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3:1)
사단이 이브에게 처음으로 접근해 온 모습입니다. 세상에 죄악이 구체적으로 들어오기 직전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하나님이 소망하던 바와는(알고 계획했던 바를 말하는 것이 아님) 다른 모습으로 가게 된 결정적 계기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흥미롭게도 하나님이 원하는 바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인간을 끌고 가려는 사단이 결코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브에게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되물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각종 나무의 실과를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과만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하나만 빼고 사실상 전부를 먹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참으로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을 무엇이든 먹을 수 있게 하신 분에서 아무 것도 못 먹게 하는 분으로 의심하도록 말 순서와 형식을 교묘하게 바꿨습니다.
사단은 이브에게 하나님을 잘 믿는지 안 믿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100% 온전하게 믿느냐? 그분을 믿긴 믿되 혹시 불만을 가진 것이 없느냐? 만에 하나라도 있으면 서슴없이 말해봐. 내가 해결해 줄게.”식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졸지에 사단은 이브를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동료로 반면에 하나님은 왠지 무서운 폭군처럼 되었습니다.
이브의 반응이 금방 달라졌습니다. 사단의 장단에 덩달아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 먹을 수 있는 모든 나무는 안중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먹지 못하는 선악과에만 관심이 옮겨졌습니다. 그러자 “만지지도 말라”고 하나님이 언급하지 않은 것까지 임의로 덧붙였습니다. 말하자면 “먹지 못하게 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만지지도 못하게 하다니 너무 심하다”는 뜻인데 정작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없이 이브 혼자 멋대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브는 사단의 꾐에 넘어가 하나님을 99% 까지는 믿는데 나머지 1%가 불만이라고 실토한 셈입니다.
최초 인간이 타락하여 모든 후대 인류로 원죄의 멍에를 쓰게 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그분에 대한 의심과 불만이 발단 된 것입니다. 사단은 이브의 1%의 불만 내지 의심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절대로 믿음을 버리라거나 하나님을 대적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거짓말을 한 번 했을 뿐입니다.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 말씀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100% 뒤집어 버렸습니다. 흰 것을 까맣다고 한 셈인데도 이미 의심과 불만의 싹이 튼 이브는 홀딱 속아 넘어 갔습니다.
그리고는 사단은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에게 더 좋은 것이 생기는데도 하나님은 오히려 못하게 했다고 노골적으로 의심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단순한 불만과 의심이 순식간에 선악과를 꼭 따 먹고야 말겠다는 탐욕으로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권능이 그에게 먹히지 않았던 반면에 사단은 쾌재를 부르며 손 놓고 있어도 되었습니다.
일련의 과정에서 사단이 이브의 마음에 심어준 것은 사실상 이것입니다. “너희가 설령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코 나빠지지 않을 것이다.” 가장 먼저 하나님을 잠시 잊도록 한 후에 불신앙이 아니라 불순종으로 유도했습니다.
사단의 전략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신자의 믿음 자체는 절대 건드리지 않습니다. 단지 죄가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뿐입니다. 결정적으로는 죄를 범해도 하나님이 크게 괘념하지 않을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합니다. 바꿔 말해 사단은 신자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절대 두려워하지 않고 느긋하고 자신만만합니다. 결정적이고도 치명적인 전략이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신자로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불만과 의심의 싹만 심어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아무 일 없이 무조건 하나님에게 불만과 의심을 가질 리는 만무합니다. 그래서 사단은 하나님은 그대로 두고 그분과 무관한 것들이 오히려 더 좋게 보이는 전략만 구사합니다. 신자가 성실히 신앙 생활하는 것을 99%까지는 용인하고 오직 나머지 1%만 물고 흔듭니다. 단순히 세상 쾌락의 향기를 신자 코앞에 흔들기만 하면 됩니다.
사단의 결정적 전략은 신자의 결정적 약점을 노린 것입니다. 만약 구원 이후에도 신자가 그 결정적 약점을 이겨내지 못하면 하나님으로선 신자를 사단에게 계속 지도록 방치한 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사단의 흉계를 완전히 깨트렸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믿고 기도만 하면 모든 죄악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는 식의 종교적 수사가 아닙니다.
동산 모든 실과를 먹을 수 있되 선악과만 먹지 말라는 계명은 따지고 보면 세상에서 윤리적 죄를 지을 수 있고 또 지었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경배만은 절대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떤 죄악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하고 나오면 다 용서해주신다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고의로 거역하는 죄 즉 선악과를 따 먹거나 예수를 부인하는 죄 외에는 무엇이든 그분의 자비와 긍휼의 대상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떤 인간이라도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원죄하의 인간이 사단의 유혹이 있기 이전의 에덴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최초 인간 아담과 이브는 사단의 결정적 전략이 갖는 음흉한 속내를 꿰뚫어 보지 못해 범죄 했지만 이제는 사단의 결정적 전략을 알기에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물론 신자도 체질이 진토인지라 이 땅에 살아 있는 한에는 죄의 유혹이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또 그 유혹으로 하나님을 잠시 잊을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신자의 의지력 내지 믿음만으론 사단의 교묘한 책략을 여간해서 이길 수 없습니다.
사단은 항상 신자의 마지막 1%의 의심과 불만을 물고 늘어지므로 신자는 그 1%만 지키면 됩니다. 쉽게 말해 세상 유혹이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불만으로 이어지게 하거나 그 쾌락에 집착하게 만들면 벌써 사단에게 넘어가 잘못되고 있음을 깨닫고 앞뒤 사정 전혀 볼 것 없이 무조건 하나님께로 되돌아서는 것입니다. 그 전에 어떤 흉악한 죄에 있었던 당신께로 돌아서는 자에게는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절대로 거두어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10/8/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