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7:8-10) 절반만 구워진 신앙

조회 수 1081 추천 수 40 2007.08.12 21: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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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되니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할찌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저희가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호7:8-10)



호세아시절 이스라엘의 삶 가운데 정의가 구현되고 사랑으로 섬기는 모습을 하나님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로 회개토록 선지자를 보내어 경고했지만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죄를 범했습니다. 이에 임박한 심판을 강력히 예고하면서 그들의 영적 상태를 “뒤집지 않은 전병(煎餠)”에 비유했습니다.  

전병이란 고운 가루로 반죽하여 구운 소제의 예물입니다. 그런데 뒤집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 아직 완전히 익지 않은 즉 미성숙한 믿음을 말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아직 자라지 않았다고 징계하거나 심판하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오히려 믿음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모든 주위 여건을 조성하고, 믿음 안에 서로 위로하고 도전하는 동료와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지도자를 붙여 주시며, 나아가 성령으로 직접 세밀하게 간섭하십니다.

뒤집지 않았다는 것은 뒤집을 때가 되었는데도 뒤집지 않은 상태입니다. 밑의 반쪽은 익었지만 위의 반쪽은 아직 반죽한 상태 그대로입니다.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영적 상태가 서로 혼합되어 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덕적인 하자나 의심이 많은 믿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그것도 미성숙한 믿음에 해당됩니다.  

본문이 “열방에 혼잡되니”라고 말하듯이 열방의 믿음이 함께 섞인 것을 뜻합니다. 여호와를 믿으면서 다른 나라의 우상들도 동시에 섬긴 것입니다. 나아가 다른 나라와 인본주의적인 외교 관계를 맺어 그들의 도움에 의존하고자 한 것입니다. 요컨대 한 입으로 여호와와 바알을 함께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와 또 그 결과입니다. 우선 이유는  이방처럼 먹고 마시는 것이 풍부해지고 나라가 강대해지기를 원했고 또 그런 나라와 친교를 맺어 도움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이방에게 계속 시달림을 받다가 결국 그들에게 멸망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정작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 했습니다. 여호와를 완전히 배반하여 아예 섬기지 조차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를 인하여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14절)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과는 상관없이 형통을 바라고 환난에서 구해주기만 간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로선 여호와가 자기들을 특별히 사랑하여 선택해주었기에 그에 맞는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왜 여호와가 자기들에게 어느 민족도 받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랑을 베풀어주었는지에 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열방의 부강이  부러워 그들의 신도 섬기고 때로는 그들의 도움을 청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에게 수탈과 멸망을 당하자 또 다시 여호와께 눈물로 구원을 간구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의 형통만을 위해서 여호와를 찾았고 심지어 형통을 보장해 준다면 아무 신이나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바로 오늘날 우리 대부분의 모습이 아닐까요? 공개적으로 다른 종교를 동시에 믿지는 않지만 신앙의 목표가 육신적 안녕과 현실의 형통뿐 아닙니까? 또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삶에서 성(聖)과 속(俗)이 혼재되어 있고 심지어 속이 주를 이루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바꿔 말해 신앙을 갖는 유일한 이유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여 내 쪽의 필요를 채우려는 것입니다. 그분의 나를 향한 기대에는 아무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아예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이 열방에 혼잡되고 또 그들에게 멸망당하듯이 현실의 형통만 붙들려는 신앙은 도리어 현실에서 고난으로 결말짓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하나님께 슬피 부르짖어보지만 그분은 아무 조치를 취해주지 않습니다. “저희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16절)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하나도 실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병을 뒤집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완전히 새까맣게 타버려서 아예 먹지 못하고 버려야 합니다. 현실 형통만 바라고 여호와를 찾다가 반드시 뒤집어야 할 때에 뒤집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현실의 형통도 분명 주십니다. 특별히 처음 믿을 때에 더 그렇습니다. 당신의 선하심을 맞보아 알아서 오직 당신만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런 축복에만 잠겨 있지 말고 곧 바로 처음에 가졌던 여호와에 대한 기대를 전병 뒤집듯이 완전히 뒤집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을 바라는 신자 쪽의 기대로 신앙을 출발했지만 하나님이 신자에게 기대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신앙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거는 기대가 무엇입니까? 오직 당신만을 기뻐하고 찬양하며 경배케 하는 것입니다. 신자와 당신과 온전한 인격적 교제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의 형통만 바라는 세상 사람에게 혼잡되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과 혼잡하지 않으니까 자연히 세상에서 유별나게 눈에 띄어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이 현실의 형통에서 하나님 안에서 거룩해지는 것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또 그 바뀐 인생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 또한 거룩해지도록 만들어야, 최소한 그러고 싶다는 도전은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신자가 세속에서의 형통을 위해서만 하나님을 찾고 많은 교회가 그에 부응하여 그런 하나님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자는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며 성소에도 인본주의적 사상이 복음으로 위장되어 세속적 기교를 동원해 교묘하게 선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그에 따른 역사는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이 속을 따르면 속이 성을 삼켜서 도리어 멸망된다고 말입니다.  

그럼 다른 해결책은 없습니다. 형통을 구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고 아예 처음부터 선언하는 것 말고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을 위해 그분을 찾은들 그분도, 형통도 찾지 못하고 오직 멸망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입니다. 대신에 그분을 기뻐하기 위해서만 찾으라고 말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더 늦기 전에 전병을 뒤집어야 합니다. 신자와 교회 모두 뒤집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바꿔지려 하기 보다는 그분의 우리를 향한 호의만 이용해 먹으려는 의도를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8/13/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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