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수6:1-3)
여리고 성 함락의 기사를 볼 때에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의 기적적 간섭에만 열광합니다. 전쟁 한번 치르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침묵의 기도행진을 하다가 때에 맞춰 찬양을 부르면 난공불락의 성도 순식간에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꼭 물리쳐야 할 대상을 두고 우리도 성을 밟는 모습으로 그 주위를 돌며 기도하면 실제로 그 대적이 무너지는 체험도 합니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크게 두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침묵의 행진을 하기 전에 가데스 바네야에서 40년 전 실패한 경우와 대비해 영적으로 완전히 순결하고 성숙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선 정탐꾼들이 그 임무를 성실하게 완수했고(2장), 제사장들이 믿음으로 범람하는 요단 강에 먼저 발을 내디뎌 모든 백성을 안전하게 건너게 했고 하나님이 홍해 때와 동일하게 그들을 인도하고 있음을 목도했습니다.(3장)
나아가 요단 도하를 기념하는 예배를 드렸으며(4장), 모든 군인들, 즉 광야 노중에서 난 새로운 세대가 전쟁을 앞두고 할례를 행했고(5:2-9),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5:10), 유월절 이튿날에 만나가 그치고 그 땅 소산을 먹되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습니다.(5:11-12) 마지막으로 전쟁 사령관인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군대 장관을 만나 그 앞에서 신발을 벗는 정결례까지 마쳤습니다.(5:13-15) 처음 실패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입니다.
여리고 성의 기적이 절대로 단순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은혜란 특별히 기적은 기도만 한다고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을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이 있어야 함은 두 말할 것도 없으며,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고, 정말 주의 인자가 자기의 생명보다 낫다는 고백과 헌신이 있고, 마지막으로 반드시 그런 믿음과 결단이 실제 순종의 행위로 나타나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전투 전에 행한 모든 일에 의심이나 불평의 흔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나아가 전쟁을 치르기 전에 할례를 행한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것도 요단을 건너 대적을 눈 앞에 둔 여리고 들판에서 말입니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렸다”(5:8)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겜의 대적을 속여 할례를 하게 한 후에 대살육의 보복극을 벌린(창34장) 이스라엘로선 쉽게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틀림 없이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하며 힘들었던 체험이 이제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새삼 믿음의 결단을 견고하게 해주었을 것입니다. 고난의 떡을 먹어야만 믿음이 성숙해지고 순종의 기틀이 마련되는 것은 모든 세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영적 진리입니다. 스스로 할 수 없을 때에 주님의 도움을 바라게 되고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만 구원의 소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전투 이전에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순결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그래서 쉽게 납득이 안 되는 7일 간의 침묵의 행진도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는 여리고 성 주민들이 단 한번도 응전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고 했습니다. 여리고 들판에서 이스라엘이 유월절 제사를 지냈고, 또 그 땅 소산을 먹으려면 어쨌든 곡식을 추수하고 탈곡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고, 할례를 행할 동안 진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모습들을 빤히 보았습니다. 얼마든지 기습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침묵의 행진을 할 때에도 성 위에서 바라 보면 언약궤를 매고 제사장과 찬양대가 앞서는 등 전쟁을 치르는 대진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생전 처음 보는 이방 민족의 신기한 행위를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는 자기들 성벽의 견고함을 철저하게 믿었을 것입니다. 과거 어떤 강대한 외적의 침입으로도 무너지지 않은 그 성벽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전투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으니 그들도 응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정탐꾼이 라합의 집에서 확인한 바는 이미 여리고 백성들이 여호와가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아모리 사람의 두 왕을 전멸 시킨 일을 듣고 간담이 녹아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에다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기”(5:1)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겁을 잔뜩 먹고 쥐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거꾸로 읽는 성경 사이트 #107 참조)
다시 말하지만 여리고 성 함락은 하나님의 오랜 기간에 걸친 주권적 계획에 따라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어우러진 결과이지 단순한 우발적 기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에게 남아 있던 모든 애굽의 수치를 완전히 제거한 후에야(5:9) 비로소 받게 된 하나님의 전적 은혜입니다. 그래서 여리고 백성들은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의 큰 권능을 듣고 겁이나 성을 닫고 있었는데도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완전히 성결하게 준비된 자에게 하나님은 여리고성 같은 은혜와 이적을 베푸십니다. 거룩하게 된 자에게만 거룩한 하나님이 온전히 임재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런 신자는 불신자들이 먼저 알아봅니다. 주의 사람이 주의 권능에 사로 잡혀 있으면 어떤 죄악과 흑암의 세력도 그를 무너뜨릴 수 없음을 세상과 사람과 사단이 먼저 알아챕니다. 온전한 믿음의 사람 앞에는 그 대적이 먼저 정신을 읽고 자기의 성을 굳게 닫고 아예 얼씬도 못합니다. 한 길로 왔다가 열 길로 도망가기에 바쁩니다.
신자는 여리고 성의 기적을 동경하기 이전에 이스라엘이 그 전투에 앞서 행한 모든 헌신과 순종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기적만 소원해선 절대 기적이 일어나지 않지만 애굽의 수치를 먼저 제거하고 오직 주님의 은혜만 소원하여 자기 생명까지 바치며 순종의 발걸음을 한 발자국이라도 내디디면 기적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믿음으로 기적이 일어나기를 열심으로 간구하고 있습니까? 어떤 형편과 사건을 만나도 하나님의 백성답게 온전히 성결하기를 소원합니까?
3/8/2006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분의 일하심을 보면 기초부터 완성까지 우리로선 상상치 못할 완벽한 계획과 이를 행하심으로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드십니다. 어폐가 있지만 만약 공명과 방통이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평생 그분의 제자로 배우기를 소망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그분의 완벽하고 영광스런 통치에 사용되는 도구로서 그분의 때와 방식에 작은 톱니로라도 참예됨을 간절히 소망하며 긍휼을 베푸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