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자들은 믿음의 정확한 본질과 내용은 알지 못한 채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 만능 주의 신앙에 너무 젖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도 신자 쪽에서 어떻게 잘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아 낼 수 있을 것인가에만 초점을 두고 읽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탐구해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하나님 다우심을 계시해 놓은 책입니다. 또 그 계시는 골고다 언덕에서 궁극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전통적인 시각과는 다르게 접근하되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통해 증거 하고자 합니다.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마4:23-5:3)

조회 수 3115 추천 수 164 2007.03.15 14: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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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약한 모든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 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 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4:23-5:3)



행복하지 않는 이유

영국 속담에 하루가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이 행복하려면 여행을 가고, 한 달이 행복하려면 새 집을 사라고 했습니다. 또 일 년이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고 합니다. 남녀 간의 그 뜨겁던 열정도 일 년이면 사그라질 뿐 아니라 아이가 생길 때쯤부터는 고생문이 열린다는 뜻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평생을 행복하려면 어떻게 하라고 한지 아십니까? 이웃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럼 솔직히 여러분에게 물어봅시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신자를 포함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해지려고 노력은 열심히 하지만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행복에 대한 개념을 잘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니까 아무리 추구해보아야 평생토록 성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아가 사고방식을 낙관적으로 바꾸어 매사를 긍정적으로 대처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말하자면 현실적인 목표치를 적게 잡아 검소하게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어로 행복을 뜻하는 단어 Happy, Happiness의 어원은 어떤 일이 발생한다는 Happen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어떤 좋고 신나는 일이 생겨야만 행복해진다는 뜻입니다. 이발을 하고. 여행을 가고, 새 집을 사고, 결혼을 하면 분명히 행복해지는데 왜 오래 가지 않습니까? 또 다른 신나는 일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 욕심이 많고 적거나, 심성이 착하거나 악한 것과 행복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아무리 욕심을 버려서 적게 계획을 잡아도 그 계획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행복해지지 않지 않습니까? 또 그 일이 이루어져도 또 다른 기쁜 일이 생기지 않으면 불행하게 여겨지기는 이전과 마찬가지입니다.

신자가 행복하지 않는 이유도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몇 년째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해도 응답이 안 되는데 신이 날 리가 있습니까? 산기도원에 가서 며칠간 방언으로 뜨겁게 기도하면 그 동안 복잡하던 자기 속이 깨끗하게 정리된 것 같고 교회 부흥도 완전히 자기 손에 달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려오자마자 남편이나 마누라의 잔소리 한마디에 가정의 부흥마저  순식간에 깨지지 않습니까? 이번 중국 단기 선교 여행에 갔다 와야 믿음이 더 성숙하고 내 인생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 같았는데 가지 못하니까 풀이 죽어있지 않습니까?  

타락한 세상에서 죄악에 빠져있는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는 시기, 질투, 거짓, 사기, 음란, 분노, 저주 같은 것들뿐입니다. 그런 와중에 어떤 개인이 아무리 선하고 의롭게 살아보려 노력해도 평생을 두고 좋은 일이 연속해서 생기는 법은 없습니다. 행복을 추구해선 절대로 그 인생이 행복해질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

