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교가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
“하나님(*)은 한 분이고 모든 종교가 그 한분을 다 같이 경배하는데 단지 믿는 방식만 다르므로 자기에게 알맞은 종교를 선택하면 된다.”고 흔히 상식으로 통하는 진술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이 말이 성립되려면 모든 종교가 가르치는 하나님이 정말로 모든 면에서 동일한 분이어야 한다.
만약 종교마다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이 다르다면 한 분 하나님이 아니라 여러 하나님이 된다. 또 반드시 그 중에 옳은 하나님 한 분과 다른 거짓 하나님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럼 자신의 적성에 적합한 종교를 선택하기 이전에 반드시 모든 종교가 정말로 한 분 뿐인 절대자 하나님을 가르치는지 여부부터 따져야 한다.
그런데 세상 모든 종교들이 믿는 하나님 전부를 세밀하게 알아서 비교 검토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대신에 간단히 논리적으로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져 볼 수 있는 길은 있다.
종교 간의 전쟁이 오히려 다신교(多神敎)를 부인한다.
인류학자와 미래학자들이 21세기 이후에 가장 염려되는 일 중의 하나가 문명충돌 그것도 종교끼리의 전쟁을 꼽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또 최근의 국제 정세를 곰곰이 살펴보면 실제로 그 예언대로 진행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모든 종교가 동일한 하나님을 동일하게 가르치고 단지 믿는 방식만 다르다는 것이 옳다면 어떻게 종교끼리 전쟁이 일어날 수 있고 아니 이전부터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인가? 전쟁도 일종의 믿는 방식(?)이 아니고선 그럴 수는 없지 않는가?
한 부모 밑에 난 친형제도 죽기 살기로 싸우는데 한 하나님을 모신 종교끼리도 싸울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은 아예 말이 안 된다. 물론 형제끼리는 싸울 수 있어도 부모가 그렇게 하라고, 최소한 그래도 된다고 가르치는 법은 절대 없다. 형제들이 자기가 낳은 자식이 아니거나 부모가 정신병자가 아닌 다음에는 말이다. 솔로몬 왕 앞에서 남의 아이를 두고 다툼을 벌린 가짜 엄마를 생각해 보면 무슨 뜻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쳐주자 바리새인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고 귀신을 쫓아냈다고 비난했다. 그 비난을 예수님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라는 말로 일축해버렸다. 모든 종교가 다 같이 동일한 한분 하나님을 믿는데 종교 전쟁이 일어난다면 스스로 분쟁하여 망하겠다는 뜻 아닌가?
한 분 하나님은 절대로 종교 전쟁을 일으키라고 명할 수 없다. 또 그런 일을 방치하는 하나님이라면 도무지 믿고 경배할 만한 자격조차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실제로 종교 전쟁은 수없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으키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고 그 한 분 하나님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 인간들이 나쁘다는 것도 정확하게 맞는 말은 아니다. 어쨌든 인간과 하나님의 옳고 그름에는 세 가지 가능성 밖에 없다. 먼저 종교전쟁 당사자 중 한 쪽이 옳고 다른 쪽은 그른 경우인데, 당연히 옳은 인간 쪽의 하나님만 옳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럼 벌써 하나님은 같은 한 분이 아니라 서로 다른 하나님이다.
둘째는 양쪽 인간이 다 나쁘다는 것인데 그럼 양쪽 하나님들도 자기 신자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틀린 하나님들이 된다. 셋째는 양쪽 하나님이 다 옳고 또 전쟁을 일으키는 양쪽 인간들도 다 옳아야 한다. 그러나 분명히 전쟁은, 동기와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참혹한 결과를 낳는, 도덕적으로 나쁜 죄악이다. 둘째, 셋째는 아예 성립 불가능한 가정이다.
가장 타당한 경우는 첫 번째, 종교 전쟁의 당사자들 간에 옳고 그름이 있을 수 있기에 종교마다 가르치는 하나님 또한 절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부인하려면 모든 종교의 하나님은 절대로 옳고 그른 적이 없는데 모든 인간들이 다 나쁘다는 뜻이 된다. 오직 잘못한 것은 인간이며 종교전쟁을 일으키는 책임도 오직 인간들에게만 있다. 그럼 어떤 결론에 이르는가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이다.
