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부모가 있을까요

조회 수 680 추천 수 52 2010.07.29 05:43:08
  

아내와 함께 즐겨 보는 연속극, “인생은 아름다워”는 별로 아름다울 것 없는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한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얘기이다. 그 중 큰아들 태섭과 그의 애인의 얘기는 보는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애인 경우가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은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본, 중성적인 목소리에 여성스러운 몸짓의, 한 눈에 다름이 드러나는 그런 동성애자들은 아니다. 둘 다 겉 보기로는 전혀 남다른 곳이 없다. 의사인 태섭의 경우 예쁘고 똑똑한 동료 여의사가 일 년을 넘게 그의 결혼 신청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의심 가는 구석이 없다. 사진작가 겸 교수인 그의 애인 경수도 아주 남자다운 매력이 넘치는 건장한 청년이다. 양가 규수와 결혼하여 딸까지 하나 두고 잘 살다가, 어느 날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아내에게 고백하고 결국 이혼하기 전까진 아내조차 의심을 하지 않았을 만큼 정상적인 남자이다.

경수 엄마로 대표되는 경수네 가정에선 경수의 마음을 돌이키려 갖은 애를 쓴다. 경수가 동성애자란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노력하면 정상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설령 정상인이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집안의 명예를 위해 다시 아내와 재결합하여 예전처럼 살기를 종용한다. 경수는 이젠 더 이상 가식적인 생활은 싫다, 생긴 대로 살게 내버려 두어 달라, 자식 하나 없는 셈 치라 하고, 경수의 엄마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야단을 치고 달래고 협박하고 눈물짓고 하길 반복한다. 경수 모는 절대로 경수를 포기할 수 없다 한다. 경수 엄마에게 포기란 경수를 남들의 손가락질 받는 삶 속에 내버려 두는 것을 뜻한다.

한편 태섭은, 가족들에게 말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다가 어느 날 우연찮게 경우와의 포옹장면을 여동생에게 들켜버린 것을 계기로 가족과 그를 연모하는 채영에게 사실을 털어 놓기에 이른다. 그런데 태섭 가족들과 채영은 그런 태섭을 받아 들이고 오히려,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느냐며 위로한다. 태섭의 막내 삼촌만 그런 태섭을 대놓고 못마땅히 여길 뿐이다. 태섭 가족은 심지어 경수에게까지 친절히 대해 준다. 경수는 그런 태섭이 못내 부럽다.

경수와 태섭은 반지를 한 쌍 맞추어 결혼반지라며 나누어 낀다. 그 말을 들은 경수 엄마가 태섭 엄마를 만나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따진다. 말리지는 못할지언정 내 아들을 받아 주지는 말았어야 했다, 당신 아들 때문에 결혼 생활 잘 하던 내 아들이 저렇게 돌아 섰다며 몰아 세우고, 태섭 엄마는 삼십이 넘은 아들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좌지우지 할 수 있느냐, 아들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다고 응수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아내가 말했다. 저런 부모가 있을까요? 글쎄, 절대 다수가 경수네 가족과 같은 심정일 것이다. 잘 키워 놓은 자식이, 아이까지 낳고 아내와 처가에 그렇게 살뜰히 잘 하던 아들이, 자신이 게이라며 남자와 결혼해 살겠다는데 뒤집어지지 않을 부모가 형제가 있을까?

저런 부모는 없겠죠? 아내가 재차 묻는다. 불편한 것이리라. 자신은 여태 경수 엄마가 속한 세계에서 살아 왔는데, 경수 엄마의 반응이 당연하고 온당한 반응이라 여겨 왔는데, 드라마가 보여 주는 태섭 가족의 반응은 자신의 고정관념을 재고하기를,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편에 서기를 은근히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태껏 맘 편히 저쪽에 있었는데 이젠 더 이상 그쪽에 있어서는 안될 것 같은, 그렇다고 이쪽으로 와도 되는지 자신이 없는 어정쩡한 심경일 것이다.

한때 철저한 개인주의자였고 상대주의자였던 나는 당연히, 한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덧씌울 수 없다면서 동성애를 옹호하고 지지했었다. 아이를 만들 수 없다 뿐이지 이성간의 사랑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었다. 그러다 회심하고 회개한 이후의 내겐 동성애는 명백한 죄악, 그것도 가장 큰 죄악의 하나가 되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자신들이 동성애자임을 죄악시하고 부끄러워하여 쉬쉬했었는데 이젠 대놓고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그들이 참으로 뻔뻔하고 악하게 보였다. 성경 여기 저기에서 동성간의 성행위를 죄악시하고 있는데도, 동성애자임을 공공연히 밝힌 목사들과 신도들이 있고, 교회에서 버젓이 동성 결혼식이 올려진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개탄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했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 그들의 얘기를 들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여기 저기서 보고 듣고 또 내가 짐작하여 내 머리 속에 형성된 그들에 대한 고정 관념 말고, 그들 스스로가 밝히는 그들에 대한 진실을 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때까진 그들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른, 공정한, 처사가 아닌가?

