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일을 두고 양쪽의 기도가 상충하면?
[질문]
한 가지 목표나 문제를 두고 크리스천들의 기도가 서로 상충되는 경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요? 한쪽의 기도만 들어줄 경우 다른 쪽은 큰 피해를 보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올수도 있지 않습니까?
예1) 회사에서 승진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는데도 크리스천들이 자신의 미래와 경제적으로 유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진심으로 기도를 드리는 경우
예2)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님의 탄핵 때, 크리스천 보수 쪽은 탄핵철회를 위해서 반대로 크리스천 진보 쪽에선 탄핵통과를 위해서 양쪽 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다며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상황
예3) 전쟁 중에 양쪽 진영의 크리스천 군인들이 자신의 국가의 미래를 위해 간절히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경우
예4) 탈락자가 생기게 마련인 상대평가 시험에서 크리스천 수험생들 모두합격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경우
예5) 한쪽은 지게 마련인 스포츠 경기에서 양쪽 크리스천 선수들이 승리를 위해 말하자면 상대의 패배를 위해 기도하는 경우
[답변]
대부분의 신자들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예로 드신 상충되는 기도를 간절히 하고 있습니다. 양쪽 다 순전한 믿음을 가졌고 실제로 그렇게 해결되어야 할 절실한 문제들입니다. 그럼 과연 하나님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어야 할지 난감해 하실까요? 평소에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하고 모든 모임에 개근하며 전도도 많이 하는 신자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이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아심이 생기는 까닭은 하나님이 이 땅과 당신의 백성들을 다스리는 원리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그 원리에 합당하게 기도를 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다스리는 원리와 상충되는 방향이나 모습으로 기도하면 사실상 아무런 응답이 따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이 땅과 당신의 백성을 어떤 원리를 갖고 다스릴까요? 우선 “만물이 다 그(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는데 ... 만물을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시려는”(골1:16 & 20)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는”(엡1:10) 방식으로 하나님은 인류 역사는 물론 각개인의 인생을 이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일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주님의 초림 후 그 때까지는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 구원의 도)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실”(벧후3;7)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고 명했습니다. 더 많은 이로 당신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오게 하고 그 당신의 백성들로 이 땅에 당신을 머리로 모시는 구원공동체를 설립 확장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더 확장되는 방향으로만 세상만사를 주관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기도하는 제목들도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그 목적에 맞춰서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일들이어야 하고 그래야 온전히 응답될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해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지는 모습과 직접 연관되지 않는 일상적 삶의 경우는 하나님이 굳이 개입 간섭하지 않으시고 신자의 자유로운 판단 결정 시행에 맡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껏 하나님이 세상만사를 주관하시고 신자는 모든 일을 그분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고 배워온 것과 조금 상충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몇 가지 분명히 해둘 사항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만사를 주관 통치하시는 것은 맞지만 능동적으로 주도하는 일과 신자의 재량에 맡겨놓은 일로 나뉩니다. 심지어 불신자나 흑암의 세력의 훼방도 묵인하는 것까지 그분의 통치에 포함됩니다. 그 중에 신자의 삶에 직접 개입하여 능동적으로 주도하는 일의 비중이 가장 낮습니다.
따라서 신자가 일일이 어떤 일을 행하기 전에 그분 뜻을 묻고 그대로 순종해야 할 필요는 없고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부터 당신이 주도하는 일마저 신자에게 미리 다 구체적으로 계시해 주시지 않습니다. 그랬다간 신자는 자율적인 인격을 갖춘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무전기로 교신 받은 대로만 움직이는 로봇이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범사를 신자의 자유의지대로 맡겨 놓고도 당신의 계획을 한 치의 오차 없이 달성하십니다.
하나님의 직통 계시는 성경이 완비되지 않았고 성령도 일시적 부분적으로만 역사하던 구약시대에 그것도 아주 비상한 경우에만 이뤄졌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성경이 완비되었고 성령님이 각 신자에게 내주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를 믿을 때에 하나님 중심적으로 회복된 이성을 사용하여서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면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분별하는 일도 가능해졌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신자들은 개별적 현실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지며 또 어떤 일이 자기 책임으로 맡겨져 있는지 정확히 구별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기도해야 하나 최소한 기도하기 전에 지금 기도할 내용이 과연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데 직접 연관이 있을지, 아니면 내 스스로 판단 시행해도 되는 일상적 일인지에 관해선 진지하게 묵상해봐야 합니다. 계속 기도하는 중에라도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달라고 겸손히 엎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도하는 중에 깨닫게 해주거나 모든 되어져 가는 상황 속에서 올바른 기도를 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징조와 사인을 주십니다.
