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8 - 영원히 고독한 존재 인간

조회 수 539 추천 수 19 2009.08.18 22: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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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고독한 존재 인간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해졌는데도 아직 외롭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뛰어난 학술적 업적과 그에 따르는 큰 명예와 재산을 이루었고 또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의 칭송과 존경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혼에는 온전한 만족과 기쁨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조물주가 우주를 창조한 후에 완전히 손을 놓고 있다는 이신론(理神論 deism)자로 일상 삶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어졌고 또 그분의 생기를 받은 생령인지라 그분의 보호와 인도 안에 들어와 있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갈급하게 됩니다.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보지만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렘2:13)이기 때문에 아무리 고군분투(孤軍奮鬪)한들 문자 그대로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그대로 두면 아인슈타인처럼 무엇을 해도 영원토록 고독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영과 영으로 교통할 수 있어야만 죄로 야기된 영혼의 갈증에서 해방되어 그분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이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며 또 구원의 유일한 길이 되는 이유입니다.

말하자면 구원이 완성되려면 단순히 죄만 안 지어선 부족하며 매일의 삶에서 그분과의 교제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의롭다함을 얻어 지옥 형벌에서 면제되는 구원은 단번에 이뤄집니다. 그러나 창조 당시의 인간답게  온전한 삶을 누리려면 주님과의 교제가 필수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첫 인간 아담이 죄로 타락하기 전에도 고독은 가장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인간의 제일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최초로 관심을 가지고 걱정해준 문제였습니다. 바꿔 말해 죄가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과 완전하게 인격적 교제를 하고 있어도 인간의 고독이 완벽하게는 해소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으로 자기를 돕는 배필 이브와 서로 사랑하게 하여서 그 부족감을 없애 주었습니다. 어떤 뜻입니까?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동시에 인간끼리 서로 사랑해야만 참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만큼 온전한 인생을 산 자가 거의 없음에도 정작 본인은 그리 성공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고백이 이를 증명하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율법 중에 가장 큰 두 계명일 뿐 아니라 모든 계명을 다 아우른다고 가르쳤습니다. 참 인간답게 살려면 두 계명을 이루되 반드시 하나님 사랑 안에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이웃 사랑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어떤 누구보다 분명 더 컸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 밑이 터진 웅덩이 같은 인생으로 끝마쳤습니다. 반면에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사랑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 듯 보였지만 사실은 형식적 가식적으로 사랑했으며 또 그래서 이웃 사랑이 전혀 없어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지 않습니까?  

어떤 휠체어 탄 장애인 여자가 담당 목사님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외롭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사랑해주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저를 만나 주는 사람이 너무 없어 외로워 미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바로 이런 자들을 찾아 갔으며 또 신적인 섭리로 그런 자들로 자기도 모르게 당신 앞으로 먼저 나오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외면하던 사마리아를 의도적으로 둘러 행하면서 그것도 인적이 뜸한 대낮 우물가에서 한 외롭고도 부끄러운 여인을 기다리셨습니다. 단지 주님을 조금 자세히 보려고 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도 먼저 아시고 이름을 부르며 일부러 그 집에 들어가 유하셨습니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당신의 피로 우리 모두의 죄를 깨끗케 해주셨습니다. 또 생전에 약속하신대로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어 하나님의 기쁘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당신과 직접 교제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인간으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하여서 아담의 원죄로 인해 생긴 인간 영혼의 밑이 터진 웅덩이를 매웠습니다. 인간의 생래적(生來的)인 고독을 없애는 필요조건이 채워진 것입니다.  

다른 한 편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오직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아 소외된 자들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쳐다보지도 않는 문둥병자를 그것도 환부에 직접 손을 대어서 낫게 해주셨습니다. 어떤 면에선 문둥병자로선 병이 나은 것보다 그 더러운 곳을 만져주셨다는 사실에 더 감격했을 것이며 또 하나님만이 베풀 수 있는 그런 큰 사랑이기에 어떤 질병도 치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그 사랑을 입은 자들로 진정으로 이웃도 사랑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인간 고독을 없애는 충분조건마저 완성시켰습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계명을 죽기까지 하면서 직접 실현해 보였습니다. 인간 영혼의 하늘을 향한 근본적인 갈증과 그 존재의 땅에서의 고독함을 충족시켰기에 예수님만이 인간 구원의 유일한 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위대한 위인이나 종교 창시자도 인간 영혼의 이 본질적인 고독을 없애주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인간끼리 해야 하는 완전한 사랑을 해보이셨고, 또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를 믿게 된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써 지옥 형벌에서 면제 되었고 또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보호와 인도를 받는 은혜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사랑해선 휠체어를 탄 장애인처럼 고독을 결코 없앨 수 없습니다. 나아가 그런 정말 외롭고 힘든 성도들을 찾아가 사랑을 베풀 수도 없습니다.

요컨대 인간끼리 사랑하는 기회나 마음이 생기지 않는 하나님 사랑은 아무리 열심과 정성을 동원하고 큰 종교적 업적을 이루어도 잘못된 사랑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바탕 위에 서있지 않는 인간사랑은 아무리 그 도덕성과 사회적 기여도가 높아도 여전히 온전한 이웃사랑이 아닙니다. 그 둘을 동시에 이루지 않고는 아담으로 인해 생긴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 고독을 풀 재간은 절대 없습니다. 모든 인간에게 오직 예수님만이 소망일뿐입니다.

지금 당신은 혹시 외롭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데도 외롭습니까? 이웃끼리 사랑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웃이 당신을 찾아와 사랑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당신이 외로운 이웃을 찾아가 먼저 사랑을 베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9/28/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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