사실 따지고 보면 기독교인들에 대한 내 예전의 태도나 동성애자들에 대한 내 태도나 별 차이가 없었다. 기독교인들은 뭔가 모자라거나 살짝 맛이 간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한 패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난 그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그들에 대해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으니까. 그들에게 이빨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나완 다른 별종으로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던 기독교인들은 극히 일부의 기독교인이었다. 내가 알고 있다던 교리는, 성경 구절은, 잘못 알고 있거나,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거나, 아예 존재하지도 않음을 알게 되었다. 난 그동안 내가 기독교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을 모두 버리고 다시 배워야 했다.

몇 달 전에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란 묘한 제목의 영화를 보았다. 배우와 탤런트와 모델을 겸하고 있는 이나영이 남장을 했대서 화제에 올랐던 작품이다. 극중 여주인공 지현은 실은 성전환수술을 받은 남자였음이 밝혀지는데, 아마도 이렇게 그 심경을 밝힌 듯하다. “생각해 봐, 남자의 몸 속에 갇힌 여자의 심정을.” 물론 난 아무리 열심히 생각해 본다 하더라도 그 심정을 제대로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난 여태 그런 사람들을 정죄하고 욕하기만 했을 뿐 그런 생각을 해 볼 생각조차 않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고, 그 무관심이 나를 경악케 했다. 이러고도 내가 예수님의 제자라 할 수 있는가?

아마도 예전에는, 내가 동성애자가 될 리는 없으니까 굳이 그들을 이해할 마음을 먹을 필요가 없었고 그들을 쉽사리 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내 아들 로빈은 어렸고, 또, 정신 발달이 늦은 그 아이가 동성애자가 되리란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이래 저래 내가 그들의 심정을 헤아려 볼 까닭이 없었다. 말하자면 내 사랑의 크기가 고작 그 정도였던 것이다.

작가 김수현이 태섭과 경수란 인물을 통해 우리의 재고를 바라는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이 이성이 아닌 동성에게서 성적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을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실로 인해 그 누구보다도 먼저 오랫동안 괴로워했고, 그것을 부인하려고 했고, “정상인”이 되고 싶었고, 또 그렇게 살고자 노력해 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치 않는, 그러면서도 억제할 수 없는 생리적 충동과 욕구로 인해 죄책감과 수치심과 불안감과 자괴감에 시달려 왔고 수 차례 죽음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가족을 친구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견뎌 왔다. 경수는 그러나 아내를 더 이상 속이고 싶지 않고 또 하루를 살다 죽더라도 자신이 진정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과—그 사람이 남자라 하더라도—살고 싶어서 “커밍 아웃”을 했고, 경수보다 마음이 여리고 우유부단한 태섭은 들킨 김에 별 도리 없이 죽기를 각오하고 털어 놓았다

그동안 내 사랑이 더 커진 것인가? 내 울의 범위가 더 넓어졌는가? 아니면 그저 더 늘어난 나이 탓인가? 이젠 그러자 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들의 심정이 헤아려진다. 여자들에겐 설레지 않던 가슴이 그 남자에겐 설레는 것을 두고 처음엔 왜 이럴까, 참 웃긴다 하다가, 설마 내가란 짐작을 떨쳐 버릴 수 없었을 때, 정작 본인들은 얼마나 당황스럽고 놀라고 자신의 운명이 저주스러웠을까? 그 사실을 떨쳐 버리려고 부정하려고 숨기려고 얼마나 안타까운 노력을 했을까? 단지 동성이라는 이유로, 이성과의 사이에서 오가는 감정과 전혀 다를 바 없을 불타는 연정을 감추고 절제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까? 자신이 원해서, 의지적으로 선택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태어났던지 자라졌던지 아무튼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을, 그래서 그렇게 살겠다는 것뿐인데, 혐오범 내지 인간말종 취급을 받으니 그 속이 얼마나 억울할까? 그들 중에 팔자려니 하며 사랑의 감정 따위 아예 생각도 말고 아무렇지 않은 척 싫지 않은 이성과 교제하고 결혼하여 아이 낳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에 박힌 회한은 얼마나 클까? “정상인” 못지 않게 신실하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데, 오직 자신의 성적 정체성 때문에, 그 믿음을 의심받고 또 의심해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또 어떨까? 어쩌자고 하나님께선 내게 이런 짐을 지우셨는가,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내 무거운 짐을 예수께 내려 놓을 수 없는가, 나는 선택 받지 못한 지옥의 자식인가, 왜 하나님은 나를 고쳐 주시지 않느냐며  얼마나 많은 통곡과 눈물의 기도를 드렸겠는가? 그들과 그런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노라면 내 가슴이 먹먹해 오고 머리 속이 온통 혼란스럽고 만 가지 생각이 오가며 꼬인다.