성경은 돈 잘 벌고, 병이 낫고, 자식이 공부 잘하는 신나는 일을 두고 행복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또 신자더러 행복해지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예수님도 심령이 가난한 자는 “행복할지니”라고 하지 않고 단지 “복이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복은 원어적으로 “복 중의 최고 복”이라는 뜻이며 그 문장 양식은 감탄문입니다. 또 “입을 열어 가르쳐”라고 기록한 것은 예수님이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인지라 아예 작심하고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원래의 어감을 그대로 살리자면 이렇게 됩니다. “세상에서 최고로 복이 많은 자여! 그대 이름은 심령이 가난한 자여라! 천국의 복을 누리리라!” 그것도 아주 신이 나서 힘주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청중이 누구였습니까? 방금 전에 귀신이 쫓겨 가고 간질과 중풍 같은 불치의 병이 나은 자들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안수 기도를 받고 기적적으로 암이 나은 자입니다.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방금 암이 나은 자에게는 “너 지금 참 행복하지? 그렇다면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오직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고 말해야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은 암이 나은 것과는 도저히 비교도 안 되는 더 좋은 복이 따로 있다고 한 것입니다. 암이 나아야만 행복해진다면 여전히 무엇인가 좋은 일이 일어나야 행복해지겠다는 작정인데 그것은 진짜 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세상 사람에게는 몰라도 신자에게만은 암이 현실적 고통일 수는 있어도 원천적인 불행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습니까? 인간이 고칠 수 없으니까 더더욱 능치 못할 일이 없는 하나님만 바라보면 그 분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 아닙니까?

여러분 가운데 암 투병의 고통 중에 있는 몇 분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고통을 무시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다른 분이 이런 말씀을 드렸다면 상처가 되겠지만 저니까 감히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니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은 영어로 ‘Blessing’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신자에게 어떤 신나는 일이 일어나게 해서 주는 복이 아닙니다. 신자가 기도해서 단순히 어떤 일을 해결 받는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의 존재, 삶, 일생 전부가 오직 그분의 은혜 안에 붙들려 있음으로 해서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하나님이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주시며 신자 또한 그분의 십자가 안에 들어와야만 받을 수 있는 복입니다.

진정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은가?

“죄를 회개하고 꼭 예수를 믿으셔야 합니다.”라고 전도해 보면 불신자로부터 반드시 듣게 되는 대표적인 반발이 있습니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점 하나 없이 살았다. 혹시 몇 가지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은 한 분이고 모든 종교는 같은데  왜 꼭 예수를 믿어야만 되는가?” 저도 불신자 시절에 그랬습니다만 얼마나 어리석기 짝이 없고 하나님 앞에 너무나 패역한 교만이자 큰 죄인지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소생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고백하는 체험이 하나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크고 작은 일들이 순간적으로 영화필름처럼 눈앞을 지나가는 것을 다 보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제 나름대로 추측컨대 이 땅에서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평가 받는 순간이 아닐까요?

어쨌든 만약 한 사람의 평생을 전부 비디오로 찍어서 하나님과 함께 관람한다면 그 자리에서도 그렇게 큰소리칠 자가 있겠습니까? 한 시간, 아니 십 분, 아니 단 오 분도 안 되어서 쥐구멍을 찾아 숨기 바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일생 전부를 찍을 필요도 없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드리자면 저는 불신자 시절에 술을 엄청 마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나니까 그렇게 술 마셨던 일들이 너무나도 부끄러운 짓이었다는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진탕 마시고 놀았던 모습을 하루 저녁만 카메라로 찍어 술이 깬 그 다음 날 같이 놀았던 사람들과, 아니 자기 혼자서라도 끝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겠습니까? 몰래 카메라로 여러분의 하루 일과를 그대로 찍어서 남들에게 그대로 보여줄 자신이 있습니까?

만약 사람의 머릿속까지 판독하는 카메라가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도 마누라와 남편을 미워하고 있는 마음이 그대로 찍혀 나오지 않겠습니까? 좀 죄송하지만 남의 아내나 남편에 대해 이상야릇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마저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설교 들으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한 시간조차 경건하게 보내지 못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그런 카메라보다 못하실 것 같습니까? 그분은 바로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의 심령을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분입니다.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이런 판국에 과연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다고 큰 소리 칠 수 있습니까? 단 한 명도 의인이 없는데 어떻게 착한 자가 천국을 가야만 옳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방적인 용서가 없이는 어떤 인간에게도 소망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의 모든 죄 짐을 대신 맡으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이 나에게는 필요 없다고 어느 누가 반발할 수 있겠습니까?

