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에게 지극히 비정상적인 일
- 믿음의 성숙이 교회의 종교 활동에 능통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분별 결정 시행 반성 수정하는 실력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인생의 모든 가치관들부터 인간중심에서 하나님중심으로 완전히 전도되어야 한다. (3/2/2020)
- 하나님께 많이 무릎 꿇을수록 그분 외의 것에 무릎 꿇는 일이 훨씬 줄어든다.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과 권능 앞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신자의 모든 삶이 그 구원에 바탕을 둔다면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2/28/2020)
-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그 삶에 아무 변화가 없다면 성령의 거듭남이 따르지 않았거나 다른 복음을 전해 받은 탓이다.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성령의 역사로 순전하게 전해지면 반드시 죄로 죽었던 영혼이 참 생명으로 되살아나 거룩한 열매를 맺기에 복음이다. (2/27/2020)
- 예배는 주일 교회에서 행하는 종교예식만이 아니다. 매일의 고달픈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붙들고 있는 하나님의 의로운 손을 놓지 않으려는 처절한 씨름이다. 삶과 동떨어진 정기적인 종교 체험이 아니라 주님 품 안에서 거룩하게 자라가는 여정이라는 뜻이다. (2/26/2020)
- 종교는 많으나 실은 두 종류뿐이다. 하나님이 구원 주셨으니 그에 합당하게 살라는 기독교와 인간이 선한 인생을 살면 하나님이 구원 주신다는 여타 종교다. 인간 스스로 선해질 수 없다와 있다를 전제하니까 서로 다툴 성격이 아니라 아예 가는 길이 정반대다. (2/25/2020)
- 인생에서 절대적인 진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이 땅과 하직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고 최대한 높이 올라가려는 어리석음부터 버리는 것이 믿음의 시초다.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죽음을 준비하는 자라야 거룩한 생명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2/24/2020)
- 신자가 수시로 죄에 져서 넘어지는 것은 이상 현상이 아니라 아주 정상이다. 수만 번이라도 회개하고 다시 맞서서 이길 힘을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에서 얻는 것이 믿음이다. 죄책감에 묶여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 신자에겐 지극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2/21/2020)
- 한국교회는 두 가지 기복주의가 주류다. 교회활동성적으로 자기고난을 해결 받으려는 소극적 기복주의와 자기소원을 최대로 키워 뜨겁게 기도하면 다 이뤄준다는 적극적 기복주의다. 교회가 가르쳐야할 진리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복이라는 것 하나다. (2/20/2020)
- 불신자의 인생관은 이미 운명이 정해졌다고 믿거나. 세상권력자를 이용해 출세하려들거나. 자기 힘으로 남보다 위에 서려 한다. 신자는 엎질러진 물 같은 인생마저 하나님이 귀하게 바꿔줄 수 있다고 믿기에 그분의 거룩하신 주권과 섭리에 온전히 의탁한다. (2/19/2020)
- 신자들이 하나님 계명대로 살아가는 일에 종종 실패하는 까닭을 잘 모른다. 순종에 바치는 노력 시간 믿음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내 이성과 상식에 특별히 감정과 어긋날지라도 반드시 그 길을 따라야만 하는 이유와 필요를 나아가 기쁨을 모르기 때문이다. (2/18/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