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 눅11: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신학을 공부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 신학이 ‘목사’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교회의 지도자 내지 대표자로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성직자로 대우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학문적으로 뭐라 하는가와 무관하게 현실에서 목사는 ‘교회의 왕중왕’이라는 것이 가장 정확한 이해일 것입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황제와 다름없다 하겠습니다.

세상과 교회를 막론하고 인간이 사는 사회라면 어느 곳이든 ‘힘 있는 자에게는 여러 가지 특권이 주어짐과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유혹도 따르기 마련’입니다.

목사도 일종의 ‘힘’을 가지고 있기에 예외일 수 없습니다.    

목사가 빠지기 쉬운 함정들이 있다고 합니다(이것이 바로 ‘목사의 힘’을 반증하는 요소들입니다).

○ 어느 무명인은 3G라고 했습니다. Glory(영광/명예), Gold(돈), Girl(여자)이랍니다.

○ 구약학자 크리스터퍼 라이트라는 사람은 지도자가 빠지기 쉬운 3대 우상으로  GPS를 꼽는다 합니다. Greed(탐욕), Power(권력), Success(성공)이랍니다.

○ Billy Graham은 사탄이 목사를 공격하는 영역을 SMP로 요약했는데, Sex(성), Money(돈), Pride(교만)이라고 말했습니다.

약간 다른 것도 같고 비슷한 것도 같습니다만, 원리는 동일합니다. 일단 최고의 가치는 ‘힘’ (Glory, Power, Pride)입니다. 힘이 있으면 돈과 여자는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세상의 대원칙이자 불문율입니다.

앞서 말했듯 현실 교회의 내부를 살펴보면 목사에게 막강한 힘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돈과 여성들의 추종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목사들의 힘 – 무엇에 근거한 것일까요?

놀랍게도 성경이랍니다. 성경이 목사들의 힘을 보증해 준다고들 믿고 있습니다.  

이제 질문을 하나 해야 할 때입니다. “정말로 성경은 목사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까?”

답은 하나입니다. “아니다!”

이것이 정답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목사에게 힘을 주지 않으면 안 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이루지 못한 그 무엇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인간인 목사들의 힘을 필요로 하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교회에서는 왜 목사들에게 힘이 주어져 있습니까?

성경을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목사들이 자신들의 힘을 유지하기 위하여 성경을 비꼬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두 본문이 그 증거입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이 곧 ‘목사’라는 게 현대신학의 핵심으로 알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지도자, 전문가, 선생, 성직자’라는 개념입니다.

물론 이것은 목사들의 자의적 판단입니다(성경의 목사란 ‘공동체에 협력하는 여러 지체중의 일인’이기 때문입니다).

좋습니다. 엉터리이지만 목사들의 주장을 그냥 인정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자칭 목사들(서기관들과 바래시인들과 율법사들)이 하는 짓을 하나도 숨김없이 폭로하고 있데, 그게 무엇입니까?

“①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②천국 문을 닫아 버리고는 ③자기 자신도 안 들어가고 ④다른 사람도 못 들어가게 막는다!”는 것이 두 복음서 기자의 고발입니다.

논쟁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위의 현실교회를 딱 한 번만 살펴보면 됩니다. 그것도 귀찮다면 아래의 글이라도 읽어 보면 됩니다.

‘목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성경을 바르게 아는 일반성도들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매우 통찰력 있는 글입니다.


아무리 옳은 말도 듣지 않는 이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쇠귀에 경 읽으며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일반성도들 스스로가 깨어나는 것이 우선일 듯싶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도자가 지녀야 할 3대 덕목을 HIS’라고 말합니다. Humility(겸손), Integrity(정직), Simplicity(단순함)이라는군요.

