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을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11:8-12)
대부분의 신자들, 아니 많은 목회자들마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젖과 꿀이란 당시로선 일용하는 필수 식품이 아니라 기호 식품 중에서도 상당히 고급스런 식품의 대명사입니다. 그래서 가나안을 아주 풍요로운 땅으로 쉽게 단정짓고는 예수를 믿고 나면 이전보다 생활 형편이 훨씬 나아지는 축복을 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아주 잘못된 해석이자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의 본질과는 거리가 멉니다.
많이 생산된다는 의미로 “흐른다”라고 표현했듯이 가나안 땅의 주산물은 물론 젖과 꿀입니다만 땅 자체가 풍요롭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젖과 꿀이 주산품이라는 것은 목축과 양봉이 주산업이라는 의미인데 곡물을 심을 수 없는 아주 척박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아리조나 사막 지역에 가보면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보호 구역이 곳곳에 있는데 너무 덥고 메마른 모래 땅이라 염소와 꿀벌을 치고 토산품을 만들어 파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바로 그런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그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습니까? “파종한 후에 채소 밭에 발로 물 대기”를 할 수 있는 애굽 땅과 비교했습니다. 수차(水車)를 발로 저어 물을 댈 수 있는 비옥한 평지라 채소나 곡물을 심기만 하면 풍족하게 수확할 수 있는 곳입니다. 반면에 가나안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라고 합니다. 우선 채소와 곡물을 심을만한 평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간혹 내리는 비가 대지를 적실 정도가 안 됩니다. 말하자면 인간이 일용할 주 식품인 곡물과 채소를 경작할만한 여건이 전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젖과 꿀을 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기호 식품은 양으로 따지면 조금만 생산해도 사실은 아주 많은 양이 됩니다. 기호식품이란 주 식품에 첨가해서 아주 적은 양을 섭취하는 것이고 또 매일 젖과 꿀만 먹고 살 수는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쌀 수십만 톤과 꿀 1 톤이 먹일 수 있는 사람 수를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나아가 당시의 경제적 형편과 식생활 습관을 감안하면 젖과 꿀은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최고급 식품입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흐르는”이란 표현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도저히 사람이 살 데가 못 되는 땅이 가나안입니다.
정작 신자가 관심을 쏟아야 할 부분은 “왜 그런 척박한 땅을 하나님은 오히려 축복의 땅이라고 약속하셨고 또 그 크고도 수많은 희생들을 거쳐서야 인도하셨는가?”입니다. 애굽의 종살이 사백년과 가데스 바네야와 광야에서의 온갖 반역으로 인해 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죽었지 않습니까? 그 중에 모세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 해답을 본문이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歲初-신년초)부터 세말(歲末-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척박하여 산물이 희귀한 땅이라 오히려 하나님이 일년 365일 한 시도 떠나지 않고 항상 지켜 보호해 주시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히려 그런 땅을 당신의 백성에게 권고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여건이 풍족한 곳이 아니라 정반대의 땅으로 당신의 자녀들이 들어가 살기를 하나님은 원한다는 것입니다. 또 바로 그러하기에 세상 수단에 절대 의지하지 않고 오직 당신의 계명대로만 살아라고 합니다.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선정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백성으로 선정한 이유와 완전히 동일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7:7) 신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해주는 백성들의 모습도 동일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1:26)
한 마디로 신자가 되었다는 것,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는 주위 여건이 어떠하든 삶의 세밀한 구석부터 전 인생을 걸기까지 오직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에 의존하여 산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절대로 돈의 많고 적음이나, 사람들의 칭찬이나 멸시와, 환경의 풍족함이나 궁핍함에 굴복하지 않고 사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신8:3) 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살면 젖과 꿀은커녕 마실 물마저 없는 광야에서 무려 40년을 방황해도 주리거나 갈하지 않고 의복이 헤어지지 않으며 발이 부릍지 않게 해줄 하나님이 세초부터 세말까지 항상 우리를 지켜봐 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참 정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막상 가나안 땅에 들어가선 젖과 꿀을 실컷 맛보았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젖과 꿀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렸습니다. 어쩌면 40년간 방황하던 광야가 오히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은 발로 물 대는 애굽 땅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탐심을 좇아 살고(골3:5) 있습니까? 진정한 젖과 꿀을 사모하기에 땅이 물을 흡수하는 험한 산과 골짜기에서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손을 잡고 따라 가고 있습니까?
3/1/2006
'끝이행복'님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코로나 사태를 주님의 은혜로 강건하게 극복하시길 바라며 귀한 의견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팔레스타인 지역의 포도나무에 송이들이 엄청 많이 열리는 모습을 관광안내 TV 프로그램에서 오래 전에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가나안 땅 전체가 3-4천년 전에 성경의 문자적 기록처럼 정말로 옥토였다면 오늘날의 기후 지리와 너무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에는 숲과 물이 풍부했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으나 아직은 검증되지 않는 이론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진실로 밝혀진다면 당연히 제 설명은 틀린 것이 됩니다. 그러나 노아 홍수 같은 격변이 모세 시대 이후로 그 지역에만 따로 있지 않았기에 저는 가나안 땅의 상태를 현재와 같다고 추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도 하나님을 왕으로 모실 신정국가에서 풍성히 누릴 영적 축복을 상징하는 표현이자, 실제로 목축과 양봉이 중요 농업 내지 생업인 현실적 의미도 함의한 이중적인 표현법으로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말씀 안에서 활발한 나눔을 통한 은혜로운 교제 동역을 기대해봅니다.
잘못가르쳐진 성경에도 있어야할 내용이네요.
약하고 깨지기 쉬워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없으면 결코 살지 못하기에 오직 그분만을 의지하여 살아야함이 그분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이며 나아가 창세전부터 주님께 택하심을 입은 바로 우리 성도임을 깨닫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하여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주님의 말씀으로 배불리 살아야함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