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인 신자의 삶
“화 있을찐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암5:18,19)
두 사냥꾼이 곰을 만나 한 사람은 나무 위로 다른 사람은 동굴로 피했습니다. 곰은 나무와 동굴 중간에 앉아 있는데 동굴에 들어간 사람이 굴에서 달려 나와 곰을 보곤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기를 반복했습니다. 동료가 “아니 자네 정신 나갔나? 곰이 떠날 때까지 굴에서 나오지 말게.”라고 하자, “그럴 수 없네. 동굴 속에도 곰이 있다네.”라고 답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인생을 사는 모습입니다. 자기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피난처가 결코 영원한 안식을 주지 못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 믿는 돈의 경우만 해도 부자가 되면 가정이 무너지거나 건강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아니 돈 자체가 끝없는 탐욕을 자랑하기에 아무리 벌어도 만족을 모릅니다.
좀 깨인 사람은 정신적 안정을 구해보지만 인간의 본성이 죄로 타락되어 있어서 참 만족을 추구는 해도 달성할 능력이 아예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구하지 않는 삶은 바울 사도가 표현한 대로 “향방 없는 달음질이요 허공을 치는 싸움”이며,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한 대로 “밑이 터진 웅덩이에 계속 물을 부어 채우려는” 꼴 밖에 안 됩니다.
지금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을 알고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말합니다. 본문의 근본적인 뜻은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날이 오면 하나님이 이방 열강을 물리쳐서 이스라엘을 가장 강한 나라로 세워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배교와 죄악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사자를 피하다 곰을 만나며, 안전하리라 믿은 집에서 오히려 뱀에 물릴 것이라고 비유했을까요? 두 비유 다 이스라엘이 안전하다고 믿은 곳으로 가봤지만 아니니까 또 다른 곳으로 피했는데도 여전히 아니더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 없는 곳에서 안전을 찾으려다 안 되니까 그분께로 돌아와 봤지만 기다리는 것은 심판뿐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등진 채 세상으로 나가면 곳곳에 사자와 곰이 버티고 있습니다. 세상은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의 조종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세상으로 향하는 이유는 혹시 손쉽게 빨리 이득을 보리라 기대하는데다 하나님도 내 급한 사정을 아시니까 묵인해 주리라 착각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꿩 먹고 알 먹으려는 심보인데. 하나님이 승인해 줄 리 만무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오히려 진퇴양난으로 몰고 가십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하나님 없는 곳에는 당연히 사단의 곰만 득실거릴 뿐입니다.
세상에선 세상 방식으로 형통하고 교회에선 하나님 방식으로 형통하겠다고 덤비는 신자가 의외로 많습니다. 세상 사람도 일석이조를 노리면 두 마리 다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신자가 일석이조를, 그것도 하나님을 이용해서 노리면 더더욱 성공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세상에서 형통해지고 싶은 마음으로는 아무리 간구해봐야 응답은커녕 힘든 일만 더 겹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벌주기 이전에 사단의 곰들에게 이미 둘려 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주인으로 섬길 수는 절대 없습니다. 자기를 통해 그분의 영광이 기필코 드러날 것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세상이 주는 썩을 면류관 대신 그분이 주시는 섞지 않을 면류관을 소망하는 자에게만 그분은 영원한 안식처가 됩니다.
9/13/2007
블로그 개설자의 다른 글들을 보기 원하시는 분은 http://www.nosuchjesus.com 으로 방문해 주시고 또 주위 신자들에게도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