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에 양가감정을 느껴서 곤혹스럽습니다.

 

[질문]

 

큐티를 해오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성경과 목사님들의 설교가 너무 모순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다음과 같은 양가감정을 저는 항상 느낍니다. 

 

“죄를 짓지 마라. But! 너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However! 나는 너를 사랑한다. Nevertheless! 죄를 짓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그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On the other hand! 너는 하나님의 자녀다. Yet!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범죄 할 수 없다. 고로 너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 아닐 수 있다. Although! 너는 이미 택하심을 받은 천국 시민이다. In spite! 행함이 없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니다.“ 

 

이렇게 계속 모순되는 말씀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하고 절대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서로 상충된다고 여겨지는 말씀들이 나오면 마음이 너무 힘듭니다. 

 

[답변]

 

이런 당혹스러움이 생기는 이유는 성경이 어떤 책인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다 구원에 관한 성경적 진리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구원에서 칭의와 성화의 관계부터 알아본 후에 성경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칭의와 성화의 관계

 

성령의 간섭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여 줍니다. 도덕적 영적으로 전혀 의롭지 않고 아무 공로 없어도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면 예수님의 의를 신자에게 전가하여서 의롭다고 칭해주십니다.(칭의) 이는 신분상 구원으로 예수님을 믿을 때에 신자에게 일어나는 일회성 변화입니다. 부수적으로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던 심령이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고 그분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의지적 결단도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본질은 인생과 삶의 방향이 이전과는 정반대로 하나님 쪽으로 전환된 것을 그대로 잘 유지해 나가는 싸움이지 얼마나 더 착하게 살아야 하느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일생을 살아가는데 근간이 되는 전체적인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등이 하나님 중심으로 바뀐 것입니다. 예수를 믿은 후로는 이전에 하나님을 몰라서 제 멋대로 살았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를 높이려던 이전 죄의 본성은 여전히 살아 있는 채로 구원 받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간섭으로 새롭게 거듭난 신자에겐 평생토록 동일한 성령님이 내주하셔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도록 하고 또 각자에게 맡긴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간섭하고 인도해주십니다. 요컨대 칭의가 일어나면 그와 동시에 성화도 자동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평생토록 성화의 완성은 이룰 수 없습니다. 천국에 가서야 예수님처럼 온전히 거룩해지는데 그것을 두고 영화라고 합니다. 바울 같은 위대한 사도조차 질문하신 것과(구체적인 의미는 다르지만) 비슷한 형태의 양가감정을 절감하고 비탄에 찬 고백을 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이 본문이 포함된 로마서7:8-25를 꼭 천천히 묵상하며 읽어보십시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양가감점에 절대 묶여 있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롬7:25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이겨낼 수 있다고 설파합니다. 그렇게 승리할 수 있는 이유와 근거를 이어서 로마서8:39까지 설명해놓았습니다.(이 부분도 천천히 다시 뜻을 생각해가며 잘 읽어보십시오.) 

 

그 마지막 결론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신자를) 끊을 수 있는” 존재나 사건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신자가 고난은 물론 죄로 인해 쓰러지더라도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실현된 당신의 사랑을 넘치도록 베풀어주셔서 반드시 다시 일으켜 세워준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아무리 넘어져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다시 회상하며 성령의 인도를 구하면 점점 그 죄들을 이겨내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평생토록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나가야 합니다. 

 

바울은 그런 뜻으로 로마서 12:1에서 어떻게 말합니다. (복음에 대한 결론인 8:39 다음의 9-11장은 이스라엘 구원에 관한 별도내용이므로 12장으로 바로 연결해서 읽는 편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한마디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을 확신하는 바탕에서 세상 사람과는 다르게 거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온 자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확실히 얻었기에 결코 그 구원이 취소되지 않습니다.(롬8:1,2) 이제 신자에게 남은 일은 평생을 두고 그리스도가 살았던 삶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계속 강조하지만 처음부터 결코 완전한 모습이 될 수 없습니다. 넘어졌다 일어났다 하는 일을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으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쪽으로만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성화의 씨름을 많이 해나갈수록 죄로 넘어지는 빈도수는 줄어들고 넘어지는 세기도 약해지는 것입니다. 대신에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빈도수는 늘고 그 정도도 강해지는 것입니다.    

 

성경의 계명과 성화

 

신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이런 저런 계명은 이미 성화를 시작한 신자를 대상으로 당신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이상적인 상태를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선 모든 것을 제쳐두고서 반드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셔야 합니다. 죄를 지어도 된다거나 적당히 타협해도 된다고 명할 수는 없습니다. 자녀더러 인격을 갈고 닦아서 훌륭한 사람이, 최소한 한 사람의 건전한 시민이 되라고 가르치지 계속 죄를 지어도 된다고 가르치는 부모는 있을 수 없듯이 말입니다.  

 

성경의 계명들은 거듭난 신자라면 반드시 성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만 구원 받아서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신자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깊이 체험했고 또 성령님이 내주한다면 필연적으로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의의 열매를 하나씩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전혀 그런 모습이 없고 세상을 목표로 삼아 열심히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만 빌려서 일신상의 형통과 출세를 추구한다면 아예 믿음이 아닙니다. 

