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5:7,8 징조 대신 보증을 받아라.

조회 수 497 추천 수 9 2009.09.08 23: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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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조 대신 보증을 받아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서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창15:7,8)


의롭고 강직한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의 미움과 핍박을 사 두려워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약속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전혀 믿음의 조상답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상급을 주셔봐야 친 아들도 없으니 자기 집에서 길리운 종에게 다 돌아갈 것이라고 한탄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는 그로선 감히 하나님에게 상급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이 땅을 주시겠다고 하는데도 그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무례하고도 불신에 찬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까? 사람들 앞에는 정의롭게 행하다 두려워지니까 하나님에게 떼를 쓴 것입니까? 세상에서 당하는 시기 질투를 괜히 하나님에게 대고 화풀이한 것입니까?

물론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비겁하고 치사하며 연약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의 굴곡이 요동칩니다. 자기가 자기를 온전히 통제하지 못합니다. 속에선 끊임없이 탐욕과 음란과 거짓과 죄악이 솟구칩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해도 크게 예외는 아닙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정말 피 흘리기까지 경건을 연습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이 본문에서 보인 반응은 그런 의심 내지 불신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직전에 그는 분명히 자식을 하늘의 뭇별처럼 많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었고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여겨주었습니다. 비록 그가 우리와 성정이 같아도 그런  믿음이 순간적으로 불신으로 떨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후손에 대한 약속은 믿었고 땅에 대한 약속을 믿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노년에 이른 그로선 땅보다 오히려 후손의 약속이 더 믿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에게 약속을 한 번 더 다짐받고자 것입니다. 후손의 약속을 받았을 때에 하늘의 뭇별을 바라보라는 징표를 받았듯이 이번 약속에도 그런 보증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자신이 기도한 내용이 정말 응답될지 징표부터 먼저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를 봅니다. 물론 그럴 수 있고 꼭 나쁘다거나 틀렸다고 단정 짓기는 힘듭니다. 신자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기도를 끈질기게 하도록 징조가 때로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경우에 비추어 사실은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아니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고쳐야할 부분이 여럿 있습니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아브람은 하나님의 확고한 약속을 먼저 받았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그분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불려 나올 때 이미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또 롯과 땅을 나눈 후에는 종과 횡으로 행하며 보이는 땅 모두를 주겠다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아브람은 그 받은 약속을 자신의 삶에서 실현하려고 실제로 헌신하는 중이었습니다. 비록 조카 롯을 구출하려는 목적의 전쟁이었지만 소돔 지역과 살렘의 왕들 앞에서 복의 근원답게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의 시기를 사서 두려워질 정도로 미움을 받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 자신을 희생하며 바쳤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징조를 요구하는 상황은 어떠합니까? 자기 임의로 정해놓은 기도를 하고선  응답될지 징조를 달라고 조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주로 오랫동안 간절히 기도한 내용을 두고 일단은 이 기도가 과연 이뤄질지만 바꿔 말해 기도를 계속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 만이라도 점검하고 싶은 것입니다. 꼭 이 기도만은 이뤄져야 한다는 절실함 때문에 말하자면 너무나 소원하는 일이기에 빨리 그 가능성이라도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반면에 성경은 쉬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 중에 징조를 구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기도 중에 이뤄질 것이라는 징조부터 받으면 당장 기도를 중단하려 들거나 최소한 게을러질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신자와 끊임없는 친밀한 교제를 원하십니다.  쉽게 말해 그분은 신자가 기도하는 것 그 자체만도 아주 기쁘게 받으시는 분입니다. 신자가 응답될 내용만 골라서 기도한다면 과연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성경에서 징조를 구한 가장 대표적인 경우인 기드온의 타작마당 양털 표적도(삿6:36-40) 그가 이미 미드온과 전쟁을 치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고 또 그렇게 하기로 결단한 후였습니다. 전쟁을 앞두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보장을 받고자 구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지금 아브람도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가능성을 의심하여 시험한 것이 아니라 단지 더 확실한 보장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아브람과 하나님의 교제 중에 정말 눈여겨보아야 할 측면은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 쪽에서 일방적으로 시작해 이끌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에서도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서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고 당신께서 그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또 그전에 두려워하고 있는 그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임한 것이지 그가 어떤 징조 보장 약속 위로를 달라고 먼저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신자가 기도 응답의 표적을 구하는 것은 아예 틀린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의 약속을 꼭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가며 실현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과정 중에 세상 사람의 반발이나 사단의 방해로 자신의 믿음이 흔들려 두려워질 때에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보장을 요구해도 됩니다. 아브람과 기드온의 경우가 바로 그랬지 않습니까?  

그러지 않고 자기 뜻과 계획대로 하는 기도를 두고 응답에 대한 징조를 요구하는 것은 자칫 믿음을 미신의 수준으로 떨어트릴 수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하나님 의 뜻을  미리 다 알 수 없기에 자기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 응답 여부를 빨리 알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반드시 지금 기도하는 제목들이 하나님이 정말로 기뻐하는지 여부를 두고 먼저 혹은 동시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엇이든 기도부터 하지 하나님 기뻐하는 기도만 골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구하며 기도하면 무엇을 계속 기도해야 할지 하지 않아도 될지 깨닫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성경 말씀에 비추어 묵상하며 기도하면 인간적 욕심에 따른 쓸 데 없는 기도는 기도 중에 제거됩니다. 오순절 이후에는 성령의 세밀한 인도가 가시적 징조를 대신할 뿐 아니라 더 확실한 보증이 됩니다.  

요컨대 자기가 정해놓은 기도 응답의 징조를 구하지 말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소명에 대한 보증은 요구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 소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중에 말입니다.  전자는 신자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그분을 종으로 부리는 신성모독인 반면에 후자는 신자가 종으로서 받은 임무를 더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독려를 계속해서 받으려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자신의 소원이 이뤄질지 그 가능성부터 미리 알고 싶어 합니까?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이루실 영광에 모든 것을 바치고자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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