제발 덕분에 ‘정직하고(성경대로) 단순하며(욕심 버린) 겸손한(주님을 본받아) 목사들’과 함께 신앙  생활 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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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목사는 복음의 천적(출처:http://crossvillage.org/성도의 칼럼/이근호 목사)

생태계에서 생존에 상극을 이루는 것을 ‘천적’이라고 한다. ‘니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관계가 천적 관계다. 목사가 복음의 천적이 되는 이유는, 목사는 교인들의 의견을 대변해서 하나님께 아뢰는 자리에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목사는 교회를 대표한다. 교회를 누구보다도 꿰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회 없는 목사는 더 이상 목사가 아니다. 교회가 있을 동안에만 목사다. 목사가 교회를 잃으면 목사직도 잃는다.

목사직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든 교회가 있어야 한다. 교회란 교인들의 집합체이다. 따라서 교인들을 의견을 반영하지 아니하면 교회는 깨진다. 교인들이 요구 사항을 목사는 여과없이 교인들을 대변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 기도 내용을 교인들은 유심히 본다.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기도하고 있는지를 살핀다.

교인들이 복음이 싫단다. 따라서 목사는 하나님께 솔직하게 전달해야 한다. “하나님, 우리 교회 교인들이 복음이 싫답니다.” 그런데 목사는 교인들 탓으로 돌리지만 싫은 목사 본인이 복음이 싫은 것이다. 이런 면을 분명히 부각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 복음을 사랑하는 자를 보낸다.

목사는 바짝 긴장한다. 그 많은 교인들 가운데서 자기 권위가 안 먹히는 인간은 그 복음을 아는 그 인간뿐이다. 목사는 천적을 만났다. 저 인간 안 쫓아 보내면 자기가 교회에서 쫓겨나갈 판이다. 일단 목사는 유화책을 쓴다. 당근을 제공하는 것이다. 교인들 앞에서 그 복음 아는 자를 한껏 칭찬해준다. “여러분, 우리 모두 이 분의 신앙을 본받읍시다. 오늘날에도 이렇게 말씀을 사랑하고 복음대로 사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이 분은 우리 교회의 보배입니다.”

무슨 뜻일까? 까불지 말라는 뜻이다. 함부로 날뛰지 말라는 뜻이다. 봐 줄 때 조용히 하라는 뜻이다. 목사가 공개적으로 칭찬해 주었기에 너도 어디 가서 담임 목사를 부추겨 세우는 식으로 교회 생활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막상 복음을 아는 이 성도는 꼭 저능아 같다. 교회 돌아가는 사태에 아둔하다. 무감각하다. “무슨 일 있어요?”라고 되묻는 눈동자를 보인다. 그냥 복음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식으로 살아간다. 이 바보, 등신 같은 처신이 교회에서 문제가 된다. 목사는 아무리 기다려도 그 성도가 자신을 존경하는 것으로 되갚아주는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목사는 교회 내에서의 자기 권력에 약간의 구멍이 생기게 된 것을 느낀다. 그 구멍이 어디까지 커졌는지를 염려가 되어 사모님으로 하여금 조사케 한다. 한편으로는 더욱더 호의적으로 그 성도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아무리 목사가 그 성도를 부추겨주어도 성도는 목사에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괘씸하다. 사회성이 결여된 자 같기도 하고 고지식하게 보이기도 하다.

교인들이 동요한다. 목사가 외치는 하나님과 그 복음 아는 성도가 말하는 하나님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챈다. 분명 복음을 아는 성도가 말하는 하나님이 옳은 것 같다. 목사는 손봐 줄 적절한 타이밍을 찾고자 한다. 목사가 부쩍 설교 시간에 복음적인 내용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나도 복음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투로 그 성도로 경쟁에 나서려는 것이다. 하지만 밑천이 딸린다. 교인들이 복음에 대해서 부쩍 질문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위기다. 어설프게 답변했다가는 연이어 수 십 개의 파생된 공격을 받을 수가 있다. 무식이 폭로나면 안 된다. 어쨌든 훌륭한 목사라는 이미지로 밀어붙여야 된다.

