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4:14-16) 참된 목사가 너무 없다.

조회 수 1194 추천 수 43 2007.08.09 19: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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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목사가 너무 없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4:14-16)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정리한 자는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지성적으로 뛰어났을 뿐 아니라 당대 최고의 종교 지도자 아래에서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아 율법 안에서 철저하게 경건했던 유대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에서도 어느 누구에게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십자가 복음 밖에서 자기가 가르침 받은 대로만 따라 하려 했습니다.

자기 생각에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려고 다메섹까지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거듭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 후 유대교 최고의 열성 신자가 복음의 최고 열혈 전도자로 바뀌었습니다. 곳곳에 교회를 세워 복음을 가르쳤고 신약성경의 교리에 관한 부분을 거의 혼자서 정리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도 제자를 둔 스승의 위치에 오른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 즉 제자들을 향해 권하는 말이 이상합니다. “내가 가르친 대로 잘 따르라”고 하지 않고.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유대교의 최고 스승 자리에 오를 뻔하다가 기독교 최고의 스승이 되어 그 교리를 정연하게 확립했던 자와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권면이지 않습니까?  

복음은 지성적 가르침과 종교적 훈련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교리를 배워 따른다고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스승, 즉 목사는 복음을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복음 안에서 자기부터 본을 보여 제자들로 그대로 닮게 만들어야 합니다. 바꿔 말해 목사는 강대상에서 설교한 대로의 삶으로써 복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폴 워커라는 목사가 자기의 구원 경험을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자라는 동안 많은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오직 한 분만이 나의 기억 속에 두드러지게 남아 있다. 해병대 출신으로 몸집이 크고 얼굴이 붉었던 그 분은 아마도 좋은 교수 방법이나 규칙은 하나도 따르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그 선생님에게 가장 잘 기억하는 것은 그가 우리들을 매우 사랑해 주셨다는 것이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잠시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자면서 그 큰 팔로 우리 모두를 끌어안으려 하면서 이름을 하나씩 불러가며 기도해 주었다. 그중 나를 포함해 일곱 명이 목회자가 되었다.” 제자들이 스승인 주일학교 선생의 본을 너무 닮다 보니 무려 일곱 명이, 아마 그 반 전체가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목자는 “스승 같은 목자”와 “아비 같은 목자” 두 가지 타입이 있는데 후자는 찾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스승 목자는 가르치기만 하고 아비 목자는 가르치지 않고 사랑만 베푸는 자입니까? 아닙니다. 스승은 학생보다는 가르치는 것 자체를 더 사랑하고, 아비는 가르치는 것보다는 학생 본인을 더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정확하게는 스승은 가르쳐서 제자를 변화시키려 하고 아비는 사랑하여서 제자를 변화시키려 하는 차이입니다.

사울이 바울 되기 전 즉, 유대교 스승이었을 때는 인간은 열심히 노력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할 만큼 충분히 거룩해질 수 있다고 배웠고 또 철저하게 그렇게 믿고 실천했습니다. 그러니 기독교가 사람은 자기 의와 공로로는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만큼 절대 거룩해질 수 없다고 가르치자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믿는 진리와 반대되는 즉, 비진리(非眞理)인지라 그냥 두다간 선량한 사람을 다 망하게 만들겠다고 판단해 이단 박멸 작업에 발 벗고 나섰습니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데반의 살인을 선동하며 선량한 교인들을 박해하는 최고 악질로 변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하신 말씀을 풀면 이런 뜻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교인들도 바로 지금의 너와 똑 같이 자기 믿은 바대로 따르지 않느냐? 또 그들은 너의 핍박을 말 한마디 않고 순순히 당하지만 않더냐? 그렇다면 선량한 사람을 망하게 만드는 자는 그들이 아니고 바로 너이지 않느냐? 나아가 너는 율법으로도 금하는 폭행과 살인을 도가 넘치도록 자행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고도 너의 의와 공로로 구원을 얻을 만큼 충분히 거룩해질 수 있다고 자신하느냐?”

초대교회 신자는 예수님의 본을 받아 아무 주저나 불평 없이 십자가를 지고 이웃을 사랑했습니다. 예수가 복음 안에서 그들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제자들을 먼저 변화시켰고 그 후 변화된 제자들은 그분 가르침대로 따랐습니다. 그들은 스승을 본받아 복음을 모르는 자들의 영혼이 거듭나도록 죽기까지 힘썼습니다.

반면에 사울은 유대교 가르침대로 자기 힘만으로 오히려 예수 믿는 자들을 변화시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만 따랐지 본받을 아비가 없었습니다. 갈급한 영혼이 하나님 은혜의 품 안에 잠기도록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해준 영적 부모를 만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인간끼리 종교적 계명을 따라 사랑하려 해보았지만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그가 영원토록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의 전부가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인간이 절실하고도 시급하게 갖추어야 할 것은 인간의 의와 공로가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뿐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비로소 모든 인간에게 온전한 부모인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을 본받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유대교를 스스로 열심히 따르는 신자에서 조건 없이 베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그분의 자녀로 바뀐 것입니다.
      
