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6:11-13) 하나님의 예정에 들었다고 확신하는가?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2)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창16:11-13) 

 

두 번이나 큰 은혜를 받고도? 

 

하갈은 아브라함의 아들을 잉태했다고 교만해져서 여종이자 첩인 주제에 주인이자 본처인 사라를 멸시했습니다. 분노한 사라가 아브라함의 허락을 받아 하갈을 학대하자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중에 우물가에서 천사를 만났습니다. 그 천사는 네가 낳을 아들이 큰 민족의 선조가 될 것이므로 주인 사라에게 돌아가서 복종하라고 명했습니다. 

 

천사는 그 아들의 이름을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었다”는 뜻으로 이스마엘로 지으라고 계시해 주었고 또 그래서 하갈은 여호와를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어서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라고 하며 아주 놀라워했습니다. 하갈이 놀라서 한 말의 히브리 원문은 번역하기에 까다로운데, “나를 보고 있는 그분을 정녕 내가 지금 보고 있는가?”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나를 보고 계시는 분을 어쨌든 천사를 통해서 내가 지금 만나고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7절)라는 말씀으로 이 사건에 대한 설명을 시작합니다. 천사 쪽에서 하갈을 만나려고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거나, 불쑥 먼저 찾아와 주었다는 뜻입니다. 하갈이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와 상황에서 천사를 만났습니다. 자기를 돌봐주거나 관심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절망에 빠져있는데 여호와라는 존재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었다니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다 그 여호와가 현재의 자기 형편과 심정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홧김에 순간적으로 집을 뛰쳐나오긴 했으나 앞으로 여자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려니 앞이 깜깜했을 것입니다. 아니꼽긴 해도 아이를 위해서 다시 돌아가 사라에게 잘못했다고 빌어볼까,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자기가 궁리하고 있는 그대로 하라고 지시했고 또 아이 장래도 확실하게 보장해 줄 것이므로 안심하라고 하니까 너무 신기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녀는 그런 궁핍한 처지에서도 애굽에서 섬겼을 우상 신에게는 전혀 기도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모든 우상 신은 개인이 일대일로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반드시 풍성한 제물이나 지극한 정성을 바치면서 주술사나 사제를 통해서 신탁만 대신 의뢰해야 합니다. 신은 또 산당이나 성전에 좌정해 있는 존재인데 광야 길에 지친 자기에게 먼저 신이 찾아와 주었으니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나중에도 이와 동일한 은혜를 여호와께 받습니다. 물이 없어서 죽을 지경에 이른 자신과 아들을 하나님이 먼저 살려주었고 이전의 약속을 재확인해 주었습니다. 자신을 살피는 여호와는 애굽의 모든 신과 차원이 아예 다른 존재라고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여호와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직접 두 번이나 받고도 그분을 믿지 않을 수 있다니 그것이 오히려 더 놀랍고 신기하지 않습니까?

 

택함 받지 못한 하갈 

 

그 답은 조금 어렵긴 해도 아주 간단합니다. 하갈은 하나님의 구원 예정 안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 의견이 아니라 성경이 선언하는 바입니다. 이스마엘은 약속의 씨가 아니라고 하나님이 직접 밝혔으므로(창21:12) 그를 낳은 하갈도 당연히 그러합니다. 그러면 당장 심판으로 미리 결정해 놓은 하나님은 불공평하고 인간인 하갈과 이스마엘의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는 반박이 나옵니다. 

 