“그래, 인격이다. 인격으로 밀어붙이자!” 이때부터 유난히 교회 내에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보이는데 평일에 바쁜 장로들까지 불러내어 목사의 솔선수범적인 구제 활동을 목격토록 한다. 그리고 그 업적은 빠짐없이 온 교인들이 들으라는 듯이 설교 시간과 광고시간에 나팔을 분다. “여러분,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여러분들은 머리로만 신앙생활 해서는 아니 됩니다. 실천적 신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교회 사업을 시간 바치시고 헌물 바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배나 갚아주십니다. 전도서 11:1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

목사는 발악을 한다. “어디 감히 내 밥그릇을 뺐으려고 이눔(=놈)이”

그 성도는 더 이상 모범적인 교인이 아니다. 교회를 파탄내는 불순분자로 찍혔다. 그 성도와 사귀는 자들은 사모님의 정보망에 걸려 속속 목사 귀에 들어간다. 이때부터 교인들은 조심하기 시작하면서 교회는 예전처럼 진정되어진다. 그리고 그 성도는 잊혀진다. 반짝 소동이었다.

복음이란 이처럼 늘 짧은 소동으로 끝난다. 하지만 파도 위의 달빛처럼, 떨어져 나가고 또 떨어져 나가도 파도는 계속 밀려온다.

사라의 웃음

2012.10.08 22:57:31
*.109.85.156

세상이 온통 이런 목사들 뿐이라면....ㅠㅠ
정말 소망없는 세상, 살아낼 힘이 소진해 버릴 것 같은 세상, 예수님이 방장
다시 오셔야만 하는 너무도 기가막힌 깜깜함밖엔 없겠네요.
말씀하신 그런 목회자들은 아무래도 거듭나지 않은 자들이 목사를 직업으로 간주하기에 발생하는 문제점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음을 알기에 저들을 가슴 절절히 긍휼히 여기며 기도하는 일이 우리 신자들의 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힘

2012.11.11 11:25:10
*.100.27.84

적조한 동안 강건하옵신지 가을이 깊어지고야 안부를 드립니다.

"복음의 천적" 처지에 목사들이 놓인 것은 자업자득이지만, 최근 제가 신앙생활하는 교단에서 교회운영 개혁운동을 시작한 후로 "목사"에 대한 생각이 좀 복잡해졌습니다. 생각이 정리되면 그동안 보게된 "목사"에 대한 소회를 기록해 보고 싶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태초에 디자인하시고 성경에 감춰 놓으신 "교회"와 오늘 날 우리 눈 앞에 현실로 존재하는 "교회"가 과연 연관성이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무소불능의 권력 자체인 '목사'는 그 하나님의 디자인 속에는 전혀 고려된 바가 없다는 것을 깊이 생각합니다.

사라의 웃음

2012.11.11 21:58:37
*.109.85.156

저 또한 오랜동안, 아주 오랜동안 목사인가? 사기꾼인가? 라는 생각들이 떠나질 않는 사건들, 상황들을 보면서 하나님은 교회안의 불의를 침묵만 하시는 분이신가? 성도들과 목회자가 늘 아웅다웅 싸움만 하는 곳이 교회란 말인가? ...여러 의문들이 떠나질 않았었습니다.

이제 조금 깨달아 가는 것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씀에 갈증을 느끼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길 애타하며 소원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아주 가까이 가는 것이 우선됨이 너무도 소중한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에 거저 들어감의 최고로 귀한 선물을 받아 누리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귀한지, 어찌나 감사한지, 그래서 찬미치 않을 수 없는 모임이 건물이 잇대어지 듯, 연하여 아름다운 건물이 지어져감이 교회가 아닐까? 하는 자그마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생명의 말씀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목사,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짐짓 지나쳐 버리며 자기의 모양새 어떠함에 취해버린 목사라면 그 곳을 조용히 떠남도 지혜가 아닐까 싶은 또 자그마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순태

2012.11.17 02:06:36
*.142.126.91

세힘 형제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형제님께서 지니고 계시는 의문들은 의식있는 성도님들의 공통사항일 것입니다.
많이 답답한 상황이지오..........

사라의 웃음 자매님! 막강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촌평들이 항상 은혜롭습니다!
늘 어리버리한 저를 안돈시키시는 놀라운 공능,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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