역으로 따져 보자. 만약 정말로 모든 종교가 한 분 하나님을 섬긴다면 종교전쟁은 도덕적, 종교적, 영적으로 단 한 치도 옳은 면이 없는 전적인 악이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각 종교마다 자기들이 믿는 신을 대리해서 싸운다는 성전(Holy War)의 기치만 높이 올리지 않는가?
이제 최종적인 결론이 나왔다. 종교 전쟁이 빈발하다는 것은 종교마다 가르치는 하나님이 각기 다 다르든지, 아니면 그 모든 종교의 하나님은 한 분으로 아무 문제가 없기에 모든 인간이 전적인 죄인이어야 한다. 참으로 흥미로운 결론이지 않는가?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자는 전자의 의견에 결코 동의할 수는 없다. 만약 종교마다 가르치는 하나님이 다르면 그 하나님들 사이에 우열(愚劣) 문제는 반드시 생긴다. 그럼 반드시 옳은 길이 있고 틀린 길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바꿔 말해 어떤 종교가 자기들만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 주장을 다른 종교가 틀렸다고 절대 비방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의 구원의 길에 동의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배타적인 유일한 구원의 길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한다. 만약 끝까지 그런 유일한 길이 없다고 반박하려면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점이라도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합리적으로 따져 보면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다원주의자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은 하나뿐이다. 한 분 하나님에게는 아무 하자가 없는데 종교전쟁을 일으키는 인간 쪽에 전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로선 전혀 의식하거나 따져보지도 않았지만 모든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선언하는 성경 진리를 사실상 주장하고 있는 꼴이 되었다.
종교 전쟁은 누가 일으키는가? 각 종교의 평신도들이 일으키는가? 아니다. 각 종교의 지도자들의 가르침과 주도(主導) 없이 종교전쟁이 일어날 리는 없다. 모든 종교가 한 분 하나님을 경배하기에 종교끼리 관용을 베풀어 분쟁을 막아야 한다고 역설하는 지도자들이 사실상 전쟁을 일으키는 장본인이다. 이 또한 이상야릇한 현상이지만 똑 같은 결론으로 이끈다.
요컨대 종교전쟁은 한 쪽 당사자 혹은 양 당사자 모두가 자기들 신이 절대적으로 옳고 상대의 신은 틀렸다고 믿어야만 발생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를 구실로 삼아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려는 인간들의 추악한 죄악이다. 둘 중 하나가 맞으면 다른 것이 틀리게 되는 것이 아니다.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며 사실은 지금까지 그렇게 되어 왔다.
다른 말로 인류 역사에 종교전쟁이 영구토록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한 모든 종교가 다 옳다는 말은 아예 성립이 안 된다. 그런데도 모든 종교가 옳다는 주장이 역사상 가장 힘을 얻고 있는 지금에 오히려 종교전쟁을 가장 염려하고 있으니 더더욱 이상야릇하지 않는가? 모든 인간이 죄인으로 영적으로 무지하다 못해 어리석기까지 하다는 반증이다.
모든 종교가 동일한 영역
모든 종교들이 믿는 하나님이 절대로 동일한 한 분이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하나님은 물론 오직 한 분의 절대자다. 또 한 분뿐인 그분은 인간이 임의로 선택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에게 만나져서 경배를 받아야만 할 대상이다. 다른 말로 종교에는 선택의 자유가 있을지 몰라도 한 분 하나님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말 표현은 항상 두리 뭉실하다. 언어란 그 사용하는 민족의 정서와 문화를 반영한다. 한국인들이 대체로 아주 정서적인 반면에 이성적인 면에선 많이 부족하다. 흔히들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하는 말을 이해할 때도 사실은 하나님을 마치 종교와 동의어인양 혼동하고 있다. 종교는 하나님과는 분명 다르다. 선택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것은 종교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오직 한분만 계신 하나님은 아예 비교 검토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 따라서 정작 따져야 할 사항은 모든 종교가 정말로 같은 하나님을 가르치는지 여부다.