그래서 신자의 기도는 크게 세 단계로 발전되어져야 합니다. 첫째 무엇이든 자기가 소원하는 바를 기도하는 것(give me), 둘째 자신을 거룩하게 변화시키고 주의 종으로 준비시켜 달라는 기도(change me) 마지막으로 자신을 당신의 뜻과 계획대로 맘껏 사용해 달라는 소명자의 기도(use me)가 그것입니다. (이에 대해선 아브라함을 통한 기도시리즈 설교에서 자세히 설명했으며 아래에 링크했으니 참조바랍니다.)
성숙한 신자라면 첫째 기도는 긴급한 문제나 고난이 아니라면 거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상적 삶은 자기 지정의를 사용해 자기 소원과 재량과 책임 하에 성경적 원리에 부합되게끔 행하면 됩니다. 대신에 모든 기도를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이 세상 앞에 더 드러나고 그분의 나라가 확장되어서 성도는 물론 불신자들에게도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행해야 합니다. 이런 원리에 따라 예로 드신 다섯 경우에 하나님의 뜻과 기도하는 내용의 상관관계를 따져보고 기도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분별해 보도록 합시다.
케이스 1: 회사에서 승진 문제
신자도 세상 안에서 세상 방식대로 열심히 돈을 벌며 살아야 합니다. 그 궁극적인 신분이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고 신자답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만 하지만 실제 삶의 방식은 일반인과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회사에서의 승진은 기도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신자도 최선을 다해 실력을 쌓고 부정 불법을 행하지 않으며 성실하고 정직한 방식으로 회사가 바라는 업적을 쌓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회사의 공정한 인사고과에 의해 승진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승진에 누락되는 자는 다른 쪽의 기도에 의해서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실력과 업적에서 뒤진 것입니다.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승진 안 될 사람을 승진시켜 주거나 승진되어야 할 사람을 누락시키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신자의 기도가 약자를 도태시키는 일이 절대 아니라 정상적인 신앙생활의 일환일 뿐입니다. 만약에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인사고과가 성행하는 회사라면 신자로선 그 회사에 계속 근무해야 할지부터 근본적으로 고민해봐야 합니다. 현실적 경제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남아 있어야 한다면 억울하게 손해 보더라도 신자답게 정직하고 성실하게 근무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승진된다고 해서 기도와 하나님과는 직접적으로 무관한 문제입니다. 평소에 불신 세상 앞에 신자답게 근무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일이며 신자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케이스 2. 대통령 탄핵지지 혹은 반대의 기도
신자도 개인적으로는 특정한 정치적 의견을 지지하면서 정치활동에 참여해도 됩니다. 또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탄핵이 통과 혹은 저지 된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지는 일은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통상 일어나는 세상적인 일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지지하는 성경적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당신의 원론적인 뜻을 계시되어 있고 또 신자더러 그대로 실천하길 원합니다.
문제는 그분의 의견이 보수나 진보 양쪽 다 부분적으로만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공산주의 반대, 사유재산의 인정, 공정한 경쟁보장, 경제성장 이익의 사회 환원, 전통적 가족제도와 순결한 성정체성과 남녀관계 등은 보수주의의 중요 내지 더 강조하는 정책입니다. 인권과 자유의 보장과 확대, 노동자 여성 소수민족 같은 소외계층의 차별금지 및 복지증진, 빈곤국에 대한 원조 증대, 지구온난화 방지 등은 마찬가지로 진보주의가 더 강력히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모두를 성경은 지지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행하는 정치는 부분적 상대적 일시적 효과만 나타낼 뿐이므로 어느 한 쪽만 하나님을 대변하는 진영이나 정책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서로 번갈아가며 정권을 잡아서 상대의 장점을 살리고 자기 단점을 보완해주어야 합니다.
신자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이 한 쪽으로 정치의견이 쏠리고 또 그렇게 기도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세상만사를 종합적 장기적 거시적으로 당신의 뜻에 합당하면서도 조화롭게 통치하시는 하나님만 소망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쪽으로 결정되든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일단 결론이 난 후에는 상대 진영과 교류 화합 협력해야 합니다. 정치적 사안에서도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에게 맡겨두시되 신자들의 상충되는 기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방향으로만 이끄실 뿐입니다.
