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9:1-3) 특별 새벽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

조회 수 1100 추천 수 31 2007.08.08 1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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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여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단9:1-3)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 와 있는 자기 민족이 속히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특별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예레미야서의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는 예언을 읽은 후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말씀의 뜻을 불현듯 깨닫고 드린 기도가 아닙니다.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을 알고도 멈추지 않고 하루 세 번씩 드려왔던 기도를 좀 더 간절하게 했을 뿐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항상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가 이 기도를 한 때는 포로로 잡혀온 지 67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럼 구태여 기도하지 않아도 조금만 참으면 예언대로 포로 귀환이 이뤄질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가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기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을 읽고 나니까 갑자기 늘 하던 기도에 뭔가 종교적 열심을 더 드러내고 싶어진 것입니까?  

성경이 다리오가 갈대아 왕이 된 원년에 특별 기도를 했다고 기록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제 겨우 3년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도무지 포로 귀환의 낌새가 보이지 않더라는 뜻입니다. 그는 메대의 총리인지라 국제정세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메대의 마지막 왕 다리오는 사위 고레스에게 왕위를 물러주고 갈대아 지역의 분봉왕으로 물러났습니다. 이제 훨씬 더 강력한 바사제국이 세워져 귀환이 점점 멀어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예언의 말씀을 붙들고 더 간절히 기도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못 믿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판단이 인간적 어리석음보다는 성령이 주시는 지혜에 바탕을 두며, 단지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 자기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했던 것입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큰 권능에 자신의 전부를 온전히 붙들어 매기를 소원했던 것입니다.

그는 총독으로서 다리오나 고레스를 쉽게 알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귀환시켜 달라고 금식기도로 무언의 시위를 벌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부터 이방 왕궁의 세상 권력에 오염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통해 그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하고도 신령한 영향력이 미쳐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헌신하겠다는 서원의 기도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예언에 비추어 현실은 자꾸 거꾸로 가고 있어 염려와 의심이 생겼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하나님 말씀만 의지하도록 자신의 믿음을 더 견고하게 세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가 꼭 징표를 요구한 것은 아닐지라도 70 이레의 환상(20-27절)을 그 응답으로 보여주어 예언 성취를 확실히 보증해 주었습니다.  

만약 그의 기도가 포로귀환 즉 현실의 환난에서 구원 받는 것이 주목적이었다면 구태여 그렇게까지 간절히 기도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한 번 나간 말이 응함이 없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만큼 온전히 믿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나아가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하나님의 영광은 절대 변함이 없음을 잘 아는 친구들을 두었고 그 또한 동일한 믿음으로 사자 굴에 던져졌지 않습니까?  

그는 자기들이 포로로 잡혀와 곤욕을 치르는 까닭이 하나님께 배교하고 범죄한 때문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포로 귀환이 메대나 바사 왕국의 정세와 관계없이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음을 믿었습니다. 매일 세 번씩 기도할 때에도 틀림없이 민족을 위해 회개하며 중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약속의 기한이 삼년 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  동족의 영적 상태를 살펴보니까 도무지 거룩하게 변화된 흔적이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따로 특별 기도를 하기로 결심하여 하나님의 구원보다는 자신들의 회개에 초점을 맞추어(4-19절) 간구했던 것입니다.

죄에 대한 징계가 풀어지려면 죄에서 돌아선 결과가 분명히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결하고 경건해지기는커녕 왜 빨리 구해주지 않는지 불평과 의심을 섞어 떼만 쓸 뿐이었습니다. 도대체 이런 상태로 계속 가다간 약속이 취소되지 않을지 두려워진 것입니다.  혼자서라도 하나님께 진노를 거두고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매달리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믿음은 죄를 회개하는 차원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에레미야의 예언이 자기들이 포로로 잡혀 오기도 훨씬 전에 이미 이뤄진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형편과는 아무 상관없이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진행시켜 나가되 특별히 당신의 자녀에 대한 사랑은 언제 어디서든 절대 거두시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했던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진심으로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1-13) 진정한 신자라면 너무나 크신 이 긍휼 앞에 어찌 눈물로 금식하며 엎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70년 만의 귀환을 먼저 약속한 후에 당신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약속이 어김없이 이뤄지도록 부르짖으라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기도하면 약속을 지키고  그렇지 않으면 취소한다는 조건을 달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신자를 향한 당신의 생각이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것이라고 다짐한 후에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런 긍휼을 받기에 합당한 신자가 되기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께 눈물을 뿌리며 울부짖어야 할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의 너무나 큰 긍휼에 비추어 보아 너무나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어야 만합니다. 그분은 제사를 받기보다 중심에 철저한 통회가 있는지부터 먼저 보십니다. 한 마디로 다니엘의 특별 기도는 영원토록 신실하신 하나님에게 자신과 동족의 잘못을 일일이 애통한 심령으로 자백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날의 특별기도는 주로 어떤 모습입니까? 교회마다 경쟁적으로 하는 일회성 행사입니다. 그것도 정초에 그해 자신과 가족의 안녕과 형통 및 교회의 양적 성장을 비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흥미롭게도 하나님의 자기들을 향한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과  밝은 미래라는 것은 다니엘과 똑 같이, 아니 더 확실하게 믿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찢으며 우리 죄악을 실토하고 그에 대비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감사는 눈을 닦고 보려야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도무지 은혜를 받을 조건이 없고 심지어 그 정반대에 있음에도 그분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니엘이 평소 하루 세 번씩 그분께 감사하며 기도했듯이 그분 또한 우리 일생을 향한 신령한 계획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시키고 계십니다. 특별기도로 현실적 복을 더 세게 빌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죄가 너무나 큼에도 비롯하고  긍휼을 거두지 않기에 나아가 그분께서 오히려 더 큰 열심으로 우리를 당신의 궁극적인 영광 가운데로 이끌고 계심을 절감하기에 눈물로 감사하며 엎드릴 수밖에 없어야만 합니다. 

8/9/2007

상혁

2007.08.08 22: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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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싸~님! 지난 주 부터의 말씀이 어찌나 저며오는지....
피납사태를 생각하며 한국교회와 그들을 생각하고 참 울지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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