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13:9-14) 하나님이 언제나 내편은 아니다.

조회 수 1173 추천 수 56 2007.08.26 19: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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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방백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나니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저에게 임하리라 저는 어리석은 자식이로다. 때가 임하였나니 산문에서 지체할 것이 아니니라.”(호13:9-13)



영적 타락이 극도에 다다른 북 이스라엘에게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이 해산하는 여인처럼 임박했다고 선언 했습니다. 해산하는 여인에 비유한 것은 시기의 급박함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크기도 최고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심판을 예언한 것처럼 보이는 본문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몇 가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은 심판의 원인을 백성들의 죄악이라 하지 않았고 당신을 대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놓고 대적한 적은 없습니다. 물론 가나안 우상을  숭배한 것이 내용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셈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여호와 하나님을 외면하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섬겼습니다. 나아가 너무나 큰 이적을 많이 경험한 그들로선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감히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도와주는 하나님을 대적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었는데   감사는커녕 대적할 바보는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성도 개인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일상적 은혜가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의 왕정제도에 관해 말씀한 것입니다. 사무엘 시대에 당신은 이스라엘이 온전한 신정국가로 서기를 바랐지만 백성들이 열국처럼 왕을 달라고 아우성을 쳐서 당신께선 분노하면서도 현실적 대안으로 그들 뜻대로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왕들은 응당 그분 앞에 신령하게 서서 백성들을 거룩하게 인도했어야 함에도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여로보암 1세로부터 마지막 왕 호세아에 이르기까지 210년간 19명의 왕들이 다스릴 만큼 혼란을 거듭했고 하나 같이 반역과 살육으로 왕정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네 왕과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라고 한탄할 만큼 지도자들부터 썩었습니다. 진노를 더 이상 누를 수 없어 이제 남은 것은 심판뿐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마지막 순간에도 당신이 택하고 사랑하는 백성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때가 임하였나니 산문에서 지체할 것이 아니니라.”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신께서 한탄하신 그대로 “어리석은 자식”이었을 뿐입니다. 심판이 산문(産門)까지 이르러 지체할 시간이라고는 없었음에도 여전히 회개할 기미가 전혀 없었습니다.  

또 지금껏 하나님이 그들의 “불의를 봉함하고 죄를 저장”한 줄은 아예 눈치도 못 채고 있었습니다. 열국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필요하다고 해서 왕을 세워주었으면 위급한 일이 생기면 왕부터 먼저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어야 함에도 오히려 계속 열국을 찾아가서 도움을 구했습니다. 왕을 요구한 자기들 요구를 하나님이 들어주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당장에 아무 징계가 따르지 않으니까 무슨 짓을 해도 그분이 용납해주고 있다고 섣불리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죄악을 스스로 자기 머리에 쌓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유컨대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해서 공부방을 따로 마련해 주었더니 맨 날 나쁜 친구를 불러다 방문 걸어놓고 나쁜 짓만 하는 꼴입니다. 그것도 부모가 자식이 방안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훤히 알고 있음에도 방문만 닫아 놓으면 모를 줄 알고 그랬습니다. 다 알고 있다는 표시로 문밖에서 여러 번 헛기침을 했는데도 전혀 고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벌주려고 몽둥이를 들고 문지방에 선 마지막 순간에도 그래도 자식인지라 안타까워 가장 크게 헛기침을 하는데도 여전히 노느라 정신이 팔려 그 기침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식입니까?  
      
하나님은 신자를 가능한 도와주십니다. 당신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셔서 독생자의 피로 구원해 내셨기 때문입니다. 때로 당신 뜻에 맞지 않아도 신자가 계속해서 간절히 구하면 들어주십니다.  흔히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말하듯 하나님도 성도가 그것이 없기에 당장 죽기라도 할 것처럼 울부짖으면 확실한 불의나 배교가 아닌 다음에는 묵인함으로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신자는 마땅히 자기 소원과 계획을 포함해 무엇이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때로 당신 뜻과 맞지 않아도 신자가 울부짖으니까 들어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대로 두면 신자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인생마저 포기하려 들거나 심지어 당신과의 관계마저 끊으려 할 것 같아서입니다. 바꿔 말해 신자와의 관계를 아름답고도 거룩하게 이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신자가 울부짖으며 구하여 받은 것들을 단지 자신의 안락과 생존의 수단으로 누리기만 한다면 어떤 결과가 됩니까? 아무 잘못을 범한 것이 없어도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대적한 셈이지 않습니까?  

솔직히 우리가 기도하여 응답받는 모습의 대부분이 이런 부류에 속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안락만 추구하기 위해 그저 주위 환경을 편안하게 바꿔달라는 아우성 아닙니까? 천신만고 끝에 응답 받으면 다시 세상 따라 가기 바빴지 그분 뜻대로 신령하고 거룩해지는 데에는 과연 얼마나 관심을 쏟았습니까? 힘들면 기도하고 응답 받으면 죄 짓기 바쁘다가 다시 위급한 일이 생기면 울부짖는 패턴을 반복한 사사기 시절이나 북 왕국의 이스라엘과 하나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조각한 우상 앞에 절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았다고 착각해선 안 됩니다. 그분 뜻대로 살지 않으면 그분을 대적한 것입니다. 신자 쪽의 필요만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도 그분을 대적한 것입니다. 내 필요로 인해 그분을 찾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찾고 난 뒤에 찾은 것으로 그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까 대적한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도와준 것을 잊어버리기만 해도 사실상 그분을 대적한 것입니다. 신자가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고 그분을 신령으로 경배하지 않고 있으면 자신의 욕심대로 살고 있거나 사단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공부하라고 권하는 말에 맹탕 놀고만 있으면 나쁜 짓을 전혀 하지 않고 있어도 부모를 대적한 것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부모님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하기 좋도록 책걸상, 컴퓨터, 공부방까지 다 마련해 주었는데도 그랬다면 분명 대적한 것이지 않습니까?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식이 잘 되는 것뿐이듯이, 하나님도 당신의 백성 개인에게나 공동체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당신 앞에 거룩하고 신령하게 서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때때로 나를 도와주었다고 언제나 그분이 내 편일 것이라고 쉽게 착각해선 안 됩니다. 물론 부모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지 않듯이 그분은 분명 언제나 내 편이지만 은혜가 한 없이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불의가 봉함되고 죄가 저장되고 있는 때가, 다른 말로 그분의 은혜가 실현되는 것이 유보되고 있는 때가 훨씬 더 자주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도 새벽마다 눈물을 뿌리며 열심히 간구해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8/27/2007

조재춘

2007.08.27 03:52:47
*.29.165.87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할것은 회개(자복)임을 다시한번 마음판에 새깁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니라 진정 그분이 나의 인생에 주인이신가 아닌가.....
그분이 나의 주인이라면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것이 마땅하고 당연한것이거늘.....
오직 당신의 은혜로만 살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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