우리가 그런 부모가 됩시다. 아내가 날 쳐다 본다. 이 세상에 저런 부모가 있든 없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부모가 될 거냐는 거지. 우리, 태섭이 부모 같은 그런 부모가 됩시다.

2010년 7월 28일

김유상

2010.07.29 05:46:02
*.234.29.38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요라고 물어 보면 아직은 대답이 궁색합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 말고 불쌍히 여기라는 원론적인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되도록이면 성경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만약 동성애자란다면, 성적인 이끌림이 없다 하더라도 날 좋다 하고 또 내가 보기에도 참 괜찮은 여자라 여겨지면 (드라마 속의 태섭의 채영이 그런 여자입니다.) 그와 결혼하여 아이 낳고 살겠습니다. 이성간의 결혼에 있어서도 설레임 없이 사는 부부도 상당수에 이르며, 모든 성생활이 만족스럽지도 않으며 또 설령 성관계가 없어도 행복한 결혼 생활하는 부부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성적 매력을 느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로 인해 번민에 빠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도 있는 일입니다. 버젓이 아내가 있는데 성적으로 끌리는 여자를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후자의 경우, 당연히 물리쳐야지요. 그렇다면 전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가 가정 속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실제로 겪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그 생각을 요구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그가 고뇌하고 결정할 사안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이 죄다 아니다 옳다 그르다는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제가 할 일은 그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 하고 그들을 품어 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오직 그것 뿐이 아닐까는 생각입니다.

또 하나의 묵직한, 불편한 주제를 던져 죄송합니다. 이 주제도 제가 숙제로 갖고 생각을 더 해 보겠습니다.

하람맘

2010.07.30 05:41:24
*.186.65.178

채널을 돌리다가 인생을 아름다워란 드라마가 유명한 작가의 것이라 잠시 지켜보면서 저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딸아이가 커가고 아들을 키우면서 저에게 드는 많은 생각들... 공중파 드라마에서 조차 이런 죄악이 더이상 죄악이 아닌,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국민 작가라는 사람이, 지성인 일수록 죄에 대해서 더 많이 관대한척하는 이 분위기가 전 사실 아주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생각하고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요? 언제부터 높은자리, 많이 아는 사람, 많이 가진자, 많이 배운자들은 죄를 죄가 아닌 것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척하며 장식을 해대는지... 전 사실 목사님께 들은 말씀중에 신자가 되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교통신호를 어기는 죄도 지어선 않된다는 말을 가슴을 세기고 노력하려고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제가 죄를 짓기 않는다고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아이들이 보는 것이 가장 두렵더군요. 그런데 공중파 매체, 교회, 정치 할 것 없이 세상이 미쳐가는 것에 자꾸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동성애자는 분명 우리들이 불쌍이 여기고 기도해야할 대상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성경이 쓰여지기전 먼옛날 죄악의 유전자의 결과라는 점에서 저도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더 회개하고 주님앞으로 나와야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사실 제가 사회 불의에 화를 잘내는 사람이라 너무 흥분 했습니다만 영화나 드라마들이 절 화나게 합니다...

하람맘

2010.07.30 05:46:08
*.186.65.178

옆에서 하람이가 자꾸 방해를 해서 오타도 많고 내용이 좀 정리가 않되네요. 또 흥분한 제가 웃기기도 하구요. 제가 세상에 화나는 것중에 첫째가 부모가 아이들을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고만하고 바른 아이로 키우는 것을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는 것과 죄를 지으면서도 떳떳해하는 것과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자신이 올다고만 하며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렇게 흥분을 잘해서 한국에서도 몇번 물의를 일으킨 적이 많아서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일화가 많답니다 ^^

mskong

2010.08.01 06:18:49
*.61.23.146

고등학교때 친구가 생각납니다. 여성스러운 말투와 몸짓들... 그 모습으로 인해 그 친구를 가까이 하지 못했었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어느날 주기적으로 남성 호르몬을 투약하며 남성의 모습을 찾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참으로 안됐다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습니다.

정순태

2010.08.01 07:25:19
*.75.152.231

정말 묵직한 주제입니다.

당사자들의 고통을 모르면서,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 그렇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은 것은 옳다 해야겠으나
아닌 것까지 옳다 해야 할 것인지..................

그래서 불편한 주제인 듯합니다. ^^

이선우

2010.08.01 13:24:55
*.222.242.101

제 주위에서 아직은 이런 분들을 실제 만나보진 못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가슴아파 하며 위로해 주고 기도해 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원론적 얘기만 하게 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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