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전도서 기자는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인생이 헛되고, 헛되고, 또 헛되다고 했습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인생에서 쓴 맛 단 맛을 다 겪다보면 특별히 더 좋은 일과 더 나쁜 일이 따로 없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은 제트기처럼 후딱 지나가버리기에 지난 실패들을 회복할 여유는 점점 없어집니다. 인생의 깊은 맛을 좀 터득했다 싶으면 어느 사이엔가 죽음이 목전에 다다라 그 맛을 즐길 틈이 도저히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 인생의 허무에 대한 넋두리만 계속 읊어대던 전도서가 끝은 이렇게 맺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 인생의 결국이 아무리 허무해 보이지만 하나님 뜻 안에 있을 때만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국 프로 아이스하키 리그(NHL)의 한 스타플레이어가 경기가 워낙 격렬해 항상 부상을 당하기 때문에 고통을 없애려 진통제에 의존했습니다. 차츰 알코올과 마약에도 손을 대게 되었고 집안 형편을 아예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가장이 되어 결국은 8년간의 화려했던 선수 생활이 완전 실패로 끝나버렸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 남지 않았고 가족도 떠나고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호텔 방에서 생을 포기할까 고민 중에 있었는데 문득 어린 시절 교회 주일학교에서 배운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무릎 꿇고 간절히 자기를 도와달라고 잠시 기도했더니 알코올과 마약이 줄 수 없었던 너무나 큰 평강을 체험하고 새 인생을 출발했습니다. 그는 본 시편의 기자처럼 그 때까지 세상 속에서 보낸 수십 년보다 예수님과 함께 한 몇 십 분이 정말 더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현실적 상황이 형통하게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만약 누가 지난 수십 년간의 인생과 그것도 화려했던 스타플레이어 시절과 단 몇 십분 동안의 기도 체험과 어느 쪽을 다시 맛보고 싶은가라고 물었다면 그 답은 틀림없이 후자일 것입니다. 신자에게 예수를 처음 믿은 그 얼마 동안의 감격과 그 전에 있었던 삶의 모든 형통과 비교해서 어느 쪽을 다시 택할 것인가 물어도 같은 대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본 시편에선 “악인의 장막”을 주의 궁정과 비교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수가 알코올과 마약으로 자신의 몸과 영혼은 상하게 했을지라도 도둑, 살인 같이 남에게 큰 피해를 주는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아가 세상사람 중에는 신자보다 더 의롭게 사는 자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주님과 함께하는 단 한 시간이 세상에서 주님 없이 평생을 두고 큰 업적을 쌓는 것보다 훨씬 더 좋고 귀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허리우드의 한 늙은 여배우는 팬들로부터 망각된 상태로 죽기를 소원해 세상과의 접촉을 완전히 끊어버렸습니다. 최고 인기를 누렸던 시절의 화려했던 이미지로만 사람들 사이에 기억되어주기를 바래 늙어서 추해진 모습으로 그 이미지가 훼손당하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바실 올리버라는 영국 런던의 YMCA(기독청년회) 빌딩의 수위, 이를테면 본문에서 말하는 여호와 궁정의 수위가 되어 30년을 한 결 같이 근무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는 세상에선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두고 그 빌딩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위해 온갖 궂은일을 묵묵히 해냈습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은 그를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해 주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허리우드 여배우는 비록 사람들에게는 화려한 이미지를 남겼을지라도 하나님 앞에는 가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은 인생의 목적과 그 궁극적 결말로 따져 오직 두 종류로만 나뉩니다. 하나님에게 인정받으려는 자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자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인생은 정말 전도서의 표현대로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모든 사람은 불안전할 뿐 아니라 결국 다 같이 썩어 없어질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당대에는 여배우를 아름답게 기억해줄지 몰라도 불과 몇 십 년이 지나지 않아 기억해준 그 사람들마저 세상의 관심에선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을” 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공급받고 그분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면 무슨 일을 해도 필연적으로 허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세상에서 프로운동선수나 유명 여배우로 사람들의 갈채를 한 몸에 받았어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나아가 인간은 악을 저지르면 반드시 두렵고 떨리게 되어 결코 평강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 또한 내재하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그 죄악을 아주 혐오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없는 인간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허무를 느끼는데다 죄까지 저지르면 공포와 수치마저 더해집니다. 그러니 악인의 장막에 아무리 오래 거해도 여호와 궁정의 하루와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본문을 수학적 등식으로 표현하자면, (형통, 쾌락, 안락, + 허무, 갈급, 공허, 불안, 공포, 수치) X 1,000 일 < (핍박, 무료, 불편 + 평강, 자유, 기쁨, 위로, 의미, 가치) X 1 일이 됩니다. 바로 신자의 인생관입니다. 세상 사람은 등식의 방향이 반대가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신자에게는 세상의 핍박과 하늘의 평강이 함께 하고, 불신자에겐 세상의 형통과 하늘의 허무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자유와 위로와 평강이 더 넘칩니다. 반면에 멀리하면 할수록 실패와 낙심과 좌절과 허무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은 사단에게로 가까이 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단은 거짓의 아비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람에게 거짓을 안겨 주는 것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가 붙든 것은 사단이 주는 거짓뿐이라 결과적으로 허무밖에 남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본 시편 기자의 고백이 자신의 종교적 열심과 헌신을 과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또 그러면 하나님의 보상과 축복이 따를 것이라고 기대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세상을 살면서 날마다 생생하게 체험했던 것을 있는 그대로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 생명의 빛을 조금이라도 맛 본 자라면 그 빛 속에만 거하고 싶기에 누구라도 그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다는 너무나 진실 된 간증입니다.
자신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음을 확신하는 자는 반드시 여호와의 궁정을 찾게 됩니다. 그 길만이 인간이 참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도임을 잘 압니다. 이미 정해진 자신의 숙명을 부인하고 다른 길로 가려는 인간에게 기다리는 것은 참담한 실패뿐입니다. 인간은 절대로 물질로 우연히 이뤄진 존재가 아니기에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참 행복을 찾으려 나서선 그 보이는 것 전부를 차지해도 아예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지니고 살아야만 하는 인간이 그 형상 자체를 부인하고는 삶과 인생이 결코 온전해지지 못합니다. 아무리 진화를 신봉하는 불신자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형상은 남아 있습니다. 다른 말로 물질은 절대로 자기가 허무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불신자가 이 엄연한 진리를 억지로 부인할 수 있을지 몰라도 평생을 살고 난 이후 그 인생이 허무했다는 사실만은 결코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솔직히 어떻습니까? 하나님 없어도 형통한 세상이 훨씬 더 좋습니까? 세상에서 다 망해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단 한 순간이 더 좋습니까? 혹시 양쪽에서 다 그럴 수 없을까 기대하고 있다면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착각이 따로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단과 함께 할 리는 결단코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모든 인생이 살같이 지나며 단 한번 뿐이라 해도 다 같이 허무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부인하는 인생만 허무해질 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계시기에 결코 외롭지 않으며 또 그분으로 인해 그 인생에 소중한 의미와 가치가 반드시 생겨납니다. 그분의 빛 가운데로 들어가기를 소원만 하면 당신께서 의미와 가치를 풍성하게 부어주십니다.
http://www.nosuchjesus.com
2/14/2007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
마태복음 16장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떠나가시다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째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 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누가복음 24장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니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