케이스 3 전쟁 중의 기도
전쟁은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죄악입니다. 양쪽의 이해가 충돌하여서 일어난 전쟁이라면 아무리 기도해도 어느 한쪽을 편들어주지 않습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수탈 점령할 탐욕으로 일방적으로 침입했다 해도 당장 그 나라를 멸망시키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로마 제국이 결국은 멸망했지만 아주 오랜 기간 이 땅에 사악한 나라의 대명사로 군림했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 핍박 받던 신자들이 로마의 멸망이나 최소한 박해 중지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생전에 응답받지 못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는 뜻입니다. 모든 역사를 하나님이 종합적으로 주관하시되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목적과 방향으로만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지만 로마로 인해 문화와 문명의 발전은 물론 기독교의 부흥이 증진된 것은 사실입니다. 궁극적으로 심판 받을 자와 나라는 하나님이 당신만의 때와 방식으로 심판하시며 또 그분의 공의에는 단 한 치의 불합리 불공평 모순 하자가 없습니다. 그분의 온전한 뜻을 미리 알 수 없는 신자로선 전쟁이 속히 종식되고 기독교 박해도 중지되며 독재자가 멸망하고 양 당사자 중에 더 사악한 세력이 패배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신자를 모든 고난에서 제외시키려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나라들 앞에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하고 또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수고 희생 고난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신자는 고난을 없애 달라는 기도도(give me) 해야 하지만 그 전에 자기를 변화시키고(change me) 자기를 들어 사용해 달라는(use me) 기도부터 해야 하는 것입니다.
케이스 4 수험생과 5 스포츠 경기
이 둘은 케이스 1의 회사 승진 문제와 맥락이 같습니다. 평소에 열심히 훈련 준비해서 실력을 쌓아야 하고 정당한 방식으로 시험치고 승부를 겨뤄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신자개인에게 완전히 맡겨졌기에 기도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므로 사실상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간혹 운이 작용해 열심히 실력을 쌓은 쪽이 불합격하거나 패배할 때도 있지만 그대로 승복해야 합니다.
합격이나 승리를 위한 기도는 해야하지만 반드시 그전에 혹은 동시에 해야 할 기도가 있습니다. 지금껏 쌓은 실력이 온전히 발휘되고 아무도 부상당하지 않고 깨끗한 승부로 결말이 나서 서로 승복하며 더 화합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에 떨어지거나 시합에 지는 신자가 기도했는데도 그렇게 되었다고 하나님께 원망한다면 그 믿음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평소에 실력을 쌓지 못했거나 정서적 불안으로 실력을 발위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시험이나 시합 전에 기도하여서 담대하게 시험과 시합에 임할 수 있는 것도 믿음입니다.
신자가 합격하고 불신자가 불합격했다고 해서 또 신자로 이뤄진 팀이 불신자로 이뤄진 팀을 이겼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런 기복주의 신앙은 철저히 비성경적입니다. 신자는 어떤 전공을 택해서 어떤 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것인지 부터 결정 준비 훈련 헌신해야 합니다. 신자 팀이 매너 좋게 최선을 다해 승부를 겨루다가 패배해도 깨끗이 승복하고 오히려 승자를 더 축하해줄 때에 그리스도의 이름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다시 강조합니다. 일상적 현실은 신자 재량에 맡겨져 있습니다. 신자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신자답게 행하여서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하지 말아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실현해야 합니다. 자기 맡은 일로 인간 사회 발전에 큰 유익을 끼쳐야 하며 바로 그것이 이웃사랑이라는 아주 중요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로 든 다섯 케이스는 단순히 자기 뜻대로만 행해달라는 가장 기초적인 기도에 불과합니다. 그 전에 신자 자신의 재량에 맡겨진 일이라 하나님이 적극 개입하지 않으며 양쪽의 상충되는 기도에도 전혀 곤혹스러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분은 신자의 심령 깊숙한 곳까지 다 꿰뚫어 보시고 평소에 누가 더 신자다운지 앞으로 누가 어떻게 당신을 위해서 헌신할지도 다 아십니다. 다섯 케이스 다 절대적으로 공평한 당신의 판단에 따라 행하실 것입니다. 그 전에 당신의 거룩하고 영원한 계획이 이미 다 마련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오직 당신의 완벽하고도 절대적으로 의로운 뜻과 계획에 따라 세상만사를 주관하시고 그에 합당한 기도를 응답해주실 뿐입니다.
(8/23/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