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1-4)
성경을 읽을 때에 항상 유의하여야 할 것은 저자의 저작 의도입니다. 특별히 신약 성경의 서신서의 경우는 해당 교회나 초대 교인들의 특정한 상황에 맞추어 쓴 것이기에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고린도전서는 아시다시피 교회 안에 일어난 분쟁과 여러 신학적 논쟁을 해결하고자 쓴 것입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교회가 근본적으로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지침을 본서신의 모든 구절에 반영하면서 저작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도 단순히 이스라엘의 역사를 반복해 상기시키는 차원을 넘어서 분열과 논쟁이 분분했던 고린도 교회가 따라야 할 모범으로 모세 시절의 이스라엘 공동체를 예로 든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직접 세우고 이끄셨던 구약교회의 모습을 빌어서 신약교회가 지향해야할 이상적인 교회 상을 설명한 것입니다.
바울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 한다고 이중부정용법을 사용해 아주 강조했습니다. 모든 교회가 반드시 기억하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동일한 단어를 몇 번이나 사용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의미라는 뜻입니다. ‘다’(all)와 '같은'(same)이 바로 그것입니다. 당연히 분쟁을 일삼는 고린도 교회더러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 모세에게 속하였다”(‘다’가 직접 수식하지는 않았지만 문맥상 같은 의미임)라고 했습니다. 그럼 담임 목사에게 교인들이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그래서 무슨 일이든 공산국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합니까?
이는 우선 고린도 교회가 서로 바울에게 혹은 아볼로에게 속했다고 나뉜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 영적인 지도자가 여럿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사역자의 숫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 신학적 논쟁이 있었듯이 지도자에 따라 믿음이 나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동일한 믿음을 가진 자들끼리 동역하여 교인들의 믿음도 하나로 통일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았습니다.(민12:8) 한 마디로 항상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를 받아 오로지 그 뜻에 따라 백성을 이끈 지도자였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영적 지도자는 반드시 하나님께 직접 받은 말씀으로, 직통 계시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그분의 뜻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교인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야 합니다.
떨기나무 불꽃으로 임재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소명을 받은 이후로 모세는 백성들을 이끌면서 단 한 번의 실수(민20:1-13)를 제외하고는 그분의 뜻에 어긋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 한 번의 잘못도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를 잘못한 것이지 백성들을 지도하는 데에 결정적 오류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물론 반석에 말로 명하기만 하면 될 것을 과격하게 지팡이로 침으로써 자기를 따르는 백성들 앞에서 지도자가 일종의 불신앙의 모습을 보여준 잘못을 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어쨌든 백성들로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음료를 마시게 했지 자신이 만들어낸 인간적 물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아가 그 일로 인해 그는 하나님에게 개인적으로 벌을 받았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한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먼발치서 바라만 보고 백성들만, 그것도 수시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불평하는 자들을 천신만고 끝에 들여보낸 지도자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겠습니까?
요컨대 모세는 교인들을 위해서 온전히 자기를 희생한 영적지도자였습니다. 금송아지 사건으로 백성을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차라리 자기를 죽이더라도 죄를 범한 백성은 살려달라고 매달렸지 않습니까? 교회는 오직 하나님 뜻대로 살고 그 분 뜻이 아니면 죽는, 그것도 교인들보다 앞서서 죽는 지도자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교회답기 위해선 그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었고, 다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신령한 음료를 마셨습니다. 교회를 구성하는 지체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동일한 신앙 체험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신령한 식물과 음료를 언급한 뜻은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로 의견이 나뉜 고린도 교회에게 신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것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강조한 뜻은 모두가 동일한 체험을 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그 체험이 반드시 하나님이 이끄신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체험의 종류가 아니라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와 인도함을 받았고, 홍해의 기적으로 구원을 받았고,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와 메추라기로 일용할 양식으로 먹었고,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광야에서 그것도 땅이 아닌 반석에서 나온 물을 마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머물라고 하면 머물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광야에서 자기 힘으로 한 일이라고는 사실상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고 입혔습니다. 그래도 그 사십년 동안에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했고 발이 부릍지 아니했습니다. 아무리 지도자가 바로 서 있어도 교인들이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바른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 모세 같이 위대하고 신령한 지도자가 있었기에 그 일이 가능했던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 부분에서 교회가 교회다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출현합니다. 올바른 지도자와 바로 선 교인들이 있다고 진정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핵심은 따로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교회를 이끄는 진짜 지도자는 모세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대명사 ‘이는’ 앞에서 말한 내용 전부를 받는데 이스라엘이 동일한 신앙 체험을 하게 된 근거와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이었다고 합니다. 반석이라면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어야지 그들을 따라 다닐 수 없습니다. 반석은 바로 그들과 동행한 그리스도였습니다. 모세 대신에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선재성(先在性)을 가졌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광야 교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방황하다 보니 물 하나 없는 곳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반석으로 이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석이 그들을 따라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아 헤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 장막 가운데 거하면서 한 시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나아가 백성들은 몰라도 모세만은 자기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달아 오직 하나님의 능하신 손길만 믿고 따랐습니다. 바로의 궁정과 미디안 광야 80 년의 인생 끝에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나 선행이 아닌 하나님의 긍휼에만 의지해야 함을 절감했던 것입니다. 모세의 신앙도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바라보는 것이었으며 그가 백성을 이끌면서 가르친 말도 항상 그랬습니다.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
바꿔 말해 구약교회도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던 것입니다. 신령한 식물과 신령한 음료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예표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조도 사실상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기념하는 성찬식에 참여했던, 아니 하나님께서 참여시켰던 것입니다. 요컨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그리스도의 반석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에서 언급한 “올바른 지도자와 바로 선 교인들이 있다고 진정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 어폐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만 서면 지도자나 교인이나 자연히 올바르게 됩니다. 올바른 지도자나 교인이란 자체가 그리스도 반석 위에 서 있다는 뜻이며 그러면 저절로 진정한 교회가 됩니다. 쉽게 말해 그리스도 반석 위에 서 있지 않으면 절대 올바른 지도자, 교인,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이끄셨던 광야 교회처럼 교회는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처럼 살면서 오직 그리스도만 믿는 동일한 신앙 고백과, 그분과 항상 동행하는 동일한 신앙 체험과, 또 그 구원과 동행의 체험을 증거하는 자들로만 이뤄져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임을 고백하며 그분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동일한 세례와 성찬이 따라야 합니다.
재삼재사 강조하건대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뿐입니다. 교회 안에 가르쳐지고 나눠지고 증거되고 실현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모든 것이 오직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바탕 위에서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복음으로만 살고 죽는 지도자와 교인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지도자가 먼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자꾸만 금송아지를 그리워하는 교인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자신을 먼저 죽이더라도 그들을 살려 달라고 눈물로 매달리는 목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복음으로만 낳는 아비 같은 목자 아래 그 아비를 본받아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아들 같은 신자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지금 어떠하신지요?
8/24/2007
생각케 하시는 말씀,
가슴에 안고 갑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