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의 타당한(?) 예수 살인모의

조회 수 251 추천 수 8 2011.12.20 06:10:09
유대인들의 타당한(?) 예수 살인모의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5:17,18)


예수님은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할 정도로 완벽한 치유가 순간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자를 말씀 한마디로 고쳤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 아니고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그 치유를 안식일에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유대인들이 보인 반응과 경과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그들은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사람을 발견하고 왜 안식일 규정을 위반하느냐 따졌습니다. 안식하지 않고 노동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전에 38년 된 환자로 예수님의 치유를 받았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그에 대해 환자는 나를 낫게 한 자가 자리를 들고 가라고 했다고 답했습니다. 화살은 예수한테로 돌려졌고 “안식일에 이런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16절)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한술 더 떴습니다. 이젠 유대인들은 핍박을 넘어서 아예 죽이고자 덤벼들었습니다.

오늘날의 신자에겐 너무나 지당하고 자연스런 말씀인데 왜 유대인들이 죽이려고까지 드는지 언뜻 이해가 안 갈 것입니다. 불치병 환자를 말씀으로 살렸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노동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 환자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다른 환자에게 비워주려면 당연히 자리도 함께 들고 가야하기에 그러라고 한 것뿐입니다. 전후사정을 조금만 이성적으로 따져본다면 문제 삼을 것 하나 없음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자리를 치워야 한다는 것은 구약성경 자체의 율법규정은 아닙니다. 안식일에 노동하지 않는 범위를 구체적인 현실상황에 맞추어 정한 장로들의 유전에 위반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로선 자리는 그 다음 날에 치워도 된다는 타당한 이유를 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이 포함된 성경기사에 따르면 안식일로는 예수님을 핍박하는 단계에만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본문 말씀은 그들이 크게 문제 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이 설명하는 그대로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예수님의 표현은 도두지 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불경했습니다. 오늘날도 자기들이 경배하는 절대자 신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르는 종교는 기독교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단순히 아버지라고 한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라고 호칭했습니다.

잘 알다시피 유대인들은 야훼 하나님의 이름도(출3:14) 함부로 그대로 부르지 못하고 “엘로힘”이라고 다른 명칭을 만들었습니다. 구약성경을 필사할 때에도 그 이름이 나오면 옷맵시와 자세를 새롭게 하며 붓을 빨아서 쓸 정도였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불렀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정말로 하늘이 뒤집어지는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 한마디만으로 자기들 종교사상과 체계에 따르면 충분히 사형에 해당됩니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예수님도 일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안식일 치유사건을 둔 논쟁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안식일에도 일한다고 말한 셈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2:2) 십계명에도 안식일을 제정한 이유를 하나님이 쉬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진술을 완전히 뒤엎어버린 셈입니다. 유대인들로선 모세오경을 부인한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사역은 더 이상 하실 필요가 없었지만 당신께서 창조한 만물을 운행하는 일은 한 시도 쉬지 않으십니다. 만약 그분이 쉬신다면 만물은 당장 생명력을 잃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환자도 당신이 지으신 당신의 백성으로 치유하는 일을 안식일이라고 멈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머물지 않고 아예 더 나갔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당신이 대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사렛의 이름 없는 젊은 랍비가 함부로 지껄일(?) 말이 결코 아닙니다. 인간 주제에 하나님의 일을 대행한다는 것이 감히 될법한 말입니까? 지금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는 아주 짧고 간단한 대답 안에 유대교로선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 셋이나 자인(自認)한 꼴입니다. 당시 입장에서 엄밀히 따지면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지경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입장을 살펴봅시다. 오직 절대적 진리(truth)를, 말하자면 너무나 분명한 사실(fact)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것뿐입니다. 그분에게 다른 변명, 해명, 설명은 전혀 필요 없었고 또 오해와 혼동만 불러오기에 그래서도 절대 안 됩니다. 사람들의 이해와 무관하게, 아니 유대인들이 핍박하고 살인을 모의하더라도 마땅히 하셔야 할 말을 하신 것입니다.  

가만히 따져 보십시오. 예수님이 당신께서 하신 일에 대해 변명, 해명, 타협, 조정, 수정하려 들었다면 복음서의 기록이 어떻게 되었을지 말입니다. 아니 그리 심각하게 따질 것도 없이 예수님이 어찌 거짓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상황으로 미루어, 엄밀히 말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상 당신께선 골고다 언덕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태초부터 삼위하나님이 마련해놓으신 인간 구원의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당시로선 가장 경건했고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있었던 유대인들마저 자신의 의로움이 도리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가 되는지 전혀 몰랐지 않습니까? 결국 예수님이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로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나뉘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늘날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자행한 것이 이상할 것 하나 없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마13:14)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선 다 할 수 있습니다.”(마19:26)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엡1:11)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이나, 오늘날의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현상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변명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당시의 경건했던 유대인들보다 인간 세상의 의로도 훨씬 못 미치고 하나님과 원수 된 자리에조차 있던 우리가 구원의 은혜 가운데 든 것을 무한 감사해야 한다는 뜻만도 아닙니다. 언제까지 구원 받은 사실만 기뻐할 수는 없습니다.

정작 우리도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자리에 서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세상 사람들은 절대자 신의 실존조차 의심하며 그 존재를 인정하는 자라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반면에 너무나 놀랍고도 감당 못할 은혜로 귀와 눈이 열린 우리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그들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도와 선교에 열심을 내어 큰 종교적 업적을 쌓으라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진짜 “내 아버지”인 모습을 말 대신 행동으로 이해시키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고와 말과 행동이 그분의 뜻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하늘의 고귀한 가치를 이 땅에 옮겨 심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누가 우리를 봐도 천국의 영광이 삶과 인생의 유일한 목표임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아직 연약하여 실수와 허점을 자주 내보일지라도 내 아버지 되시는 그분의 능력과 은총으로 다시 일어서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12/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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