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느 시골 동네 놀이터의 모습입니다. 개구쟁이들이 재미있게 놀다가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그냥 사소한 의견대립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자못 심각합니다. 아무리 해도 싸움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결국 씩씩대며 자기 아버지를 들이댑니다. “우리 아빠한테 이를 거야!”

 

아빠의 힘으로 친구를 누르겠다는 갸륵한 속내이지만 사실 그 아버지의 힘은 별로이고 따라서 개구쟁이의 판단은 부정확한 것입니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온 콜럼버스의 인기가 높아지자 “서쪽으로 계속 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라며 시샘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콜럼버스는 생달걀을 하나 가지고 와서 “세워보라.”고 했습니다. 세워질 리가 없기에 모두들 포기하자 달걀 끝을 살짝 깨뜨려 세웠습니다.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에게 “남이 하고 난 다음에는 쉽습니다. 그러나 처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신대륙 발견도 이와 같습니다.”라고 마무리하였습니다.

 

‘최초 발상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콜럼버스의 달걀’이라는 일화입니다.

 

콜럼버스를 시기한 이들의 판단도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할 것입니다.

 

 

동네 개구쟁이나 콜럼버스에게 시비 걸었던 사람은 똑같이 사안을 정확히 파악할 만한 안목이 부족했고 따라서 그 판단은 부정확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일이든 모든 사람이 다 헤아리고 아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부분적인 것을 피상적으로 아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더 많을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알아볼 만한 안목을 지닌 소수의 능력자’가 존재합니다. 그들은 한 눈에 전체를 꿰뚫어보는 안목을 지니고 있기가 십상입니다.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중국 진나라 목공 시절에 손양(孫陽)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말(馬)을 정말 잘 봐서 ‘백락’(伯樂=전설상의 천리마 담당 신)이라 불렸습니다.

 

‘고개 돌려 한 번 봄’(一顧)으로써 명마(名馬)와 평마(平馬)를 여지없이 감별해 내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성어입니다.

 

‘전문가다운 진짜 전문가’의 의미이지만 한편으로는 ‘인재를 알아보는 슬기’로 전의되어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 백락일고와 함께 따라다니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바로 기복염거(驥服鹽車=천리마가 소금 수레를 끌다)입니다.

 

이런 내용입니다(인터넷 설명 중의 하나).

 

【백락이 어느 날 고갯길을 내려가다가 명마 한 마리가 소금을 잔뜩 실은 수레를 끌고 오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분명 천리마인데 이미 늙어 있었다. 무릎은 꺾이고 꼬리는 축 늘어져 있었다.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백락을 보고 천리마는 '히잉' 하고 슬픈 울음을 울었다. 명마로 태어났으면서도 천한 일을 하고 있는 게 서러웠던 것이다. 백락도 같이 울면서 자기의 비단옷을 말에게 덮어 주었다. 그 말은 하늘을 쳐다보며 길게 울부짖은 후 천천히 수레를 끌고 언덕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준마가 헛되이 소금 수레를 끈다는 의미의 '기복염거(驥服鹽車)'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이 기복염거는 인재발탁의 중요성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슬픈 이야기입니다. 즉 천리를 달릴 수 있는 천라마라도 알아보지 못하면 겨우 소금 수레나 끌 뿐입니다.

 

그래서 당나라의 한유도 잡설(雜說)에서 “세상엔 백락이 있은 후에 천리마가 있으니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世有伯樂 然後 有千里馬 千里馬 常有 而伯樂 不常有)라고 한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우한 기복염거 늙은 천리마에게 작은 위안이 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슬기이지 싶습니다.

 

사마천은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이를 위해 화장을 한다”(士爲知己者用, 女爲悅己者容)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천리마는 비록 다 늙어 시기는 놓쳤을지라도 자신을 알아보는 백락을 만났기에 ‘슬픈 울음’이나마 남길 수 있었다 할 것입니다.

 

백락의 옷자락을 얻어 덮은 늙은 천리마의 ‘슬픈 울음’ 속에는 지나간 세월에 대한 아쉬움과 늦게나마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만난 안도감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쓴 소설이나 시나 수필 등을 편한 마음으로 감상하곤 합니다.

 

그런데 만약 독자가 그 작품들을 창작하기 위해 흘린 땀과 노력을 하찮게 여긴다면 이는 매우 가벼운 생각입니다. 작가들은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서 힘들게 작품을 쓰기 때문입니다.

 

사춘기 시절 누구나 시 한 편 수필 한 편 정도는 다 써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것이 결코 쉽게 써지지 않는다는 경험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한눈에 명작(名作) 알아볼 실력(伯樂一顧)도 없으면서, 나름대로 노력의 산물인 다른 이들의 글을 근거 없이 폄훼하는 것은, 동네 개구쟁이나 콜럼버스에게 시비 건 사람들처럼 유치한 언동일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알아주는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닐지라도, 자신의 짧은 글에 공감을 표해주는 독자가 있다면, 백락의 비단옷자락을 얻어 덮고 ‘슬픈 울음’을 남기고 떠난 늙은 천리마처럼,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위안 삼을는지도 모릅니다.

 

 

글쓴이의 입장을 고려하고 의도를 짐작하며 읽어주는 센스는 독자로서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일 것이며 그런 사람이라면 글 읽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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