 

“죄를 짓지 마라. But! 너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However! 나는 너를 사랑한다. Nevertheless! 죄를 짓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그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On the other hand! 너는 하나님의 자녀다. Yet!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범죄 할 수 없다. 고로 너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 아닐 수 있다. Although! 너는 이미 택하심을 받은 천국 시민이다. In spite! 행함이 없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위에서 설명 드린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판단이 과연 하나님의 구원의 여정에 합당한지를 말입니다.  

 

죄를 짓지 마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100% 그렇게 될 수 없으며 인간의 사정을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신지라 사실은 꼭 그렇게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에 죄를 지어도 된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너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고 말해주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또 신자를 당연히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죄를 짓되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과 죄를 지어도 그분께 속한 사람으로 나눠서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런 죄의식(일반적 양심의 가책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께 큰 죄라는 철저한 죄책감) 없이 반복해서 죄를 지으면서 전혀 회개하지 않으면 그분께 속하지 않고 오히려 마귀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는 전혀 생성되지 않기에 하나님이 모른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속한 자녀는 때로 죄를 지을 수 있으나 반드시 회개하고 고치려 노력하는 자입니다. 신자라면 당연히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당장의 실천은 더디고 때로 실패를 많이 할지라도, 노력합니다. 인생의 방향을 이미 그렇게 설정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온전한 신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같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8-10)

 

성경을 대하는 자세

 

이제 질문하신 것 같은 신앙의 양가감정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좀 더 확실히 밝혀졌습니다. 무엇보다 성경말씀을 단순히 한 구절씩만 따로 떼서 문자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여기서 이 말씀을 하셨다 저기서 다른 말씀을 하신다고 여겨집니다. 성경은 반드시 앞뒤 문맥은 물론 책 전체의 주제와 논리에 따라 해석해야 합니다. 나아가 신구약 전체성경에 드러난 영적 진리에도 비춰봐야 합니다. 교회에서 기독교 기본교리나 구원론에 관해서 설교 외에 따로 성경공부 모임을 통해서 반드시 가르쳐야만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의 삶에 개인적 공동체적으로 직접 개입 간섭하여서 당신의 뜻을 드러내고 은혜를 베푼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거기에 각 저자가 하나님이 당신의 영적 진리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계시한 것을 성령으로 영감 받아 기록한 것입니다. 그분의 섭리와 통치 자체가 오묘하며 또 그래서 각 저자가 체험하고 깨달은 내용도 각기 달라지므로 책 마다 내용이 다릅니다. 한 책 안에서도 하나님의 바라심과 인간의 실상을 함께 설명하다보니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것입니다. 성경이 아무리 복잡하고 달라보여도 자세히 공부해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놀라울 만큼 전체적인 일관성과 통일성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성경은 하나님은 너무나 광대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완전하게 의로우신 분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분은 죄악 불법 불의 불공평은 물론 불순하고 추한 것들과는 단 한치도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와 동시에 인간은, 그것도 예수님의 구원 은혜 안에 들어온 신자라도 바울의 고백처럼 평생 동안 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신자는 세상 사람이 갖지 못하는 소망과 힘을 지니고 있는데 성삼위 하나님이 각자에게 합당하고 완벽한 계획으로 그 일생을 주관 통치해주시고 특별히 성령님이 내주하여 일일이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젊은 디모데에게 어떻게 권면했습니까?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5-17) 질문하신 주제로 따지면 성화에 대한 교육 훈령용의 책이지  모두가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백퍼센트 정답과 완전한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해도 성실히 그 책(성경)대로 훈련받고 있으면 비록 점수가 나빠도 훈련생도(신자)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영적 목표인지라 백점 만점 자는 나오지 않지만 말입니다.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마저 스승의 말씀이 어렵다고 불평 아닌 불평을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성경은 오직 하나님을 순전하게 믿고 범사를 전적으로 그분께 의탁하는 자에게만 열린 책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13;14,15) 하나님이 죄인들이 당신께 나와 고침 받는 것이 귀찮고 싫다는 뜻이 아니라, 성경을 정말로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겸손히 받아들이는 자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2:7) 그런 원리가 마지막 때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적용될 것이라고 계시록의 일곱 교회 편지에서도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는 단순히 읽는다고 다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절대로 “사사로이 풀지 말고”(벧후1:20),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야”(행17:11) 합니다. 그래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변증)할” 수 있는 자리에게 까지 가야 합니다.(벧전3:15) 한마디로 모든 신자가 성경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성경 자체가 요구하고 있는 셈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신자는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여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가 아니라 바울처럼 자기 자신의 미약한 영적 상태에 대해서 양가감정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6/28/2022)

 

야고보서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에 관해선 아래의 글을 참조하십시오. 

 

약2:14가 행위구원을 말하는지요?


모래반지빵야빵야

2022.06.29 06:05:42
*.152.86.61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복 받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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