구원 받은 이후의 신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오직 하나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와 삶을 완전히 까뒤집어서 단 한 시간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완전히 드러낸다면 너무나 부끄럽고 추해서 남들 앞은커녕 자신도 고개조차 들지 못한다고 겸허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 내 죄를, 이 더럽고 추한 내 모습을 주님의 깨끗케 하심을 소원하여 눈물로 호소해야 합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오직 주님의 긍휼만 바라오니 저를 고치고 깨끗케 씻어 주시옵소서” 하며 자기의 전부를 주님께 내어 드려야 합니다.  

지옥의 실제 모습

어떤 신학자가 지옥의 모습을 슬럿 머신이 끝이 안보이도록 줄지어 서 있는 광대한 카지노와 같다고 묘사했습니다. 거기에는 하루 24시간 365일 누워 잘 수가 없는지라 모두 다 눈이 벌게서 밤낮 없이 도박만 계속 하고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이나 돈을 열심히 버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대박을 노리는 도박은 뭔가 좋은 일이 happen 하는 일 중에 가장 스릴 넘치고 신나는 것 아닙니까? 이 땅에서 먹고 마셔서 신나는 일이 생기는 행복만 추구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하나님은 죽은 후에도 똑 같이 대우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가장 쓸쓸하고 불행하다고 여길 때가 언제입니까? 나이트 크럽이나 도박장에서 밤새 신나게 놀고 난 다음날 아침 깨어났을 때 아닙니까? “뭔가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엄습하지 않습니까? “나라는 존재가 겨우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 내 인생이 이런 것으로 마쳐야 하는가?”라는 생각으로 너무나 허무해져 답답해 미칠 지경이 되지 않습니까?

꼭 그런 쾌락을 보낸 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막상 집을 사고 나면 행복은 잠간이고 오히려 힘이 빠지고 쓸쓸해지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가장 큰 기쁨 앞에 가장 큰 쓸쓸함이 기다리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은 신기루나 무지개처럼 도저히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인생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더러 일부러 골탕 먹이려 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끝없는 고통 가운데 사는 것은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이 부패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인간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닮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지 않으면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신자의 경우에 그곳을 거짓의 영인 사단이 차지하고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두고 사람을 자꾸 속입니다. 뭔가 신나는 일이 생겨야 행복해질 것이라고 자꾸 속삭입니다. 물론 그 신나는 일에는 꼭 쾌락만이 아니라 선하고 의로운 일도 포함됩니다.

그 내면이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지지 않은 이상 절대 갈급함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기에 불신자들은 평생 헛된 행복만 추구하다 인생이 실패하고 맙니다. 사단이 차지하고 있는 그 부분은 십자가에서 사단의 권세를 완전히 부셔버린 예수님만이 깨끗케 할 수 있습니다. 또 그 깨끗케 된 공간에 성령님이 내주해주셔야 비로소 인생의 진정한 충만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알기 쉽게 말해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내 죄를, 상처를, 허물을, 속에 눌리고 묶인 것들을, 항상 허망하고 갈급했던 것들을, 나로선 때려 죽어도 없앨 방도가 없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 대신 때려죽이심을 당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단순히 교리적으로 인정하고 믿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자신의 내면이 철두철미하게 완전히 깨어지는 체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자신이 완전히 죽어버리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주십니까? 예수님은 때려 죽여도 내 편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하나님이 때려죽임을 당했다고 표현하니까 불경스럽게 여겨집니까? 성경적으로 말해 하나님이 독생자를 죽이시기까지 우리 각자를 사랑하셨다는 말일 뿐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은 때려 죽여도 신자 편이라는 것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으로 이루느니라”(롬8;28)는 말씀을 쉽게 풀면 그런 뜻이 되지 않습니까?