종교를 사전에선 “신이나 절대자를 인정하여 일정한 양식 아래 그것을 믿고 숭배하고 받듦으로써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자 하는 정신문화의 한 체계”(동아새국어사전)라고 정의(定意)하고 있다. 인간이 신에 의지하여 정신적 현실적 안락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의는 사실상 종교의 반쪽 측면만 서술한 것에 불과하다. 세상에 종교가 셀 수 없이 많아 그 가르침이나 믿는 방식이 각기 다르다. 그러나 그 모든 종교가 인간에게 주는 유익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위에서 인용한 사전적 정의대로 하자면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되 인간이 살아 있을 때와 죽은 이후에 얻는 것이다.
종교 선택의 자유란 이 둘 중 전자에만 해당된다. (이것도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 않지만....)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목적이 주로 무엇인가? 고난이 닥쳤을 때에 이겨낼 힘을 얻고, 정서적인 불안 염려를 정신수양을 통해 극복하고, 또 품성을 갈고 닦아서 의로운 삶을 살며,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며, 이웃과 함께 힘을 합쳐 이 땅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것들이다. 한 마디로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 현실적 평안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유익은 질적 양적 차이만 있다 뿐이지 모든 종교가 다 제공한다. 정말 믿는 방식만 다르기에 자기 적성과 형편에 맞는 종교를 택하면 그만이다. 모든 판단과 결정과 선택은 인간에게 달렸다. 종교를 통해 얻으려는 유익을 자기가 정하고 그 얻는 방식도 자기 선택하면 그만이다.
모든 종교가 절대 같을 수 없는 영역
그런데 죽음 이후의 인간의 영원한 운명에 관해선 사정이 달라진다. 살아온 인생에 대한 절대자의 최종 심판을 받아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는 문제다. 하나님께 죄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 또한 모든 종교가 각기 고유의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으며 사람들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다들 쉽게 간과해버리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제 심판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엄연히 하나님이라는 점이다. 죽음 이후에는 인간이 결정할 사항은 단 하나도 없고 오직 절대자의 손에 맡겨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 절대자가 당신께 나아오는 구원의 길을 모로 가도 서울에 도착하게끔 수도 없이 많이 만들어 놓았겠는 지는 정말 진지하게 따져 봐야 한다. 사람들이 아니라, 그분께서 모든 종교에 다 구원의 길이 있다고 인정해주겠는가 말이다.
만약 모든 길이 다 옳다면 종교만 가지면 다 구원 받는다는 뜻이 된다. 예컨대 사단을 숭배하는 신자들조차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천국을 가거나, 아니면 지옥으로 떨어져 사단의 종이 되는 것조차 구원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세상에는 그 외에도 도무지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기괴하고 미신 같은 밀교(密敎)들도 많다. 차라리 비종교인으로 남아서 의롭게 사는 것이 어떤 종교를 믿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게 보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나님이 어떤 종교가 되었든 종교를 가졌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구원을 준다면, 이상한 종교의 신자뿐만 아니라 상식에 합당한 종교의 신자라도, 별로 믿을 만한 분이 못 된다. 예컨대 인간이 교주 내지 신의 자리에 올라서 자신을 경배해야 구원을 준다는 종교마저 단지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구원을 줄 수는 없지 않는가? 아무리 따져도 공평하지 않은 하나님이다. 아니 인간의 상식 수준에도 못 미치는 하나님이다.
또 모든 종교에 길이 있다면 사실은 구태여 그 중 하나를 선택할 이유도 없다. 아무 종교나 가지면 되고, 그것도 죽기 직전에 어떤 종교든 신자로 등록하기만 하면 된다. 나아가 모든 길이 옳으면 정말 옳은 길은 하나도 없다는 것과 같다. 나는 종교를 가지지 않은 쪽을 택해서 집에서 혼자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면, 그것도 따지고 보면 종교니까, 그만이지 않는가?
이런 식으로 논리적 결함사항을 따지기 이전에 무엇보다 종교마다 가르치는 구원의 길이 실제로 다 다르다. 유대교는 자기 민족만을 구원해주는 메시아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힌두교는 전생의 죄과를 이미 치룬 모습으로 후생에서 다른 동물로 태어난다. 불교는 스스로 득도하여 열반의 경지에 다다라야 한다고 가르친다. 혹은 본인이 바로 하나님이며 구원은 자기 마음먹기에 달렸다고도 한다. 기독교는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종교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이 절대로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일 수는 없다. 비유컨대 한 부모가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어떤 자식에게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다른 자식에게는 밭에 나가 열심히 일하라고, 또 다른 자식에게는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있으라고, 심지어 갱들과 어울려 나쁜 짓을 해도 된다고 가르칠 수는 없지 않는가 말이다.
