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7:1 하나님 앞에 완전한가?

조회 수 532 추천 수 14 2009.09.08 23: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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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완전한가?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해지려는 것”은 모든 신자가 이루어야 할 첫째가는 목표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죄를 짓지 않고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습관적 죄에 빠지거나 어쩌다 죄를 지으면 가슴을 치며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너무나 선한 일입니다. 미쁘신 하나님은 십자가 보혈로 죄를 자백하는 입술에 거룩한 사하심으로 덧입혀 주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금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해지는 것을 전혀 다른 각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지금까지 주셨던 약속을 다시 확인해주었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그 때까지도 약속이 실체화 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요구하셨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서 감사나 구제나 경건을 행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도 신세 진 사람에게 보상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타당한 상식에 속합니다. 개도 주인을 위해 종종 목숨을 걸기에 그러지 않으면 짐승보다 못한 자라 치부합니다. 신자가 하나님 은혜에 상응한 신앙행위로 보답하지 않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신자가 된 이후에 죄짓지 않고 거룩해지려 노력하는 것도 너무나 지당한 일로서 믿음의 공적으로 내세울 근거는 하등 없습니다. 하나님께 구원받는다는 것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 건짐을 받은 것입니다. 그에 상응한 보답은 당연히 죄를 짓지 않은 것이어야 합니다. 신세진 사람에게 보상을 한 셈인데 그것을 두고 자랑하는 바보는 없지 않습니까? 노골적으로 비유하자면 짐승인 개도 할 수 있는 행위를 두고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행해놓고 완전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본문은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을 앞에 두고서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믿고 행하는 것”을 두고 완전해지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은 누구나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에 반드시 주목해야 합니다.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고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즉 인간의 힘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달성되지 않는 약속을 믿고 행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믿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마음으로 믿은 것이 신앙 행위의 전부가 되어선 안 됩니다. 믿고 행해야 완전해집니다. 신자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완전히 이뤄졌다는 전제 하에 따른 자연스런 반응이어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을 두고 미리 이뤄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쉽습니다. 앞으로 경기가 좋아지리라 믿고 공장을 확장한다고 해서 믿음으로 완전히 행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요구한 완전한 믿음의 행위는 무엇이었습니까? 단순히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누구나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름이란 다른 사람이 불러주는 것입니다. 새로운 이름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을까를 감안해야 합니다.  

거의 백세 때에 이름을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에서 ‘아브라함’‐열국의 아버지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비록 그가 75세나 더 살았지만 백세에 이름을 바꾸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자식이라고는 첩의 소생에서 난 이스마엘 하나뿐인데 어떻게 열국의 아비가 된다는 말입니까?

“이 노인이 이제 완전히 망령이 들었구먼... 본처에게서 자식을 보는 것에 한이 맺혀 이름이라도 바꾸면 생산이 될 것으로 착각하나? 그래도 그렇지 남자 나이 백 살에 경수가 끊긴 구십 세의 마누라에게서 아이를 보는 것이 될 법이나 한 말인가? 천번 만번 양보해 설령 후손을 보는 기적이, 정말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렇지 어떻게 감히 열국의 아비라고 할 수 있는가?”

사람들에겐 아니 아브람 본인에게도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코미디일 뿐입니다. 실제로 아브람은 후손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으면서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라고 세상 사람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그전에는 명함에 아무 직함 없이 단순히 ‘아브람’이라고 적었는데, 100살에 ‘대통령 아브람’, 아니 ‘세계대통령아브람’(열국의 아버지)이라고 새기고 다니라고 요구한 셈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 나라와 그 땅에는 아무 연고가 없이 거주만 허락받은 낯선 이방인이 말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에게서 아브람은 완전히 미친 사람 취급받을 것입니다.

그럼 이제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행하여 완전해지는 것의 뜻이 분명해졌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으로 인해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것입니다.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약속을 붙들고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단순히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오해, 비방, 멸시, 핍박을 받아도 오직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붙들어 매고 죽을 때까지 전혀 흔들림 없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받을 보상은 단 하나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도가 너무 지나친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미친 사람이라고 낙인찍은 자에게 세상이 줄 보상이 전무(全無)함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들로선 너무나 정상적인 행위이자 반응입니다. 신자가 세상에서 미친 사람이 된 것은 하나님에게 붙들린 것이 너무 좋아서 이뤄진 필연적 결과일 뿐이므로 그들을 탓하거나 반발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고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지 못하고 있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세상에서 미친 사람 취급당하는 것이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위인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신자가 다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신 공통적인 소망이 분명히 있지 않습니까? 지금 이 세대의 사람들이 들으면 신자더러 미쳤다고 비웃을 그런 소망이 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소망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그분과 얼굴과 얼굴로 맞대면하여 영원토록 찬양과 경배 가운데 지낼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육체로 다시 오셔서 이 땅을 마지막으로 심판할 것입니다. 그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고 세세토록 그분과 왕 노릇할 것입니다. 이 소망을 아브라함처럼 명함에 새겨서 만나는 사람에게 나눠줘 보십시오. 누구라도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이제는 명색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자들에게서조차 그런 비웃음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또 신자 각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자신이 이 땅에서 이뤄야 할 그분의 소명이 있습니다. 흑암의 권세에 미혹된 자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해야 할 소명입니다. 또 썩어져 가는 이 땅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할 소명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를 반사시켜야 할 긍휼의 대상으로 보아야할 소명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소명을 자신의 가장 가까운 데서부터 실천해 나갈 때에 미쳤다는 비방을 달게 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핍박이 신자의 기쁨이어야 합니다.  

신자가 선하게 사는 것으로는 믿음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짐승이 아니라 사람의 탈을 썼다면 그렇게 살아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보다 하나님에게 완전히 미쳐서 세상의 방식과는 전혀 반대로, 아니 완전히 비정상적으로 살아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것도 평생을 두고 자신이 이 땅에 가진 모든 것을 다 잃더라도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지려 노력하고 있습니까?

2/5/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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