신자가 평생 행복해지는 길

신자가, 아니 모든 인간이 평생 행복해지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Blessing을 받는 것뿐입니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전혀 없습니다. 영어 ‘Blessing’의 어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피를 흘린다는 ‘Bleed’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습니다. 또 죄 사함이 없이는 결코 인간은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여 죄로 완전히 더렵혀진 옛 사람은 반드시 죽어 없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 안에 들어 와야만 인간은 비로소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 은혜 안에 들어와 있는 여러분의 인생은 이미 최고로 성공한 것이며 그 삶도 벌써 행복해진 것입니다.  
신자는 기도 응답을 받아야만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기도할 수 있는 신분이 되었고 그런 특권을 가진 것만으로 행복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기도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던 일이었지 않습니까?

단기 선교를 가야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를 가겠다는 마음이 들은 것 자체가 행복한 것입니다. 비즈니스를 2-3주 문 닫고 자기 돈 몇 천불 들여가며 선교 가겠다면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믿어도 광신도처럼 되지 말고 작작 믿어라.” 그렇습니다. 그들은 예수에게 미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상상도 못합니다. 예수에게 미치면 미칠수록 그들로선 도저히 이해도, 아니 꿈도 못 꾸는 은혜를 넘치도록 채워주시지 않습니까?

성경이 왜 “범사에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경건하고 엄숙한 열성 종교인이나 도를 닦아 죄라고는 안 짓는 성인군자로 만들려는 뜻이 아닙니다. 범사란 좋은 일 뿐만 아니라 나쁜 일도 포함합니다. 신자마저 좋은 일이 생겨야 행복해지겠거니 그런 헛되고 헛된 생각이 들 때마다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 대신 죽으심으로 인해 내가 어떤 신분으로 변화 되었으며 그래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무엇인지 회상해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겼더라도, 내가 어떤 추하고 더러운 모습에 빠졌더라도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힘들고 나쁜 일조차도 예수님이 허락하셨다면 그 앞에는 반드시 나를 통해 더 큰 영광을 받으실 일을 준비해 놓고 있음을 확신하여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려고 덤비지 말라.

영국 속담에 평생을 행복하려면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성경적 진리이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다시 여러분에게 질문해보겠습니다. 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 말하자면 여러분은 지금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대답하기가 참 곤란할 것입니다. 아니라고 하자니 신자로서 이웃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 되고, 그렇다고 하자니 현실은 전혀 행복하지 않으니까 신자로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너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솔직히 여러분의 아내나 남편도 아니 자식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생판 남인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신자들이 기도 잘하고 성경 말씀 조금 안다고 해서 마치 믿음이 아주 좋아 섣불리 남을 사랑하려고 덤비는데 스스로 속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사랑할 실력이나 능력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자 하는 소망과 열심이 있고 힘써 노력합니다. 비록 너무나 자주 실패하지만 다음에 조금만 노력을 더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 사랑할 실력이 있다고 착각한 것뿐입니다.

그래도 열심히 사랑하려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자칫 하나님에 대한 아부요 자신의 실체를 감추는 위선이자 가식이 될 수 있습니다. 심령을 꿰뚫어보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진심을 모를 리 없습니다. 진정한 참 사랑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대신에 신자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능하며 추한 존재인지 그래서 예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한시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단순히 조금 죄를 짓고 있다는 정도를 시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인구 60억 명 중에서도 가장 꼴찌 60억 등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자기야말로 가장 불쌍하고 비참한 인간이라는 것을 날마다 순간마다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믿음의 참 본질입니다.

그리고 나면 비로소 아내나 남편과 자식도 너무나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영어라고는 겨우 “I am a boy" 아는 정도 수준으로 밖에서 미국 사람들을 어떻게 구슬렸는지 돈을 벌어서 밥을 굶기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말 못할 스트레스를 얼마나 많이 받겠습니까? 또 한국에선 꿈도 꾸지 못했던 식당에서 접시 나르거나 세탁소에서 다리미질을 하는 아내가 얼마나 불쌍합니까?

