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9:142 다수결과 인권이 악(?)

조회 수 428 추천 수 26 2009.09.18 02: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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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시119:142)


인간 세계에선 민주주의(民主主義)가 완벽한 제도는 아니지만 그보다 더 좋은 방식이 아직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제도는 실패로 끝이 났습니다. 민주주의란 한 마디로 나라를 다스리는 주권이 왕이나 소수 특권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主權在民)는 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권리를 공동체의 이익이 손상되지 않는 한 최대한 보장해 주자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이해득실이 다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항상 다수결로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민주주의라고 하면 다수결과 인권이라는 두 가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떠올립니다. 또 민주주의 자체가 가장 좋은 제도라는 선입관에 붙잡혀 있어서 다수결과 인권도 마치 절대적인 선인 양 착각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다수결이라는 방법과 인권이라는 가치 자체만 선할 뿐 아니라, 인간의 권리 신장을 위해서 다수결로 결정되는 어떤 일도 다 선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대신에 그렇게 일단 내려진 결정에 반발하는 것은 악으로 치부됩니다.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다고는 할 수 없으며 인간 스스로 주인이 되면 항상 쾌락과 안락만 추구하기에 인간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는 오히려 악이 포함될 소지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다수결과 인권이 이제는 도덕적인 문제를 결정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간음, 동성애, 낙태, 포르노, 인간복제 등 이전의 윤리 기준으로는 죄악 중의 죄악이던 것이 이제는 사면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선으로 둔갑해버렸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남들이 옳다고 하니까”(다수결)와 “남들의 자유도 존중해 주어야 하니까”(인권)라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다수결과 인권은 매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간단한 예로 고대에 인간을 산 제물로 바쳤던 일은 다수결로 결정되었지만 인권은 무시되었습니다. 이처럼 다수결이란 다수의 인권을 보장하는 제도인지라 필연적으로 소수의 인권은 무시해도 된다는 것을 함의(含意)합니다. 역으로 말해 다수결과 인권은 오히려 구조적으로 항상 서로 충돌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다수결은 개인의 자유를 신장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의사를 결정할 당시에 가장 힘이 센 집단의 이익을 대변할 뿐입니다. 또 힘이 센 집단이 다수를 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중은 항상 힘이 센 집단에 빌붙는 습성과 태도를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독일나치제국이나 아직도 생존하는 북한 같은 공산독재국가의 예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도덕은 다수에 의하여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진리를 따르는 것이어야 합니다. 영원한 진리는 영원한 분, 하나님 한 분에게서만 나옵니다. 인간은 죄로 부패되었을 뿐만 아니라 불완전하고 썩어 없어질 존재입니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가변적이라는 뜻입니다. 가변적인 인간에게서 영원한 진리가 나올 수는 없습니다.

도덕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착각 중의 하나가 바로 도덕을 인간이 만들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선하고 의로운 존재인 인간이 죄를 짓지 않고 선을 실행하여 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도덕을 고안해 냈다고 생각합니다.

주지하다시피 모든 사회의 모든 종족이 살인, 도적, 간음, 폭행, 불효, 거짓말, 시기 등을 근본적으로 악이라고 동일하게 규정했습니다. 그럼 그런 규범들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일치할 수 있었을까요? 교육과 관습과 전통에서 유래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들은 도덕을 보존, 유지, 계승한 수단이었을 뿐입니다.

어떤 도덕적 규범이라도 최초로 만든 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컨대 살인하지 말라는 규정을 왜 인간들이 도덕 기준으로 정했을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살인을 해보니 모두가 동일하게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도덕규범을 정한 자는 틀림없이 전부 범법자였을 것입니다.) 나아가 모든 인종, 시대, 문화를 초월해 단 한 사람의 예외 없이 다 두렵고 부끄럽게 여겨진 것입니다.