예정은 설명하자면 날이 샐 정도로 아주 복잡한 주제입니다. 그런데 문제의 해답을 의외로 쉽게 성경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모자를 택하지 않은 하나님의 뜻이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12절)는 말씀에 숨겨져 있습니다.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된다는 것은 가장 힘세고 난폭한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또 그의 손이 먼저 모든 사람을 치니까 자연히 모든 사람도 그를 치게 됩니다. 이스마엘과 그 후손으로 많은 민족 사이에 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스마엘이 약속의 씨로 예정되지 않은 까닭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포악한 죄인으로 만들어 갈 계획을 미리 세웠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는 단지 평소에 하갈이 가진 생각이나 소망대로 그 아들에게 이뤄질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심령의 가장 깊숙한 곳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이라 하갈의 인생관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녀의 인생관은 이 땅이 전부이므로 세상에서 힘이 센 자가 되어 형통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종의 신분이었던지라 더더욱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지위가 높아지길 소원했고, 자신이 그러지 못하면 최소한 자기 자식이라도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인 아브라함의 아이를 잉태하자 이제 나름대로 소원을 성취했다고 여기고 한껏 교만해져 사라를 멸시한 것입니다. 또 그래서 나중에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해도 그대로 두었고, 어쩌면 그렇게 하라고 부추겼을 수도 있습니다. 하갈이 여호와께 놀라고 신기했던 까닭은 최고로 높아지려 하는 탐욕스러운 자기 속내까지 완전히 들킨 것 같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늘에서 다 살피고 있을 뿐 아니라, 심령의 생각까지 꿰뚫어 아시는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천사를 직접 만나서 알게 되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상인이라면 가장 먼저 그분 앞에 완전히 겸손히 엎드리며 경배할 것입니다. 다윗은 “이 지식(하나님이 자기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시139:6)라고 고백하면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러나 하갈은 여호와께 경배하기는커녕 놀라고 신기하게만 여겼을 뿐입니다. 천사가 아니면 여호와가 애굽의 주술사나 점쟁이처럼 자기 장래 일을 맞춰주었으니까 그대로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자신의 소망과 인생관에 일치하니까 더더욱 이스마엘을 강하게 키웠고 또 그렇게 되라고 애굽 여자와 결혼시켰습니다. 하갈로선 아무리 따져도 아브라함의 장남인 이스마엘을 그 집안의 검소하고 경건한 관습을 따르게 두는 것보다는 애굽 남자로 키우는 것이 그의 앞날의 형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요컨대 이스마엘이 모든 형제와 다투더라도 들나귀처럼 사람 중에 가장 강력해지기만 하면 좋다는 생각입니다. 

 

하갈처럼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고도 완전히 입을 싹 닦을 뿐 아니라 거꾸로 대적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귀신이 들린 중년 남자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쫓아낼 수 없다가 마지막으로 교회에 나와서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서 나았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출석하지 않는 사람을 실제로 주변에서 보았습니다.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도 꿈쩍도 하지 않던 귀신이 인간 목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쫓겨 나갔다면 그 예수가 누구인지 알아보려고는 해야 하나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싹 달라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관심은 빨리 눈앞의 고난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갈의 속내뿐 아니라 물질적 인생관에 묶여서 절대로 회개하고 당신께 돌아오지 않을 것까지 아셨습니다. 말하자면 하갈과 이스마엘을 미워해서 차별하기 위해서 구원으로 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자에게 당신을 알 수 있도록 아브라함의 집에 보내고 또 두 번이나 구원해 주는 등, 하나님으로서 충분한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가 옳고 좋게 여기는 대로만 살았습니다. 참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는 자리에서 단 한 번도, 단 한 치도 그분께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스스로 적극적 능동적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역 대적한 자신의 죄로 심판받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의 구원 예정과 인간이 자기 의지로 살았던 평생의 삶이 절대로 도덕적 영적 차원에서도 상호 모순 상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갈과 같은 처지의 여인. 

 

성경에는 하갈과 같은 처지였으나 하나님께 정반대되는 반응을 보인 여인이 룻 외에 한 명 더 있습니다. 천사를 보내지 않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직접 우물가에서 만나 주신 수가성의 한 불쌍한 여인입니다. (요4:1-42) 예수님은 그녀를 만나려고 반역한 매국노의 땅이라고 유대인들이 출입도 하지 않는 사마리아에 일부러 들렀습니다. 또 그 여인이 아무도 없는 정오에 물을 길으러 나오는 줄 알고 미리 가서 기다렸습니다.

 

주님이 먼저 물을 좀 달라고 말을 건네자 그 여인도 크게 놀랐습니다. 유다 출신의 정통 유대인들은 말씀드린 대로 사마리아로 여행하지 않습니다. 거기다 유대 남자는, 그것도 랍비는 여자에게 그런 요청은 물론 말도 걸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 여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라고 기록한 그대로입니다.(요4:9)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은 여인으로 더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주님은 그녀에게 육신의 갈증만 일시적으로 해소하는 물리적 물이 아니라, 영혼의 갈증을 영원히 해소해 주는 생수에 관해 가르쳤습니다. 내가 지금 너에게 물을 달라고 요구하지만, 사실은 네가 나에게 생수를 달라고 청해야 옳다고 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이 범상치 않음을 깨닫고선 이 우물은 남북 왕국으로 나눠지기 전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선조인 야곱의 우물인데, 이름 없는 유대 랍비 주제에 지금 그 야곱보다 더 크다고 말하는 셈 아니냐고 넌지시 따졌습니다. 