스승은 교리를, 아비는 사랑을 앞세웁니다. 스승은 제자가 지식이 진보되기를, 아비는 제자의 존재 전체가 변화되기를 소원합니다. 스승 목자는 자기 가르친 대로 제일 잘 따르는 제자를 가장 사랑합니다. 아비는 자기를 그대로 쏙 빼닮은 제자를 가장 사랑합니다.

오늘날 만약 만 명의 목사에게 “교인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자신 있게 권면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했다고 칩시다. 과연 아무 주저 없이 ‘예’라고 대답할 자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목사가 도덕적 종교적으로 완벽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목사도 연약한 인간에 불과한지라 죄를 범하고 때로는 설교한 것과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 교인들에게 온전한 아비가 되어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또 다시 모든 것을 다 바쳐 교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심지어 바울 같이 세상에서 완전했던 자도 스스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그 의가 누더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목사부터 철저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누구를 대하더라도 자신의 의가 아닌 예수님의 심정으로 불쌍히 여기며 그 영혼을 주님이 변화시켜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요컨대 인간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뿐임을 확신하기에 모든 교회 일을 예수님을 머리로 모시고 사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훈련 코스로 가르치고 찬양과 기도로 감정을 고양시키며 심리학적인 치유 테크닉을 동원한다고 해서 사단에게 묶여 있는 영혼이 새롭게 되지 않습니다. 사단을 무너뜨려 그 속박에서 인간을 건져올 수 있는 유일한 권능은 인간 목사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십자가뿐입니다. 천하의 죄인이라도 복음을 가르치지 말고 복음으로 끌어안아 주어야만 합니다. 작금 목사들이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은커녕 강단에서 그 메시지마저 차츰 사라지고 있으니 오늘날도 분명 일만 스승은 있되 아비는 너무 찾기 힘들어진 것은 아닐까요?

8/10/2007
박 신(http://www.nosuchjesus.com)

정순태

2007.08.10 01:20:22
*.95.73.2

가슴 아픈 아멘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절규했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며 무엇을 목표로 신앙생활하고 있는지.................
혹시라도 종교라는 허상에 붙잡혀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 하는 평신도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든지......
아니면 자신도 잘 모르니 성경으로 돌아가 함께 찾아보자고 바로 권면해 주든지.....
그도 저도 아니면 야고보의 권면처럼 "많이 선생되지" 않으려는 조심성이라도 지니든지....


주변을 아무리 둘러 봐도
성경이 말씀하시는 목자상에 부합되는 목사는 멸종된 것 같고
냄새나는 욕심 충만한(그러나 외적으로는 능력과 유명세로 완벽히 위장한) 목사들만 넘쳐나는 것 같아
참 진리에 갈급한 평신도들의 마음은 멍들어가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외로운 외침을 답답한 마음으로 읽습니다.


그래도 소망은 갖어야 하는 것을.............................!!!

조재춘

2007.08.10 04:52:14
*.144.211.45

소망해야할것은 그분의 말씀인것 같습니다.
숨겨놓은자...
오직 성령의 권능으로 회개의 복음과 부활하심으로 산자와 죽은자의 주인되신
예수님만이 만왕의 왕이심을 선포하는 공동체가 분명 있는줄 믿습니다.

성민기

2007.08.10 17:22:20
*.170.5.247

성민기 (2007-08-11 01:14:35)

진리는 간단 명료합니다.

나사렛 예수와 연합하여 죄와 사망의 법만 쫒는 육신이 죽어야만
생명과 성령의 법을 쫒는 부활의 생명으로, 즉 거듭난 생명으로 태어 날수 있읍니다.

사탄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통해 인간을 싑게 구속, 속박 합니다.
이 육신의 생명에 집착한 인생은 하나님을 알수 없읍니다.
안다 하고, 성경을 내세워도 그 뿌리는 거짓입니다

이러한 멸망의 자식들은 진리를 왜곡하고 자기 의를 세우는데 사용합니다.
그리스도의 본을 보이고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교만히 가르칠려고 하고 군림 하려 합니다.
거대한 건물을 세우고 쌍십지를 켜고 하나님을 앞세우며 거룩을 흉내 냅니다.

왜냐하면
그속에는부활의 생명이 조금도 없고 육의 생명이 그대로 살아 있읍니다.
지식으로만 교만 하여져서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있읍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지적 하는 것으로 위안 하는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할 줄로 생각 합니다.

"네게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네아버지시니라"
라는 생명의 말씀을 기억 합시다

고맙읍니다

운영자

2007.08.10 18:46:12
*.104.226.253

정순태님, 조재춘님, 성민기님 다들 반갑습니다.
다른 한 편으론 다른 글도 아닌 이런 내용의 글에 동감하고 안타까워하는 현실 앞에 조금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목사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현 상황을 글로써 조금 강조하다 보니 혹시라도 그런 오해를 받을까 두렵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에 의해 남겨지고 그래서 세상에선 숨겨진 사랑의 공동체와 선한 목자들이 곳곳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곳은 오히려 묵묵히 복음만 선포하고 실천하니까 평소 눈에 잘 띄지 않았을 것입니다.
빈 깡통이 더 시끄럽다고 겉으로 활발하게 드러나는 곳에서 문제가 많으니 그런 일반적 오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모든 강대상에서, 특별히 대형교회에서 오직 간단명료한 진리인 십자가와 우리 구주 예수님 만이 증거되기를 간절히 소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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