다른 말로 인간은 살인하면 부끄럽고 두렵게 여기게끔 만들어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살인해놓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자란 정신병자밖에 없습니다. 우연히 진화를 거듭한 존재라면 모두가 똑 같이 여길 수는 없습니다. 요컨대 살인하면 인간이 두렵게 여겨지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놓았고 그렇다면 도덕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인간을 산 제물로 바쳐야 했던 시절에 그 일은 지고의 선이었을 것입니다. 제물로 바쳐지는 당사자는 자부심마저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도 살인은 죄라는 것을 알았고 살인자에 대한 징벌 규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물로 바치는 살인만은 정당시 되었던 이유는 절대자에 대한 경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잘못된 신관(神觀)에 바탕을 둔 것이었지만 최소한 절대자는 어떤 도덕규범도 넘어서는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것만은 어느 사회에서도 인정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살인도 사실은 인권을 신장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의 인권을 늘리기 위해서 남의 인권을 짓밟은 데 있을 뿐입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인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경우도 따지고 보면 자기의 분노와 시기심을 처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말하자면 자기 권리와 자유를 마음껏 누리기 위해 살인을 범한 것입니다.

영원한 진리이신 하나님을 배제한 채로 인간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도록 버려두면 죄악밖에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주신 도덕마저 인간은 다수결과 인권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으로 제 멋대로 변조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도덕을 변조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스스로 변조, 손상, 파괴하겠다는 것과 하나 다를 바 없습니다. 즉 스스로는 도덕을 고급한 수준으로 바꾸었다고 자부하지만 사실은 더 흉악한 모습으로 바꾼 것입니다.  

알기 쉬운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동성애 습성을 천성적으로 타고난 경우도 있어 보입니다. 어려서부터 동성이 좋은데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그런 경우는 성전환 수술을 하라고 권합니다. 부끄럽게도 저도 한 때는 그러는 것이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에 따르면 성전환자는 바뀐 성에 맞는 호르몬이 분비가 되지 않아 제대로 성생활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호르몬을 남용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나중에는 몸과 마음이 완전히 황폐해진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성전환 수술은 그 실태를 알면 죽음으로 내모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동성애 습성도 죄악의 결과로 사단에 묶여 조종당하고 있는 중이라는 뜻입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신 상태로 되돌리지 않고는 올바른 해결책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그들의 인권을 존중해 주려면 치료의 광선으로 오신 예수님을 소개해 주어야 합니다. 인권은 참 생명이신 하나님 안에서만 올바르게 되지 하나님 밖의 인권은 거짓의 아비 사단에게 조종당하는 거짓 인권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을 무시한 채 인간의 자유와 권리만 주장하면 반드시 그에 따른 부작용,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징계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동성애자가 AIDS에 걸리게 된다는 뜻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악 기준을 무시한 자는 반드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는 뜻입니다. 성전환자처럼 참 생명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죽음으로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만약 작금 죄라고 전혀 취급하지 않는 간음하는 자, 동성애 하는 자, 포르노나 마약중독자 본인들에게 물어보면, 선하고 의로운 일이라 마음껏 즐긴다고 대답하는 자가 한 명이라도 있겠습니까? 최소한 죄인 줄은 잘 몰라도 선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말할 것 아닙니까?

성전환자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해지는지 안다면 도저히 권할 수 없는 일인데도 그렇게 하는 것이 선이 되어버렸습니다. 인권을 주장하는 자들은 스스로는 잘 하지 않는 일을 두고 마치 남의 인권을 아주 생각해 주는 양 떠듭니다. 자신들의 의로움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고자 하는 또 다른 죄악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들 스스로 그런 죄악에 빠져 있든지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계시해 놓은 책입니다. 다른 말로 절대적 도덕 기준을 규정해 놓은 책입니다. 절대적이란 다수결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에게 다수결은 절대로 없습니다. 당신께서 절대적 무결점(zero defect)으로 100% 완전함만이 있습니다. 중력이나 자전과 공전의 법칙이 또는 인간이 모두 죽는다는 진리를 다수결로 정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주권은 인간에게가 아니라 하나님(主權在神)에게만 있습니다.

영원한 진리에 따르지 않는 것은 결코 선과는 거리가 멉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선이 아니면 악입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을 따르느냐 자신을 주장하느냐 둘 중 하나입니다. 전자는 선이며 후자는 악입니다. 다수결과 인권으로 포장하여서 마음 놓고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누리자는 것도 바로 악 중의 악이라는 뜻입니다.  

4/2/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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