 

주님은 그녀에게 “이 물(야곱이 주는 이 땅의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넘어서 실은 영원한 구원과 심판을 나누는 하나님이므로 야곱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녀는 그 말씀의 구체적인 뜻을 정확히는 몰랐어도 주님에게서 범접할 수 없는 성령의 권능을 느꼈기에 자기도 모르게 그런 영원한 생수를 당장 마시고 싶다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달라는 물은 안 주고 뜬금없이 그녀의 남편이 다섯 있었으나 지금은 또 다른 남자와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로선 지금껏 주님과 나눈 대화 중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최고로 놀랐을 것입니다. 어떤 언질도 힌트도 준 적이 없는데도 주님은 자신의 모든 행적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주님이 주술사나 점쟁이가 아닌 것이 확실했으므로, 그렇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선지자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강하게 들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그녀의 첫 반응이 놀랍고 흥미롭습니다. 자신의 한 많고 고달픈 신세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참 하나님을 만나서 참된 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마리아는 북 왕국으로 나눠질 때부터 여로보암이 우상과 그 신전을 세워서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여호와께 제사하러 가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 후로도 악한 왕들이 계속해서 우상 숭배를 주도했는데 실은 백성들도 신나게 따랐습니다. 

 

이 불쌍한 여인에게 사마리아인이라 동족으로부터 멸시받았던 일과 개인적으로 힘든 현실을 벗어나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였습니다. 다시는 목이 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수를 자기도 마시고 싶다고 했듯이 정말로 참 하나님을 만나서 참된 예배를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굳이 예루살렘까지 안 가도 된다고, 즉 예배드리는 장소나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분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중요하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정확히 알고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하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깨우쳐 주었습니다. (요4:21-24) 하나님이 당신과 당신의 구원에 대해서 알게 해주려고 이 땅에 인간 랍비로 오셨는데, 지금 네 눈앞에 서있는 당신이 바로 그 하나님이라고 선언한 셈입니다. 

 

남편이 다섯인 이유

 

수가성의 여인이 남편을 다섯 명이나 갖게 된 사정이 무엇이겠습니까? 우선 사마리아에선 계대결혼을 철저히 지켰기에 남편이 자식을 낳지 못하고 일찍 죽어서 다섯 시동생과 연달아서 재혼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정말로 그랬다면 그야말로 남편과 자식을 잡아먹는 마귀가 낀 사악한 여인이라고 멸시 천대 받았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긴 드물기에 시동생 한둘과 재혼했다가 아이가 계속 없자 그 집에서 쫓겨 나왔고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새 남편들을 맞았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지금 함께 사는 남자가 남편이 아니므로 마지막 다섯째 남편에게 이혼 증서를 받지 못했거나, 지금 남자와 정식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녀는 계속해서 남편으로부터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끊임없이 멸시 천대 받았습니다. 자신이 정말로 하나님께 저주받아 도저히 구원받을 길은 없는지 따지고 싶어서 주님께 참 예배에 관해 물어본 것입니다. 

 

이 수가성의 불쌍한 여인이 흘린 눈물은 하갈보다 엄청 더 많았고, 받은 상처도 훨씬 더 깊었을 것입니다. 하갈은 나름대로 남편 아브라함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며 사라의 학대만 견디면서 아들을 낳아주면 팔자가 완전히 펴집니다. 수가성 여인은 지금 같이 사는 남자도 이전 남자들처럼 언제 자기를 버리고 떠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남자와 끝까지 잘 살아서 남편 잡아먹는 재수 없는 여자라는 오명만은 꼭 벗고 싶었을 것입니다. 

 

동네 사람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려고 아무도 물 뜨러 나오지 않는 한낮에 조용히 우물가로 나왔는데 예상치 못하게 자기 모든 사정은 물론 참된 예배에 대한 마음속 깊은 소망까지도 꿰뚫어 알고 있는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하갈처럼 자기를 살피는 하나님을 뵌 것입니다. 

 

그러나 두 여인의 반응은 정반대였는데 각자의 인생 목표가 정반대였기 때문입니다. 하갈은 자기 힘든 형편에서 건져주고 세상에서 형통하게 해주는 신만 찾았기에 여호와를 전혀 따르지 않았습니다. 수가성의 여인은 하갈과 비교할 수 없이 처참한 상황인데도 현실의 어려움은 오히려 뒷전이었고 참 하나님으로부터 참 구원을 받기만을 진심으로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하갈이나 그녀나 천사와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각자 자기 이성으로 대화를 이어가며 모든 사정을 자기 스스로 분별했습니다. 둘 다 이 땅의 현실에서 범사에 자기들 자유의지대로 행동했으나, 영적인 차원에선 완벽하게 하나님의 택함에 따라서 구원과 심판으로 나뉘었습니다. 