자식은 더더욱 불쌍합니다. 본인이 미국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분간이 잘 안 가는데다 엄마가 해 주는 따뜻한 밥은 언제 먹어보았는지 기억을 못할 정도입니다. 밥은커녕 엄마 아빠가 맞벌이 나가느라 하루 종일 얼굴조차 보기 힘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고생하며 힘들게 산다고 불쌍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정도 고생하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외적 고통보다 그러는 동안에 그들의 심령이 얼마나 녹아내리겠습니까? 눈물과 한숨과 시름이 마를 순간이 없고 허무와 갈급함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는 그 영혼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주위 불신자는 어떻습니까? 우리와 똑 같이 고생하면서 그들은 예수마저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이웃을 섣불리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야말로 최고로 불쌍하고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때에야 남들도 불쌍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비로소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아니 그 때도 신자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이 그들에게 전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 사랑의 통로가 될 뿐입니다.

그런데 최고로 불쌍한 분은 정작 따로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지금도 이 어리석고 추하고 더러운 인간들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다”고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는 큰 소리 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외면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분의 심경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당장에 몽땅 심판할 수도 있는데 단 한 명이라도 더 구원의 은혜에 들 수 있도록 인내하고 계시는 그분의 심경을 헤아려 보았습니까?

그것으로 그치면 그나만 다행입니다. 신자마저도 뭔가 신나는 일이 일어나야만 행복해질 것이라고 착각하고선 오직 그렇게 되기만을 새벽마다 기도하는, 그것도 믿음이 좋다는 신자가 그러는 모습을 보는 하나님의 속은 얼마나 시커멓게 타들어가겠습니까?  

(3/11/2007 주일 LA Rowland Heights  소재 아름다운 교회에서 설교한 내용임)
 


정순태

2007.03.16 00:58:40
*.95.73.2

입도 벙끗 못하고 그냥 나갑니다!
구구절절 아멘!!!

심 진영

2007.03.17 03:54:37
*.91.146.147

하나님 만이 하나님이십니다!
부끄러운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
은혜받고 갑니다..

김순희

2010.02.21 13:55:37
*.161.88.93

하나님께서 복이라 칭하시는 그 복을 받아
상황 상관없는 기쁨, 감사, 감격이 넘쳐나는
그예다 가족들이 모두 되시길.....

날마다순종

2020.12.03 16:07:40
*.14.99.253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니까 아무리 추구해보아야 평생토록 성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행복을 추구해선 절대로 그 인생이 행복해질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신자임에도 아직까지 그 바램에 있어 불신자와 다를바 없음을 단적으로 지적하는 말씀이네요. 이처럼 때때로 주님을 잊은채 내스스로 예전처럼 다시 주인행세를 할때마다 헛되고 헛되며 결국 허망함뿐임을 다행히 바로 느끼고 주님의 음성에 이끌려 정신을 차립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생명되시며 참주인되심에 이 사실만으로 기쁘고 행복하며 세상을 다 얻은, 아니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복임에 늘 감사드리며 기뻐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신령한 복의 통로로 불러주신 이 크나큰 은혜를 힘입어 주위로 그 복이 흘러가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확장되어지길 늘 소망합니다. 그 사역에 동참할 수 있도록 불러주심에 감사합니다. 보잘것 없는 저이지만 그 영광스런 일에 쓰임받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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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기적을 진정 소원하는가?(마4:5-7) [5] 운영자 2006-07-31 2250
132 아무 염려 없이도 주를 찾는가?(마4:1-4) [4] 운영자 2006-07-27 2231
131 하나님은 왜 세상의 모순을 그냥 두시는가?(마3:13-17) [5] 운영자 2006-07-22 2594
130 너무나 기이한 지식(마3:7-12) [3] 운영자 2006-07-17 1901
129 뉘우쳤는가? 돌이켰는가?(마3:5-9) [3] 운영자 2006-07-12 2490
128 여호와가 당신의 진짜 목자가 맞는가?(마3:1-4) [6] 운영자 2006-07-08 2278
127 예수의 잃어버린 30년 세월(마3:1) [3] 운영자 2006-07-03 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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