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5:1 아브람이 정작 두려워했던 까닭은?

조회 수 562 추천 수 18 2009.09.08 23: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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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정작 두려워했던 까닭은?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異常)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賞給)이니라.”(창15:1)


아브람은 사해 북부 네 왕의 연합군과 소돔 동맹군과의 전쟁에 개입하여 큰 승리를 거두고  포로로 잡혀간 조카 롯을 구출해 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일 이후에 하나님이 그에게 한 말씀의 첫 마디가 “두려워 말라”였다면 뭔가 심적 불안에 사로 잡혀 있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에게 패배한 사해 북부 네 왕들의 복수의 표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돔 동맹군이 그에게 큰 신세를 졌고 또 하나님의 제사장 살렘 왕도 헌물을 받았기에 아브람의 배후에도 그를 무시하지 못하고 급할 때 도와줄 든든한 후견인들이 생긴 셈입니다. 나아가 자기 수하의 군사들만으로도 북부 네 왕을 상대로 승리했기에 그들의 앙갚음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불안해했던 원인은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당시 아브람이 우거했던 가나안 땅도 그가 떠나온 갈대아와 같이 우상을 숭배하고 죄악이 만연했습니다. 아니 그를 제외한 온 세상이 그랬습니다. 그는 참 하나님 여호와를 알고 믿는 거의 유일한 자였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었습니다.

바꿔 말해 그가 이 전쟁에서 보여 준 행동이 악에 물든 세상으로 하여금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우선 조카 한 명을 구하려고 자신이 가진 전부를 동원하고 생명까지 내걸며 전쟁에 개입했습니다. 또 그에게 신세를 진 자가 주려던 선물을 일언지하에 사양했습니다. 반면에 자신의 부하들과 동행한 자들의 정당한 대가는 사려 깊게 챙겨주되 자기가 수고한 몫은 제사장에게 바쳤습니다. 당시 사람들로선 그런 아브람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아가 자기 딴에는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었지만 한 마디로, 그것도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말라는 핀잔까지 곁들여 거절당한 소돔 왕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대신에 살렘 왕에게는 재물의 원소유주인 자기와 한 마디 의논도 하지 않고 주저 없이 십의 일을 바쳤습니다. 소돔 왕으로선 어쩌면 그를 좋게 보지 않고 앙심을 품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완악하고 교활하며 비겁합니다. 다른 사람의 비타협적이고도 정당한 행동을 보면 의롭다고 칭찬하고 그를 본받으려 하기는커녕 오히려 싫어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합니다. 오직 자기 생각과 기분에 맞추어 주는 자만 좋아합니다. 나아가 자기 행위가 그와 비교되어 뭔가 잘못되었다는 죄책을 느끼게 만드는 상대는 죽일 정도로 미워합니다.

바로 예수님이 그랬지 않습니까?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오직 선하고 정당한 일만 하셨다는 이유로 모든 사람의 모멸과 미움을 당하고 끝내 나무에 달리는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셨지 않습니까?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1:9-11)

아브람이 두려워했던 근본 원인은 현실적으로 궁핍해지거나 질병으로 인한 것이거나 대적의 복수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로 경원(敬遠)과 기피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이 그를 보면 영적인 시샘이 생겨서 주는 것 없이 괜히 미워지는 존재가 되어서 알게 모르게 훼방과 음해와 탄압을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라는 거룩한 생명을 속에 지닌 신자는 이미 빛이 되어 있습니다. 깨어진 질그릇 사이로 보배가 찬란한 광채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나 빛이 어두움에 비취더라도 어두움이 깨닫지 못합니다. 어두움은 어두움끼리 뭉치기를 좋아하며 빛을 극력 반대합니다. 그럼에도 어둠을 없애는 수단은 오직 빛뿐입니다. 당시의 유일한 빛이었던 아브람은 자기 사방 주위가 오직 흑암으로 덮여 있고 혹시라도 자신이 그 흑암에 함몰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신자란 하나님의 신령한 빛을 세상에 비추는 자입니다. 다른 말로 신자는 불신자들에게 거룩한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불신자들로부터 신자에게 되돌아오는 것은 반드시 핍박의 두려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가 그렇게 살지 않고 있다면 아직 올바르게 믿지 않고 있거나 어떤 이유가 되었든 영적으로 잠시 피폐한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이 무엇이어야 합니까? 세상으로부터 핍박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역설적으로 말해 핍박의 두려움이 없다면 빛으로서 소명을 다하고 있지 못하기에, 즉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며 싫어하는 상태에 빠져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가장 두려워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신자가 세상 사람에게 거룩한 두려움을 끼치기는커녕 반대로 그들 사는 모습을 좇아가지 못해 두려워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셈입니까? 아브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두려워 말라”는 그런 위로와 약속조차 아예 받지도 못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교회마다 새벽에 특별히 신년특별 새벽기도마다 그런 현실적 두려움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으니 거꾸로 되어도 너무나 거꾸로 된 것 아닙니까?
  
1/1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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