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간혹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고 존재감을 확인받는 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밖으로 드러나는 것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내면으로의 성숙을 중시합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자꾸만 남의 눈에 띄는 것에 유혹될까요? 드러나고 인정받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양 착각하게 될까요?

여러 가지로 진단할 수 있겠지만 ‘잘못된 교육’이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 개인적 확신입니다. 가르치는 직무를 담당한 이들이 제대로 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자의식 성숙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신앙 성장에 크게 유익하리라 생각됩니다.    

바울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기독교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가 쓴 서신 13개가 신약성경에 포함될 만큼 영성이 출중한 성도입니다.

그런 바울이 언제나 머리 꼿꼿이 들고 ‘나는 이런 능력을 지녔고 이런 은사를 받았고 이런 권위를 위임받았고 이런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자랑했을까요?

절대로 아닙니다. 바울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작아졌을 뿐입니다.

1단계 영성입니다. 고전15:9절에서 바울은 “모든 사도 중 가장 작은 자”라고 고백합니다. 학자들은 바울의 회심은 33-34년경에 있었고 고린도전서는 55년경에 썼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회심한 지 21-22년 정도 되었을 때의 영성입니다. 한 마디로 ‘13명의 사도 중에서 꼴찌’라는 것입니다.

2단계 영성입니다. 엡3:8절에서 “모든 성도 중 가장 작은 자”라고 고백합니다. 에베소서는 61-64년경에 기록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회심한 지 28-30년 정도 되었을 때의 영성입니다. 한 마디로 ‘당시 성도들 중에서 꼴찌’라는 것입니다. 당시 성도 수가 5만 명이었다면 5만 번째가 자기라는 것이지요.

3단계 영성입니다. 딤전1:15절에서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을 바꿉니다. 디모데전서는 63-65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므로, 회심한 지 30-31년 정도 되었을 때의 영성입니다. 한 마디로 ‘모든 인간 중에서 꼴찌’라는 것입니다. 당시 세계 인구가 5천만 명이었다면 5천만 번째가 자기라는 것이지요.

※ 초대교회 당시의 역사적 사실들의 발생 추정연도는 학자들마다 수 년 내지 수십 년씩 차이가 납니다. 어느 분은 바울의 3단계 영성변화 연도를 회심 18년, 24년, 28년의 표현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만약 바울이 한번 더 자신의 영성을 기술했다면 ‘모든 생명체 중에서 꼴찌’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바울은 해가 갈수록 또 은혜가 깊어질수록 더욱 머리 숙였습니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검증되지 않는 체험과 조그만 은사를 자랑하며 머리 꼿꼿이 들어 올립니다. 바울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모습이며 대단한 차이입니다.

학자들은 구원의 서정(序程)을 칭의(justification), 성화(sanctification), 영화(glorification)의 3단계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성화란 거듭난 영혼이 변모(성숙)해 가는 과정에 관한 개념입니다. 오늘 묵상 주제와 연계하여 표현한다면 ‘영이 맑아질수록 자신의 죄된 모습을 더 많이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성화란 점진적이면서 아울러 미완성이라는 특징을 지닙니다. 이 땅에서는 성화의 끝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하는 오늘 본문이 그 증거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목적지에 다다랐음을 천명하지 않습니다. 아직 과정 중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바울은 신앙 초기부터 순교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무가치성을 항상 기억했고 자신의 못났음을 늘 인정했습니다. 당당하고 자랑스레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고후12:11)라고 선언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영은 결코 ‘자랑’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늘 ‘죄인의식’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형통의 시절이든 환란의 시절이든, 늘 자신의 죄성을 아파할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잘난 맛’을 추구할 것인지, 바울(성경)의 가르침대로 ‘못남’을 인정하며 묵묵히 그 길을 갈 것인지를 말입니다.

기독교는 정말 못나져야 합니다. 성도들도 모두 못나져야 합니다. 잘난 자가 단 한 사람 없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역설적인 진실을 맘 편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사라의 웃음

2012.12.08 00:53:19
*.109.85.156

그러게요.
정말 못났기에, 진정 죄인이기에 아파할 수 밖엔 없는 인생인 것을요.
그 아픔들이, 그 죄들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예수님이 오셔야만 했고, 그 예수님 앞에 머리 조아릴 수 밖엔 없는 매일
매순간의 죄인이기에... 오직 십자가에 나 때문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덮어
주심 외엔 아무것도 길이 없는 매일 매순간의 죄인이기에...

세힘

2012.12.15 16:44:26
*.100.27.84

오랫만에 뵙습니다.^^ 기록해 주신 내용에 크게 공감합니다. 다만 바울 사도의 영적 겸손이 우리 시대 교회당 안에서는 사람에 대한 순종의 이유로 각색된다는 점이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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