백을 이미 받았음에도 구태여 그를 불구로 만든 것은 평생토록 그런 고백대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믿음과는 별개로 정직 성실 선하게 살아야합니다. 신자는 그런 선행에도 자기에게 자랑할 만한 요소가 눈곱만큼도 없음을 철두철미 깨달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한 순간도 제대로 살 수 없는 연약하고 비천한 존재임을 고백하는 자입니다. 유대인에게 이름은 그 사람의 특성과 삶과 인생은 물론 그 존재 자체를 상징합니다. 야곱이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도 살아남은 오늘 밤의 체험이 생생하게 기억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이긴 자로서 절뚝거리며 살아가는 것이 야곱의 새로운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패배한다는 것은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당신께서 야곱에게 졌다고 선언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야곱의 집념어린 기도가 응답받은 것이지만 결코 자기 믿음으로 승리한 훈장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신실하게 보호 인도하신다는 당신의 집념을 그의 몸에 각인시켜준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야곱에게도 선포된 것입니다.

 

신자의 신분

 

지금 야곱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신자는 야곱과 같은 체험을 이미 통과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일대일 대면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옛 사람 즉, 자기 위주로 자기만 높였던 삶을 완전히 청산해야 합니다. 성령이 간섭하면 그렇게 됩니다. 세상과 사람들이 자기 위주로만 돌아가야 한다는 고집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그 전에 정말로 하나님 앞에 전혀 무익하며 죽을 수밖에 없는 천하의 죄인임을 절감하고 진정으로 토설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신자가 된 후에도 환도 뼈가 부러져서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높이려는 것은 바로 죽음이므로 세상에서 궁핍하고 후패하여 모멸과 멸시 비방을 받더라도 그렇게 평생을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절감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야곱이 끝까지 예수님에게 물고 늘어진 까닭이 자기 생명을 살리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장자로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헌신 나아가 순교의 뜻이었습니다.

 

이날 밤에 일어난 야곱의 변화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 전에는 세상에선 정상이고 아주 거부로 의로운 자였으나 하나님 안에서 아직도 절름발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한 후로는 세상 사람들 안에선 절름발이가 되었으나 하나님 안에선 당신을 이긴 자로 세워진 것입니다. 그것이 신자의 신분과 특권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세상에선 네가 사기꾼 야곱으로 불리더라도 나는 너를 항상 나를 이긴 이스라엘로 부르겠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이날 밤 이후로는 너도 나를 이긴 자로 살아가라는 것이며 또 그렇게 하라고 절뚝발이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너를 평생을 떠나지 않는다는 가시적이고 확실한 징표이므로 절룩거릴 때마다, 즉 어떤 고난이 닥치고 세상에서 온갖 멸시를 받아도 너를 이길 자는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긴 너를 어느 누구도 이길 수도 없으며 내가 너를 패배하도록 절대 버려두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 들어온 모든 신자도 이미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이전과 전혀 달라졌습니다. 천하의 사기꾼 강도 살인자라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그 인생이 완전히 뒤집어집니다. 우리의 의와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결단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념어린 사랑과 긍휼이 우리의 완악한 고집 불신 패역을 이긴 것입니다. 우리 속에 견고한 사탄의 진을 성령이 역사하여 무너뜨린 것입니다.

 

야곱과 라반처럼 천하의 죄인이었던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당신의 자녀로 삼아서 사탄과 세상에 승리하는 자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더러 당신은 물론 사람들과 겨뤄서 이겼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신자를 그렇게 세웠으면 당신의 언약대로 살아가면 모든 것을 당신께서 책임지지 않을 리는 없습니다. 신자가 할 일은 사람과 흑암의 세력 앞에 하나님과 겨뤄 이긴 자라는 신분과 권능으로 당당하게 맞서라는 것입니다. 이날 밤 야곱이 사람들과 씨름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그럴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말씀으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7-39)

 

여러분 이런 확신이 있습니까? 또 그 확신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금 내가 현실적으로 어떤 모습이든 예수님을 보배로 모시고 있기에 세상의 흑암의 세력 앞에 당당하게 서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춰내고 있습니까? 최소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강과 기쁨과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까?

 

(8/30/2020)


날마다순종

2020.08.30 17: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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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 나됨이 오직 아버지의 은혜임에 감사드리며 저의 삶을 통해 아버지의 계획된 뜻이 이루어져 아버지의 영광이 장차 드러날 것을 확신하여 찬양드리며 이에 겸비하여 순종하기를 간구합니다. 성령님, 아버지의 계획에 합할 수 있는 자녀될 수 있도록 매사에 도와주옵소서.

말씀 감사합니다.

녹두새

2020.09.03 05:34:59
*.92.33.4

야곱을 이스라엘로 그 이름을 바꿔주시고

날이 새도록 야곱을 단련하시어 세우시어 하나님의 계획하심 대로 그 뜻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찬양 합니다.

코람데오 하나님을 항상 바라보며 순종과 열심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감사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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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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