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7:11,12 진정 세례 받은 신자인가?

조회 수 495 추천 수 17 2009.09.09 00: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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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세례 받은 신자인가?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창17;11,1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미 세웠던 언약을 재확인하면서 할례를 하라고 명했습니다. 그 언약은 후손이 하늘의 뭇별처럼 많게 해주고 종과 횡으로 행하는 땅을 차지하게 해주며 특별히 열방에 복을 나눠줄 근원으로 세워 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할례를 받는 것은 그 언약이 온전히 이뤄질 것을 믿기에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징표입니다. 요컨대 믿음을 가진 자가 할례를 받아야 언약이 유효하지 할례 받는다고 무조건 언약이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흥미롭게도 집안에 있는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주라고 합니다. 그것도 이방인 종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하나님이 믿음과 상관없이 할례라는 형식만 강조한 것인가요? 하나님은 절대로 내용을 무시하고 형식만 앞장세우지 않습니다. 나아가 그분이 특별히 제정한 형식에는 반드시 당신만의 완전한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선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은 모든 가족 구성원들에게 여호와 신앙을 잘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또 그 후손도 마찬가지로 자기 후손에게 동일한 믿음을 전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대대로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한 인간이 이 땅에서 이룰 하나님께 받은 최소한의 소명은 자기 자녀를 신앙으로 거룩하게 자라도록 양육하는 것입니다.  

남자만 할례를 받으라고 했기에 여자는 믿음을 안 가져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자는 남자에게 속한 것으로, 특별히 부부의 경우는 일심동체 하나로 보았습니다. 지금도 아내 사래에게도 남편의 새 이름 ‘아브라함’(열국의 아비)과 하나 틀리지 않게 ‘사라’(열국의 어미)로 개명케 했지 않습니까? 여자도 당연히 동일한 믿음으로 동일한 언약 하에 속했기에, 신체 구조상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남자가 대표로 할례 받게 한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영원토록 신실합니다. 절대로 변개, 가감, 철회가 없습니다. 아담을 창조한 후 이브를 아담의 갈비뼈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거룩하게 다스려나갈 우선적 체계는 가정이라는 공동체였고 그 대표는,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나눠줄 통로로서, 가장인 남자, 아버지입니다. (남자가 없는 가정은 당연히 여자가 그 대표가 됩니다. 민36장)

다른 아이에게 기 안 죽이려 원하는 것 다 사주거나 달라 빚을 마련해서 과외를 시키는 한이 있어도 일류대학에 보내는 것이 신자 부모의 책임, 아니 소명이 결코 아닙니다. 자녀들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자로 자라게만 하면 그들의 먹고 마시고 입는 모든 것은 그분이 책임져 주십니다. 자녀에게 전수할 믿음이 열심히 기도하면 먹고 마실 것이 생긴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그에 소요되는 먹고 마실 것은 그분이 반드시 채워주신다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 부모부터 그렇게 사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집에서 함께 기거하는 모든 남자에게도 할례를 시행하라고 했습니다. 이방인 종이라도 가족과 똑 같은 대우를 해주라는 것입니다. 유산이나 봉급 등 현실적 측면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동일한 여호와 신앙을 전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그분의 보호, 인도하시는 사랑을 알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되려면 오히려 이 부분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자녀들은 쉽게 아비를 따를 수 있지만 가족이 아닌 자는 그렇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족보다 더 큰 사랑과 섬김으로 대해야 합니다. 당시는 한 가문 안에서 모든 경제 내지 사회활동이 다 이뤄졌으므로 가문 안의 이방인이나 종이란 오늘로선 신자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모든 불신자 이웃을 말합니다. 그들을 가족보다 더 큰 사랑으로 대하여 그들 또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자로 바뀌게 할 책임이 신자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브라함의 가문 안에 있던 모든 자들이 다 여호와 신앙으로 하나가 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당장 이스마엘만 해도 할례는 받았어도 그의 가문을 떠나 아랍 족속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그럼 그는 믿음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실패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할례의 언약이 잘못된 것입니까?

둘 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당신의 복이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되는 통로로 세웠지 복 자체를 만들어내는 원천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열방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가이드일 뿐입니다. 구원 자체는 오직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는 일입니다. 신자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책임질 부분은 복을 전하는 통로로서 충성했느냐 여부입니다.  

바꿔 말해 아브라함이 이웃을 축복하거나 저주한다고 하나님이 자동으로 그를 축복하거나 저주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언약은 그 점에 대해선 오히려 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3)

다른 사람이 그를 축복하거나 저주하면 하나님이 그에 맞추어 그 사람도 축복하거나 저주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으로 인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불신자가 신자의 삶과 인생을 바라보고 자기도 그와 같이 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면 그 불신자에게도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를 베풀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집안의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주라는 하나님의 계명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졌습니다. 모든 신자는 일차적으로는 자기 가정을 믿음의 가문으로 든든히 세워야 합니다. 또 만나는 모든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드러내보여서 그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자가 정말 그 일에 충성한다면 그에 필요한 먹고 마시는 것뿐 아니라, 그 일을 수행함에 따르는 세상의 반응도 하나님의 전적 주관 아래 두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10) 신자가 아무리 세상에서 결핍되고 박해를 받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선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그럴 의향과 준비만 되어 있다면 당신의 복이 흐르는 통로로선 전혀 부족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바로 그것이 신자 자신이 받는 온전한 복입니다.    

예수를 믿은 신자가 구원 이후에 살아야 할 삶은 주위의 믿음 좋은 장로, 전도사, 목사가 아닌 바로 자신이 열국의 아비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만나는 모든 자가 자신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복을 얻게 해야 합니다.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 앞에 완악해진 세대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만나도 자신은 썩어 없어지되 그로 인해 예수의 새 생명이 열매 맺게 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면 육신에 할례는 받았으되 마음의 할례는 아직 받지 않은 것입니다. 세례를 단지 자신의 결단으로 예수를 믿어 보겠다는 표시로 받은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으로 영원한 십자가 언약 가운데로 그 인생을 아직 품어주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진정 세례를 받은 신자입니까? 한 마디로 당신의 가장 가까운 주위에서부터, 즉 자녀들 아니 아내에게서부터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실현되고 있습니까?

2/15/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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