흔히 말하듯이 시대와 장소와 문화와 민족 등에 따라 종교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종교가 동일한 하나님이 구원의 길만 다르게 나타낸 것일 뿐이라고 한다면, 예의 부모처럼 구원의 길을 제 멋대로 정하는 독선적이고 변덕쟁이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모든 인간이 동일한 가치와 의미를 품고서 경배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 마디로 모든 길이 옳지 않다면 그 안에 옳은 길이 있고 또 틀린 길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옳은 길이 있다면 반드시 하나여야 한다. 만약 수십 혹은 수개의 옳은 길이 수많은 종교 중에 숨겨져 있다면 그 옳은 길을 인간이 대체 어떻게 제대로 찾을 수 있겠는가? 여전히 인간을 미혹시키는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 자기가 분명히 옳다고 믿고 선택했는데 죽고 나서 보니까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가? 그런 하나님은 인간을 미망 속에 가둬 놓고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져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구원을 주는 분은 하나님이다. 죽음 이후의 구원에 관해서만은 반드시 절대자 하나님의 입장에서 따져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선택해서 구원을 주셔야 한다. 인간이 구원을 찾아 가고 또 자기 힘으로 쟁취하는, 다른 말로 자기 스스로 구원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종교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이처럼 사람들은, 종교인 비종교인을 막론하고, 종교가 다루는 인간의 생전(生前)과 사후(死後)라는 두 가지 영역에 대해 정확한 구별을 하지 못한다. 이미 설명한 대로 자신이 종교를 택하는 목적이 오직 생전에 마음의 평강만(행복조차 포함 안 됨) 얻으려 한다면 어떤 종교를, 심지어 종교 대신에 혼자 집에서 수양하거나 마인드컨트롤 같은 방안을, 취해도 된다. 이런 측면에선 모든 종교가 주는 유익이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세상에 종교가 많아도 세상을 다스리는 절대자 하나님이 한 분뿐이라는 것은 절대적 진리다. 생전의 행복을 추구하려면 당연히 세상의 주인인 그분을 믿고 의지하여야 한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 본대로 종교마다 가르치는 하나님이 다 다르다. 그럼 참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은 아무리 열심히 믿어봐야 진정한 행복을 얻기는 불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만약에 그런 하나님을 믿고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여긴다면 사실은 마음의 평강을 얻은 것에 불과하다. 단지 자기가 원하는 바를 자신이 달성해 낸 것을 두고 자신의 감정, 이성, 의지로 만족스럽게 여긴 것, 사실은 착각한 것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그 종교를 끝까지 믿겠다고 고집한다면 따로 반박할 말은 없다. 그러나 유일한 절대자 참 하나님이 주시는 참 행복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종교란 절대자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것인데도 전혀 그분의 입장에서 분별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모든 종교를 동일하다고 여긴다. 교리와 계명을 배워서 따르고 일정한 양식의 예배와 설교와 기도가 있다. 같은 신자끼리 공동체를 이루고 교제를 한다. 또 자기 종교 밖의 이웃을 위해 구제와 선행도 한다. 전도 내지 포교 활동도 열심히 한다. 가르치는 바도 결국은 두 가지, 이 땅에서의 행복과 죽은 후의 구원이다. 외양적으로는 분명 서로 다르다고 인정해 줄만한 기준이 따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설교대로 따르며 계명을 준수해도 실제로 한 분 뿐인 그 하나님과 아무 연관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컨대 스스로 도를 깨우치라고 한다면, 혹은 어차피 전생의 업보로 후생에 다른 존재로 태어나게 되어 있다면, 실제로는 하나님과 아무 연관이 없다. 절대적 하나님은 분명 존재하긴 해도 그런 인간의 삶은 그분의 통치에서 아예 벗어나 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서 마음의 평강과 현실을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가?