 

예정론의 본질

 

설명하자면 끝이 없는 하나님의 구원 예정에 대해 확실히 해둘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로 성령의 간섭으로 거듭나서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신자는 하나님이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을 당신의 자녀로 택해주셨다는 사실에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가성 여인도 예상치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자기가 나오는 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우물가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먼저 영원한 생수와 예배와 구원에 관한 대화를 주도했습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 하나하나가 자기 가슴에 꽂히면서 큰 기쁨과 평강이 넘치고 영적인 각성까지 절로 생겼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만나러 계획해서 미리 오셨을 뿐 아니라, 자신의 모든 지난 과거도 잘 아니까 자신을 구원으로 미리 택하여 놓았다는 사실도 깨닫고 더더욱 감격 감사했을 것입니다. 

 

흔히들 예정론을 예수님이 가르친 진리가 아니고 바울이 고안한 신학적 이론이라고 반박합니다. 수가성 여인이 구원받은 경위를 읽고도 그렇게밖에 해석하지 못하면 그 지성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바울은 이 여인보다 더 극적으로 예정의 구원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를 믿으려고 소망 계획은커녕 꿈도 꾸지 않았고 아예 이단이라고 정죄하며 극렬히 핍박했던 예수님의 철천지원수였지 않습니까?

 

스데반의 기독교 최초의 순교를 주도하고선 성에 안 차서 다메섹의 예수 믿는 신자를 박해하러 갔습니다. 그러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완전히 삼 일간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그것도 마땅히 박해해야 한다고 여겼던 나사렛 이단 예수 일당의 이름 없는 신자가 와서 안수기도해 주자 곧바로 되살아났습니다. 

 

그 삼 일 사이에 스스로 그렇게 자랑했던 로마 시민권, 가문, 학벌, 율법의 의로움, 하나님을 위한 열심 등 모두가 쓰레기를 넘어서 배설물로 바뀌었습니다. 자기가 죽을 판인데 그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었고, 나아가 그 전부가 남에게 자랑하려고 자기를 치장하는 헛된 것들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부활 예수님을 보자 그가 모든 인간의 영원한 구원과 심판을 주관하는 하나님이고 십자가 대속 죽음이 모든 인간에게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깨달았습니다. 

 

곰곰이 따져보니 예수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기 전부터 자기를 알고 계셨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자기를 율법의 전문가로 양성시켜서 십자가 은혜의 복음과 가장 정확하게 대조하여 가르치는 사도로 세우기 위해서 그를 태에서부터 택한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행적을 하늘에서 살펴보고 계셨고, 아니 그런 인생을 살도록 주님이 주도하셨다고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체험에 찬 확신에 따라서 로마서와 에베소서 등에서 토기장이와 토기의 비유를 들어서, 사실은 이미 구약의 예레미야나 에스겔 선지자가 선포했던 진리임, 예정론을 가르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정론을 바울에게 말로 설명하지 않고서 인격적으로 일대일로 대면하셔서 실험 교육으로 가르쳐 주었고 바울은 그것을 신학적으로 풀어서 기록했을 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위인들이 예정 구원이 아닌 경우는 단 한 명도 없고 그들 또한 하나님의 택하신 은혜로만 구원받았다고 확신했습니다. 예정론을 믿어야만 구원받는다거나, 예정론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다고 해서 구원 못 받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예정론이 옳으니 그르니 핏대 세우며 논쟁할 필요도 전혀 없고 상대 진영을 이단이라고 매도해서도 절대 안 됩니다.

 

구원은 예수님이 주시므로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던 철천지원수였기에 예수를 믿을 생각이 전혀 없던 자에게 성령의 간섭이 먼저 임하여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앞에 눈물 흘리면서 엎드리게 해줍니다. 그러면 신자도 부끄럽고 추악했던 자기 전부를 완전히 벌거벗겨서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자신이 소망 계획 주도한 적이 전혀 없었으므로 하나님이 나를 구원으로 택해주셨다고 확신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심판은 예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구원으로 예정했으면 나머지는 심판으로 예정한 것이고 또 그러니까 기독교의 하나님은 비정하다고 반박합니다. 이 또한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모든 이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도 찾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한 명의 예외 없이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며 이 땅만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기에 그분의 진노 아래 죽어 마땅합니다. 

