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조회 수 1605 추천 수 198 2008.03.29 05:08:30
성경을 읽다 보면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목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제 제 아내가 출애굽기 묵상을 시작하면서 만난, 바로의 딸이 바로의 명을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히브리 사내 아이를 살려주고 양자로 삼아 모세라고 이름을 주는 대목입니다. (출 2:1-10) 아내는 바로의 딸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으며, 또 바로는 그것을 용인해 주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노라며 납득할 만한 설명을 요구하더군요.

물론 아내는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바로의 딸이 갈대 상자에 담겨 울고 있는 히브리 아이를 보고 불쌍하게 여겨 그리 하였노라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 설명이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아무리 불쌍하게 여겨도 그렇지 어떻게 추상 같은 바로의 명을 어길 수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백 번 양보해 공주는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명을 내려 모든 사내 아이를 하수에 던져 죽이라 한 바로가 그 사실을 용인해 주었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란 것은 알지만, 그 대답은 너무 싱겁고, 더 이상의 생각이나 토론의 진전을 허용하지 않아 만족스럽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상식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인간적인 답을—설령 그 답이 틀린 답이라 할지라도—원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대답으로 만족하지 못 할까요? 우리가 우리들의 정서와 경험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하나님의 경륜과 지혜와 능력의 넓이와 깊이와 크기에 감복하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고, 어떻게든 하나님을 배제시키고 인간적으로 풀려고 하거나, 하나님을 우리의 수준으로 이해하려는 헛된 시도를 버리지 못하는 까닭이 어쩌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우리의 죄성에 기인한 것인지요.

물론 사안에 따라 그 숨은 의미나 속사정을 헤아려 보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더 밝히 드러내고 우리를 그 뜻에 더 순종케 하려는 데에 있지 않고 단지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함에 있다면, 우리는 성경을 한낱 흥미거리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소설 다빈치 코드가 그 대표적 예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낭비가 없는 분이십니다. 더함도 덜함도 없이 꼭 필요한 만큼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바로의 딸이 어떻게 바로를 설득하여 그 사실을 무마할 수 있었는지, 바로는 무슨 심산으로 그 사실을 용인했는지는 전혀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사는 모세가 살아서 당대 최고의 보호와 교육을 받으며 잘 자라 후일 당신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해 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자가 되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창세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작정해 두신 계획인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바로 딸에게 긍휼한 마음을 주셨고 바로를 침묵시키신 것입니다. 지금 그 일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으로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 계획과 그 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에 감탄하고 감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대목에서 깊이 헤아려야 할 부분은 실은 바로 딸의 긍휼지심입니다. 울고 있는 아이를 보는 바로 딸의 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크기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기에, 그 마음을 우리가 갖지 못하기에, 우리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아무리 우는 아이가 불쌍해도 그렇지 어떻게 바로의 명을 어긴단 말인가?” 그것은 우리가 헤아리는 ‘아무리’의 크기가 바로의 힘보다 작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아무리’의 크기가 우리가 결코 측정할 수 없는, 바로의 힘따윈 전혀 견줄 수 없는 엄청난 크기란 것을 안다면, 우리는 그녀의 행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다 알고 계시듯이 단순히 이스라엘인들이 경험한 초자연적 기적의 이야기를 넘어 죄 밑에서 종노릇하며 신음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시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 울고 있는 아이를 보는 바로 딸의 마음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당신의 백성들을 보고 계신 하나님의 그 끝을 알 수 없는 긍휼의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비견할 수 있는 세상 힘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긍휼의 마음으로 예수님께선 채찍질과 조롱과 십자가 형벌의 고통과 성부 하나님과의 단절 마저 감내하셨습니다.

우리가 감탄하고 경이로워해야 할 사실은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그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러한 마음을 주십사는 간절한 간구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의 딸에게조차 그 마음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의 자녀된 우리에게 그 마음 주시기를 마다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관심 두고 계신 것에만 관심을 두기로 합시다. 하나님께서 관심 두고 계시지 않은 것 궁금해 하며 저마다 소설 쓰는 일 하지 맙시다. 불필요한 호기심은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방해할 뿐입니다.

2008. 3. 27


작은자

2008.03.29 17:46:26
*.7.13.27

아멘~!!!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관심 두고 계신 것에만 관심을 두기로 합시다
추천한표!

정순태

2008.03.30 06:21:18
*.75.152.94

"하나님께선 낭비가 없는 분이십니다. 더함도 덜함도 없이 꼭 필요한 만큼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렇지요? 집사님!

돌고 돌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성도들의 고백 중의 하나를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샬롬!

조재춘

2008.03.31 06:32:39
*.29.165.87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그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만이 주님의 긍휼한 마음으로 살수 있음에 성령의 충만함을 갈망합니다.
오직예수!!!

archmi

2008.04.01 20:02:34
*.121.18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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