종교를 갖는 이유와 목적은 반드시 이 땅에서부터 절대자 한 분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기 위해서야만 한다. 너무나 간단하고도 자명한 이치다. 만약 그런 하나님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면 결국 자신이나 귀신, 사단, 천사 같은 다른 영적인 존재의 힘에 의지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 이전 글에서 밝힌 바대로 영적 존재는 많아도 절대자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다. 다른 영적 존재를 믿어봐야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실제로 귀신들린 무당을 아무도 종교의 대상으로 숭배하지 않지 않는가?
하나님의 절대적 통치를 직접 받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인간과 그분과의 직접적인 교통과 접촉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실제로 살아 계셔서 인류 전체를 통치할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존재와 삶과 인생까지 일일이 세밀하게 간섭하며 다스리고 있어야 한다. 나아가 그런 사실을 신자 또한 분명히 인지하여서 그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우주의 주인인 하나님과 이 땅의 한 인간의 일방적이 아닌 상호 대면, 교제, 동행이 일어나야 한다. 또 그래야만 사후의 영역까지 이 땅에서부터 형성된 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세상의 수도 없이 많은 종교 중에서 자신에게 적절한 것을 선택하려면 반드시 절대자 그분의 입장에 서서 고려해야 한다. 인간이 그분의 생각까지 다 알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절대적인 한 분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인간의 생전과 사후의 영역을 다 관정한다는 절대적 전제 하에 판단하라는 것이다. 단순히 현실적, 정서적, 철학적, 도덕적, 종교적 상황을 인간 지정의 차원에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에 따라 결정해선 결코 안 된다.
다른 말로 아무리 도덕적으로 심오하고 종교적으로 경건해 보이는 종교라도 한 분 절대자 하나님을 믿지 않고 또 믿더라도 그분과 개인적이며 직접적 연관이 형성되지 않는 종교는 인간이 고안해 낸 종교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하나님이 죄에서 구원 하는 길을 오직 하나로 제시해 놓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궁극적 운명이 어떻게 되든 아예 관심이 없거나, 인간이 미혹한 상태에 빠지도록 만든 하나님일 뿐이다.
신앙을 갖는다는 의미는 종교를 선택해 믿는다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한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즉 인간의 탄생부터 삶과 죽음과 죽음 이후 영원까지 모든 것을 오직 당신만의 계획과 뜻으로 거룩하게 통치하시며 죄에서 구원 받는 길을 하나만 분명하게 제시해 놓은 영원하신 절대자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종교 말이다. 그것도 단지 관념으로 믿어선 안 된다. 실제로 그런 하나님과 이 땅에서부터 체험적 인격적 거룩한 관계가 생성되어져 있고 천국까지 계속되어져야만 한다.
누차 강조하지만 종교는 선택할 수 있어도 한 분 하나님은 절대 선택이 아니라 만남의 대상이어야 한다. 또 만나고 나면 저절로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밖에 없게 된다. 자신의 전부를 그분에게 걸 수 있는 하나님임을 확신하게 됨으로써 실제 그렇게 살게 된다.
바꿔 말하면 어떤 종교라도 선택하기 이전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영적 세계가 있으며, 또 궁극적인 심판이 있다는 기본적 사실만은 확신해야 한다. 만약 이런 전제가 없이 종교를 선택하는 것은 절대자 하나님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 인간 선각자가 고안해 낸 도덕적 계명과 종교적 훈련을 따라 이 땅에서만 자신의 정신적 안정을, 사실은 하나님은 무시한 채 스스로의 만족이지만, 얻으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그런 자에게 종교 선택의 자유는 있을지 몰라도 평생을 가도 살아 있는 하나님을 만나야만 할 대상이라고, 또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꿈도 꾸지 못한다.
자기에게 알맞은 종교를 선택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각자 알아서 하나님을 스스로 만들어 믿으라는 뜻 밖에 되지 않는다. 정말로 한 분뿐인 절대자 하나님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인간이, 그것도 그 종교를 창시한 자 뿐 아니라 그 종교를 선택한 인간마저 몽땅 스스로 신이 되려는 시도일 뿐이다.
2/13/2009
(*) 본문에서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는 이해하는 유일신이라는 일반적 의미이지, 반드시 기독교의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