 

모든 자연인은 하갈처럼 자기와 자기 가족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돈이 많아서 최고로 형통하겠다는 것만을 죽을 때까지의 인생 목표로 삼습니다. 그런 인생관에 부합하고 자기들 삶을 형통케 해주는 신만 믿습니다. 하갈이 애굽의 우상 신을 끝내 놓지 못한 이유이고 십계명의 둘째 계명이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한 까닭입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당신을 거역하는 자 중에 구원해 줄 자만 예정한 것입니다. 예정에 든 자를 편애하여 특혜를 베푼 것이 아니며, 예정에 누락 된 자들을 미워해서 차별한 것도 아닙니다. 수가성 여인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영원히 갈급하지 않는 생수를 알게 되자 곧바로 동네로 뛰어가서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큰소리로 전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받은 여인이라고 손가락질하던 동네 사람들에게 대놓고 그녀가 거꾸로 그분의 구원으로 초대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성령의 간섭으로 생전 처음 자신이 절대로 이 땅에 홀로 완전히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속 살펴보신 그분의 자녀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대면해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자신의 더럽혀진 육신과 정신과 영혼이 조금씩 깨끗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그 추하고 암울하고 비참했던 과거를 다 아시고도 아무 조건과 차별 없이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가슴 벅찬 기쁨이 속에서부터 끊임없이 흘러넘쳤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영원히 마르지 않는 하늘의 생수를, 주님과의 인격적 대면을 통해서 마신 것입니다. 

 

그 기쁨을 혼자서만 간직하기에는 너무 벅찼고 또 성령에 이끌리어 자리를 박차고 동네로 뛰어갔습니다. 비록 자기를 사람 취급 하지 않고 멸시했던 동네 사람들도 자기만큼 불쌍한 자들임을 깨달았습니다. 로마와 유대인들의 멸시를 받았고 그런 가운데에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는 아주 연약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참 예배와 참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 비참한 죄인이라 그들 모두도 어서 빨리 내가 만난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바울처럼 믿음과 영성이 뛰어나도 누가 예정 받았는지, 누가 예정에서 소외되는지 끝까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완전한 주권으로 어떤 편애하는 구원이나 어떤 불공평한 심판도 허락하지 않으니 궁금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세상 땅끝까지 끝 날까지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서 십자가 복음을 가르쳐서 그들로 지키고 행하게 하라는 지상 대명을 주셨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택함으로 이뤄지는 구원이므로 시공간에 울타리가 없으며 인간 외모로도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갈과 수가성 여인의 영적 상황은 하나님의 참사랑 밖에 있으며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갈은 이 땅에서 형통만을 목표로 삼았기에 자기 의지와 이성으로 참 하나님을 끝까지 대적했습니다. 수가성 여인은 이 땅에서 아무리 멸시 핍박받아도, 아니 그럴수록 참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소망했기에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드렸습니다. 사람은 자기 행한 대로 구원과 심판으로 나뉠 뿐입니다.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절대적 선택과 또 각 사람의 인생을 주도하는 그분의 섭리는 눈곱만큼의 하자도 없이 완벽합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모두 심판받아 죽어야 하는 가운데에 구원으로 택한 자를 통해서, 이 수가성의 여인처럼 죄 중에 있는 다른 자를 구원하시길 기뻐하십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성령으로 거듭난 자라면 자신의 형편이 어떠하든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또 본질적으로 거룩한 하나님을 싫어하고 대적하는 세상으로부터 계속해서 핍박받을 수밖에 없고 때로는 순교도 당합니다. 

 

만약 그러기 위해서 구원으로 예정했다고 미리 가르쳐 주면 아무도 예수를 믿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하갈처럼 세상에서 최고로 높아지려고만 하지 거룩하게 살려고는 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적 택함으로 구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택한 자들을 수가성 여인이나 바울처럼 절망에 빠트려 자기 자아를 철두철미 완전히 깨트리게 만든 후에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택한 자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경륜이 바로 예정 구원의 핵심이자 본질입니다. 그 비겁하던 베드로가 오순절에 주님을 매달았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겁도 없이 당당하게 설교하며 삼천 명을 회개시킨 것이 바로 예정에 따른 결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이 결코 하갈을 꾸중하거나 수가성 여인을 칭찬하려는 단순한 뜻이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정말로 하늘에서 살피시는 하나님이 태초부터 자신을 택하여 구원으로 인도해 주셨다고 확신합니까? 단순히 구원받았는지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택함에 의해서 구원받았음을 온전히 체험적으로 깨달았는지 묻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서 더 이상 염려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택함으로 구원받은 모세 다윗 베드로 바울 등은 출생에서 죽음까지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그들 개인의 형통과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인류 구원 계획에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본인들도 그분을 증거하는 사명이 너무 귀하고 즐거워서 목숨까지 걸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인생을 정말로 살고 싶다고 소망합니까? 정확히 말해선 하나님이 그런 영광된 인생 여정에 이미 이끌어 들이셨고 주님이 지금 그렇게 이끌어가고 있다고 매일 체험하십니까?

 

(9/8/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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